4월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가 열리고 있다.ⓒ공동취재

내년도 최저임금 논의의 전선 중 하나는 ‘차등 적용’이 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국민의힘 경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8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도 지역별·업종별 차등 적용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가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현행 최저임금법은 최저임금을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제4조 1항). 그러나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다르게(차등) 적용한 것은 1988년 최저임금이 도입된 첫해뿐이다. 1989년부터는 단일 최저임금이 적용되고 있다. 지역별 차등 적용은 시도된 바 없다. 고용주 단체는 최저임금을 지역과 업종에 따라 달리 적용하자고 주장한다. 왜?

먼저 업종별로 경영 여건과 임금 지급 능력이 다르다는 게 그 이유다. 해당 산업의 전체 노동자 중에서 최저임금보다 낮은 급여를 받는 노동자의 비율, 즉 ‘최저임금 미만율’은 농림어업이 51.3%로 가장 높고, 숙박음식업이 42.6%로 뒤를 이었다(2020년). 이처럼 노동자의 상당수가 최저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업종에 대해서는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 업체들의 부담을 덜어달라는 것이다. 이러면 최저임금이 올랐을 때 업체들이 고용을 줄이는 경향을 완화해 노동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논쟁적이다. 업종별 차등 적용이 고용률을 줄이거나 실업률을 낮출지는 면밀히 분석해봐야 한다. 최저임금제를 시행하는 나라 중에서 업종별 차등 적용을 도입한 나라는 일본, 호주(오스트레일리아) 등 몇 나라 되지 않는다. 일본이 대표적인데, 지역별 최저임금이 정해진 뒤에 어떤 산업의 노사가 신청을 하면 심의를 거쳐 지역별 최저임금보다 높은 산업별 최저임금(특정 최저임금)을 정하는 방식이다. 지역별 최저임금보다 낮출 수는 없다. 호주의 경우 ‘모던 어워즈’라 불리는 산업별 임금을 해당 산업의 노사가 단체협약으로 정하고 공정노동위원회가 공인하면 법규적 효력을 갖는데, 역시 하한선으로서의 국가 최저임금이 별도로 존재하며 산업별 최저임금은 이보다 높아야 한다. 한국의 고용주들이 기대하는, ‘전국 단일 최저임금보다 낮은 업종별 최저임금’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만약 전국 단일 최저임금을 상회하는 업종별 최저임금을 정한다면, 적어도 같은 업종 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 해소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노동사회학)는 “업종별 최저임금을 정해봐야 (기업 간 지불 능력 차이 때문에) 최저임금보다 약간 높은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으므로, 임금격차 해소 효과는 별로 없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아예 상시 직원 수 5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에 더 낮은 최저임금을 적용해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최저임금은 도입 첫해인 1988년 10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되다가 1999년 9월부터 5인 이상 사업장, 2001년 9월부터 모든 기업에 적용되었다. 규모별 차등화는 이를 역행한다. 정이환 교수는 “‘최저임금을 못 주는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한다’는 게 최저임금의 본래 정신이다. 어떤 일을 하는 노동자라도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어려우니 깎아주자는 것은 최저임금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지역별 차등 적용은 법 개정 사안이다. 지역별로 경제 상황이나 임금수준, 생계비가 다르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된다. 지역별 최저임금의 조건으로 두 가지가 꼽힌다. 하나는 영토가 넓고 지역 간 이동이 활발하지 않은 경우다. 연방제 국가인 미국은 연방 최저임금도 있지만 주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정한다. 다른 하나는 지역 간 경제력이 현격히 차이 나는 개발도상국이다. 지역별 최저임금을 정하는 대표적인 개발도상국이 중국이다. 지방분권 경향이 강한 일본은 1959년 최저임금 시행 때부터 지역별 차등 적용을 해왔는데, 이런 일본에서도 “지역별 최저임금제 실시에 따라 지역별 최저임금 수준의 편차가 커지면서, 1963년부터 중앙정부가 ‘최저임금액 개정 목표치’를 제시해 지역별 최저임금의 편차가 줄어들도록 노력하고 있다”라고 이승협 대구대 교수(사회학)의 연구보고서에 소개되어 있다.

한국은 일일생활권으로 국내 지역 간 인구 이동성이 높다.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산다. 이런 상황에선 수도권 및 그 이외 지역 대도시에 살지 않는 소수만이 실질적인 차등 적용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2017년 중소기업 8개사를 심층 인터뷰한 결과, 수도권 소재 중소기업은 지역별 차등 적용에 찬성하는 반면, 수도권 이외 지역의 중소기업은 “가뜩이나 우리 지역에는 인력이 없는데 서울로 인재가 더욱 쏠릴 것이 분명하다”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문재인 정부의 결론은 “불필요하다”

청소년과 고령자는 생산성이 떨어지므로 최저임금을 감액하자는 주장도 심심찮게 제기된다. 청소년에 대해 최저임금을 감액하는 나라로는 영국·아일랜드·네덜란드 등이 있다. 반면 고령자에 대해 최저임금을 깎는 나라는 거의 없다. 칠레 정도인데, 18세 미만뿐 아니라 65세 이상에게도 최저임금의 74.6%를 지급할 수 있다. 정년 이후 연금 수령자가 재취업해 이중 소득을 확보한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의 상황에서는 고령자에 대한 최저임금 감액 적용을 논의할 여지가 있다. 노후 소득보장이 불안해 일하려는 노인은 많은데, 공공일자리 외에는 노인을 잘 고용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령자에게 최저임금을 감액하면 고용을 촉진하리라는 기대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노동법)는 “법에서 규정한 정년 60세를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다소 낮게 책정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노동을 하는 60세 이상과 60세 미만자를 차별하는 게 아닌지 검토가 필요하다. 특정 연령 전체를 저생산성 집단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이 될 수 있다. 최근에는 임금피크제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며 사회질서를 위반하는 행위에 해당해 무효라는 법원 판결도 나온 바 있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년 ‘최저임금 제도개선 TF’가 꾸려져 업종·지역·연령별 차등 적용을 검토한 바 있다. 지역별 차등 적용과 청년 감액 적용은 불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업종별 차등 적용과 고령자 감액 적용은 의견이 갈렸지만, 역시 불필요하다는 게 다수 의견이었다. 당시 TF에서 활동한 박귀천 교수는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에서는 (기업별 교섭을 넘어선) 산업별 교섭을 통해 정해진 산업·업종별 최저임금이 법정 최저임금보다 높고, 법정 최저임금은 협약의 보호 범위에 들어가지 못하는 취약 노동자들을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 이용된다. 한국은 반대로 최저임금이 주된 임금 기준이 되고, 특히 최초 입직 시 기준임금이 되며 산업별 교섭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산업별 임금 교섭을 활성화해 자연스럽게 산업별 적정임금 수준이 형성되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직무 가치에 대한 객관적 기준을 마련해 현장에 확산되도록 도우며, 지불 능력이 열악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등의 좀 더 근본적인 방안이 추진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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