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3일 ‘2022년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나란히 참석했다.ⓒ국회사진취재단

개발독재 이후 수십 년 동안 이어진 한국의 중산층 형성 양식은 이미 파산선고를 받았다. 그동안 한국에서 중산층으로 성장하려면 세 단계를 거쳐야 했다. 일단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 ‘노동소득’을 축적한다. 노동소득을 저축해서 자산을 형성한다. 종국적으론 자가 주택을 소유해야 한다.

이런 삶이 가능하려면 필요한 전제 조건들이 있다. 첫째, 국가경제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성장하면서 지속적으로 일자리를 공급해야 한다. 그래야 노동소득이 발생한다. 둘째, 저축을 통해 자산을 형성하려면 물가상승률보다 금리가 높아야 한다. 셋째, 자가 주택을 소유하기 위해선 주택 가격이 안정되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전제 조건이 모두 깨져버렸다.

이 같은 조건 변화에 대응해서 개인들은 각자 스스로 대안적인 ‘중산층 사다리’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2017년 이후의 ‘코인’ 붐, 2020년 이후 개인투자자의 대규모 주식시장 진입 등은 이런 맥락에서 발생한 현상이다. 어느덧 1000만명에 이른 개인투자자들은 정치권에 자신들의 자산 형성을 방해하지 말 것, 더 나아가 기존의 방해물들을 제거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야 대선후보들은 개인투자자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주식시장을 ‘청년층 자산 형성’과 ‘중장년층 노후 자금 마련’의 수단으로 호명한다. 이번 대선에서 주식시장 공약은 단순히 자본시장 규율을 개선하겠다는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일자리, 복지에 버금가는 핵심적 분배정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지난 1월3일 열린 ‘2022년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선 상징적 장면이 연출됐다. 양강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나란히 개장식에 참석해 축하 연설을 한 것이다. 신년 증시 개장식에 대선후보가 등장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재명 후보는 구체적으로 주가 상승 목표치까지 제시했다. 그는 지난해 12월13일 “코스피 주가지수 5000 시대를 열겠다”라고 공언한 바 있다. 주가지수는 대표적 국내 상장기업들의 주식 가치 현황을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다. 이 후보의 공언대로 2월 중순 2000 중후반대인 코스피 주가지수가 5000으로 상승하려면, 기업들의 주가가 평균 80% 이상 상승해야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주식 양도소득세

가능한 일인가? 이재명 후보는 단순 명쾌해 보이는 대안을 제시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만 해소된다면 코스피 주가지수 5000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한국 기업들의 주가가, 비슷한 경영 실적(순이익 등)의 외국 기업 주가에 비해 전반적으로 낮은 상황을 뜻한다. 예컨대 한국과 미국의 어떤 기업이 동일하게 순이익 1000억원을 냈다고 치자. 그런데도 미국 기업의 주가가 20만원인 반면 한국 기업의 주가는 10만원에 그칠 수 있다. 이처럼 같은 수익을 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업이기 때문에 주가가 낮은 현상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어떤 기업의 주가가 수익에 비해 얼마나 높은지 나타내는 지표인 PER(주가수익비율)을 살펴봤을 때, 실제로 한국 코스피 시장의 PER은 미국의 대표 주가지수인 S&P500 편입 기업들 PER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재명 후보는 ‘투명성’ ‘공정성’ ‘성장성’ 등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본다. 시장이 ‘투명’하지 않다면, 다시 말해서 기업들이 경영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다면 개인투자자들은 높은 투자수익을 낼 수 있는 주식 상품을 선택하기 힘들다. 흔히 ‘오너’로 불리는 지배주주(재벌 가족)들이 다수 지분을 악용해서 주가를 올리거나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개인투자자들에게 손실을 강제하는 ‘불공정’한 일이 벌어져온 것도 사실이다. 또한 혁신 기업이 적어서 다른 선진국 주식시장에 비해 시장 전반의 ‘성장성’이 낮다고 믿는다. 이재명 캠프 금융경제특보단장인 원승연 명지대 교수(경영학)는 위의 세 요인을 단계적이고 순차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우선 기업이 허위 정보를 유포하지 않으며, 자사에 유리한 경영정보뿐 아니라 불리한 정보까지 주식시장에 공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투명성). 이에 따라 투자자들은 지배주주들의 이익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주식을 선택할 수 있다(공정성). 이런 경로를 통하면, 혁신으로 미래에 큰 수익을 올릴 채비를 갖춘 기업들이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시장 환경이 갖춰질 수 있다(성장성)는 것이다.

윤석열 후보 역시 이재명 후보와 동일하게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세 가지 요인을 지적한다. 다만 이 후보와 달리, 윤 후보는 구체적인 주가지수 목표치를 제시하는 데 부정적이다. 2022년 증시 개장식에서 윤 후보는 “주가지수는 거시경제 여건, 개별 기업의 경영 실적, 시장 유동성, 정책의 예측 가능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래서 사전에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의 주가지수 5000 목표를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대신 윤 후보는 ‘주식 양도소득세 폐지’로 주가를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주식시장 참여자에게 부과되는 세금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주식을 팔 때 매도액의 일부를 납세하는 증권거래세와 농어촌특별세가 있다. 두 세금을 합쳐서 코스피·코스닥 시장에 적용되는 세율은 2022년 1월 현재 0.23%다. 2023년부터는 이 세율이 0.15%로 하락하게 되어 있다. 이 외에 주식 양도소득세가 있다. 현재 주식 양도소득세는 ‘대주주’에게만 부과된다. 문재인 정부는 2023년부터 대주주 여부에 상관없이 주식 매매로 한 해 5000만원 넘게 수익을 올린 투자자 모두에게 양도소득세를 징수해 세원을 넓힐 방침이었다(〈그림 1〉 참조).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윤석열 후보는 양도소득세가 아닌 증권거래세를 완전 폐지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손실을 볼 때도 내야 하는 증권거래세는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의 대원칙과 위배된다는 것. 또한 양도소득세와 증권거래세를 함께 부과하는 것은, 동일한 소득원에 대해 세금을 두 번 걷는 ‘이중과세’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 1월27일, 윤 후보는 주식 양도소득세를 폐지하고 증권거래세는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윤 후보는 양도소득세가 폐지되면 더 많은 자금이 한국 주식시장으로 유입돼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며, “우리나라 증시가 상당한 정도로 올라갈 때까지” 증권거래세만 부과하겠다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는 주식 양도소득세 폐지가 ‘부자감세’라며 반대 뜻을 명확히 했다. 수익률 10%를 가정하더라도, 연 5000만원 수익을 올리기 위해선 5억원의 투자자금이 필요하다. 아무나 투자할 수 있는 돈이 아니다. 따라서 주식 양도소득세 폐지는 대다수의 개미가 아닌 부자들의 세금을 낮춰주는 정책이란 것이다. 2020년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한 해 5000만원 이상 주식 차익을 거두는 투자자는 상위 15만명가량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비판에 윤 후보는 “개미들도 양도소득세 폐지를 원한다”라고 응수했다. 윤 후보 캠프 경제정책본부장인 김소영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현재와 같이 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내년에 양도소득세가 부과되면 올해 말 주식시장에서 자금이 대규모로 빠져나가 불안을 더 부추길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주식시장이 서민의 자산 형성 창구?

어떤 후보의 말이 더 타당한가를 판단하기에 앞서, 여기서 하나 물어야 할 것이 있다. 두 후보의 말처럼 전반적인 주가가 올라간다고 해서 주식시장이 서민의 자산 형성 창구로 작동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상승장에서 개미들은 돈을 벌 수 있을까? 2020년 개인투자자들이 받은 투자 성적표는 그 가능성에 의문을 던진다. 2020년 주식시장은 말 그대로 ‘불장’이었다. 신규 투자자들이 대거 유입된 2020년 3월과 비교했을 때, 그해 말의 주가가 60% 이상 상승했다. 그러나 ‘불장’에도 불구하고 전체 투자자의 약 46%가 투자 손실을 기록했다. 신규 투자자 가운데 62%가 손실을 봤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극복되더라도 개인투자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 성과를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2020년 개인투자자들의 투자 실적을 분석한 자본시장연구원은 저조한 성과의 원인으로 ‘잦은 거래’를 꼽았다. 주식을 장기 보유하기보다는 ‘잭팟’을 노리며 지나치게 자주 사고파는 ‘과잉 거래’ 때문에 오히려 손실을 봤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해, 신규 투자자들이 한 종목을 보유하는 기간은 평균 8.2거래일에 불과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개인투자자의 투자 성과 지속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개인투자자의 중장기 자산 형성을 위해 지속가능성을 높일” 방안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장기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이재명, 윤석열 후보의 공약은 매우 부실하다. 당초 두 후보는 장기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주식을 장기 보유할수록 주식 양도소득세를 감면하겠다는 공약을 냈다. 그러나 윤 후보는 양도소득세 자체를 폐지하기로 입장을 바꿔버렸다. 장기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새로운 방안이 있느냐는 〈시사IN〉의 질문에 윤석열 캠프 측 김소영 교수는 “현재로서는 없다”라고 답했다.

이재명 후보는 당초의 공약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높다고 보긴 힘들다. 이 후보의 말을 빌리자면, 주식 양도소득세는 ‘부자’에게 적용되는 세금이다. 장기 투자자에게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을 주겠다는 공약으로는 ‘단타’ 성향이 강한 소액투자자들의 장기 투자를 유도할 방법이 없다. 이 같은 지적에 이재명 캠프 측 원승연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을 낮추는 방향으로 갈 것이므로 소액투자자들에게도 장기투자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투자자들이 바람직한 투자 습관을 형성해 수익을 본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남는다. 이로써 이익을 보는 집단이 비교적 고소득층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소득분위가 낮은 가구는 주식 보유액 자체가 적을 뿐 아니라 ‘전체 자산 중 주식 보유 비중’도 낮다. 소득분위가 낮을수록 자산 중 대부분이 부동산이나 전월세 보증금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주식투자로 수익을 올릴 엄두를 내지 못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 소득 5분위별 자산, 부채, 소득 현황〉 자료를 보면 이 같은 성향이 여실히 드러난다. 소득에 따라 전체 국민을 5분위로 나누어봤을 때, 소득이 낮을수록 전체 자산 중 주식 보유 비중이 줄어들고 예적금과 부동산, 전월세 보증금 등이 차지하는 비중은 늘어난다(〈그림 2〉 참조). 2021년 기준, 가장 낮은 소득을 올린 1분위 가구의 평균 주식 보유액은 244만원으로, 전체 자산 중 1.48%를 차지한다. 반면 가장 높은 소득을 올린 소득 5분위 가구의 주식 보유액은 4315만원으로, 전체 자산 중 3.93%다.

설사 앞으로 주가가 올라가고 개인투자자들이 전반적으로 괜찮은 수익률을 올린다고 해도 자산 불평등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모든 기업의 주가가 두 배 오르는 다소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때 소득 1분위 가구의 자산은 1.48% 증가할 뿐이지만 소득 5분위 가구의 자산은 3.93%나 불어난다. 고액 투자자일수록 높은 수익률을 보이는 실증연구들의 결과를 고려한다면 이 차이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점점 더 많이 가지게 되는 상황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 윤석열 후보는 주식시장 공약에 저소득 계층의 주식 보유 비중 확대를 유도하고 자산 불평등을 완화할 대책은 전혀 포함시키지 않았다. 두 후보의 주식시장에 대한 꿈이 실현되더라도 그 결과가 모두를 위한 장밋빛 미래는 아닐 듯하다.

이재명, 윤석열 후보는 둘 다 ‘투자자의 자산 형성’ 관점에서 주식시장을 바라본다. 이 관점에서 내놓은 공약이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빠져 있다. 그러나 기업엔 투자자(주주) 외에도 노동자·소비자·채권자 등 수많은 경제주체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주주의 ‘합리적 선택’과 지속가능성

공약을 통틀어 봤을 때, 두 후보의 지향점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에 따라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주주의 이익이 더욱 크게 반영되는 방향으로 지배구조를 바꾸는 방안도 제시되었다(26~30쪽 기사 참조). 그러나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노동자, 소비자 나아가 해당 기업 자체와 국가경제에 이로울 것이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주주는 언제든 주식을 팔아 치울 수 있으며, 미래의 이익보다는 당장의 이익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기업이 장기적으로 발전해서 미래에 큰 수익을 올리는 것보다 빠른 주가 상승이 주주들에게 유리하다. 이는 주주가 윤리적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주식시장 참여자로서 가장 ‘합리적’인 행위를 선택하는 것일 뿐이다.

2월9일 코스피 지수는 2700대 중반을 나타내고 있다.ⓒ연합뉴스

그러나 주주가 떠난 뒤에도 기업은 남는다. 오래 살아남아 많은 이익을 내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인 기업은 단기적 이익에만 치중할 수 없다. 당장의 수익성을 악화시킨다 해도 전망 있는 사업을 잘 가려내고 투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해당 기업에 이롭다. 하지만 이는 때때로 주주의 이익과 배치될 수 있다. 예컨대 상장 후 바로 코스피 시가총액 2위가 된 LG에너지솔루션을 보자. LG에너지솔루션의 전신인 LG화학의 전지사업본부는 대표적인 ‘만성 적자’ 부문이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에 걸친 투자로, LG화학 경영 측이 전지사업본부를 자회사(에너지솔루션)로 분할·상장하니 모기업(LG화학)의 주가가 폭락할 정도로 ‘알짜 사업’이 되었다(26~30쪽 기사 참조). 지금 돌이켜봤을 때 LG화학의 배터리 사업 진출은 옳은 결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LG화학이 배터리 관련 연구를 시작한 1992년의 시점에서는 어땠을까? 당시 LG화학 주주는 수십 년간 적자가 날 가능성이 크고 성공 여부도 불확실한 배터리 사업부문에 진출하는 것에 선뜻 동의할 수 있었을까? ‘합리적인 주주’라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국가경제가 발전을 지속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선 기업의 장기적 생존이 필수다. 그러나 ‘합리적 주주’의 관점에서 이는 주요 고려 사항이 아니다. 물론 주주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선택을 하는 것은 마땅하다. 문제는 기업의 주인으로서 주주의 ‘마땅한’ 선택이 기업을 위한 최선의 선택, 더 나아가 국가경제의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선택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당시, 부동산을 보유하지 못한 이들은 자신을 ‘벼락 거지’라고 부르며 자조했다. 부동산 집값을 잡아야 한다고 아우성치는 와중에도, 대다수 부동산 소유자는 ‘내 집값만은’ 오르길 바랐다. 새로운 자산 형성 경로로 제시된 주식시장은 또 다른 ‘벼락 거지’를 만들지 않을 수 있을까. 개별 투자자로서의 합리적 판단이 국가경제의 성장을 저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주가 상승’과 ‘투자자 권익 보호’를 외치는 두 후보 앞에 던져진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기자명 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