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대통령 선거 후보들은 2월15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한다. TV 토론은 앞으로 선거 전까지 네 차례 더 열릴 예정이다. 각 정당이 선거전에 총력을 기울이지만, 후보단일화와 같은 변수도 남아 있다. 하루하루 쏟아지는 정치 현안 사이에서 〈시사IN〉 정치팀 기자들이 2월10일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솔직한 방담을 위해 각 기자의 이름은 별명으로 대신한다. 각자의 별명은 이번 주 정치권에서 화제가 된 사건과 말을 패러디했다. 개별 정치인의 직함도 처음 언급할 때에만 기술하고, 이후에는 편의상 이름만 남겼다.

2월6일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방문해 ‘남부 수도권’ 구상을 밝혔다.ⓒ연합뉴스

커피한잔(커):2월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선후보 배우자 김혜경씨의 사과 기자회견이 가장 큰 이슈였다. ‘황제 의전’ 논란에 대해 본인이 카메라 앞에서 사과 뜻을 전했다.

소고기법카(소):지난해 12월26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배우자 김건희씨의 사과 기자회견을 의식한 것 같았다. 당시 회견장에서 김건희가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아 논란이 일었는데, 김혜경은 이걸 의식해 최소한의 질문을 받았다. 그러나 질문과 답변이 충분하지 않아 ‘보여주기식 구성’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았다.

마스크두장(마):“실체적인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협조하겠다”라는 말 자체가 모범 답안처럼 느껴졌다. 법률 문제를 고려해서 준비한, 정제된 사과문이었다.

소:김건희의 경우 개인 이력 부풀리기가 기자회견을 열게 만들었다. 그러나 김혜경 논란은 공적 영역에 걸쳐 있다. 갑질이나 공금 유용 등은 인화성이 강한 주제다. 그런데 민주당의 대응은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당의 공식 입장이 뭐냐”라고 물어봤는데 김혜경 사과 발언과 비슷하게 “수사와 감사가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입장을 내기가 이르다”라고 답하더라.

바르고깨끗(바):〈중앙일보〉가 2월9일 공개한 윤석열 인터뷰에서도 현 정권에 대한 수사를 언급해 논란이 컸다.

후보단일화(후):그 인터뷰에서 A 검사장 얘기가 나왔다. 특히 A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에 빗댄 점이 충격적이었다. A는 한동훈 검사장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윤석열과 그 주변 사람들의 솔직한 심정을 보여준 게 아닐까?

바: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과 그 측근들이 스스로를 독립운동한 사람처럼, 의로운 전투를 했다고 여긴 것 같다. 검찰총장에서 직행한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이 발언을 보고 다시 상기하게 되었다.

후:청와대에서도 이례적으로 정면 반박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 수사의 대상, 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한다”라고 말했는데, 수위 높은 표현이라 파장이 일고 있다.

커: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여권 지지층의 결집 효과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이재명 선대위의 최전선에 나섰는데, 그동안 취약했던 ‘당내 강성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의도가 보였다. 그러나 당내 강성 지지층을 더 자극하는 것은 ‘노무현 트라우마’다. 윤석열이 직접 수사를 언급했다는 것은 진짜로 일어날 일이라는 신호를 강하게 준다. 그동안 이재명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던 강성 지지층 입장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했을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2월5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제주 강정마을 현장을 방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했다.ⓒ연합뉴스

바:아이러니하게도, 윤석열 본인은 노무현의 유산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주말, 두 후보 모두 선거 일정에 ‘노무현’을 떠올리게 했는데, 윤석열은 제주에서, 이재명은 경남 김해에서 노무현을 언급했다.

마:2월5일 강정마을 현장에 직접 다녀왔다. 이날 윤석열이 노무현을 언급하면서 중간에 살짝 멈칫하는 모습이 잡혔다. 이 모습을 울컥했다고 봐야 하는지 의견이 분분했는데, 국민의힘에서는 ‘울컥한 게 맞다’고 강조했다. 이날 저녁 술자리도 논란이 되었다. 윤석열이 기자들이 모여 있는 술자리에 50분가량 머물렀다. 그러나 술자리에서도 중요한 얘기를 하진 않고, 김치찌개 끓이는 얘기, 자기 고등학교 얘기, 검사 시절 얘기만 꺼냈다고 한다.

소:예민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려는 모습처럼 보인다.

바:이양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자리에 함께했다고 하던데, 며칠 뒤인 2월8일에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서 당내 긴장감이 일었다.

소:이날 술자리를 두고 방역수칙 위반 논란도 일었다. 한 식당에 세 팀이 나란히 자리했는데, 사실상 사적모임 제한(6명까지 가능)을 위반했다는 지적이다.

후:정치권이라고 해서 오미크론이 비켜가는 건 아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의 모습과 대비된다. 마스크를 두 개씩 쓰고 다니는 게 화제인데, 혹여 바이러스에 감염될 경우 TV 토론에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TV 토론이 협상을 거듭해야 하는 사안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척 절실한 기회라는 걸 느끼게 됐다.

바:TV 토론이나 대담 영상처럼 후보 본인의 생각과 말에 대한 유권자들의 갈증도 크다. 이번 주에는 방송인 홍진경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공부왕 찐천재’가 소소하게 화제를 모았다. 대선후보들이 출연한 에피소드를 연달아 공개하고 있는데, 여기서 윤석열이 “고등학교를 기술고·예술고·과학고로 나누어야 한다”라고 말해 논란이 따랐다. 이미 존재하는 학교를 언급한 셈인데, 지난해 12월 ‘구직 앱’ 발언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마:당시에도 “휴대폰 앱으로 기업이 어떤 종류의 사람을 필요로 하는지 실시간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해 ‘이미 있는 걸 왜 모르나’라는 의문이 이어졌다. 국민의힘에서는 ‘고등학교 발언’에 대해 “지금도 기능별로 나뉘어 있긴 하지만,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원래 취지대로 정상화한다는 의미”라고 해명하고 있다. ‘구직 앱’ 논란 때에도 윤석열이 말한 ‘실시간 앱’은 지금 존재하는 취업 사이트보다 진일보한 형태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런 해명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지 모르겠다.

커:공식 선거운동이 곧 시작된다. 후보단일화가 그 전에 가능할까? 윤석열은 ‘단판 협상’을 강조한다. “커피 한잔 마시면 끝낼 수 있는 일”이라는데 사실 단일화라는 게 각종 제반 사안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며 협상하는 과정이잖나.

소:그렇게(단번에 끝낸다고) 말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에서는 ‘협상단 꾸리면 망한다’는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를 계속 압박하면서 백기 들고 오라며 기 싸움을 하는 모습이다.

후:얼마 전 사석에서 민주당·국민의힘 양당 정치인을 함께 만났다. 두 사람 모두 본인 소속 정당이 안철수와의 단일화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하더라. 이때 들은 말이 좀 웃펐다(‘웃기고 슬펐다’라는 은어). 민주당 정치인이 “우리 당은 어차피 5년 후에 나설 차기 대선주자가 없다”라며 이재명-안철수 단일화가 안철수에게 좋은 일이라고 주장하더라. 그랬더니 국민의힘 정치인은 “그렇지, 우리는 5년 후에 (나설 차기 주자가) 되게 많다”라고 응수했다. 오세훈·이준석·원희룡 등을 감안한 것으로 보이는데, 각 정당이 현재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말이었다.

마:국민의힘에서는 이준석 대표가 단일화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단일화의 조건은 안철수 후보의 사퇴뿐이라며 전방위로 압박한다.

소:한데 안철수의 메시지도 좀 아리송하다. 끝까지 안 할 것처럼 보이다가 막판에 ‘제가 고심 끝에 결단했습니다’라고 해야 몸값이 올라갈 것 같은데, “국민의힘 측에서 연락이 없다”는 말을 남긴다. 그러다 보니 유권자 입장에서는 ‘단일화를 하긴 할 건가 보다’라고 느끼게 만든다. 이러면 협상력이 떨어진다.

2월8일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에서 치르는 대선이 각종 추문과 모욕으로 얼룩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후:그런데 정당 입장에서 보자면, 이제 선거사무소나 이런저런 비용을 슬슬 집행해야 할 시점이다. 안철수의 경우, 당내에서도 결정을 빨리 내려달라는 요구가 있을 것이다.

바:단일화라는 이슈가 계속 뉴스거리로 등장하는 것 자체가 야권에 손해는 아니다. 어쨌든 모든 관심이 야권으로 쏠리게 된다. 이재명과 민주당으로서는 화제를 끌어오기가 쉽지 않다.

후:베이징 동계올림픽으로 인해 증폭되고 있는 반중(反中) 정서도 여당으로서는 악재다. 오히려 민주당에서 중국의 올림픽 운영과 편파 판정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당과 문재인 정부가 친중이라는 인식이 대중에게 퍼져 있어서 이걸 계속 부인해야 하는 상황이다.

소: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 친중이었나? 이 프레임 자체가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박근혜 정부 때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의 경제 보복을 당했고, 문재인 정부는 그 후과를 계속 감당해야 했다. 한국은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고도의 실리 외교가 필요한 나라인데, 단순히 중국에 큰소리치지 못한다는 걸 ‘친중’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좀 과하다 싶었다.

커:한복 논란도 마찬가지다. 정의당의 지적이 공감되었는데 중국에도 소수민족이 있고, 그 사람들을 올림픽이라는 국가적 행사의 전면에 배치한 것은 보편 인권 관점에서 이해되는 지점이 있다. 그러나 이것과는 별개로 편파 판정은 우리로선 분개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니까. 사람들이 화내는 건 이해되지만, 여기에 정치인들이 편승하는 건 적절치 않아 보인다.

후:2월8일 미국 〈워싱턴포스트〉도 이번 대선의 기묘한 면을 꼬집더라. 한국에서 치르는 대선이 각종 추문과 모욕으로 얼룩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특히 ‘가족 리스크’를 정면으로 다뤄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윤석열 후보에 대해서는 첫 단락부터 ‘항문 침술사’를 언급해 깜짝 놀랐다. ‘anal acupuncturist’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아서 처음에 갸웃했다가 나중에는 얼굴이 화끈거리더라.

커:불과 5년 전만 해도, 외신이 한국을 ‘비폭력 민주주의를 통해 대통령을 탄핵시킨 국가’로 집중조명했다. 그러나 최근엔 한국 정치가 외국인들에게 우스꽝스럽게 비치는 꼴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언젠가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이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저 나라 특이하네’ 싶었는데, 한국 대선도 여러 맥락을 압축해놓고 보면 다른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상하게 여기겠구나 싶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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