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공약은 후보 간 의견 차이가 적다. 정당의 이념과 무관하게 닮은 정책들이 많은 이유다. 여야 후보들의 대표적인 공통 공약은 반려인들의 진료비 부담을 낮추는 ‘의료비 표준수가제’ 도입이다. 부르는 게 값인 동물병원 진료비를 개선해 반려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펫심’ 공약이다.

그 밖에 펫푸드 산업 육성, 반려동물 이력제 도입, 반려동물 놀이터 설립, 펫티켓을 위한 반려인 교육 등은 대개의 후보들이 공통적으로 제안한 공약이다. 여기서 각 후보들의 동물 공약을 관통하는 또 다른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대개가 반려인 혹은 반려동물을 위한 내용 일색이라는 것이다. 반려동물을 넘은 ‘동물’ 자체의 권리와 복지를 꾀하는 공약은 그리 많지 않다.

여야 대선후보 네 명의 동물 관련 정책을 두루 비교했다. 어떤 후보는 반려동물의 편의시설 확충에 집중했고, 어떤 후보는 오래 묵은 과제인 개 식용 금지를 수면 위에 올렸으며, 어떤 후보는 반려동물의 전 생애에 걸친 공적 지원을 약속했다.

 “시에서 운영하는 반려동물 놀이터에 몇 번 가봤는데 차라리 사설 놀이터를 이용하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뛰어놀기에 너무 좁거나 펜스만 열면 바로 도로라서 위험한 곳도 있었고요. 한마디로 관리가 안 돼요.” - 3년 전 반려견 짱아(15)를 떠나보내고 현재는 반려견 호밀(1)과 함께 사는 박미성씨(38)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고양이 세 마리와 개 네 마리를 키운다. ‘토리아빠’로 불리는 윤 후보는 반려견 토리의 SNS 계정을 운영하기도 했다. 일명 ‘개 사과’ 논란으로 SNS 운영은 중단했지만 ‘반려인 윤석열’을 각인시키는 데에는 성공했다.

1월8일 발표한 ‘반려동물 쉼터 확대’는 윤 후보가 공식적으로 제안한 첫 반려동물 공약이다. 윤 후보는 “반려견 산책 장소로 한강공원 등 하천변이 많이 이용되고 있지만, 반려견 놀이터는 관련 규정 등의 문제로 설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때 말하는 ‘관련 규정’은 하천변 부지에 반려견 놀이터를 설치하는 것이 불법인 하천법을 말한다. 윤 후보는 반려동물 놀이터를 “물림 사고, 소음 문제 등으로 인한 갈등 해소와 반려동물 복지를 위한 필수 시설”이라고 설명하며 논란이 되는 하천구역에 반려견 놀이터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1월20일 윤석열 후보는 ‘우리 댕댕이·냥냥이 안전하고 행복하게’라는 슬로건과 함께 보다 구체적인 동물 공약을 발표했다. 개·고양이 등 주요 반려동물의 고부담 질환에 대한 진료비 표준수가제 도입, 강아지 공장 근절을 포함한 동물보호 체계 정비, 개물림 등 안전사고 예방 조치 강화 등을 담고 있다.

다만 윤 후보의 동물 공약은 말 그대로 ‘우리 댕댕이’와 ‘우리 냥냥이’까지만 향한다. 윤 후보는 지난해 10월31일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토론회에서 유승민 전 의원의 개 식용 관련 질문에 “(개 식용은) 반려동물을 학대하는 게 아니고 식용 개라는 것은 따로 키우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반려’동물에 국한된 애정과 관심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강아지 매매에 대해서도 그런 관점이 드러난다. 강아지 공장 근절이라는 말은 내세웠지만 그 내용을 뜯어보면 결국 ‘동물 판매업자에 대한 시설기준, 위생기준 등을 강화하겠다’는 수준이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대량 번식장 근절 혹은 반려동물 매매 금지 같은 공약을 내세운 것에 비해 상당히 유보적인 태도다. 한국동물보호연합 이원복 대표는 “번식장에서 살아가는 어미 개와 어린 개들은 동물 학대를 당하는 것과 같다. 위생기준을 강화하라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뜬장과 강제 교배는 개선의 대상이 아니라 폐기의 대상이다. 번식장에 대한 입장으로도 후보들 간 생각과 개념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평가했다.

 “치아흡수병변(이가 녹는 질환)으로 고양이 치아를 발치했어요. 그때 400만원 정도 들었고요. 병원에서 재발할 수 있다고 해서 동물보험에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알아봤더니 치과 치료는 보장 항목에서 제외되더라고요. 다른 질병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보험에 들까 했지만 역시 보장되는 항목이 너무 적었어요.” - 지인에게 파양된 고양이 모래(6)를 입양해 돌보는 김소희씨(33)

이재명 후보는 사회적 논쟁이 되는 이슈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평소 스타일대로, 수의사협회가 오랫동안 반대해온 의료비 수가제 도입에 대해 자신의 입장과 의지를 가장 명확하게 설명한 후보다.

동물 치료비는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병원마다 금액이 다르다. 같은 질병을 진단받아도 어느 병원을 다니느냐에 따라 2~6배씩 치료비 차이가 난다. 수의사협회는 병원마다 장비가 다르고, 의사들의 실력과 진료 방법에 차이가 있다는 이유로 진료비를 하나의 기준으로 통일하는 수가제에 반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31일 수의사와 훈련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재끼찬’에 출연한 이재명 후보는 동물 의료비의 가장 큰 문제가 비용을 예측할 수 없는 점이라며 표준수가제 도입을 주장했다. 이 후보는 “표준수가제는 진료비의 상한선과 하한선을 정하는 게 아니고 표준적인 가격을 정하자는 거다. 진료에 추가비용이 발생하면 미리 보호자에게 그 부분을 고지하면 된다. 표준수가제가 도입돼야 동물 의료보험이 가능하다. 이게 없으면 금액을 예측할 수 없어서 폭넓은 의료보험이 안 된다. 동물 의료보험, 그다음에 공제조합. 이런 게 가능해지려면 표준수가제가 필요하다”라며 공약 도입의 취지를 설명했다.

표준수가제 이외에도 반려동물 공약에서 이 후보가 가장 적극적으로 돌파하고 있는 분야는 ‘개 식용 금지’다. 성남시장 시절 이 후보는 성남 모란시장 개 도축 시설 철거를 이끌었다. 실제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현장에 육견 단체가 나타나 ‘이재명을 때려잡자’고 항의하며 연이어 집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8월20일 동물복지 7대 공약을 발표하면서도 이 후보는 선거 시기에 터부시되는 공약인 개 식용 금지와 반려동물 매매 금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잔디가 사고를 당한 경우여서 장례 서비스를 정말 갑작스럽게 이용하게 됐었어요. 늦은 시간에 장례를 하게 됐는데 업체 직원분들이 ‘빨리 끝내고 퇴근해야지’ 하는 분위기였어요. 슬퍼할 시간도 제대로 갖기가 어려워서 마음이 아팠어요. 저는 정말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키웠기 때문에 배려받지 못한다는 느낌에 참 속상했어요.” - 제주도에 장례식장이 없어 육지로 올라와 반려묘 잔디(2)의 장례를 치른 박송이씨(38)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동물 공약은 ‘요람부터 무덤까지’다. 핵심 공약은 크게 두 가지다. 동물 공적 의료보험을 도입하고 각 지자체별로 공공 동물화장장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사람도 생애주기별로 그에 맞는 복지정책이 필요하듯 동물 역시 전 생애에 걸친 단계적 복지제도가 필요하고, 이를 공공영역에서 관리·지원하겠다는 것이 심 후보의 반려정책 기조다. 반려 가구가 일정 금액의 보험료를 지불하면 주요 질병의 의료비를 보장받을 수 있고 특히 10세 이상의 노령 동물은 건강검진과 장례 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게끔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심 후보는 대규모 번식장을 폐쇄하고 허가받은 전문 브리더(특정 종의 동물을 번식시켜 분양하는 사람)로 동물을 양육·조련하겠다는 공약도 발표했다. 영국에서는 2020년 4월, 제3자(펫숍)를 통해 6개월 이하 강아지 및 고양이를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루시법’이 시행됐다. ‘루시’는 새끼를 반복 출산하다 구조된 강아지 공장의 번식견이다. 루시법은 번식장-펫숍-소비자로 이어지는 판매 단계에서 펫숍을 없애고, 허가받은 브리더와 소비자 간 직거래를 유도한다. 독일과 미국 캘리포니아주 역시 강아지·고양이 등을 펫숍에서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는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하진 않았지만 ‘쓰담쓰담 동심(動心) 공약’이라는 이름의 동물 공약을 준비하고 있다. 반려동물 입양 절차를 강화하겠다는 것이 타 후보와 차별화된 공약이다. “민법상 입양의 절차를 준용해 반려동물 입양자의 요건을 정하여 충족하는 경우에만 입양을 허용”하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다른 공약들을 살펴보면, 식용 개농장 폐쇄를 언급하면서도 반려동물 번식공장 문제점은 ‘개선’하겠다는 등 논란이 될 만한 문제는 건드리지 않았다.

2021년 7월9일 경기도 여주시의 한 도살장. 성남시 모란시장의 건강원이 운영한다. ⓒ시사IN 신선영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이형주 대표는 “반려인들을 위한 선심성 정책들만 눈에 띄고 동물을 위해 필요한 반려인의 의무를 강화하는 공약은 부족하다”라고 전체적인 대선후보들의 동물 공약을 평가했다. “인수공통전염병인 코로나19가 확산된 이후, 동물 문제를 폭넓게 보아야 한다는 국제적 흐름이 있다.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보존하며 사람과의 관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요구다. 하지만 대선후보들의 공약에서는 반려동물 외의 야생동물, 실험동물, 체험동물 등에 대한 공약들을 찾아볼 수 없다. 농장동물은 반려동물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개체수가 많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농장동물을 소비하는 당사자다. 그럼에도 이들의 복지를 언급하지 않은 점 또한 아쉽다.”

실제 많은 국민들은 ‘더 다양한 동물들의 더 폭넓은 복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11월에 발표한 ‘2021년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과학/의학적 연구에서 동물실험을 대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데에 국민 70.9%가 동의했다. 농장동물의 복지 수준 개선 필요성에 대해서도 63.8%의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진짜 ‘동물 정책’은 어떤 것일까? 이형주 대표는 말했다. “반려동물들을 위한 편의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아무런 혜택을 못 받고 생존에도 어려움을 겪는 동물들의 삶의 수준을 올려주는 동물복지 정책 또한 절실하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무엇을 우선순위에 둘지 우리 사회가 함께 정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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