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에마뉘엘 마크롱(현 프랑스 대통령), 발레리 페크레스(공화당), 마린 르펜(국민연합), 에리크 제무르(재정복당).

100일이 채 남지 않은 프랑스 대선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1월7일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Ipsos)가 일간지 〈르파리지앵〉과 라디오 프랑스앵포에 게재한 대선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현 대통령이 지지율 26%로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뒤이어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이 17%, 공화당(LR)의 발레리 페크레스가 16%, ‘재정복(Reconquête)당’의 에리크 제무르가 12%,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당’의 장뤼크 멜랑숑이 9%의 지지율을 얻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아직 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지난해 6월부터 여러 지역을 순회하고 12월엔 대국민 담화와 신년 담화 등 공식적 발언 기회가 있었으나, 출마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는 지난 1월4일 〈르파리지앵〉과 한 인터뷰에서 “백신 미접종자들을 열받게 하겠다(emmerder)”라고 말해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의 이 도발적 발언을 정치 전략으로 본다. 중도 민주운동당(MoDem) 의원 크리스토프 제레티는 1월5일 프랑스앵포와의 인터뷰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다시 ‘시간의 주인’이 됐다. 온 국민과 정치인들이 그에 대해 말하고 있으니 그가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입에 오르내릴 만한 행보를 보이면서 정작 출마 의사는 밝히지 않는 방법으로 국민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마크롱의 대선 출마는 외곽에서 더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11월16일 프랑스 시장연합(AMF)의 연말 회의에서 여당인 ‘전진하는 공화국(LREM)’을 중심으로 모인 시의원 600여 명이 마크롱 대통령의 재출마를 논했다. 이들은 11월21일 〈일요신문(JDD)〉에 마크롱의 재선을 지지하는 공식 성명을 냈다. 이어 11월29일에는 “국민과 함께!(Ensemble Citoyens!)”라는 구호로 중도 성향인 민주운동당·행동당(Agir)·지평당(Horizons) 등의 당원들이 모여 ‘마크롱 대통령 재선 운동연합’을 창립했다. 지평당은 또 다른 대선후보로 꼽혀온 에두아르 필리프 전 총리가 창당한 정당이다.

여론조사를 보면 마크롱 대통령의 재선을 확신하긴 이르다. 우파 정당 단일화 후보인 공화당(LR) 발레리 페크레스 의원의 기세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7일 여론조사 기관 엘라브(Elabe)가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2차 투표 양자 대결 시 페크레스 의원은 52% 대 48%로 마크롱 대통령을 앞섰다. 발레리 페크레스는 지난해 12월 초 우파 정당의 유력 후보인 자비에 베르트랑, 에리크 시오티와 단일화 경선을 치러 최종 승리한 후보다. 그는 2015년부터 프랑스 수도권인 일드프랑스 지역 주지사를 맡고 있으며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에서 재정장관, 교육장관 및 정부 대변인을 지냈다. 공무원직을 약 15만 개 감축하고, 법무부 예산을 늘려 재판 기간을 단축하며, 프랑스 국민의 구매력 향상을 위해 사회보장 분담 세금을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극우’ 성향의 두 후보와 고전하는 좌파

프랑스 정계에서는 유력 후보로 올라온 페크레스 의원에게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국민연합 마린 르펜 후보는 지난해 12월4일 페크레스에 대해 “가장 마크롱 대통령 같은 후보를 뽑은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실망했다”라고 말했다. 이 당 대변인 세바스티앵 슈누는 같은 날 라디오 프랑스앵포와의 인터뷰에서 “페크레스 의원은 마크롱 대통령처럼 자유주의적이고 유럽연합 친화적인 후보다. 사실상 100% 마크롱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페크레스 후보를 ‘극우’로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전진하는 공화국 대표 크리스토프 카스타네르는 지난해 12월5일 라디오 프랑스앵테르(France Inter) 인터뷰에서 “발레리 페크레스는 약하고 편협하며 극우화된 우파를 대표한다”라고 주장했다. 페크레스 후보는 2차 경선을 같이 치른 에리크 시오티 의원과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시오티는 극우 성향의 정책 공약을 제시한 인물로, ‘프랑스의 트럼프’라 불리는 에리크 제무르 후보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지난해 12월5일 프랑스 극우 후보 에리크 제무르의 유세 집회에서 시민들이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Photo

극우 성향 후보들 역시 선거운동을 이어갔다. 소속 정당이 없던 에리크 제무르는 지난해 11월30일 출마 선언을 하고 재정복당을 창설했다. 그는 ‘프랑스 국민들에게만 각종 사회보조금 지원’, 유럽연합 탈퇴, 반이민주의 등의 정책을 내세운다. 제무르는 지난해 12월5일 파리 외곽 센생드니 지역의 빌팽트 전시장에서 첫 집회를 열었다.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 간 격한 충돌이 벌어져 46명이 체포되었다. 파리 중심가에서는 시민 2000명 이상이 반(反)제무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제무르는 지난해 여론조사에서 마크롱 대통령 다음의 지지율을 과시할 정도로 대중적 영향력이 큰 정치인이다. 다만 ‘제도권 정치’에서는 그렇지 않은지 대선 출마 요건 중 하나인 일정 수 이상의 후원 의원을 모으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견해를 일부 공유하는 국민연합 마린 르펜 후보 역시 제무르와 거리를 둔다. 지난해 12월1일 일간지 〈르파리지앵〉 인터뷰에서 르펜은 에리크 제무르의 정책에 대해 “선정적이고 충격적인 말들로 만든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어서 (입장을 밝히기가) 애매하다”라며 거리를 뒀다.

지난해 4월부터 단일화 논의를 해왔던 좌파 후보들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7일 아르노 몽트부르 전 산업장관은 일간지 〈리베라시옹〉을 통해 “단일 후보와 정책을 중심으로 힘을 모으자”라며 좌파 성향 대선후보들에게 호소했다. 그는 같은 날 발표된 여론조사 기관 엘라브의 조사에서 좌파 후보들 중 아무도 지지율 10%를 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유로 꼽았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장뤼크 멜랑숑은 8%, 유럽녹색당(EELV)의 야니크 자도는 7%, 사회당(PS)의 안 이달고는 지지율 3%를 얻었다. 이에 12월8일 TF1 TV에 출연한 안 이달고 파리 시장도 단일화 후보 경선을 공식으로 제안했다. 그러나 유럽녹색당 야니크 자도 후보와 공산당(PCF)의 파비앵 루셀 후보, 그리고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장뤼크 멜랑숑 후보는 모두 정책 간 차이점을 좁힐 수 없으며, 경선을 치르기엔 너무 늦었다는 이유로 단일화 제안을 거절했다. 1500명 넘는 좌파 정당 의원들이 지난해 12월19일 〈일요신문〉에 단일화를 요청하는 공식 성명을 내기도 했지만 좀처럼 의견이 모이지 않는 모양새다. 1월9일 라디오 프랑스앵포에서 정치학자 올리비에 뤼캉은 “(좌파 성향 후보들) 각자가 각자의 길만 간다면 대선 이후는 파국일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기자명 파리∙이유경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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