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4일 연임에 성공한 마크롱 대통령이 부인과 함께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AFP Photo

지난 4월24일 프랑스 대선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득표율 58.54%로 재임에 성공했다. 2002년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이후 20년 만의 연임 대통령이다. 그런데 만만치 않은 부정 의견이 감지된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소프라 스테리아(Ipsos-Sopra Steria)가 대선 직후 시행한 조사에서는 국민 46%가 마크롱 대통령의 재임에 “부정적 감정을 느낀다”라고 답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80% 이상이었던 대선 투표율 역시 이번엔 71.99%에 그쳤다. 1969년 이후 가장 낮은 대선 투표율이다. 응답자 중 42%는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후보를 막기 위해 마크롱 대통령에게 투표했다고 답했다. 수도 파리를 비롯해 서부 렌, 남부 툴루즈 등 프랑스 곳곳에서 “마크롱도 르펜도 거부한다(Ni Macron Ni Le Pen)”라는 구호를 내세운 반대 시위가 잇따랐다.

마크롱 대통령도 이를 의식한 듯하다. 대선 직후 연설에서 “여러분이 제 사상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극우 사상을 막기 위해 제게 투표했다는 것을 안다. (…) 모두를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말했다. 앞으로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한 마크롱 대통령의 당면 과제는 6월 총선이다. 여당인 ‘전진하는 공화국(LREM)’을 비롯해 에두아르 필리페 전 총리가 이끄는 지평당(Horizons), 민주운동당(MoDem) 등 중도 성향 정당들과 더불어 과반 의석을 얻어내는 게 목표다.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야당 총리와 국정을 운영하는 ‘동거정부(Cohabitation)’가 성립될 수도 있다.

아슬아슬한 승부였다. 지난 4월10일 치른 1차 투표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27.84%를 얻어 선두를 차지했다. 그런데 국민연합 마린 르펜 후보가 23.15%를 득표하는 바람에 본선에서 극우의 승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1차 투표에서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 장뤼크 멜랑숑 후보는 21.95%를 얻었다. 멜랑숑 후보는 25~34세 유권자층에선 무려 65%를 득표했다. 4월11일 라디오 프랑스앵포가 분석한 선거구별 투표 결과 조사에 따르면 마린 르펜은 2만여 개 선거구에서 선두를 차지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승리한 선거구는 1만2000여 개다.

세 후보 외의 군소 후보 득표율은 각각 한 자릿수를 벗어나지 못했다. 반이민 정책을 내세운 극우 정당인 재정복당(Reconquête) 정치 신인 에리크 제무르 후보는 7.07%, 우파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해 출마한 공화당(LR)의 발레리 페크레스 후보는 4.78%, 2020년 지방선거에서 의미 있는 약진을 보였던 유럽녹색당(EELV)의 야니크 자도 후보는 4.63%, 파리 시장이자 사회당(PS) 후보인 안 이달고 후보가 1.7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기존 거대 양당(공화당과 사회당) 후보인 페크레스와 이달고가 선거비용을 환급받을 수 있는 5%에도 미치지 못하는 득표율을 얻은 것도 충격적이었다. 2017년 대선 때는 공화당(LR) 프랑수아 피용 후보가 20.01%, 사회당(PS) 브누아 아몽 후보가 6.3%를 득표한 바 있다.

1차 투표 다음 날인 4월11일 마크롱 대통령은 르펜 후보 우세 지역인 북부 오드프랑스에서 유세했다. 임기 내내 비판받아온 긴축적인 연금개혁안을 두고 유화책을 내놓았다. 르펜은 4월12일 라디오 프랑스앵테르에 출연해 장뤼크 멜랑숑을 비판했다. 멜랑숑 후보가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마린 르펜에게 단 한 표도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발언한 것을 두고, “보호받고 싶은 유권자들에 대한 배신”이라고 주장했다. 한편으로 그는 “사회 취약계층의 생활에 보탬이 되는 정책에 집중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마린 르펜의 ‘탈악마화’ 선거 전략

1차 투표의 결과가 나온 뒤에는 누가 본선에서 승리할지를 두고 예측이 분분했다. 4월11일 라디오 프랑스앵포에 출연한 정치사회학자 에르완 르쾨르는 마린 르펜의 우세를 점쳤다. 그는 르펜 후보의 아버지이자 프랑스의 ‘원조 극우 정치인’으로 불리는 장마리 르펜을 거론했다. 장마리 르펜이 부상했을 때 극우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이 결집했던 ‘공화주의 전선(Front Républicain)’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르쾨르는 평가했다. 극우 진영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르펜 후보 하나가 아니라는 점도 르펜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전망되었다. 정치 성향에서 르펜과 겹치는 극우 정치인으로 1차 투표에서 7.07%를 얻은 에리크 제무르 후보는 “정치적 이견이 있지만 마린 르펜을 지지해달라”고 선언했다. 르쾨르는 “마린 르펜은 과거의 실수를 통해 깨우침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대망’을 위해 과거와 다른 행보를 보였다는 의미다.

마린 르펜은 2017년 대선 패배 이후 이미지 변신을 꾀해왔다. 2018년 당명을 ‘국민전선’에서 ‘국민연합’으로 바꾸고, 201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당시 23세였던 현 당대표 조르당 바르델라를 앞세웠다. 아버지 장마리 르펜의 전투적이고 수구적인 모습과 거리를 두는, 일명 ‘탈악마화(Dédiabolisation)’ 전략이었다. 또한 르펜은 극단적 민족주의 정책을 언급하면서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던 제무르 후보와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르펜의 선거운동은 프랑스 각 지역을 도는 ‘5000회 현장 유세’였다. 1차 투표에서 준수한 성적표를 받아든 직후, 국민연합 의원 세바스티앙 슈누는 “언론의 주목을 받는 에리크 제무르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보다는 국민을 직접 만나러 간 르펜의 선택이 옳았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르펜은 정치인의 자녀로 지내온 어린 시절과 아버지와의 불화, 한부모 가정으로서 육아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일반 유권자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4월24일 프랑스의 극우 정당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 후보가 대선 패배를 인정하는 연설을 했다.ⓒAFP Photo

정책 면에서는 민생론을 앞세웠다. 르펜은 2월3일 일간지 〈르피가로〉와 인터뷰하면서 “논란과 분노에 진력이 났다. 우리는 효율과 평정을 원한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되면 프랑스 국민의 ‘구매력 향상’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영토 중심의 산업발전을 공약하면서 이를 ‘경제 애국주의’라고 불렀다. 에너지 부문 부가가치세(TVA)를 20%에서 5.5%로 인하하고 통행료를 내리는 등 ‘민생 공약’도 냈다.

르펜의 공약 중에는 ‘극우’로 연상되는 이미지와 상당히 다른 정책들도 있다.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10% 인상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고용 측 부담금(건강보험·실업급여·산재보험 등을 포함한 부담금)’을 내린다거나 30세 이하 청년층의 소득세, 생필품 부가가치세 등을 면세하는 공약이 그렇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소프라 스테리아가 시행하고 4월10일 일간지 〈르파리지앵〉이 게재한 여론조사에서 1차 투표 유권자들이 가장 많이 고려한 사안이 ‘구매력(58%)’이었다는 사실에 비추어본다면 경제정책에 집중한 르펜의 행보는 합리적이었다.

극우적 이미지에서 벗어난 정책은 또 있다. 심각한 수준의 성희롱 가해자를 성범죄자 파일에 추가하고, 미혼모 지원을 늘리는 등 페미니스트적인 면모를 보였다. 4월22일 〈일요신문(JDD)〉이 게재한 프랑스 여론연구소(Ifop)의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여성들은 마크롱 대통령(30%)보다 르펜(49%)을 ‘더욱 페미니스트적’이라고 응답했다. 이런 흐름에 반해, 40여 명의 페미니스트 단체 회원들이 4월15일 〈일요신문〉에 “여성이라고 페미니스트가 되기에 충분한 것은 아니다. 르펜이 내놓은 양성평등은 외국인 여성, 이주 여성들을 비난하고 배제하려는 의도를 숨기고 있는 단면에 불과하다”라는 공식 성명을 내놓기도 했다.

선거 막판 쟁점으로 떠오른 ‘러시아 문제’

르펜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 제재’에 대해 직접적 언급을 피해왔다. 그러나 본선에 임박해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최소한의 소통 가능성은 남겨둬야 한다”라는 이유로 러시아산 수입 금지 등의 경제제재에 반대했다. 4월20일 결선 후보 양자 토론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국민연합이 2014년 러시아계인 퍼스트체코러시아 은행(FCRB)에서 선거자금 960만 유로(약 129억원)를 대출한 사실을 두고 “(르펜이) 러시아 권력과 푸틴 대통령에 의존적이다”라고 지적했다. 덧붙여 국민연합이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병합을 지지한 사실도 지적했다. 르펜은 “프랑스 은행이 전부 대출을 해주지 않아서다”라고 변명했다. 러시아 문제가 쟁점이던 결선 후보 토론 직후 〈르파리지앵〉이 게재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은 르펜(24%)보다 마크롱 대통령(43%)이 더 설득력을 발휘했다고 응답했다.

마린 르펜의 세 번째 대선 도전 실패를 두고 여러 분석이 나온다. 정책연구소 테라노바(Terra Nova)는 르펜의 공약인 30세 이하 청년층 소득세 면제가 유명무실한 청년정책이었다고 비판했다. “저소득 청년은 소득세를 많이 낼 만큼 소득이 없기에 사실상 수혜자라고 보기 어렵다. 고학력·고임금 청년 임원들만 이득을 챙기게 될 것이다.” 국민들이 르펜의 당선이 혼란을 가져오리라고 여겼다는 의견도 있다. 전례 없는 극우 정책기조를 앞세운 르펜이 프랑스 대통령이 된다면 국제 정세와 국내 경제가 어디로 표류하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장조레스 정책연구소 소장 제레미 펠티에르는 4월24일 라디오 프랑스앵포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인들은 코로나19와 전쟁을 끝내고 일상으로 복귀하고 싶은 열망이 있다.”

마린 르펜은 대선 결과에 대한 승복 연설에서 “(1300만여 표를 얻은) 4월24일의 결과 자체가 엄청난 승리”라고 말했다. 역대 극우 후보 중 최다 득표를 기록한 르펜의 국민연합은 다가올 6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기자명 파리∙이유경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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