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유튜버가 항공기 승무원 제복을 입는 ‘룩북 유튜브’ 영상을 올려 논란이 되었다. 사진은 이 유튜버의 다른 유튜브 장면.ⓒYouTube 갈무리

‘룩북’이라는 말이 입에 오르내린다. 본래는 ‘옷을 광고하기 위한 화보’라는 뜻이다. 그러나 최근 온라인상에서는 ‘유튜버들이 옷 갈아입는 영상’이란 의미로 자주 쓰인다. 속옷만 입은 여성의 착·탈의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이다. 수위가 더 높은 콘텐츠를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유튜브에는 ‘평범한’ 미끼 영상만 업로드하고, 온리팬스(Onlyfans), 패트리온(Patreon) 같은 해외의 성인용 플랫폼에 더 노골적인 모습을 찍어 올린다. 이 사이트들은 유튜브에 비해 성인물 규제가 헐거우며, 유료 구독을 통해 더 많은 수익을 기대할 수도 있다.

최근 문제가 된 룩북 유튜버는 항공기 승무원 제복을 입었다. 특정 직군과 기업의 명예를 실추했다고 비난받았다. 이 유튜버가 다른 플랫폼에 반라의 영상을 올렸다는 증언도 뒤따랐다. 어떤 온라인 방송인은 문제의 유튜버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말했다. 이 법 제44조의 7에 따르면, ‘음란한 영상’은 정보통신망(인터넷)에 올릴 수 없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액수에 따라 성인 콘텐츠를 보여주는 ‘구독형 음란물’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 플랫폼들의 본 취지는 크리에이터(창작자) 후원이다. 그런데 유료 구독이라는 폐쇄성을 이용해 수위 높은 음란물을 거래하는 이들이 늘었다. 룩북 유튜버 가운데엔 자신의 채널에 온리팬스나 패트리온의 계정명을 올려둔 사람이 적지 않다. 더 수위 높은 영상은 ‘여기서 거래하자’는 의미다.

당연한 말이지만, 유료 구독 플랫폼 때문에 온라인 음란물이 활개 치게 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온리팬스와 패트리온 이전에는 텀블러(tumblr)가 비슷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도 음란성 콘텐츠들이 올라왔다. 국내 사법 당국의 단속이 미치지 않는 해외 서버만 탓하기에는 음란물의 역사가 너무 길다.

음란물 관련 법률을 기준으로 보면, 인터넷은 무법천지에 가깝다. 한국은 성 표현물 규제가 강한 나라다. 성인물 제작과 배포에 세계 최고 수준의 규제를 가한다. 물론 성인물을 본다고 해서 사법처분이 되는 건 아니다. 대신 공급을 막는다. 형법 제243조(음화반포죄)와 제244조(음화제조죄)에 따라 ‘음란한 문서·도화·필름 기타 물건’을 판매하거나 제조하면 처벌받는다.

그런데 무엇이 음란물인가? 흔히 오해하는 바와 달리 음란물 여부는 신체 노출 정도에 따라 갈리지 않는다. 성기가 노출되는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될 수 있다. 그러나 신체 노출이 적은 영상이 음란물로 지목되기도 한다.

법원으로 간 ‘음란물 여부 논란’

인터넷 발달 이전 음란물 여부가 논쟁이 됐던 유명 사례는 주로 소설이었다. 당시 언론은 ‘예술인가 외설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했다.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의 〈즐거운 사라〉 사건(1995년 대법원 유죄 선고)과 장정일 작가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사건(2000년 대법원 유죄 선고)이 대표적이다.

마광수 교수 측은 재판 과정에서, 설령 문학작품이 외견상 음란해 보인다 해도 ‘예술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문학 등 예술은 허구의 세계를 다루는 것이 그 본질적 속성이다. 더욱이 대한민국 헌법이 예술의 자유와 언론·출판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음란’의 법적 개념을 엄격히 해석해 창작 활동을 위축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대법원은 〈즐거운 사라〉의 ‘예술성’을 감안하더라도 음란물로 처벌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소설은 “성행위를 선정적 필치로 노골적이고 자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데다가 … 문예성, 예술성, 사상성 등에 의한 성적 자극 완화의 정도가 별로 크지 아니하여 독자의 호색적 흥미를 돋”운다. 그 결과로 “건전한 성적 풍속이나 성도덕을 침해”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이처럼 법원이 작품의 음란 여부를 가리는 방식은 예술계의 반발을 불렀다. 어떻게 보면 ‘사회의 기존 틀’에 대한 도전은 예술의 특성 중 하나다. 이 ‘기존 틀’엔 이른바 ‘건전한 성적 풍속’도 포함된다. 대법원은 결국 2008년, 새로운 판례를 내놓았다. 음란물 여부를 더 엄격하게 가리려고 했다. 이 판례에 따르면, “단순히 저속하다거나 문란한 느낌”을 준다고 해서 음란물로 판단할 수 없다.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해야 음란물이다. 게다가 “하등의 문학적·예술적·사상적· 과학적·의학적·교육적 가치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해당 작품을 음란물로 규정할 수 있다(2006도3558). 사실상 ‘성적 흥분을 유발하려는 목적 이외엔 어떤 쓸모도 없는’ 창작물만이 음란물로 인정될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 발달로 콘텐츠의 국경이 허물어지면서, 2008년 대법원 판례에 근거한 한국의 음란물 정책 역시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초고속 인터넷을 통해 뛰어난 화질의 영상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대한민국 내에선 포르노 제작과 유통이 불법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에서 제작된 포르노를 인터넷에서 손쉽게 구하는 기이한 상황이 도래했다. 심지어 성인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통하는 한국인들이 해외에서 촬영한 포르노를 외국 서버에 올리기도 한다. 이런 행위가 설사 대한민국 법률에 위반된다고 해도, 국제공조 수사를 통한 처벌이 어렵다. 해외에 서버가 있는 플랫폼은 그 나라 법률의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그 나라에서 한국 법률에 위배되는 영상을 찍어 유포했다고 하더라도, 그 영상이 해당 국가의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한국 사법기관이 ‘제작자’ 정보를 넘겨받기는 어렵다.

음란물에 대한 규정과 처벌 기준은 국가마다 다르다. 공통점도 있다. 대다수의 국가들이 음란물에 대한 아동·청소년의 접근을 차단하고, 미성년자가 출연하는 음란물의 제작·유통자를 엄격히 처벌한다. 그러나 규정과 처벌 기준은 각양각색이다. 서방의 다수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제작되는 성인물 가운데는 ‘성적 흥분 목적 외의 가치는 전혀 없는 것(한국 법으로는 처벌 가능)’으로 보이는 영상이 적지 않다. 성인 포르노를 막는 국가는 중국과 북한, 일부 이슬람권 나라들뿐이다. 한국 형법은 독일법과 일본법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정작 독일은 1970년대에 음란물 제작·유포 관련 죄목을 폐기했다. 일본에는 이 조항이 남아 있지만, 심의기관과 사법부의 판단이 한국보다 관대해 사실상 포르노 합법화 국가로 분류된다.

세계 최대의 포르노 소비국은 미국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N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 포르노 소비액은 연간 120억 달러(약 14조원) 정도다. 유료 포르노 영화, 인터넷 사이트, 성인잡지, 성 기구 따위를 합친 것이다. 산업 특성상 음성화된 시장은 더 클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미국이라고 음란물을 전혀 처벌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1973년 ‘밀러 대 캘리포니아(Miller v. California)’ 판결(밀러 판결)에서 제시된 ‘음란물’의 기준은 이렇다. “첫째, 현시대 평균인이 이해하기에 호색적 흥미에 호소한다고 받아들이는 것. 둘째, 성적 행위를 명백히 공격적 방법으로 묘사하는 것. 셋째, 중대한 문학적·예술적·정치적·과학적 가치를 가지지 않는 것.” 미국 연방대법원은 여러 차례 “음란물은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지 못한다”라고 판결해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할리우드에 있는 ‘허슬러 숍’.ⓒEPA

그러나 지금의 미국 법률로 처벌 가능한 ‘음란물(obscenity)’은 ‘포르노’나 ‘성인물’보다 좁은 개념이다. 밀러 판결 이후 음란물로 규정되는 콘텐츠의 범위가 점차 줄어들었다. 미국에선 성행위를 묘사한 콘텐츠들(포르노·성인물) 가운데 일부만이 음란물로 처벌될 수 있다. 2015년에 포르노를 고찰한 이론서 〈포르노그래피〉를 낸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미국에선) 남녀의 성교 장면을 묘사하더라도 지나치게 잔혹한 장면이 없으면 ‘음란물’로 처벌받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음란물 문제가 터져 나올 때마다 국내에서는 ‘어떻게 막을지’ 궁리하는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홍 교수는 “온라인 성인물이 이 정도로 만연하는 때에 금지로 일관하는 것은 허위의식”이라고 주장했다. ‘무엇을’ ‘왜’ 처벌해야 할지 물어서 처벌의 경계를 세밀하게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보다 관대한 해외의 음란물 정책은, 단순히 개방적 성문화나 사회적 관용 때문에 나온 게 아니다. 이 질문을 놓고 벌어진 법철학 논쟁의 소산이다.

1980년대 미국에서는 새로운 검열 논쟁이 전개되었다. 이전의 음란물 논쟁은 남성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 간의 줄다리기였는데, 이 시기부터 페미니스트들이 본격적으로 참전하게 된다. 페미니스트들은 점점 자유로워지는 포르노 정책에 제동을 걸고자 했다. 이들은 미국에서 음란물로 처벌 가능한 콘텐츠가 너무 적다고 주장하며 반(反)포르노 운동을 전개했다.

일군의 페미니스트들이 보기에 포르노의 본질적 해악은 ‘호색’ 같은 성적 방종이 아니라 ‘여성을 향한 폭력’이었다. 여성단체는 ‘포르노 금지법’을 제안했다. 인디애나폴리스 시의회는 이 내용을 담은 조례를 통과시켰다. 조례는 여성이 △고통이나 굴욕, 성폭행을 즐기는 것처럼 묘사된 것 △고문당하거나 음란한 존재로 그려지는 것 △멍이 들거나 피 흘리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 △봉사하거나 복종하거나 전시되는 자세로 그려지는 콘텐츠의 생산·판매·노출·배포를 금지했다. 하지만 1985년 미국 제7연방고등법원은 이 조례를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이듬해 연방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이유였다.

당시 법안을 주도한 이는 캐서린 매키넌 미시간 대학 교수다. 여성주의 법학 분야의 대가로 널리 알려진 그는 2019년 한국을 방문해 “포르노 금지법을 도입하라”고 제안한 바 있다. 미국 사법부 결정에 따라 인디애나폴리스시 조례가 폐기된 뒤 매키넌 교수는 〈포르노그래피에 도전한다〉를 펴내고 포르노 규제의 당위를 재차 주장했다. 포르노는 남성의 언어로, 여성이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언어’를 배우도록 강요하고, 이에 따라 여성의 자기주장(발언권)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예컨대 포르노는 ‘여성의 거부는 거부가 아닐 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을 퍼뜨려 여성의 발언권을 훼손할 수 있다. ‘남성의 표현의 자유’가 ‘여성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셈이다. 매키넌은 포르노 금지로 사회가 잃을 것은 ‘여성의 족쇄’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캐서린 매키넌 vs 로널드 드워킨

2013년 사망한 미국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은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포르노 규제 문제를 성찰했다. 유명한 저서 〈자유의 법〉에서 드워킨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전통적 관점을 적용할 경우, 포르노를 보호하긴 어렵다고 봤다. 19세기 영국의 철학자이며 정치경제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자유로운 토론이 이루어지는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진리가 출현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 진리가 해당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포르노는 정치적·지적 토론에 기여해서 진리를 출현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다수 시민에게 불쾌감을 준다.

그러나 드워킨은 이처럼 전통적 ‘표현의 자유’ 관점에서 포르노를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 뒤에 정반대 방향의 주장을 펼친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다리를 벌린 나체의 여자 사진을 쳐다보는 남자를 변호할 수밖에 없다.”

드워킨이 자신의 이런 주장의 근거로 내세운 것은, 앞서 나온 인디애나폴리스 ‘포르노 금지법’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위헌 판결(1986년)이다. 당시 대법원이 포르노 금지법을 위헌으로 판단한 이유는 무엇일까? 포르노 금지법이 단순히 ‘외설적’인 표현을 금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법은 특정 ‘내용(여성이 고통이나 굴욕을 즐기는 것으로 묘사하는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한 뒤 이를 딱 찍어 금지했기 때문에 위헌으로 판단되었다. 대법원은 이 같은 ‘내용에 기반한 규제’가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 규정된 표현의 자유를 위배한다고 본 것이다. 드워킨 역시 정부가 ‘내용’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보면서 다음과 같이 쓴다. “정부는 인민이 사상을 스스로 평가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노골적이든 교묘하든, 사상은 그 청중이 허락하는 한에서만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로널드 드워킨(아래)은 포르노가 여성 발언권을 약화시켜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AP Photo

연방대법원의 ‘포르노 금지법’ 위헌 판결의 정신은 ‘법률은 국민이 나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금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 ‘무언가’가 다수 대중으로부터 비난받는 위험한 생각이라도 그렇다.

드워킨은 포르노가 여성 발언권을 약화시켜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매키넌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규제하지 않아야 평등이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취향과 신념을 가지고 국가와 같은 공동체에 소속되어 살아간다. 그런데 이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도덕적 환경’은, 과연 누가 결정할 것인가?

‘정치적 평등’이라는 이상에 적합한 답은 하나밖에 없다고 드워킨은 쓴다. 모든 구성원 각각에게 표현의 권한을 허용해서, 서로 영향을 미치도록 놔두는 것이다. “권력이 있는 사람들을 역겹게 만든다는 이유로 사적 선택, 취향, 견해가 (…) 금지되어서는 안 된다.” 타인의 안전과 이익을 직접 침해하지 않는 이상(가령 아동 포르노는 출연 아동이 직접 해를 입는다) 이 원칙에서 예외를 둬선 안 된다는 게 드워킨의 견해다. 해로운 표현은 사법 제재가 아니라 공론장에서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혐오, 분노, 조롱으로 그들이 신뢰를 잃게 해야 한다.”

드워킨의 글은 음란물 규제를 둘러싼 미국의 수많은 견해 가운데 하나다. 미국 헌법과 판례에 기반한 그의 논리 전부를 한국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다만 포르노 문제를 통해 그가 제기한 문제는 곱씹을 만하다. “지역 공동체 다수가 동성애 미술이나 페미니스트 연극이 포르노만큼 여성을 비하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급진적이거나 분리주의적 흑인의 견해가 조잡한 인종차별 욕설만큼 인종적 정의에 적대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예컨대 저속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옷 갈아입는 영상을 쉽게 처벌하는 사회는, 가치가 더 무거운 ‘다른 것’도 언젠가 금지할 수 있다. 20세기 법철학을 대표하는 이 학자는 경고한다. “당신과 생각이 같은 자의 손에 있을 때만 신뢰할 수 있는 원칙을 주의하라.”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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