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시사IN 윤무영사진 합성:시사IN 이정현

A씨는 1995년생 남자다. 서울에 산다. 지난해 9월, A씨는 메신저 서비스인 텔레그램에 ‘대한민국 창녀 Database’라는 제목으로 채팅방을 만들고 일반인 성행위 동영상을 올렸다. 11월까지 A씨가 올린 영상은 총 80개다. 이 텔레그램 채팅방에는 8000명이 들어가 있었다.

A씨가 올린 영상은 흔히 ‘야동’으로 불리는 음란물과는 다르다. 야동은 전문 배우들이 촬영한다. 일반인 성행위 동영상은 어떤 기준으로도 야동이 될 수 없다. 영상이 본인 동의 없이 촬영되었다면, 촬영과 배포 모두 심각한 성착취 범죄다. 당사자들이 동의해서 촬영한 영상이라면? 그래도 배포할 때 당사자들 동의가 없다면 역시 심각한 성착취 범죄다. 만약 영상물에 등장하는 인물이 미성년자라면 더 무거운 범죄가 된다. A씨가 올린 영상 80개는 야동이 아니라 불법 성착취 동영상이었다.

A씨는 직접 영상을 만들려고도 했다. 피해를 입은 여성 중 한 명이 영상을 내려달라고 요청한 일이 있었다. A씨는 영상을 무기로 여성을 협박했다. 피해자 여성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냥 가슴 한번으로 쇼부 보고(결정짓고) 박제된 거 지워줌.’ 가슴 노출 영상을 보내면 원래 영상을 내려주겠다는 뜻이다. 노출 영상을 약점으로 잡아 피해자를 더 얽어맨다. 디지털 성착취 범죄에서 전형적인 수법 중 하나다. 피해 여성이 응하지 않아 이 시도는 실패했다.

이른바 ‘n번방’ ‘박사방’ 사건으로 불리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n번방 용의자 신상 공개”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역대 최고 기록인 260만명을 넘겼다(3월26일 기준). 박사방 운영자인 ‘박사’ 조주빈씨는 신상이 공개됐다. n번방 최초 운영자로 지목된 ‘갓갓’은 경찰이 뒤쫓고 있고, n번방의 이웃 격인 고담방 운영자 ‘와치맨’은 1심에서 3년6개월 구형을 받아놓고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A씨의 8000명 텔레그램 방은 놓치기 쉬운 사실을 알려준다. n번방은 디지털 성착취 범죄라는 거대한 산맥의 일부로, 가장 높이 솟은 봉우리이기는 하지만 산맥 그 자체는 아니다. 디지털 성착취 범죄의 생산-유통-참여-소비로 이어지는 거대한 생태계가 있다. 이 생태계는 중앙관리자가 필요 없다. 생산자, 유통업자, 참여자, 소비자가 각자 알아서 움직이면 그게 서로 맞물리면서 굴러간다. 그러다 보면 ‘슈퍼 생산자’도 ‘슈퍼 전파자’도 나온다.

B씨는 이 생태계의 생산자다. 1994년생 남자이고, 대구에 산다. 그는 트위터로 알게 된 16세 여성과 10만원을 주고 성매매를 했다. 성행위 장면을 촬영했다. 이런 식으로 B씨는 아동·청소년 46명을 상대로 성착취 동영상 347개를 만들었다.

B씨는 텔레그램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사겠다는 C씨를 만났다. C씨는 1983년생 경기도민 남자다. 그는 스스로 아동·청소년 성착취 동영상을 만들기도 하고, B씨 같은 이들에게 사들이기도 한다. B씨는 C씨에게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7482개(직접 만든 영상과 인터넷에서 모은 영상이 섞여 있다)를 넘기고 문화상품권으로 15만원을 받았다. B씨가 만들거나 소지한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은 총 1만5367개였다. 그는 이걸 여러 사람에게 팔아 총 816만원을 벌었다.

ⓒ시사IN 신선영2018년 7월7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3차 시위 모습.

디지털 성착취는 생태계가 저지르는 범죄

생산자들은 자주 속임수와 협박을 동원한다. 1993년생 D씨는 경기도에 사는 남자다. 그는 채팅 앱으로 만난 17세 여성에게 자위하는 모습을 동영상 촬영하여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대가는 4만원짜리 기프티콘이었다. 17세 여성은 이에 응해 텔레그램으로 동영상을 보냈다. D씨는 여성과 대화하다 그녀가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D씨는 기프티콘을 보내려면 부모 동의가 필요하다고 속여 부모의 이름과 연락처를 받아냈다. 이후 D씨는 카카오톡으로 넘어가 부모의 계정을 찾아 들어갔고, 거기서 피해자 여성의 사진을 확보했다.

이제 D씨는 피해자에게 얼굴 사진과 함께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너 이제 X됐다. 나한테 복종하지 않으면 자위 동영상을 부모님이랑 학교에 퍼뜨려 걸레로 만들어주겠다.” 피해자는 겁에 질려 “원하는 대로 다 해주겠다”라고 답했다. D씨는 소변을 본 후 그걸 마시는 모습을 찍어 보내라고 요구했다. 피해자는 음료수를 소변으로 속여서 찍은 영상을 보냈다.

터무니없는 동기로 생산자가 되는 사례도 있다. E씨는 경기도에 사는 1990년생 남자다. 그는 음란 사이트의 합성사진 게시판에서 만난 친구와 텔레그램으로 이른바 ‘능욕사진’으로 불리는 이미지를 공유하며 놀곤 했다. 능욕사진이란 음란물 사진에다 지인 여성의 얼굴을 합성한 이미지를 부르는 은어다. 그러다 보니 E씨는 자기가 아는 여자 지인이 더 많다는 걸 깨닫고 우월감과 자부심을 느끼게 됐다. 이제 그는 자신의 우위를 확실히 굳히기 위해 10년 지기인 여성의 실제 사진과 영상을 찍기로 했다. E씨는 피해자 여성에게 이사하는 집의 페인트칠을 도와달라고 불러냈다. 작업이 끝난 후 샤워를 하고 가라고 권한 후, 숨겨놓은 휴대전화로 영상을 찍었다. 이후로도 E씨는 피해자 여성을 속여 현관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그녀가 집에 없는 틈을 타 속옷 사진을 찍었다.

성착취 영상은 디지털 성착취 생태계의 공통화폐다. 이 생태계에서 영상은 일종의 입장권처럼 작동한다. B씨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347개를 만들어 생태계에 진입했고, 이후 생산자·유통자·소비자를 넘나들었다. 그 결과 그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1만5637개라는 터무니없는 수량을 모을 수 있었다. 사실상 기업화 단계다. 이 공통화폐 메커니즘 덕분에, 디지털 성착취 생태계는 중앙의 조정자 없이도 원활하게 돌아간다. 생태계에 진입하고 더 위로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영상을 생산해낸다.

F씨는 음란물 사이트와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1991년생 남자다. 그는 중국 해킹 조직을 통해 피해자의 네이버 계정과 비밀번호를 알아내어, 피해자의 성관계 동영상을 몰래 내려받았다. 그는 이 성착취 동영상(타인이 영상을 무단으로 유포하는 시점에서 영상은 성착취 속성을 갖게 된다)을, 자신이 운영하는 도박 사이트에서 돈을 많이 쓰는 회원에게 보냈다. 성착취 동영상의 ‘화폐적 기능’은 이렇게 폭넓게 작동한다. 몇몇 수완가들은 공통화폐인 성착취 영상을 이리저리 주고받으며 대규모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다.

이 생태계에서는 소비자도 적극적 참여형 소비자와 단순 소비자로 나뉜다. A씨는 8000명이 보는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영상에 등장하는 여성의 이름, 나이, 전화번호, 주소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러면 채팅창에서는 성희롱과 2차 가해의 집단 가해가 일어나곤 한다.

‘프로젝트 리셋’은 텔레그램 성착취 문제를 고발하는 활동가 모임이다. 프로젝트 리셋은 올해 2월에 ‘텔레그램 디지털 성범죄 국회청원 관련 자료집’을 만들었다. 여기에 다양한 디지털 성범죄 사례가 제시되어 있다. 피해 여성의 개인정보가 공개되면, 그를 이용해 피해자를 괴롭힌 사례가 무용담처럼 채팅방에 공유된다. 신상이 공개된 피해자에게 성적 모욕을 퍼붓고 음란물에 합성하는 가해 유형도 많다. 더 죄질이 나쁜 사례로는 성착취 영상 공급자들에게 어떤 종류의 영상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하는 일도 있다. 이 사례는 성착취 영상 제작과 배포의 공범으로 볼 수 있다.

디지털 성착취 범죄의 참여자들은 생산자·유통자·참여자·소비자를 넘나든다. 누구도 전체 범죄를 홀로 만들어내지 않지만, 이 생태계의 참가자 모두가 함께 범죄를 쌓아올린다. 디지털 성착취 범죄는 일종의 협업적 성착취다. 개별 참가자들은 저마다 변명이 있다. 생산자는 “여자애들이 먼저 조건 만남을 제안했다”라고 피해자 탓을 한다. 유통자들은 “있는 영상을 소개만 했다”, 참여자들은 “댓글만 달았다”, 소비자들은 “그냥 보기만 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조각들이 다 모이면 피해자의 인격을 말살하는 성착취 범죄가 된다.

형사정책연구원 김한균 연구위원은 2017년 12월에 〈사이버 성범죄·디지털 성범죄 실태와 형사정책〉이라는 논문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 논문에 이런 표현이 있다. “디지털 성폭력은 가해 형태에 따라 제작형, 유포형, 참여형, 소비형으로 구분된다. 제작형 가해는 이미지나 영상을 제작하는 행위다. 유포형 가해는 본인 동의 없이 유포하는 행위다. 이는 참여형 가해를 낳는다. 유포된 이미지, 영상, 개인정보 등을 악용해 성폭력을 자행하는 경우다. 성적 수치심을 가하는 댓글을 달거나 추가 범행을 부추기는 경우 역시 참여형 가해다. 소비형 가해는 디지털 성폭력 범죄 결과물을 소비하는 행위다. 소비형 가해자는 가해 인식마저도 없이 디지털 성폭력을 집단 성폭력화하는 일종의 공범이 된다.” 논문은 단순한 소비자라고 해도 이 협업적 성착취 생태계의 공범이라고 분명하게 지적한다. 이것은 생태계가 저지르는 범죄다. 생태계 구성원이라면 책임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갓갓과 박사는 이 생태계에서 무엇일까? 이들은 분산된 성착취 생태계에서 일종의 ‘수직계열화’를 이뤄낸 사례다. 그들은 제작과 유포를 직접 해내고, 참여형 가해를 관리하고 부추기는 역량까지 갖췄다. 프로젝트 리셋의 자료집을 보면, 이들은 미성년 피해 여성을 협박해 성착취 영상을 찍도록 하고, 방을 등급별로 나눠 관리하고, 고액의 방으로 갈수록 더 희소한 성착취 영상물을 푼다. 이들은 서로 다른 가해자들이 분담해서 수행하던 여러 유형의 가해를 모두 한곳에서 수행하는 일종의 대기업이 되었다.

3월24일 민갑룡 경찰청장(맨 왼쪽)과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청와대 국민청원 답변자로 나서 ‘n번방 사건 철저 수사’를 약속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조차 없어

디지털 성착취 생태계는 한국 사회에 만만찮은 도전 과제를 던진다. 형법은 근본적으로 ‘사람의 신체를 침해하는 범죄’를 다루는 법체제다. 그런데 디지털 성착취는 사람의 신체를 직접 겨냥하지 않을 때가 많다. 무언가 꼬투리를 잡아서 피해자 스스로 성적인 영상을 찍게 만들어 불특정 다수와 돌려 볼 때, 피해자가 자의로 찍은 성관계 동영상을 불법으로 확보해 불특정 다수와 돌려 볼 때, 피해자가 입는 손실은 대단히 크고 거의 돌이킬 수 없다. 하지만 형법은 이런 신형 범죄를 적절히 다룰 만한 체제를 아직 갖추지 못했다고 법률가들은 지적한다.

류영재 판사(대구지방법원)는 이렇게 설명했다. “디지털 성범죄는 아직 법적으로 정립된 개념이 아니다. n번방 사례를 보면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단계, 성학대를 하는 단계, 영상을 유포하는 단계, 이걸 보거나 적극 참여하는 단계로 이어지는데, 이 각각을 전부 다른 법으로 다뤄야 한다. 접근 단계는 개인정보보호법, 성학대 단계는 강제추행, 유포 단계는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의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이런 식이다. 이 현실을 제대로 다루려면 디지털 성범죄를 다루는 법을 만들어서 각 단계를 포괄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이것은 김한균 연구위원의 문제의식과도 겹친다. 논문에서 김 연구위원은 이렇게 쓴다. “제작형, 유포형, 참여형, 소비형이라는 새로운 구분법은 종래 사이버 범죄 규정들보다 피해 여성이 겪는 고통의 목소리를 더 잘 담아내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의 ‘협업적 성착취’를 총체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지금은 총체적 법체계는커녕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조차 없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현재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 마련 작업을 벌이고 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협업적 성착취’의 가담자들이, 피해자의 인격을 파괴하는 범죄의 속성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는 게 아니라, 자기가 맡은 조각에 대해서만 처벌받는 상황이 나오곤 한다. 8000명 채팅방을 운영한 A씨는 1년2개월 형을 받았다. A씨 사건은 텔레그램 단체방으로 성착취 영상을 유포한 사건의 선례가 될 만한 판례다. 유사한 사례인 와치맨에 대해 검찰이 3년6개월을 구형해 여론이 발칵 뒤집히다시피 했는데, A씨가 실제로 받은 선고는 그보다도 한참 못 미친다. 갓갓과 박사는 오히려 예외다. 이들은 현행법으로도 중벌이 가능하다. 박사는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 제작과 유포 혐의가 적용되었는데, 입증되면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 이들은 수직계열화에 지나치게 성공한 나머지 현행법의 그물에도 걸릴 만큼 크고 심각한 범죄로 나아갔다.

갓갓과 박사는 디지털 성착취 생태계에서 먹이사슬의 정점에 올라섰고, 그로 인해 여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드러낸 문제는 그 이상이다. 갓갓과 박사가 디지털 성착취 생태계를 만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생태계는 휴대전화와 폰카메라의 시대부터, 더 거슬러 올라가 여성 연예인의 성행위 비디오를 죄의식 없이 돌려 보던 시대부터 이미 존재했다. 이 생태계는 모바일과 플랫폼의 시대를 맞이하여 훨씬 더 복잡하고 까다롭게 진화해나갔다.

그리하여 한국 여성들은 성착취 영상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를 매 순간 느끼는 나라에서 살게 되었다. 2018년을 강타했던 혜화역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집회는, 이런 현실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가 얼마나 거대한 에너지로 쌓여 있는지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 뒤틀린 디지털 성착취 생태계를 안고는 어떤 사회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갓갓을 체포하고 박사를 중벌에 처하는 일보다 몇 배는 어렵고 중요한 과제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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