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2019년 8월6일 부르르닷컴 이상진 대표가 리얼돌 매무새를 가다듬고 있다.

리얼돌 수입이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또다시 나왔다. 지난 1월14일 서울행정법원은 김포공항세관의 리얼돌 수입통관 보류 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길이 159㎝, 무게 29㎏인 성인 여성 모양 인형’이 구 관세법에서 수입을 금한 ‘풍속을 해치는 물품’이 아니라는 것. 관세청은 항소하겠다는 방침이다.

리얼돌은 사람 모양을 한 성 기구다. 마네킹처럼 겉모양만 닮은 게 아니라 성적 행위를 위한 모조 성기가 있다. ‘사람 같은 성 기구’라는 발상이 근래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 이야기가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선원들이 긴 항해 도중 리얼돌을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1960~70년대부터는 합성수지를 이용한 리얼돌이 양산됐다.

리얼돌이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기술발전 때문이다. 이 ‘성 기구’가 사람과 너무 닮아가는 게 원인이다. 사람 피부와 질감이 비슷해지는 건 물론이고 ‘맥박’ 기능이 들어간 제품도 있다. 미국 어비스 크리에이션(Abyss Creation)은 인공지능을 탑재한 리얼돌 ‘하모니’를 개발했다. 눈동자를 굴리고 농담을 건네는 리얼돌이다. 리얼돌을 ‘인형놀이’라고 치부해도 될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인간, 특히 여성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내에서 리얼돌 논쟁이 불거진 계기는 2019년 대법원 판결이었다. 성인용품 업체 부르르닷컴과 인천세관 사이의 분쟁이다. 부르르닷컴은 2017년 중국에서 리얼돌을 수입하려 했는데, 인천세관은 이 제품이 구 관세법상 ‘풍속을 해치는 물품’이라고 보고 수입통관 보류 처분을 내렸다. 부르르닷컴은 여기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2018년 9월 1심 재판부는 세관의 손을 들었다. 실제 사람과 흡사한 모양, 특히 성적 부위의 유사성이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019년 1월 2심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해당 리얼돌이 실제 인체의 형상과는 차이가 있고, 개인의 사적 영역에 대한 국가개입은 최소화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2019년 6월 대법원이 이 판결을 확정했다. 통관을 막은 세관 처분은 취소됐다.

사법부 판단은 리얼돌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끝맺지 못했다. 오히려 판결은 논란의 시발점이었다. 대법원 판결 직후인 2019년 7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리얼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이 청원에 26만여 명이 참여했다. 청원인은 “여성의 얼굴과 신체를 (모방)했지만 아무 움직임 없이 성적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실제 여성을 같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을까요?”라고 썼다. 일부 여성들은 리얼돌 반대 단체를 조직해 집회를 열기도 했다. 두 달 뒤인 9월6일 청와대 강정수 디지털소통센터장은 청원에 대해 “이번 대법원 판결은 리얼돌 수입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라고 판단한 것은 아니며, 소를 제기한 해당 물품에 한정하여 수입을 허가하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답했다. 아동 형상 리얼돌에 대해서는 규제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해를 넘겨서도 리얼돌 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지난해 5월 프로축구(K리그) 경기장에 배치된 마네킹이 리얼돌로 밝혀져 비난을 샀다. K리그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무관중으로 경기를 진행했는데, FC 서울이 홈경기장 관중석에 ‘리얼돌 응원단’을 관중 대신 앉혀둔 것이다. 논란이 일자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난해 5월20일 상벌위원회를 열어 FC 서울에 제재금 1억원 징계를 내렸다. 상벌위원회는 “리얼돌은 이미 지난해부터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고 성 상품화의 매개체가 되고 있으며 여성을 도구화함으로써 인간 존엄성을 해친다는 비판과 국민적 우려가 있었다”라고 밝혔다.

리얼돌을 활용한 미술 전시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국립현대미술관의 ‘2020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오른 정윤석 작가의 전시 〈내일〉에 리얼돌이 등장했다. 중국의 리얼돌 공장 풍경과, 인형과 함께 사는 일본인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여성 신체 부위를 묘사한 리얼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전시 개막 전 기자설명회에서 정 작가는 “여성을 상품화하는 시스템이 왜 존재하는지, 왜 그런 소재를 선택해서 사는지 인간적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SNS상에서는 ‘정씨의 후보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비난 댓글이 달렸다. 리얼돌 수입을 막을 근거가 없다는 게 사법부 판단이지만, 여론 일각의 강한 비토 정서는 도리어 불어나는 듯 보인다.

관세청은 대법원 결정을 따라야 하지만 여론의 화살도 피해야 하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2019년 판결 이후 세관은 법원이 통관보류 처분을 취소한 1건만 통관시키고 나머지는 통제한다는 결정을 내린다. ‘국민 정서’를 이유로 들었다. 2019년 10월11일 기재위 국정감사에서 김영문 당시 관세청장은 이렇게 말했다. “판결이 났으면 그와 유사한 사건들은 통관을 허용하는 게 원칙이라고 봐야 할 것 같은데, 국민 정서 등이 많이 (부정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통관 금지를 유지할 생각이다.” 현 노석환 관세청장 역시 지난 2월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통관보류를 원칙적으로 하고 있다. 다만 사회적 합의나 입법을 거쳐서 기준이 명확히 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 ‘원칙’에 따라 지난해 2월 리얼돌 통관보류 처분을 받은 부르르닷컴은 또 한 번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1월14일 다시 승소한 것이다.

ⓒ연합뉴스2019년 10월18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리얼돌을 보여주며 질의하는 이용주 의원(오른쪽).

‘음란해서 들일 수 없다’는 주장

관세청에서 부정적 여론만을 이유로 리얼돌 통관을 불허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부르르닷컴이 수입하려 한 리얼돌은, 2019년 법원의 판단을 받은 물건보다 더 적나라하다는 근거를 들었다. 더 사람과 흡사하고, 그래서 음란하며, 국내에 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2019년 판결로 통관이 허용된 리얼돌은 인체와 질감·모양은 비슷했으나 머리가 없었고 성기 표현도 세밀하지 않았다. 반면 이번에 통관이 보류된 리얼돌은 얼굴이 달려 있고 성기도 더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김포공항세관 측은 지난해 10월 소송 과정에서 재판부에 제출한 ‘답변서’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나라 법원은 아직까지 ‘여성의 (머리가 달린) 전신에 성기를 구현한 성 기구가 풍속을 해치는 물품에 해당하지 않아 그 수입을 허용하라’고 판결한 사실이 없습니다.”

부르르닷컴의 소송대리인은 〈시사IN〉과 통화에서 “선고 전부터 99% 승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라고 말했다. 내수와 수입 간 형평성 문제가 있다. 국내에서 리얼돌을 제조·판매하는 것은 현행법상 불법이 아니다. 관세청 판단에 따라 수입만 막혀 있는 상황이다. 리얼돌 소송에서 관세청 손을 들어주면 제품 수입은 막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국내에서 리얼돌이 ‘근절’되는 건 아니다. 부르르닷컴 측 변호인은 “이 부분이 세관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고 봤다. 실제로 재판부도 여기에 주목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과 비슷한 리얼돌은 음란해서 들일 수 없다’는 세관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마네킹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입고 있는 옷이나 모양은 제각기 다르지만 같은 마네킹 아닌가? 2019년 통관보류 처분 취소 판결을 받은 리얼돌과 이번 리얼돌 사이에 근본적 차이는 없다.”

이번 판결은 2019년 서울고등법원 판결과 여러 대목이 겹친다. 두 재판부는 우선 어떤 물건의 ‘음란성’을 이유로 국가형벌권을 행사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기존 판례(대법원 2006도3119)의 관점을 인용한다. 음란이라는 개념은 “시대적 변화에 따라 변동”하는 데다, “개인 사생활이나 행복추구권 및 다양성”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어 재판부는 리얼돌의 본질이 ‘성 기구’라는 점을 짚은 뒤, 성적 내용을 대외적으로 표현하는 일반적 ‘음란물’과 다르다고 봤다.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서의 개인적 활동”에 이용되는 도구이므로 국가개입이 최소화되어야 한다고 적었다. 재판부는 “공중에게 성적 혐오감을 줄 만한 성 기구가 공공연히 전시·판매되는 경우” 외에는 규제에 부정적 입장이다. 2013년 헌법재판소 결정문 보충의견(2011헌바176)에서 따왔다.

서로 다른 리얼돌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두 재판부의 서술은 갈린다. 2019년 서울고등법원은 심판 대상 리얼돌이 “실제 인체의 형상과 다르다”라고 했다. 머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성기나 항문의 형태, 음모·혈관·근육의 표현 등이 (…) 노골적 방법에 의해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표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지난 1월14일 서울행정법원은, 부르르닷컴이 새로 수입하려 한 리얼돌이 “실제 사람의 형상과 유사하기는 하다”라고 적었다. 이번 사건의 리얼돌이 더 적나라하다는 세관의 주장에 동조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곧이어 재판부는 이렇게 쓴다. “성 기구는 신체접촉을 대신하여 성적 만족감 충족이라는 목적을 위해 제작·사용되는 도구로서 필연적으로 신체의 형상이나 속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거나 구현할 수밖에 없다. (…) 신체와 유사하다거나 성기 등 표현이 다소 구체적이고 적나라하다는 것만으로 그 본질적 특징이나 성질이 달라져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한다고 쉽게 단정할 것은 아니다.”

성 기구라는 것은 인간의 신체접촉을 대신하는 물건이므로 사람의 모습이나 속성을 닮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신체 묘사가 정교한 리얼돌이라도 그 성질은 성 기구라는 것. 따라서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이 리얼돌 역시 ‘개인의 사적·은밀한 영역에 속하므로 국가개입은 최소화해야’ 하는 물품이라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연합뉴스2019년 9월28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리얼돌 수입 허용 판결 규탄 시위’가 열리고 있다.

아동 형상 리얼돌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논의’

리얼돌의 표현 수준이 어느 정도에 달해야 사람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물건이라고 볼 수 있을까? 재판부는 답을 내놓지 않는다. 다만 문제의 리얼돌이 ‘성기를 매우 자세히 묘사해 음란한 물건’이라는 세관 주장에 이런 반박을 내놓았다. “(이 리얼돌은) 실제 사람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흡사하다고 볼 수준에 이르지는 않았고, 특수 상황이 아닌 이상 실제 사람과 혼동할 여지도 거의 없어 보이며, 여성 모습을 한 전신 인형에 불과하다.” 인형과 인간을 분간하지 못할 수준이 아닌 이상 리얼돌은 ‘골방의 사생활’로 취급해야 한다는 인식이라고 읽을 여지가 있다.

국민청원인을 비롯한 여론 일각에서는 ‘여성을 닮은 리얼돌을 사용하는 사람(주로 남성)은 실제 여성에 대해서도 왜곡된 시각을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리얼돌을 ‘강간인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역시 이런 이유를 든다. 성 기구가 여성을 모방한 결과 여성을 성 기구처럼 여기게 되어 인간 존엄성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 입장은 다르다. ‘인간 같은 성 기구’를 쓰는 사람은 ‘성 기구 같은 인간’을 원하게 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재판부는 리얼돌이 아무리 정교한들 “실제 사람과 구분”이 되기에, 리얼돌에게 하는 행동을 인간에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한국 사법부만 튀는 판례를 내놓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 가운데 인간의 모습을 닮았다는 이유로 모든 리얼돌을 금지하는 국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리얼돌은 성 기구에 불과하므로 그 성적 사용이 인간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다’는 논리에 따른다면, 아동 형상 리얼돌은 어떨까? 세계적으로 아동 형상 리얼돌을 금지하는 국가들이 속속 나오는 추세다. 미국 하원은 2017년 ‘실제적이고 착취적인 아동형 전자로봇 규제법(Curbing Realistic Exploitative Electronic Pedophilic Robots Act, CREEPER ACT)’을 통과시켰다. 아동 형상 리얼돌의 수입·매매 등을 금지하는 법이다. 이 법안은 상원에서 폐기되었으나,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드라마 〈큐티스〉가 아동성애화 논란을 부르자 다시 발의됐다. 영국은 2019년 검찰 지침을 세워 아동 형상 리얼돌의 수입과 소지 등을 단속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도 2019년 아동 형상 리얼돌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다. 캐나다와 중국 역시 금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 1월11일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아동 형상 리얼돌의 제작·수입·판매·대여를 금지하는 법이다. 같은 당 송기헌 의원은 2월5일 단순 소지까지 처벌하는 아청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김한균 박사는 아동 형상 리얼돌을 금지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다. 일차적으로 아청법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서다. 현행 아청법은 실제 아동이 출연하는 영상물뿐만 아니라 가상의 아동 캐릭터가 출연하는 애니메이션도 규제한다. 음란물 속 캐릭터가 아동·청소년이라고 명백히 인식될 수 있다면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로 처벌받는다. 아동 형상 리얼돌은 ‘실물’ 형태의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아동’이 출연하는 성적 영상물은 해당 아동의 성을 보호하기 위해 금지한다. 그런데 가상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음란물이나 아동 형상 리얼돌은 누구를 보호하기 위해 금지하는가? 김한균 박사는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보지 않는 사회적 풍속”을 보호한다고 말했다. 아동·청소년은 성 보호 대상이지 성적 대상이 아니다. 성인과 아동·청소년의 성애는 아청법에 따라 처벌받는다. 성애의 대상이 아닌 이들의 성애화가 정상적인 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게 아청법의 입법 취지이다. 반면 성인 형상 리얼돌의 규제 문제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논의’라고 김 박사는 말했다. 성인의 성은 음란성을 판단할 문제일 뿐 아동·청소년처럼 무조건적 성 보호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에 따라 그는 “광장에서 시연하는 게 아닌 이상, 리얼돌 전부를 행정적 수단이나 형벌로 금지하는 건 과도하다”라고 주장했다.

영국·미국·프랑스·독일·중국·일본 등 세계 주요국에서 ‘사람의 형상과 비슷한 성 기구’라는 이유로 생산·수입·판매를 금지하는 법은 찾아보기 어렵다. 리얼돌을 금지하는 국가는 대개 성 기구 전체를 금지하는 곳이다. 아프가니스탄·이라크·북한 등 종교의 영향력이 강한 나라나 독재국가가 많다. 2019년 서울고등법원은 판결문에서, “우리나라의 사회통념이나 성적 도의관념이 위 ‘성 기구 수입 금지국가’들과 유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