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5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중앙당사에서 선대위 해산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50시간 동안 정당은 기능을 멈췄고, 대선후보는 끝내 홀로서기를 선언했다. 1월5일 오전 11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거대책위원회 해체를 발표했다. 기존 위원장·본부장급 인사들이 모두 물러나고, 권영세 의원을 중심으로 한 실무형 선거대책본부를 가동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틀 전인 1월3일,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이 선대위 개편을 발표한 지 50시간 만에 나온 결론이다. 결국 선대위는 재편 순서를 밟게 되었지만 윤 후보에게 ‘별의 순간’을 언급하며 합류한 김종인 전 위원장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 50시간 동안 제1야당은 한국 정치사에서 유례없는 혼란을 겪으며 불안한 미래에 노출되었다.

시작은 김종인 전 위원장의 ‘후보 패싱’이었다. 1월3일 오전 9시 선대위 회의에서 김 전 위원장은 선대위 개편을 깜짝 선언했다. 그러나 이 발언이 윤 후보와 사전 조율 없이 나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선대위와 당내 기구가 혼돈에 빠져들었다.

당내 의원들 사이에서 의원총회가 소집되었다. 이날 오후 2시30분에 열린 의총에서 김기현 원내대표와 김도읍 정책위원장이 당 쇄신을 위해서라며 사의를 표명했다(이틀 뒤 윤 후보는 이들의 사의를 반려했다). 김종인 전 위원장도 이 자리에 참석해 “(후보에게) 총괄선대위원장이 아니라 비서실장 노릇을 할 테니, 후보도 태도를 바꿔서 우리가 해준 대로 연기를 좀 해달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윤 후보의 잦은 실언이 반복되어 지지율이 하락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종인 전 위원장 중심의 총괄선대본부가 흩어진 선대위 기능을 흡수·재편하는 구조였다. 특히 후보에게 ‘연기를 해달라’는 발언은 곧바로 논란이 되었다.

의총 발언 직후 김종인 전 위원장은 윤석열 후보와 면담한 뒤 오후 5시4분에 당사를 빠져나갔다. 이때 김 전 위원장은 “후보로서는 갑작스럽게 (선대위 개편안) 얘기 들었기 때문에 심정적으로 괴로운 것 같은데, 아마 오늘 지나고 나면 정상적으로 (개편을)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뒤이어 오후 7시40분 방송 인터뷰에 출연한 김 전 위원장은 “현재 상황이 긴박하기 때문에, 이걸(개편을) 누가 하나 딱 저질러서 발동을 걸지 않으면 시간이 너무 끌릴 것 같았다. 그래서 제가 오늘 아침에 일방적으로 발표했던 것이다”라고 이날 사태를 정리했다.

김 전 위원장이 말한 ‘긴박한 상황’이란 지지율 하락세를 의미했다. 연말 연초 각종 여론조사 지표에서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선후보에게 오차범위 이상 뒤지는 결과가 나왔고, 당내에서도 실무자들 사이에 혼선이 반복된다는 평가가 나왔다.

1월1일 발표된 게임 전문 매체 〈인벤〉과의 인터뷰 논란이 대표적이다. 〈인벤〉은 이날 윤 후보와의 서면 인터뷰를 공개했는데, 이 인터뷰에서 윤 후보는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문제에 대해 “기업으로서 수용하기 어려운 영업비밀 공개 의무화 같은 강력한 규제도 능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확률형 아이템 이슈는 젊은 유권자들에게 무척 중요한 이슈였는데, 이 질문에 윤 후보가 게임회사의 손을 들어주는 듯한 의견을 낸 것이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이튿날(1월2일) “후보 동의도 받지 않은 인터뷰 답변이 후보 이름으로 나가고 있다”라고 지적했고, 선대위에서도 해당 인터뷰가 후보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인정하며 논란이 되었다. 특정 정책에 관한 입장 조율조차 되지 않았다는 걸 내보인 셈이다. 1월3일 김종인 전 위원장의 ‘개편 발언’에 대해서도 선대위 내 공보담당 인사들은 “우리도 어떻게 굴러가는 상황인지 모르겠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뒤엉킨 조직구조를 바꾸는 과정에서조차 정당은 무력했다.

1월3일 김종인 당시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중앙당사에서 사의를 표명한 뒤 떠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연기’보다 ‘연습문제’가 더 충격적”

다음 날인 1월4일, 윤석열 후보는 김종인 전 위원장의 ‘개편안’을 두고 장고에 들어갔다. 이날 김 전 위원장은 개인 사무실이 있는 서울 광화문에, 윤 후보는 서초동 자택에, 나머지 선대위 관계자들은 당사와 국회가 있는 여의도에 머물러 있었다. 서로가 마주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선대위 기능도 모두 ‘일시정지’한 채 하루를 보냈다. 측근과의 논의를 거친 끝에 나온 결론은 김 전 위원장까지 모두 사퇴한 뒤, 후보가 주도하는 판을 새로 짜는 것이었다. 최측근으로 꼽히는 권성동 사무총장도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50시간 동안의 충돌이 결별로 치달은 데에는 ‘후보 패싱’에 대한 측근 그룹의 분노가 한몫을 했다. 김용남 상임공보특보는 1월4일 아침 라디오에서 김 전 위원장의 선택이 일종의 쿠데타가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맞다”라는 답을 하며 불편한 심경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김종인 전 위원장에게 어떻게 대응하든 윤석열 후보의 리더십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딜레마였다. 김 전 위원장의 개편안을 받아들일 경우 후보가 ‘연기를 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김 전 위원장과 결별할 경우 후보의 정치적 미숙함과 측근 세력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 수 있다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결국 홀로서기를 선택했지만 이후에도 당내 파열음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선대위 개편을 발표한 1월5일 오후, 박성중 의원(전 국민소통본부장)이 주최한 청년 간담회가 논란을 불렀고([대선 뒷담화] ‘역대급’ 내홍 취재하다 기자들 ‘탈모’ 오겠네 기사 참조), 선대위 사퇴 후 갈등을 겪고 있는 이준석 당대표와의 관계도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특히 이준석 대표가 1월5일, 윤석열 후보에게 ‘연습문제’라며 일종의 ‘조건’을 제시한 것이 알려져 소요가 뒤따랐다. 이 연습문제 중에는 지하철역 앞에 나가서 유권자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1월6일 아침 윤 후보가 서울 여의도역에 나와서 출근 인사를 했음에도 갈등이 봉합되지 않자 이 대표에 대한 성토가 뒤따랐다. 윤 후보와 가까운 한 인사는 “연기를 해달라는 김 전 위원장의 말보다 ‘연습문제’를 언급한 이 대표의 발언이 더 충격적이었다”라고 말했다. 결국 국민의힘 원내지도부는 이날 의원총회를 열고 이 대표에 대한 사퇴 결의를 제안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50시간 사태’는 국민의힘이라는 제1야당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정권교체를 위해 외부 인사(윤석열·김종인)와 비주류(이준석)의 힘을 빌렸으나 결국 김종인 전 위원장은 당을 떠나고, 당내 주류 세력은 당대표의 퇴진을 외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방인 한 명(후보)으로 선거를 치르려는 제1야당은 과연 앞으로 유권자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는 시간도, 고작 2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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