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책장을 정리하다 옛 일기장에 손이 갔다. 무심코 편 페이지는 2019년 5월의 기록이었다. 그때 나는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일기장 속 문장을 그대로 옮겨보면, 몇 달째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으며 무급휴직이라도 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일기를 읽으면서 불과 2년 전의 내가 낯설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날 일기는 다행히도 슬럼프에서 빠져나왔다는 이야기였다. 일 때문에 우는 소리를 했던 내가 결국 일 덕분에 생각을 고쳐먹었다는 내용이다. 그해 4월 ‘여수MBC-한경 뉴스래빗 협업 보도 눈길’이라는 기사를 냈다. 당시 한경닷컴에서 새로운 디지털 콘텐츠를 선보이던 ‘뉴스래빗’팀과 소규모 지역 지상파 방송사의 협업을 소개한 보도였다. 기사엔 “이번 보도는 지역과 서울 언론사가 협업하는 모습을 보여준 보기 드문 사례다. 타사의 디지털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인용해 TV 방송 리포트를 만들었다는 데도 의미가 있다”라고 썼다. 사실 기사를 쓰면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원고지 5장밖에 안 되는 이 짧은 기사 하나가 깊은 수렁에 있던 나를 끌어올렸다.
기사가 나간 뒤 협업 보도의 당사자이자 취재차 나와 통화했던 박광수 여수MBC 기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발견했다. 박 기자는 내가 쓴 기사를 공유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로컬(지역)에도 다양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도록 자신감과 영감을 준 〈기자협회보〉,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언론이고 기사라는 것을 다시 일깨워준 김달아 기자 고맙습니다.”
어쩌면 으레 하는 인사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걸 보는 순간 울컥했다. 작은 기사에 이렇게나 고마워해주는 취재원과 독자가 있다니. 오랜만에 느낀 보람이었다. 그날 일기장엔 이렇게 적었다. “내가 쓸모 있는 기자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좋은 기자’라는 정의가 있는 건 아니지만 나는 이 기사로 아주 조금은 좋은 기자의 모습을 한 게 아닐까. 좀 더 자신감을 갖고 마음을 다잡아본다.”
포털에선 주목받지 못한 기사
지금 보면 별거 아닌 일에 과하게 반응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취재하고 기사 쓰는 일상에서 어떤 동기나 의미를 찾지 못하던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돌아보니 고맙다는 한마디가 절실할 때였다. 나뿐만 아니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기자는 독자의 반응과 사회적 반향에서 직업적 보람을 찾는다. 며칠, 몇 달간 고생해서 기사를 쓰더라도 “잘 봤다” “고맙다” “덕분이다”에 다시 뛸 동력을 얻는다.
현실에선 비난이 난무한다.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엔 따뜻한 격려와 따끔한 지적 대신 혐오와 비아냥거림이 가득하다. 칭찬할 만한 기사가 보이지 않는다고 반박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런 기사는 포털에선 주목받지 못한 채 종이신문이나 TV, 언론사 웹사이트에서 독자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잘못된 보도와 직업의식을 저버린 기자는 독자에게 비판받아 마땅하다. 부끄러운 보도 행태에도 자성하지 못하는 언론사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염치없지만, 그럼에도 독자들께 부탁드리고 싶다. 새해엔 어떤 기준으로든 좋은 보도를 한 기자에겐 칭찬을 해주시라. 욕먹는 게 익숙해질 법한데도 기자들은 늘 칭찬이 고프다. 독자의 작은 칭찬 한마디가 기자를, 언론사를,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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