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다작이라는 수식어가 걸맞은 한 해였다. 김초엽 작가(사진)는 올해 다섯 권의 책을 냈다. 논픽션, 장편소설, 단편소설, 초단편소설, 중편소설 등 장르와 형식이 다양하다. 모두 골고루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2021년 출판인이 꼽은 올해의 작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랄까. 소감을 물었다. “편집자는 작가를 가장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다. 첫 소설집을 내기 전에도 많은 편집자의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좀 더 각별한 것 같고 더 열심히 쓰겠다.”

작가 스스로에겐 고비를 넘은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첫 논픽션 〈사이보그가 되다〉와 첫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을 냈다. “작가가 주목받으면 응원해주시는 분도 많지만 시험하듯 지켜보는 시선도 많다. 처음(〈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성공)이 행운이 아니라 실력이라는 걸 보여주려면 다음에도 잘해야 하니까 신경이 쓰였다. 여러 권 출간했는데 반응도 괜찮아서 안심이 됐다.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

1월 출간된 〈사이보그가 되다〉는 김초엽 작가가 김원영 작가와 함께 〈시사IN〉에 연재했던 글을 기반으로 작업한 논픽션이다. 장애가 없는 미래를 약속하는 과학기술의 딜레마에 대해 성찰했다. 픽션을 쓸 때와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연재 당시 병행하던 소설 쓰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서로 연관되는 작업이었다. 장애학에서 인간의 손상과 결함, 그리고 사회가 그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다룬다. 그걸 간접적으로 다룬 작품이 〈방금 떠나온 세계〉에 등장하는 ‘로라’다.”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다뤘기 때문에 연재를 할 때도 공부해가며 썼다. 작가로서 성장하려면 논픽션을 쓰는 게 좋겠다 싶을 정도로 큰 배움을 얻었다.

같은 SF라도 초단편, 단편, 중편, 장편은 다른 재미가 있다. 집중하면 열흘 정도면 끝나는 단편소설에 비해 끈기를 가지고 써야 하는 장편소설은 새로운 시도였다. 성장의 기회가 된 것 같다. “독자 분들이 어떤 한 가지를 더 좋아하는 것 같으면 그쪽에 주력해볼까 했는데 반응이 고루 비슷했다. 단편소설은 어느 정도 쓰는 방식이나 스타일이 확립됐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많이 시도해보지 않은 중편소설, 장편소설을 더 써보려고 한다.”

〈방금 떠나온 세계〉에 실린 ‘마리의 춤’은 시각 이상을 가진 모그가 테러를 꾀하는 내용이다. 어떤 전환이 된 작품이기도 하다. 첫 책을 내고 몇 달 뒤 썼다. “책 출간 이후 고민이 됐다. 등장인물 중 호불호가 갈릴 만큼 극단적인 인물이 없었다. 윤리적 한계를 벗어나보려고 했다. 이 작품 이후에는 인물의 행동이나 대사를 쓸 때 스스로 제약을 덜 둔다는 생각이 들었다. 12월 출간되는 중편소설에 행동에 제약을 두지 않는 인물이 나온다. 한번 시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작업이다.” 〈행성어 서점〉의 ‘늪지의 소년’은 자원의 상호연결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그동안 집중했던 인간 내면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을 다뤘다. 스스로 관심사가 확장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을 쓸 때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거나 쓰고 싶은 장면이 먼저 떠오르는 편이다. 그다음에 인물을 구상한다. 최근엔 캐릭터 중심으로 작업을 시도해보려고 한다. 그동안은 좋아하는 인물 위주로 그려왔다. “좋지 않은 환경에 처해 있어도 스스로를 연민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모르는 게 있거나 미스터리한 상황에 처해도 탐구정신을 가지고 그걸 파헤칠 수 있는 인물. 새롭게 시도하는 작품에서는 좋아하지 않는 인물도 등장시킬 예정이다.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좋아하지 않는 인간상도 그려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심스럽지만, 진보를 믿는다

김초엽 작가는 〈방금 떠나온 세계〉 ‘작가의 말’에서 말한다. ‘우리는 광막한 우주 속을 영원토록 홀로 떠돈다. 하지만 안녕, 하고 여기서 손을 흔들 때 저쪽에서 안녕, 인사가 되돌아오는 몇 안 되는 순간들. 그럼으로써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되돌아보게 하고 때로는 살아가게 하는 교차점들. 그 짧은 접촉의 순간들을 그려내는 일이, 나에게는 그토록 중요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의미일까? “단편의 속성상 띄엄띄엄 작업하다 보니 공통적인 주제의식이 있다는 걸 모른 채 썼다. 모아놓고 보니 두 명의 인물이 나오고, 그 인물이 서로 이해하는 데 실패하고, 그렇지만 그 실패가 파국이 아니라 다음 단계의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글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초엽 작가의 작품과 말에는 낙관적인 세계관이 묻어난다. 진보에 대한 믿음이랄까. “현실을 돋보기처럼 들여다보면 굴곡과 고통, 피해 입은 분들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 나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말은 조심스럽다. 이대로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진보하고 있다는 믿음은 세계를 나은 방향으로 만들려는 사람에게 중요하다. 싸워나가는 원동력으로서, 세상이 나아져야 한다는 입장에서 진보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2017년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을 받은 이래 꾸준히 썼고 많이 썼다. 초반엔 리뷰 하나하나에 신경을 많이 썼다. 취향이 다양했다. 같은 이유로 누구는 좋고 누구는 싫다고 했다. 오히려 중심이 잡혔다.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작가라 피드백을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내 소설의 어떤 점이 작가로서 작품을 이어나갈 수 있는 일정 독자의 범위만 확보할 수 있다면 괜찮다. 마음이 편해졌다.” 내년에도 연재 일정이 잡혀 있다. 에세이 한두 권, 중편 분량의 책 한 권이 나온다. 좋아하는 SF 게임에 대한 에세이가 포함된다.

작가의 작품을 따라 읽어온 독자들에게 전할 말을 물었다. “어떤 작품은 덜 마음에 들고 어떤 건 더 좋고 그러실 텐데 그와 상관없이 다른 작품을 기다리겠다고 말해주는 분들이 있어서 좋다. 잘하는 것만 할 수는 없고 새로운 시도를 하며 여러 굴곡이 생길 텐데 그것까지 지켜봐주겠다는 뜻인 거 같아서 힘이 되고 응원이 된다.” 계속해서 다른 작품에 도전하겠다는 작가에게서 탐구정신 넘치는 그의 작품 속 인물이 겹쳐 보였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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