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행복한 책꽂이] 차례 시사IN 편집국 제1부 독서 리더가 꼽은 올해의 책6 고나무 (팩트스토리 대표)〈노마드랜드〉 7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불고기:한국 고기구이의 문화사〉 8 고재열 (여행감독)〈그냥, 2200㎞를 걷다〉 9 권용선 (수유너머104 연구원)〈불쉿 잡〉10 김겨울 (작가·유튜브 ‘겨울서점’ 운영자)〈미쳐 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11 김주원 (하우스스타일 대표)〈언어의 높이뛰기〉12 김중미 (작가·기찻길옆작은학교 상근자)〈허락되지 않은 내일〉13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축구의 제국, 프리미어리그〉 14 김혜영 (고 이한빛 PD 낮엔 회사원 밤엔 작가, 계급장 떼고 쓰는 웹소설의 세계 임지영 기자 이낙준 작가가 노트북 앞에 앉았다. 이날 써야 할 분량은 연재작 세 편이다. 〈A.I. 닥터〉 〈포스트 팬데믹〉 〈검은 머리 영국 의사〉 각 1화씩. 목표 분량을 화면에 띄워놓고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키보드 소리가 멈추지 않자 실시간 댓글 창에는 그의 집필 속도에 대한 감탄이 흘러나왔다. 쓰면서 마시는 카페인 음료가 무엇인지, 연재 플랫폼 사이트에서 바로 쓰는 건지 질문이 나오자 작가가 타이핑을 멈추고 답변했다. 유튜브 채널 ‘작가친구들’에서 선보인 라이브 방송이었다. ‘한산이가’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이낙준 작가는 웹소설을 쓴다. 매 시간 평균 6324명이 세상을 떠난다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죽은 자 곁의 산 자들헤일리 캠벨 지음, 서미나 옮김, 시공사 펴냄“우리는 못했지만 누군가는 시신을 보살피고 처리했다.”매 시간 평균 6324명이 세상을 떠난다. 우리 주위에는 죽음이 넘쳐나지만 이 사실을 의식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지은이는 “점잖게 둘러말하는 표현이나 차와 케이크를 앞에 두고 슬픔을 말하는 친절한 사람들”을 원치 않았다. 그는 직접 ‘죽은 자 곁의 산 자들’을 만난다. 장의사, 해부 책임자, 데스마스크 조각가, 대참사 희생자 신원 확인자, 범죄 현장 청소부, 사형 집행인, 시신 방부처리사, 해부병리 전문가, 사산 신기한 것이 참 많은 곽재식과의 대화 임지영 기자 1시간 동안 가장 많이 쓴 단어는 ‘신기하다’, 총 10번이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신기합니까”…. 총에 달린 소음기의 작동 원리를 설명할 때는 목소리 톤이 한층 높아졌고 끝내 아무 생각 없던 상대방이 정말 신기하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곽재식 작가의 입담은 그의 몇몇 소설 속 화자를 연상하게 했다. 북적북적한 커피숍의 소음이 사라지는 ‘신기한’ 경험이었다.또 하나 신기한 건 그의 집필 속도다. 곽재식 작가가 소설을 쓴 지는 16년, 직장 생활을 한 지는 17년이다. 그동안 책 30여 권을 냈다. 올해 들어서만 4월까지 우리의 현재가 냉동 인간의 미래다 송병기 (인류학 연구자) 2020년 5월, 한국 첫 ‘냉동 인간’이 나왔다. 혈액암으로 사망한 80대 여성이었다. 그 아들에게 의뢰받은 러시아의 인체 냉동 보존 회사는 시신을 모스크바로 이송했다. 업체는 3단계 절차를 거쳐 시체를 냉동 보존했다. 먼저 시신의 혈액응고 및 뇌손상을 막기 위해 약물을 투여하고 인공 심폐장치를 가동했다. 그리고 혈액을 냉동 보존액으로 치환했다. 체액이 저온에서 결정화되어 세포를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시신을 영하 196℃의 액체질소 냉동 탱크에 안치했다. 이 러시아 기업은 냉동 보존된 고객들을 ‘환자’라 부른다. 그 김초엽 작가 “조심스럽지만, 진보의 힘을 믿는다” 임지영 기자 다작이라는 수식어가 걸맞은 한 해였다. 김초엽 작가(사진)는 올해 다섯 권의 책을 냈다. 논픽션, 장편소설, 단편소설, 초단편소설, 중편소설 등 장르와 형식이 다양하다. 모두 골고루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2021년 출판인이 꼽은 올해의 작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랄까. 소감을 물었다. “편집자는 작가를 가장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다. 첫 소설집을 내기 전에도 많은 편집자의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좀 더 각별한 것 같고 더 열심히 쓰겠다.”작가 스스로에겐 고비를 넘은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첫 논픽션 〈사이보그가 되다〉와 첫 장 올해 서점가, 장르 상관없이 여풍 불었다 임지영 기자 ‘한없이 가벼워지기로 작정한 소설의 세계에서 한강 작가만이 쓸 수 있는 문장과 사유의 힘.’ 〈작별하지 않는다〉를 올해의 책으로 꼽은 한 응답자의 답변이다. 2021년 출판편집자에게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국내서는 소설이다. 5월 광주에 대한 소설을 쓴 작가 경하가 제주를 찾아 4·3과 그에 얽힌 가족사를 마주하는 이야기다. 실제 광주를 배경으로 〈소년이 온다〉를 썼던 한강 작가(사진)가 다시 한번 현대사의 비극을 소재로 선택해 주목받았다. 또 다른 응답자의 추천 사유는 문학적이다. ‘여름이었다. 한가한 책상 위에 책 한 권이 놓였 장애를 ‘없애는 기술’보다 ‘존중하는 기술’이 중요하다 김은남 기자 “책의 시작은 황우석 교수 사건이었어요.”〈시사IN〉과 동네책방이 함께하는 ‘읽는당신×북클럽’ 2차 북토크가 지난 10월21일 온라인으로 열렸다. 10월의 추천 책 〈사이보그가 되다〉(김초엽·김원영 지음, 사계절 펴냄)를 함께 읽고 토론하는 자리에 저자로 참여한 김원영 변호사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그는 뼈가 제멋대로 자라는 골격계 질환을 타고났다. 어린 시절 공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이른바 ‘인서울’ 대학에 진학했다. 나름 우쭐할 만한 인생역정. 그런데 대학 입학 후 장애인 운동을 접하면서 충격이 찾아왔다. 과 ‘정상’에 어긋나면 배제돼야 하는 걸까? 김은남 기자 〈시사IN〉과 동네책방이 함께하는 ‘읽는 당신×북클럽’이 올 하반기 다시 열린다. 〈시사IN〉 기자와 책방지기들이 숙의 끝에 선정한 시즌2 주제는 ‘다양성과 공존’이다.지난 상반기(3월4일~6월10일) 진행된 북클럽 시즌1 주제는 ‘팬데믹 너머’였다. 동네책방 28곳에 모인 독자 340여 명이 추천 도서 세 권(〈공정하다는 착각〉 〈가난의 문법〉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을 동시에 읽으며 팬데믹이 드러낸 가난·공정·불평등의 문제를 이야기했다. 동네책방을 중심으로 지역과 일상의 회복을 꾀하고자 시작한 북클럽이었지만 시즌1 책 ‘인싸’와 ‘셀럽’의 세계, 초대받지 못한 소수자 이길보라 (영화감독·작가) 2021년 2월, 한국의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클럽하우스(Clubhouse)는 실시간 오디오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소셜미디어다. 현재는 아이폰, 아이패드와 같은 iOS 기반에서만 설치할 수 있고, 기존 사용자의 소개를 받아야 가입된다. 직접 가입할 수도 있지만 전화번호로 연결된 기존 사용자가 수락해줘야 한다. 제한성과 제약이 매력이자 장점으로 기능하는, 여러모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미디어다.프로필 페이지에서는 누구 소개를 받아 가입했는지 볼 수 있는데 이는 기존 인적 네트워크를 강조하는 기능을 한다. 각 분야의 ‘인싸’ ‘셀럽’이 새로 나온 책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사이보그가 되다김초엽·김원영 지음, 사계절 펴냄“저를 사이보그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한자리에 참석한 김초엽 작가를 두고 주최 측이 ‘청각장애를 극복하고’라는 식의 소개 멘트를 했고 당사자가 이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썼다. 김원영 작가가 보기에 김초엽 작가는 SF 작가 이전에 자연과학 연구자, 여성,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이자 소수성이 지닌 사회적 의미에 대해 성찰하는 사람이었다. ‘장애와 과학기술에 관한 담론에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낸다면 김초엽 작가가 가장 훌륭한 파트너일 거라는 믿음을 굳혔다.’ 한 명은 보청기를 착용하고, 한 여행을 대체한 재테크·자기계발 구환회 (교보문고 도서 MD) 지난 1월 출간된 〈목소리를 드릴게요〉의 정세랑 작가는 “2020년은 SF 단편집을 내기에 완벽한 해가 아닌가 싶다”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지난 1년간 세상은 한 편의 SF 소설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열린 2020년대의 첫해,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었을까? 독자들은 어떻게 책을 통해 세상과 싸우고, 화해하고, 공존했는지 네 개의 분야를 중심으로 되짚어봤다(순위 등 모든 판매 데이터는 교보문고 판매 기준이다).비즈니스 분야 (경제·경영, 자기계발)비즈니스 서적은 2020년 베스트셀러를 살피며 가장 먼저 남들이 덜 썼던, 여성 과학자의 이야기를 쓴다 임지영 기자 누군가 사인을 요청했다. 김초엽 작가가 커다란 백팩에서 펜을 꺼낸 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우빛속)〉 맨 앞 장을 펼쳐 이렇게 적었다. ‘우주의 모든 사랑을 담아.’ 지난해 6월 나온 그의 첫 소설집이다. 지금까지 약 15만 부가 판매되었다. 그의 ‘사인용’ 펜은 반짝이는 펄이 들어간 보라색이었다. 〈우빛속〉 초판 책 표지의 제목 색깔과 비슷했다. 사인 구절 역시 그의 작품과 닮아 있었다. ‘슬픔으로 가득한 우주에서도 똑바로 날아갈 수 있을 거라는 용기를 준다(정세랑 작가)’는 점에서 그랬다.지난해, 김초엽이 왔다. ‘과학소설’ 전성시대, 왜 지금 SF일까? 임지영 기자 1970년 4월 〈동아일보〉가 창간 50주년을 기념해 소설을 실었다. 제목은 〈50년 후, 디 파이 나인 기자의 어느 날〉. 배경은 2020년이다. 주인공인 기자는 연료전지로 가는 자율주행 자동차를 타고 화상통화를 한다. 자동차의 이름은 ‘귀요미19’다. 인공 자궁에서 태어난 최초의 인간도 등장한다. 〈무진기행〉의 김승옥 작가가 서른 살에 쓴 작품이다. 같은 2020년을 다루지만,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주탐사에 나선 독수리호의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1989)와 결이 좀 다르다.20세기 창작자가 상상 140년 전에 촬영한 ‘청룡의 거대한 뿔’ 이상엽 (사진가) 최근 세계의 유수한 천문학자뿐 아니라 아마추어 천문학도들까지 하나의 별을 주목하고 있다. 요즘 같은 겨울에 잘 보이는 오리온자리의 알파별(특정 별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인 베텔게우스다. 지난해 하반기까지만 해도 베텔게우스는 밤하늘에서 아홉 번째로 밝은, 인기 있는 별이었다. 그런데 최근 3개월 사이에 이전 밝기의 3분의 1 정도로 희미해졌다. 〈뉴욕타임스〉는 베텔게우스 연구자인 에드워드 기넌 교수의 말을 인용해 “기절 상태”라고 보도했다. 베텔게우스가 별의 인생을 끝내고 폭발을 앞두고 있다는 의미다.베텔게우스의 질량은 태양의 11배 이곳 너머를 말하는 SF 지금 여기에 우뚝 서다 김영화 기자 타임머신을 타고 도착한 2138년의 지구에는 남자가 없었다. 남녀 간의 오랜 전쟁 끝에 패배한 남성들이 화성으로 쫓겨난 후 여성들은 지구에 ‘여인천하’를 건설했다. 이들은 월경을 없애기 위해 난소 제거 수술을 받고, 부부의 개념이나 가족제도 등을 파괴한다. 1967년 문윤성 작가가 쓴 SF 소설 〈여인 공화국〉이 그린 미래 사회다. 50여 년 전,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를 그린 이 작품은 한국 최초의 장편 과학소설이다. 2018년 〈완전사회〉라는 이름으로 재출간되었다. 한국 SF의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2019년은 특히 그동안 혐오와 차별 넘치는 대한민국의 초상 임지영 기자 선정 소식을 듣고 단번에 기뻐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올해의 출판사’나 ‘올해의 루키 출판사’ 분야가 특히 그렇다. 버티느라 여념이 없고,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갸웃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시사IN〉이 출판인들에게 설문을 시작한 지 10여 년. ‘최고’를 가리기보다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 분투한 출판인들을 응원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동료들이 꼽은 올해의 책, 저자, 출판사 등을 소개한다. 올해도 아래의 출판사 관계자 74명이 응답해주었다. 설문에 응해준 출판사(가나다순)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가나출판사, 글항아리, 김영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더라도 김겨울 (유튜브 ‘겨울서점’ 운영자) 〈시사IN〉은 2009년부터 연말 부록으로 ‘행복한 책꽂이’를 펴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독서 리더들의 면면은 바뀌었지만, 이들이 추천한 올해의 책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미디어에서, SNS에서 요란스럽게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동굴 속 보석처럼 조용히 반짝이던 책들이 세상에 나온 기분이다. 조용히 나 자신과 마주 앉을 시간을 만들어주는 한 권의 시집도 있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록도 있다. 물론 묵직한 인문학 서적도, 당장 펼쳐보고 싶은 역사 에세이도 있다. 올겨울, 이 반짝이는 것들을 품고 따 진짜 뉴스가 많아지려면 [편집국장의 편지] 고제규 편집국장 10㎝ 턱이 장벽이었다. 손에 힘을 주어 바퀴를 굴려도 넘을 수 없었다. 이런 장벽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장애인 이동권’ 취재를 할 때였다. 직접 휠체어를 타고 거리로 나섰다. 비장애인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장벽이 그제야 보였다. 거리는 온통 장벽투성이였다.땀을 흘리며 장애인 활동가와 함께 버스 정류장까지 겨우 갔다. 휠체어로 이동 가능한 저상 버스가 아닌 일반 버스가 앞에 섰다. 버스 기사가 내렸다. 휠체어에 탄 장애인 활동가를 안아서 버스 자리에 앉혔다. 나는 친절한 기사라고 생각했다. 장애인 활동가는 가장 수치스러운 순 차별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프리스타일] 임지영 기자 걸그룹 셀럽파이브의 신곡 ‘안 본 눈 삽니다’를 보며 다섯 여자의 태연자약한 표정에 웃음이 터졌다. 며칠 뒤 SNS에서 어떤 글이 눈에 띄었다. ‘안 본 눈 삽니다’라는 말을 시각장애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라는 질문이었다. 반응이 다양했다. 공감하는 의견도 있었고 지나치게 예민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나도 잠시 핸드폰에서 손가락을 떼고 생각에 빠졌다.SNS 상의 작은 소동을 지켜보며 〈선량한 차별주의자〉 저자 김지혜 강릉원주대 교수가 겪었다는 일화가 생각났다. 이쪽은 훨씬 선명하다. 한 토론회에서 ‘결정장애’라는 말을 썼고 누군가 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