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는 아파트 동 간 배치가 빽빽하기로 유명하다. 용적률은 285%이고, 건폐율은 19% 수준이다. ⓒ시사IN 조남진

‘정치의 시간’에도 집값은 올랐다. 지난 7월1일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즈음 경기도 군포시 금정동에 위치한 A 아파트에서는 전용면적 44㎡(약 13평) 한 호가 3억8500만원에 거래되었다. 11월5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되었다. 이때 이 아파트의 거래 가격은 4개월 만에 4억4000만원으로 뛰어올랐다. 1992년에 지은 이 아파트의 1년 전(2020년 12월) 가격은 2억5000만원에 불과했다. 대선 정국이 전개되는 동안 ‘서울에서 1시간 넘게 걸리는, 20평도 안 되는, 지은 지 29년 된 아파트’의 가격이 76% 상승한 것이다.

모로 가도 결국 부동산 선거다. 정권교체를 주장하며 표심을 끌어 모으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실책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으며 공세를 펼쳐나간다. 여당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동시에 중도층 확장을 노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도 문재인 정부 주택정책을 비판하며 자신과의 차이를 부각시킨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는 논쟁의 영역일 수 있다. 그러나 대선 전쟁이 펼쳐지는 지금 이 순간만은 여야 후보 모두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실패했다. 그러니 바꾸겠다.’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는 이재명·윤석열 두 후보의 부동산 공약은 아직 최종 완성 단계가 아니다. 두 후보 모두 경선 과정에서 큰 밑그림만 발표했을 뿐, 당과 협의를 마친 세부 공약은 발표를 미루고 있다. 다만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평가와 향후 발표할 공약 방향을 두 후보의 말과 글에서 읽어낼 수 있다. 두 후보는 정책 기조와 주택공급 방법, 세제 개편에서 크고 작은 차이점을 드러낸다.

두 후보 모두 정책 기조에 ‘시장’을 앞세우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11월23일 “(문재인 정부에서는) 수요만 억압하면 된다고 봤는데 시장은 그렇게 안 봤던 것이다. 지금부터는 시장을 따라가야 된다. 시장을 존중해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집권 세력의 일부로서 그 작은 티끌조차도 책임져야 되는 것은 분명하다”라며 현 정부와 선을 그은 터이기도 했다.

7월6일 당시 이재명 경기지사가 ‘부동산 시장법 제정’ 국회토론회에서 환영사를 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후보는 부동산 시장에 대해 이 후보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 8월29일 윤 후보는 “잘못된 규제와 세제를 정상화해 수요에 부응하는 다양한 주택이 꾸준히 공급되고 거래될 수 있는 제도와 시장 질서를 확립하겠다”라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잘못된 규제와 세제’를 윤 후보는 “징벌적 과세, 과도한 대출 규제, 임대차보호법”으로 꼽았다. 사실상 문재인 정부 시절에 추진한 대다수 정책의 ‘원점 회귀’를 천명한 셈이다.

똑같이 시장을 앞세우고 있지만 방향성은 극과 극이다. 윤석열 후보가 ‘문재인 지우기’를 통해 정부 개입 최소화를 주장하는 것과 달리, 이재명 후보의 ‘시장 존중’은 부동산 시장의 수요-공급 원칙을 무시하지는 않겠다는 원칙론에 가깝다. 가령 이 후보는 ‘시장 존중’ 기조에도 불구하고 임대차 3법에 대해 “법은 안착시키는 게 문제 해결에 훨씬 더 도움이 된다”라며 당장 폐지하는 것은 시장 혼란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11월29일에는 “사실은 부동산 가격 폭등이 아니라 폭락이 걱정된다. 전 세계 유동성이 줄어들고 이자가 올라가는데, 높은 상태로 가격이 형성되어 있어 급격한 하락이 경제에 충격을 주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는 말까지 남겼다. 윤 후보는 부동산 정책에서도 선명한 정권교체를 이뤄내겠다고 말하는 듯하다. 반면 이 후보의 관련 발언들은 경제상황 변동에 유의하며 수요-공급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이처럼 정책 기조는 다르지만, 주택공급을 대폭 늘린다는 원칙은 두 후보 모두 유사하다. 심지어 목표로 삼는 공급 물량도 임기 내 250만 호로 일치한다. 다만 두 후보의 공급 목표 수치들은 문재인 정부의 공급 계획 물량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주거복지 로드맵과 3기 신도시를 통해 수도권 127만 호를 공급 추진 중이다. 올해 초 변창흠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이 발표한 ‘공공주도 3080+(공공재개발 등)’의 공급 목표치도 수도권 기준 약 61만 호(전국 80만 호) 수준이다. 이미 200만 호 이상을 현 정부에서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온 셈이다. 결국 각 후보가 주장하는 추가 공급 물량은 50만 호에 미치지 못한다.

목표 삼는 공급 물량은 비슷하지만 공급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이재명 후보는 250만 호 가운데 100만 호 이상을 이른바 ‘기본주택’으로 공급하겠다고 주장했다. 중산층을 포함한 무주택자들이 건설원가 수준에 맞춘 저렴한 임차료로 역세권 등 좋은 위치에 살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다.

반면 윤석열 후보는 청년 주거문제 완화를 위한 해법으로 ‘청년원가주택’ 30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한다. 원가주택이란 무주택 청년이 원가(택지조성원가, 건설비 등)로 주택을 분양받은 뒤, 5년 이상 거주 후 정부에 매각해 시세차익의 70%를 가져가게 하는 구조다. 분양받아서 거주하다가 다시 공공부문에 되팔고 공공 측이 시세차익의 일부를 환수한다는 측면에서 청년원가주택은 문재인 정부의 신혼희망타운, 환매조건부 주택 등과 닮았다. 현 정부의 부동산 규제 체계를 허물겠다는 윤석열 후보 측의 표면적 주장과 달리 공급정책의 기본 철학은 크게 바뀌지 않는 셈이다. 결국 이재명 후보는 ‘중산층도 좋아할 만한 질 좋은 임대주택’을 중시하고, 윤 후보는 ‘공공이 재매입하는 공공분양주택’을 강조한다고 정리해볼 수 있다.

주택공급 정책에서 차이가 도드라지지 못하다 보니 결국 정책의 ‘선명성’을 강조하는 후속 공약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대규모 택지 조성과 관련된 정치적 승부수가 나올 수 있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극복해야 하는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미 대선후보 경선 당시부터 여러 아이디어가 각 예비 후보의 입을 통해 등장했다. 저층에 학교를 두고 고층에 아파트를 짓는 방식(정세균)부터 서울공항 활용(이낙연), 김포공항 활용(박용진)까지 갖가지 ‘땅 활용’ 공약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용산공원 부지 일부에 아파트를 짓자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내놓는다. 이런 아이디어 중 일부를 대선 공약에 공식화하자는 주장이 민주당 선대위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특정 부지를 선거에서 띄울 경우 투기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 대선후보가 직접 후보지를 언급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주택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공항이나 공원 같은 기반시설을 없애거나 옮긴다고 발표했을 때, 오히려 표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가령 김포공항을 인천공항과 통합하고 이 지역에 대규모 주택단지를 건설한다고 가정해보자. 물론 주택을 빠른 시일 내에 대규모로 공급할 수 있다는 낙관적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항공편 이용에 불편을 겪을 수도권 동부 지역 주민들과 각 지역 거점 공항의 이용객 감소를 걱정하는 지방 표심을 모두 잃을 수도 있다. 이재명 캠프 측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시장에 커다란 충격을 줄 만한 공급 정책’은 고도의 정무적 판단이 필요한 내용이다.

윤석열 후보는 부동산 공급 관련 후속 공약이 아직 미비하다고 평가받는다. 8월29일에 발표한 부동산 종합 공약 외에는 이렇다 할 정책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다. 청년원가주택에 대해서도 ‘과연 시민들이 시세차익의 100%를 포기하고 원가주택을 매입하겠느냐’는 반응부터 ‘지나치게 집 없는 청년층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40대 이상 무주택자는 해당되지 못하는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12월7일 출범한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본격적으로 해당 정책에 대한 수정·보완이 이뤄질 전망이다. 경선 시절부터 윤석열 후보의 부동산 정책 밑그림을 그린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가 선대위 국토교통정책분과위원장으로 합류해 이 같은 논의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8월29일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부동산 정책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제 문제를 두고 두 후보 간 차이 커

세제 문제는 두 후보가 가장 큰 차이를 나타내는 영역이다. 이재명 후보는 보유세를 강화하는 수단 중 하나로 국토보유세를 주장한다(18~20쪽 기사 참조). 반면 윤석열 후보는 종부세 전면 재검토를 공약으로 내세운 상황이다. 최근 몇 년간 문재인 정부가 강하게 추진해온 ‘공시가격 현실화’도 완화하는 등 자산에 매겨지는 각종 조세·준조세 부담을 낮추겠다는 것. 이 후보가 땅 부자에 대한 과세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윤 후보는 부동산으로 인한 세 부담을 없애야 부동산 가격 자체가 안정화된다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양 후보의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국토보유세 등)에 대한 관점은 정반대다. 그러나 취득세·양도소득세 등과 관련해서는 아직 뚜렷한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윤 후보는 양도소득세 완화를 공약으로 명시했으나 이재명 후보는 뚜렷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11월15일 이재명 후보는 양도세 완화에 대해 “당론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현 정부 방침으로부터 자유로운 윤석열 후보와 달리, 이재명 후보는 양도소득세 중과세를 핵심 정책으로 삼은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워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실제로 민주당은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를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당 정책위에서 11월30일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2월2일 “정부 내에서 논의된 바가 전혀 없고 추진 계획도 없다”라고 못 박아 반대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도 12월2일 “만약 필요하다면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다음 정부에서 그때 상황에 따라 시간을 갖고 검토할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 결국 양도소득세·거래세 인하 카드는 당의 입법 지원 없이, 이재명 후보 본인이 추진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윤석열 후보의 부동산 정책은 ‘디테일’이 부족하지만 방향은 확실하다. 문재인 정부가 구축해놓은 부동산 규제 체계를 박근혜 정부 시절로 되돌리는 쪽이다. 반면 이재명 후보는 ‘꺼내놓은 공약은 다양하지만 단순화시키기 어렵다’는 난점을 갖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거리를 두면서도, 현 정부의 정책 가운데 일부(임대차 3법, 보유세 강화 등)를 계승하는 측면도 있다.

재건축·재개발 이슈 역시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는 아파트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높이면서 재건축 이슈가 지역 집값을 띄우는 걸 막으려 했다. 이 같은 방침에 야당을 비롯해 오세훈 서울시장은 반발하며 ‘안전진단 기준 완화’를 공약으로 내세우는 중이다.

당초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 재개발·재건축’에 힘을 싣는 모습이었다. 공공이 주도해 재개발·재건축을 할 경우 해당 단지의 용적률 규제를 완화해주고, 이렇게 완화된 용적률로 확보된 주택 중 일부를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구상이었다.

‘용산 베르디움 프렌즈’의 용적률은 961.97%로 집이 빽빽하게 들어찬 형태로 지어졌다. ⓒ시사IN 조남진

그러나 최근 이재명 후보가 ‘공급 중시, 시장 중시’를 선언하면서 민주당 내부에서도 기류가 바뀌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현재 이재명 선대위 공동상황실장을 맡고 있는 진성준 의원은 12월7일 라디오 방송에서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까지 재검토하고 층고(층의 높이)를 제한하는 문제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라고 언급했다. 이럴 경우 정부·여당이 ‘결국 버티니까 이긴다’며 버텨온 부동산 투기 세력의 승리를 공식 승인하는 듯한 모양새가 될 수 있어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장기적으로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에 대한 신뢰도를 낮출 수도 있는 방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가 이 후보와 문재인 정부 사이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수도권 중도층을 포섭하기 위한 정치적 카드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이재명 후보로서는 지지층의 내부 반발도 감안해야 하는 중요한 이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도시 풍경은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두 후보 모두 ‘용적률’에 대해서는 관대한 태도를 밝히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12월7일 “어차피 도시의 밀도는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라고 말했다. 층수나 용적률 규제를 일부 완화해 주택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의미다. 이 후보가 주장하는 ‘시장 중시’의 핵심에는 결국 ‘공급과 관련된 다양한 규제를 적극적으로 완화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고, 이는 도시의 풍경을 결정짓는 용적률 규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윤석열 후보도 8월29일 부동산 정책 발표 당시 “용적률 인센티브를 활용해 신규 주택의 공급을 확대하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현재 3종 일반주거지역의 건폐율은 50% 이하, 용적률은 ‘200% 이상 300% 이하’ 수준이다. 가령 아파트 동 간 배치가 빽빽하기로 유명한 서울시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의 용적률은 285%, 건폐율은 19% 수준인데, 이보다 밀도 높은 주택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두 후보 모두 역세권 고밀도 개발을 주장하는 만큼 수도권 전철역 인근 도시 풍경은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것이다.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에 완공된 역세권 청년주택 ‘용산 베르디움 프렌즈’는 바깥에서 한눈에 보기에도 집이 빽빽하게 들어찬 형태로 지어졌다. 이곳의 용적률은 961.97%로 역세권 중심 임대주택이 활성화될 경우 이런 풍경이 수도권 곳곳으로 확대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도시 미관을 해치는 닭장 같은 건축물’로 비치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들은 ‘이렇게라도 지어서 주거 선택권을 확대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결국 도시 미관과 별개로 이런 밀도 높은 주거 환경이 다음 정부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되리라 보인다.

부동산은 현 시대 자산 격차와 가계부채 문제의 핵심 사안이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발생한 진짜 문제는 단순히 집값이 올라 매입하기 어려워졌다는 것만으로 일축되지 않는다. 급격한 주택가격 상승으로 인해 파생된 또 다른 문제들도 있다.

가장 큰 ‘뇌관’은 전세 문제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전세 대출을 규제하려 했으나, 실소유자들의 반발로 결국 한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당초 금융위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전세자금 대출에 적용하려 했다. DSR은, 차입자가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가 해당 차입자 소득의 일정 비율 이상을 넘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원리금을 문제없이 갚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돈을 빌려준다’는 원칙하에 만들어졌다. 문제는, DSR 규제가 전세자금 대출로까지 확대되면 저소득층이 전세자금을 빌리기 힘들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거센 사회적 반발이 일었던 이유다.

12월9일 한 시민이 서울 송파구 잠실동 일대의 아파트 전·월세 홍보물을 보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임대차 시장의 ‘3중 전세 가격’도 문제

그러나 금융 당국으로서는 긴장할 만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집값 상승으로 전세 가격까지 덩달아 오르면서 전세대출이 가계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전세대출이 점차 늘어난다는 것은 공공의 전세대출 보증 규모 역시 점점 커진다는 의미다. 그동안 저금리 전세대출에 대한 공공부문의 보증은 일종의 ‘주거취약층 보호 정책’ 성격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주거정책’이 높은 집값을 떠받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대출을 갚을 만큼 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억 원대 전세금을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임대차 3법으로 현재 임대차 시장에 고착화되고 있는 ‘3중 전세 가격’ 문제도 차기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다. 3중 전세란 같은 아파트에 서로 다른 3가지 가격으로 전세 계약이 이뤄지는 걸 의미한다.

가령 매매가 5억원, 전세가 3억원인 아파트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집은 2년 사이에 매매가격이 8억원으로 상승했는데, 임대인들은 높은 전세금을 받고 싶어 한다. 이사 온 지 2년밖에 되지 않아 계약갱신청구권을 활용할 수 있는 임차인 A씨는 종전 전세가 3억원으로 계약 기간을 추가로 2년 연장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 이사 온 임차인 B씨는 5억원(집값이 8억원으로 오르면서 전세가도 인상)으로 전세 계약을 맺는다. 이처럼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3억 전세 가구와 새로 들어온 5억 전세 가구가 뒤엉킨 현상을 ‘2중 전세 가격’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여기에 임대인과 협상 끝에 4억원을 낸 임차인 C씨가 섞이게 된다. C 임차인은 2년 동안 이 아파트에 살다가 A 임차인처럼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재계약하려 했다. 이에 대해 임대인이 ‘내가 실거주할 테니 나가달라’고 맞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다른 집을 알아봐야 한다. 하지만 인근 주택 모두 전세 가격이 5억원으로 올라 있는 터라 당장 이사를 가기도 막막한 상황이다. 결국 C 임차인은 임대인을 설득해 4억원까지 전세금을 올려주는 대신 2년 더 전세를 연장한다. 임대차 3법의 빈틈으로 발생하고 있는 웃지 못할 상황이다. 한 아파트의 같은 평수를 둘러싸고 세 임차인이 각각 3억원, 4억원, 5억원으로 전세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임대차 3법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든, 임대차 3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든, 이미 고착화되기 시작한 ‘3중 전세 가격’에 대해서는 정책적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선후보들이 새로운 공급을 언급하고 ‘250만 가구’를 외치는 동안 현실에서는 임대인과 임차인 간에 갖가지 아귀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커다란 빚을 짊어진 임차인들에게 전가된다.

결국은 부동산 선거다. 야당에게 기회를 준 것도, 여당을 긴장하게 만든 것도 첫 번째 원인은 부동산이다. 이번 대선에서 부동산 문제가 논의된다는 것은 단순히 집 부족, 집값 폭등을 해소한다는 의미로 국한되지 않는다. 가계부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불안정한 주거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인구의 수도권 집중 현상엔 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등이 모두 ‘부동산 이슈’에서 가지처럼 파생되어 나온다. 부동산 이슈의 주제는 이념도 이상도 아니다. 유권자들의 ‘일상’이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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