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6일 성남시 대장동 택지개발지구 일대에서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개발사업 과정을 둘러싼 비리 의혹이 불거졌다.ⓒ시사IN 조남진

포장도 안 된 좁은 도로 위로 자동차와 트랙터 바퀴 자국이 어지럽게 얽혔다. 도로 양옆으론 논과 밭이 펼쳐졌다. 그 사이로 드문드문 농가가 보인다. 경기도 성남시 끝자락에서 용인시 경계를 마주한 지역. 그래서 웬만한 성남·용인 토박이도 잘 몰랐던 한적한 시골 마을. 원주민들이 기억하는 2015년까지의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의 풍경이다.

6년이 흐른 2021년 말 현재, 이 시골 마을의 이름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민관합동으로 추진된 대장동 개발사업 과정을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불거지면서부터다. 의혹은 ‘돈’에서 출발했다. 대장동 개발에 참여한 민간사업자들이 수천억 원대의 수익을 냈다는 사실을 둘러싸고 특혜와 비리 의혹이 가지를 뻗어나갔다. 불씨는 곳곳으로 옮아붙었다. 연일 정치 공방이 벌어지면서 경찰과 검찰 역시 대규모 수사팀을 구성해 진위 확인에 나섰다. 이어져 나올 수사와 재판 결과는 대선 판도를 흔들 핵심 변수로 꼽힌다.

대장동 의혹의 중심에 선 민간사업자들이 ‘큰돈을 벌었다’는 것 자체는 문제 삼기 어렵다. 사업 직후 ‘우연히’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 예상보다 더 많은 수익을 냈다는 사실도 외면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이 누구인지, 막대한 돈을 거머쥘 수 있었던 과정은 어땠는지를 뜯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시사IN〉은 취재 과정에서 입수한 대장동 개발사업 자료, 성남도시개발공사 및 공공기관, 수사기관에서 작성한 기록, 복수의 관계자 인터뷰 등을 통해 민간사업자들의 과거를 복원하고 현재를 검증했다. 경기도 시골 마을에서 ‘하늘의 도움으로 세상을 얻어(화천대유·火天大有-주역 64괘 중 14번째)’ ‘마음먹은 일을 성취(천화동인·天火同人-주역 64괘 중 13번째)’했다고 주장하는 민간사업자들은, 실제로는 오랜 기간 축적한 인맥과 정보, 자금 동원력을 활용해 조직적이고 인위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설계도’를 그려냈다.

2004년 말, 공기업인 LH는 대장동에 전원주택용 택지개발을 추진하고 있었다. LH의 돈으로 개발비용을 조달하고 이에 따른 개발이익도 LH가 가져가는 공공개발 방식이었다.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는 이 개발 내용이 담긴 ‘2020년 성남도시기본계획’을 2005년 6월 승인했다. 그러나 이 개발 프로젝트는 겨우 5개월 만에 물거품이 됐다. 2005년 11월 성남시 일부 공무원들이 대장동 개발계획을 유출해 투기꾼들과 함께 대장동 땅을 미리 사들인 사실이 드러나서다. 건설교통부는 곧바로 사업을 중단했다.

개발사업은 중지됐지만 ‘2020년 성남도시기본계획’은 살아 있었다. 계획만 유지된다면 대장동은 언제든 개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건교부가 사업을 중지한 만큼 공공개발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졌다. 성남시 역시 2010년 7월까지 건물 설립 인허가 등을 내주지 않는 개발행위 제한 조치를 내렸다. 보상을 노린 투기를 막기 위해서였다. 대장동은 공공개발도, 민간개발도 할 수 없는 땅으로 전락했다.

2008년을 전후로 성남시에 변화가 생겼다. 시 곳곳에서 크고 작은 주택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대장동 계획도 다시 점검해야 했다. 성남시가 대장동 개발사업 타당성 조사에 착수한 건 그 무렵이다. 3년간 멈춰 있던 대장동 개발 시계가 다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11월3일 남욱 변호사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했다.ⓒ시사IN 신선영

■ 남욱과 정영학

성남시의 새로운 움직임을 본 대장동 일부 땅주인들은 민간개발 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동안 민간개발을 원해왔던 이들은 공공개발이 무산되자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다. 민간개발의 경우, 이 사업에 참여하는 땅주인, 개발업자, 금융업체 등이 개발이익 가운데 공공부문으로 환수되는 부분을 최소화(민간의 이익 극대화)할 수 있다. 추진위는 복잡한 개발사업 전반을 맡길 회사가 필요했다. 이때 나타나 주민들과 계약을 맺은 곳이 부동산 개발업체 ‘씨세븐’이다.

대장동을 떠났던 LH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공개발을 재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일단 성남시도 LH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민간개발은 제대로 추진도 해보기 전에 물거품이 될 상황에 처했다. 씨세븐은 급히 새로운 얼굴을 ‘자문단’으로 영입했다. 지금은 화천대유의 자회사 천화동인 4호와 5호의 소유주로 알려져 있는 남욱 변호사와 정영학 회계사였다.

두 인물의 씨세븐 합류 시점에는 조금 차이가 있다. 정영학 회계사는 2009년 초 씨세븐에 영입됐다. 씨세븐과 함께 일하던 감정평가사가 그를 소개했다. 당시 정 회계사는 경기도 일대에서 회계사이자 세무사, 도시개발 전문가로 통했다. 정 회계사는 씨세븐이 추진한 민간 개발사업의 틀을 잡고 수익구조를 짰다.

정 회계사는 다른 인물들을 데려와 팀을 구성했다. 삼성물산 출신 김 아무개씨, 부산저축은행그룹 박연호 회장의 인척 조 아무개씨 등이다. 김씨는 정 회계사의 고등학교 동문이다. 함께 자문단으로 합류했다. 운영 총괄과 함께 삼성물산을 시공사로 끌어오는 역할을 맡았다.

조씨는 정 회계사의 대학 후배다. 그는 지주작업(땅주인을 설득해 매매계약·동의를 받아내는 과정)에 필요한 자금 등을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조달해왔다. 당시 씨세븐은 민간 개발사업 추진 과정에서 부산저축은행 등 11개 저축은행을 통해 총 1805억원을 빌렸다. 개발부지에 속한 필지 904곳 중 638곳의 ‘토지사용권(땅주인들로부터 해당 부지의 개발권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을 조씨가 알선한 대출금으로 2000년대 말에 이미 확보했다. 전체 대장동 개발지구 필지의 70%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후 조씨는 6년 뒤인 2015년 화천대유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킨앤파트너스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동생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을 연결해 400억원대 대출을 끌어내는 역할을 맡았다.

2013년 5월9일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최윤길 성남시의회 의장(왼쪽에서 세 번째)과 함께 여야 시의회 지도부를 만났다.ⓒ성남시 제공

남욱 변호사는 2009년 말 합류했다. 정 회계사를 씨세븐에 연결해준 감정평가사의 소개였다. 〈시사IN〉이 입수한, 2009년 11월23일 작성된 씨세븐과 남욱 변호사의 ‘자문계약서’를 보면 그가 맡은 역할은 단순 법률 자문에 그치지 않았다. 계약서의 ‘특별위임 사항’에 따르면 씨세븐은 남 변호사에게 대장동 개발사업과 관련한 부동산 매매, 사업승인, 인허가 업무뿐만 아니라 시공사 선정, 계약금 및 사업 필요 자금(PF) 유치 사무를 ‘공동으로’ 할 수 있도록 했다. 남 변호사는 씨세븐의 피고용인이 아니라 사실상 공동 사업자였다.

계약서엔 남 변호사의 ‘의무’도 적혀 있다. 대장동 민간개발의 최대 걸림돌이자 경쟁자였던 LH를 사업에서 밀어내는 것이었다. 자문계약서를 보면 “을(남 변호사)은 LH의 사업 참여로 인해 사업 시행에 사실적·법률적 장애가 발생한 경우 이를 해결해야 하며, 종국적으로 LH공사가 사업 참여를 철회할 수 있도록 합법적인 대응방안을 강구하여 법적 자문을 제공해야 한다”라고 적혀 있다. 그 대가로 “LH공사가 확정적으로 사업 시행을 철회하기까지 필요한 제반 비용을 갑(씨세븐)이 모두 부담한다”라는 조건도 있었다.

씨세븐 대표가 2016년 뇌물공여 등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1심 판결문과 2014년부터 이 사건을 수사한 수원지방검찰청 특수부의 ‘대장동 수사기록’을 종합하면, 씨세븐 대표는 당시 검찰에 “남 변호사를 소개받을 때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국회의원과 친분이 있으며, 실세로 통하는 여당(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과 직통으로 통하는 몇 안 되는 사람’으로 소개받았다”라고 진술했다.

실제 씨세븐과 남 변호사는 계약서에 적힌 업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2010년부터 LH가 사업을 포기하도록 만들기 위해 정치권에 로비를 했다. 씨세븐 대표는 이를 위해 남 변호사에게 ‘법률 자문’ 명목으로 8억3000만원, 현금 5억원 등 총 13억3000만원을 전달했다. 씨세븐 대표는 2016년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함께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남 변호사는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LH는 2010년 7월 공공개발을 철회했다. 공식 입장은 ‘주민 반발’ 등이었다. 씨세븐에는 희소식이었지만 금방 분위기가 악화됐다. LH가 공공개발을 철회하기 한 달 전인 2010년 6월 취임한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무산된 공공개발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듬해에는 저축은행 사태가 터졌다. 씨세븐에 돈을 빌려줬던 부산저축은행 등 대형 저축은행들이 전국 곳곳에서 부동산 개발사업에 투자했다가 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했다. 부산저축은행 등은 2011년 2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고, 2012년엔 법원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았다.

씨세븐은 개발사업을 본격적으로 개시하기 전인 상황에서 저축은행들로부터 빌린 1805억원을 예정보다 빨리 돌려줘야 했다. 그러나 이미 땅주인과 건물주 등에게 계약금을 주고 토지 사용 동의율을 70%까지 끌어올리는 등으로 돈을 써버린 상황이었다. 돈을 갚지 못하자 예금보험공사(예보)가 씨세븐의 토지 사용 권리를 가압류했다. 파산한 저축은행의 남은 자산을 관리하고 처분해 예금주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씨세븐 대표는 정 회계사와 함께 합류한 삼성물산 출신 김씨에게 2011년 3월 사업권을 양도했다. 그러나 김씨 역시 사업을 추진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4개월 뒤인 같은 해 7월, 남욱 변호사가 대표 자리를 이어받았다. 회사 이름을 판교프로젝트금융투자로 바꿨다. 비슷한 시기 정영학 회계사가 설립해둔 또 다른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판교프로젝트금융투자의 지분을 가졌다.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는 각각 민간 부동산 개발업체 대표로서 사업 전면에 직접 등장했다. 이들이 추진하는 대장동 개발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이때부터였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왼쪽)과 김만배 전 〈머니투데이〉 부국장(화천대유 대주주).ⓒ시사IN 신선영

■ 최윤길-유동규-민간사업자

성남도시개발공사는 이번 대장동 개발 의혹의 중심에 선 핵심 주체 중 하나다. 화천대유가 참여한 민관합동 개발사업 초기, 민간사업자 공모와 컨소시엄 선정 등 개발사업 전반을 기획·추진했다. 이 때문에 대장동 의혹의 출발은 성남도개공 설립부터라는 시각도 있다. 공사를 설립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사람은 현재 화천대유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최윤길 전 성남시의회 의장이다.

2010년 10월, 성남시설관리공단 기획본부장에 외부 인사가 임명됐다. 성남시 분당구의 한 아파트 리모델링 조합장을 지낸 유동규씨였다. 이재명 후보가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된 이후 시장직 인수위원회 도시건설위원회 간사로 활동하다가 성남시설관리공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씨는 이후 직접 대장동 개발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운영했다.

유씨 임명 직후 시의회에선 자격 논란이 불거졌다. 2010년 10월20일 성남시의회 회의록을 보면, 당시 성남시의회에서 과반을 차지했던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시의원들은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과의 친분설과 그의 ‘자질’ 등에 의문을 품고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유씨를 ‘저격’한 시의원 중 한 명이 당시 새누리당 소속 최윤길 전 의장(당시 시의원)이었다.

새누리당 시의원들은 갓 취임한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과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었다. 유동규씨에 대한 질타도 이 충돌의 연장선이었다. 시의원들은 대장동 개발 방식도 문제 삼았다. 이재명 당시 시장은 공공개발을 추진했지만 새누리당 시의원들은 민간개발을 주장하고 있었다.

돈이 문제였다. 2010년 성남시는 국내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모라토리엄(채무지급유예)’을 선언한 상황이었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성남시가 토지 수용부터 막대한 시 예산이 들어가는 공공개발을 수행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성남시가 2011년 3월 고시한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을 통한 개발계획’도 시의회에서 표류했다. LH와 같은 역할을 할 성남도시개발공사를 설립해 개발이익을 모두 가져오겠다는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의 계획도 공공개발과 같은 이유로 발목이 잡혔다. 최 전 의장도 성남도개공 설립 계획을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그런데 2년 뒤인 2013년 2월, 성남도개공 설립 계획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은 여전히 성남도개공 설립 반대를 당론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계획안이 의회 문턱을 넘으면서 성남시의회 안팎이 발칵 뒤집혔다. 최윤길 전 의장과 새누리당 소속 시의원 두 명이 입장을 바꿔 찬성표를 던진 것이 결정적이었다.

최 전 의장과 시의원 두 명은 이후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최 전 의장은 2014년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재선을 위해 구성된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전 새누리당 소속 성남시의원은 “당시 최 전 의장의 행적을 두고 민주당과 야합했다는 등의 온갖 소문이 파다했다. 진위는 당사자들만 알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당시 최 전 의장의 입장 변화 배경을 엿볼 수 있는 단서가 최근 나왔다. 대장동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작성한 유동규씨의 공소장을 보면, 유씨는 2012년 남욱 변호사에게 “공사 설립을 도와주면 민간사업자로 선정돼 민관합동으로 대장동을 개발할 수 있게 해주겠다”라고 제안했다. 성남도개공 설립 조례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유씨가 민간사업자와 결탁해 성남도개공 설립을 추진했다는 얘기다.

유씨와 남욱 변호사를 연결해준 인물이 최 전 의장이었다. 〈시사IN〉 취재 결과 유씨는 검찰 조사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최 전 의장이 부른 자리에 나갔더니 그 자리에 남욱과 정영학이 있었다. 그때는 성남시가 성남도개공을 무조건 설립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최 전 의장이 없으면 우리는 성남도개공을 못 만들고, 민간사업자들(남욱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은 사업을 못할 정도였다. 나중에 김만배(화천대유 대주주, 전 〈머니투데이〉 부국장)를 소개해준 사람도 최 의장이었다.”

2015년 씨세븐의 뇌물공여 사건을 수사한 수원지검 특수부 수사 결과에 따르면, 최 전 의장은 남욱 변호사와 정영학 회계사가 씨세븐 자문단으로 활동하던 2010년 6월, 회사 대표로부터 ‘민영개발 추진을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1억원을 받았다. 그는 쇼핑백에 든 물건이 현금이었던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돌려줬다고 진술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11월17일 경기남부경찰청 대장동 의혹 전담수사팀이 화천대유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연합뉴스

최 전 의장은 정 회계사 부인이 성남시의 한 중학교 운영위원장을 맡은 것을 계기로 정 회계사와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계사는 2009년에 이어 이번에도 대장동 사업 관련 인물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맡은 셈이다. 김만배씨는 2010년 이후부터 성남시의회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당시 김씨를 목격한 전현직 성남시의원들은 최 전 의장과 유동규씨, 정영학 회계사, 남욱 변호사, 김만배씨 등 대장동 개발 의혹 핵심 인물들이 이때부터 만나게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 전 의장은 지난해 화천대유 부회장에 선임됐다. 정 회계사가 최근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에는 “성남시의회 의장에게 30억원, 시의원에게 20억원이 전달됐다. 실탄은 350억원이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녹취록에 언급된 성남시의회 의장이 최 전 의장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현재 최 전 의장 관련 의혹은 경찰이 수사 중이다. 경기남부경찰청 대장동 의혹 전담수사팀은 11월17일 최 전 의장 자택과 화천대유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시사IN〉은 최 전 의장의 의견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하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 본격화된 대장동 개발

“대장동 개발사업 구획계획도 너네 마음대로 다 해라. 땅 못 사는 것 있으면 나한테 던져라. 내가 해결해줄 테니까.” 2013년 3월 성남도시개발공사 조례안이 통과된 직후 유동규씨가 남욱 변호사에게 한 말이다. 남 변호사가 최근 검찰 수사 과정에서 제출한 녹취 파일에는 유씨의 육성으로 이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유동규씨·김만배씨·남욱 변호사에 대한 공소장을 종합하면, 의혹의 중심에 선 핵심 인물들의 ‘역할 분담’은 2014년부터 구체화됐다. 성남도개공 설립 이후 공사 기획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유동규씨는 남 변호사 등 민간사업자들에게 사업자 선정 과정 등에서 각종 편의를 주고 이익이 현실화되는 시점에 그 대가를 받기로 약속했다.

김만배씨는 ‘대장동팀’과 이른바 ‘50억 클럽’으로 불리는 정계·법조계 인사들을 잇는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남 변호사는 자금조달을 맡았다. 정 회계사는 대장동 사업계획서 작성 및 수익구조 구성을 담당했다. 남 변호사의 후배 정민용 변호사는 성남도개공에 입사해 유동규씨가 신설한 전략사업팀에서 공모지침서 작성 및 사업협약 체결 실무를 맡았다.

김씨 등 민간사업자들은 2015년 공모지침서 작성 단계부터는 민간사업자들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조항들을 넣었다. 정 회계사가 낸 아이디어였다. 김만배씨가 그 내용을 듣고 유동규씨에게 전하면, 유씨는 정민용 변호사에게 공모지침서 반영을 지시했다. 대장동 의혹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초과이익 배분 조항 삭제 등이 이 과정에서 이뤄졌다(〈시사IN〉 제739호 ‘대장동 의혹, 구체화되는 배임 혐의 까다로운 배임죄 적용’ 참조).

서울중앙지검 대장동 의혹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은 11월22일 김만배씨와 남욱 변호사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김씨와 남 변호사, 유동규씨, 정영학 회계사, 정민용 변호사 등이 단순 부당수익을 거둔 것이 아니라 배임의 모든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공범이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이들의 배임 행위로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입은 손해액이 최소 1827억원이라고 밝혔다.

대장동 의혹의 핵심 인물들이 재판에 넘겨졌지만 수사는 ‘윗선’으로 뻗지 못했다. 사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던 만큼 여전히 물음표는 남아 있다. 검찰 수사팀은 대장동 사업자들의 정치권·법조계 불법 로비 의혹으로 수사의 초점을 옮길 방침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1월22일 김씨와 남 변호사, 정 회계사 사건을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양철한)에 배당했다. 형사합의22부는 앞서 특가법 위반(뇌물)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유동규씨 사건을 맡고 있다. 이들이 한 재판부에 배당되면서 재판부는 사건을 병합해 심리하기로 했다.

 

기자명 문상현·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moon@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