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2일 영국 런던의 HOFA 갤러리에 전시된 NFT 작품 ‘크립토펑크 207번’. ⓒEPA

가격은 희소성을 전제한다. 희소하지 않은 재화, 즉 공급이 무한한 재화를 돈 주고 살 비합리적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희소하지 않은 재화는 시장에서 거래되기 어렵다.

‘가격은 희소성을 전제한다’라는 명제에서 디지털 콘텐츠의 고민이 시작된다. 모든 디지털 콘텐츠는 본질상 공급이 무한하다. 콘텐츠를 더 생산하기 위해선 파일을 복사하기만 하면 된다. 원본과 복사본 사이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원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없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최초의 디지털 콘텐츠를 생산해도 이것이 복사되기 시작하면 판매와 소유권 주장이 어려워진다.

NFT(대체 불가능 토큰)는 디지털 콘텐츠에 ‘희소성’을 도입하기 위해 고안됐다. 방법은 간단하다. ‘원본’이라고 표시하고 소유자의 정보를 기록하는 것이다. 콘텐츠를 복사한다고 하더라도 ‘원본’ 기록 자체는 한정돼 있기 때문에 희소성이 생긴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블록체인 기술이다. 데이터 분산 저장을 통해 정보 조작을 불가능하게 한 블록체인 기술은 사람들이 ‘원본’ 기록을 신뢰할 수 있게 한다. 이로써 유일무이한 속성을 지닌, 다시 말해 다른 것으로 대체가 불가능한 디지털 콘텐츠가 생겨난다.

그렇다면 NFT를 보유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실질적으로 어떠한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 혼동되곤 하는 저작권과 달리, NFT는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NFT가 발행됐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해당 콘텐츠를 열람하거나 공유할 수 있다. 예컨대 미국 프로농구리그(NBA)가 운영하는 NFT 판매 프로젝트 사이트인 ‘NBA 톱 샷’은 경기 중 나온,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 영상을 NFT화해서 판매한다. 매입한 사람은 해당 영상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다. 그러나 NFT화 이후에도 해당 영상은 여전히 인터넷에 공개돼 있다.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NFT 소유자에게 값을 치르는 것도 아니다.

결국 NFT를 구매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이 ‘희소한 재화’를 자신이 ‘소유’하고 있다는 인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인증서’에 엄청난 값을 지불한다. 현재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된 NBA 톱 샷 NFT는 2020년 10월11일 경기에서 나온 르브론 제임스의 덩크 장면으로, 가격은 23만 달러(약 2억7000만원)에 달한다.

사람들은 왜 이 쓸모없어 보이는 증서를 구매할까? 재화의 종류를 막론하고, 모든 재화가 판매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그 재화를 소유·사용함으로써 효용가치를 얻거나, 이 재화를 나중에 더 비싸게 팔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NFT의 효용가치는 ‘희소한 재화에 대한 소유욕’이라는 희미한 형태로 발현된다. 우표, 주화 또는 연예인의 포토카드를 모으듯 NFT는 희귀한 재화를 소유함으로써 느끼는 만족감을 준다.

그러나 이 ‘소유욕’만으로 NFT 시장에서 거래되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설명할 수는 없다. 르브론 제임스의 덩크 장면 NFT를 소유하고 싶은 욕구의 가치가 23만 달러에 달한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NFT가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거래되는 더 중요한 이유는 바로 두 번째, 즉 자산으로서의 가치다. 사람들은 가치가 오를 것을 기대하거나 예상하기 때문에 NFT를 구매한다.

실제로 NFT의 가치는 빠르게 오르고 있다. 일례로 ‘크립토펑크(Cryptopunks)’의 평균 가격은 4년간 약 9000배 성장했다. 크립토펑크는 얼굴 이미지를 가진 1만 개의 아바타다. 첫 출시된 2017년 6월경 이 아바타의 평균 가격은 54달러 수준이었다. 그리고 겨우 4년 뒤인 2021년 11월 현재 평균 약 50만 달러 수준으로 거래된다. 최고가를 기록한 3100번 아바타의 경우, 758만 달러(약 90억원)의 가격으로 거래됐다.

10월2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1 메타버스 코리아’ 전시회. ⓒ연합뉴스

NFT 기술이 만들어낼 새로운 생태계

지난 3월부터 NFT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주요 NFT들의 가격이 치솟자 자연스레 ‘버블’ 우려가 제기됐다. 회의적인 투자자들은 가격 상승이 일시적인 현상일 것으로 봤다. 곧 거품이 꺼질 것이라고 의심했다. 실제로 주요 NFT들의 평균 가격은 2021년 3분기에만 급등락을 세 번 반복하는 불안한 행보를 보였다.

가짜 NFT를 판매하는 사기 행위도 발생했다. 지난 5월 국내 NFT 작가인 미스터 미상은 자신의 작품 ‘#07. Subway station’이 도용된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해당 작품 파일을 복사해 NFT화한 것이었다. 디지털 콘텐츠이기에 복사가 가능하고, 누구나 NFT를 등록할 수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NFT 거래 플랫폼들은 자체 검증 절차를 만드는 식으로 대응했지만, 여전히 표준화된 검증 절차는 확립되지 않았다. 심지어 NFT 플랫폼 크로스(CROSS)는 도용 NFT에 대해 문제가 제기됐을 때에도 자신들에게 권한이 없다며 삭제 요청을 거절하기도 했다. 원작품에 대한 무단 도용에 사실상 방비책이 없는 셈이다.

이런 불안 요소에도 NFT 기술은 각 적용 분야에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평가받는다. 가장 대표적인 분야는 메타버스다. ‘또 하나의 세상’을 표방하는 메타버스의 이념이 현실화된다면, 그 안에서 이뤄지는 경제활동의 중요성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NFT는 이 경제활동을 현실화할 가장 적합한 수단으로 여겨진다. 디지털 콘텐츠 속성을 지닌 메타버스 내 재화들을 소유하고 거래하기 위해선 NFT가 기반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메타버스 관련 NFT가 이더리움 기반 NFT 중 2%를 차지하는 수준이지만, NFT와 메타버스의 결합은 점차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기업들 또한 속속 NFT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있다. 카카오의 블록체인 계열사 그라운드X는 지난 5월 NFT 발행 서비스 ‘크래프터스페이스’를 출시했으며, 7월에는 NFT 플랫폼 ‘클립 드롭스’를 오픈했다. 11월에는 SM 등 엔터테인먼트사, NC소프트 등 게임사도 잇따라 NFT 진출을 발표했다.

기자명 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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