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플의 NFT 작품 〈매일:첫 5000일〉 (Everydays:The First 5000days). 780억원에 팔렸다.

일단 NFT가 뭔지부터 알아야겠다. 비트코인 같은 암호 화폐에 문외한인 사람은 NFT 역시 모를 가능성이 높다.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는 블록체인 기술로 암호화한 디지털 자산을 의미한다. ‘NFT 아트’는 이 기술을 이용해 예술작품을 디지털 자산으로 만든 것이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어떤 작품이 복제품이 아니라 ‘유일무이한 오리지널(원본)’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이런 작품은 이더리움 형태로만 발행되고 암호 화폐로 사고판다. 이 부문에서 NFT만이 유일한 기술은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블록체인 기술로 디지털 작품의 저작권을 보호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유일한 원본임을 증명해주는 단계로 나아간 것이다. 얼마 전 비플이라는 무명 일러스트레이션 작가의 〈매일:첫 5000일〉(Everydays:The First 5000days)이라는 작품이 경매에서 780억원에 낙찰되었다. 비플은 매일 그린 디지털 그림 5000장을 NFT로 묶어서 경매에 내놓았다.

독일의 비평가 발터 베냐민은 그리스 미술 작품을 검토하는 가운데 원본과 복제본을 비교하면서 ‘원본만이 아우라를 가진다’고 봤다. 복제본은 원본에 비해 조악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다만 원본의 소유권은 권력에 있다. 따라서 절대 권력에 대항하는 예술은 복제가 근본 속성인 사진이며 이를 통해 민주화를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정말 그렇게 되었을까? 전통적인 아날로그 판화나 사진은 복제할수록 그 원본이 손상되기 때문에 무한히 동일한 복제본은 존재하기 어렵다. 그러나 종이가 아닌 패드에 디지털로 그린 작품이나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원본 자체가 디지털이다. 이런 그림이나 사진의 경우 원본과 복제본 간에 차이가 없다. 이처럼 베냐민이 예언한 완전한 복제 예술이 디지털로 가능해졌다. 그러나 미술계에서는 디지털 작품에 대해서도 원본인지 아닌지 따지게 되었다. 원본의 가치가 훨씬 더 높다.

NFT 기술이 창출한 재화 시장

현존하는 미술가 중에서 작품 가격이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영국의 화가이자 사진작가인 데이비드 호크니는 디지털 예술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NFT 작품’ 흐름에 앞장선 사람들을 “국제적 사기꾼들”이라고 질타한다. 호크니에 따르면 ‘디지털 원본’이라는 개념은 무의미하다. 그런데도 NFT까지 도입하며 ‘디지털 원본’이란 것을 만들어내려는 움직임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흐름의 주도자들이 ‘앞으로 오랜 시간이 지나 사람들이 물질적 소재보다 비물질 데이터로 구성된 예술작품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디지털에서도 원본을 중시하지 않을까?’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디지털 원본’이 당연히 비싸게 팔릴 것이다. NFT 기술은 새로운 ‘재화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조만간 카메라로 찍는 순간 이미지가 생성되는 디지털의 현재를 뛰어넘어 이를 NFT로 암호화하는 기술도 탑재될 것이다. NFT는 이런 사진들이 무한대로 지식재산권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흐름이, 지식을 공유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진보해온 인간의 역사에서 올바른 선택일까? 인류는 혹시 스스로 족쇄를 채우고 있는 게 아닐까?

기자명 이상엽 (사진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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