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빼앗긴 여자들
이소진 지음, 갈라파고스 펴냄

“오래 일하는 사람은 왜 남성인가?”

문재인 정부가 노동시간을 단축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대기업 H 그룹은 자사 노동자의 근무시간을 주 40시간에서 35시간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추가 고용이나 임금 삭감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노동을 연구하는 저자는 드디어 한국에도 이런 회사가 생기는구나 싶어 기뻐했다. 예상과 달리 H 그룹의 B 대형마트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에 반대했다. 이들은 임금이 감소했다고 주장했다. 왜 노동시간 단축에 반대하나? 이미 자녀들이 성인인 여성 노동자에게 한 시간 치 임금이 중요한가? 이런 질문에서 시작한 책이다. 마트 일자리가 어떻게 중년 여성의 일자리로 고착화되었고 이들에게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조명한다.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전혜원 지음, 서해문집 펴냄

“우리 시대 노동의 풍경이 0.5평짜리 톨게이트 부스에 담겨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은 자주 ‘사건’이 된다. 그래서 노동자는 원하지 않아도 피해자의 자리에 서곤 한다. 낮은 노동조합 조직률은 숙련이 해체된 시대와 맞물리며 노동의 자리를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노동법의 보호는 헐겁고, 혁신은 때로 그 빈틈을 비집고 태어난다. 일하는 사람의 삶과 존엄은 그 안에서 대책 없이 출렁인다. 저자 역시 기꺼이 흔들린다. 흔들렸기 때문에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진보나 보수 같은 단어로 포섭될 수 없는, ‘저널리즘의 일’에 매번 도전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남겼다. 복잡한 문제를 복잡하게 들여다봤다. 예상 가능한 반론들을 집요하게 취재하고 성실하게 썼다.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
박형남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판사는 세상 물정에 어둡지만 세상만사를 판단한다.”

‘엄벌을 받아야 할 사람인데, 왜 판사들은 상식적으로 재판을 하지 않을까?’ 30년 넘게 재판을 한 박형남 판사는 시민들의 이러한 의문에 오랫동안 천착했다. 이 책은 법정 안팎에서 ‘판사에게는 당연하지만 시민에게는 낯선 법의 진심’을 다룬다. 저자는 판사가 형법의 이념과 시민의 법 감정 사이의 괴리를 고민하면서 형량을 정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그러면서 시민들의 신뢰 회복을 위해 판사들에게 이렇게 제안한다. “판사는 피고인과 피해자 그리고 시민의 마음을 섬세하게 헤아리고 책임주의 원칙을 지키면서, 죗값이 얼마인지 성찰하고 판결문을 일상용어로 적어서 이해와 소통을 구하는 길밖에 없다.”

 

 

 

 

디지털 장의사, 잊(히)고 싶은 기억을 지웁니다
김호진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우리 회사를 찾는 개인 의뢰인의 대다수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입은 10~20대 여성이다.”

가끔 유튜브에 10년도 지난 방송 프로그램들이 ‘레전드’ ‘다시보기’ 같은 이름을 달고 뜬다. 일반인들도 등장한다. 당사자들에겐 분명 흑역사다. 조롱 섞인 댓글이 분초마다 기록돼 있다. 수백만 조회수를 찍은 영상들은 지워지지 않고 어김없이 타임라인에 찾아온다. “인간은 불필요한 기억을 망각하도록 태어났다. 그러나 인터넷은 진화의 흐름을 거슬러 기억이라는 저주를 걸었다.” 이 책은 온라인 기록을 지워주는 ‘디지털 장의사’가 썼다. 의뢰인들은 대부분 불법 촬영, 성적 촬영물 유포 협박, 신상 노출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모든 것이 박제되는 시대에 왜 어떤 관심은 지워져야 하는지, ‘잊힐 권리’는 얼마나 나와 가까운 문제인지 깨닫게 된다.

 

 

 

 

이 밤은 괜찮아, 내일은 모르겠지만
서유미 지음, 민음사 펴냄

“나는 미래가 두려워.”

“앞으로 이 아파트 놀이터에 안 오시면 좋겠어요.” 아무리 그래도 과장 아닌가. 설마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서유미 작가의 소설집 한 대목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할 무렵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노는 외부 어린이를 기물파손으로 경찰에 신고한 입주자 대표의 기사를 접했다. 단편소설 일곱 편과 짧은 소설 다섯 편이 담겼다. 표제작은 미래가 두려운 ‘나’와 지호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누구나 남에게 말 못하고 드러내기 어려운 고통의 순간과 각자의 밤’을 지나고 있다. 작가는 그런 밤을 지나온 사람들이 소설을 읽으며 격려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궁궐 걷는 법
이시우 지음, 유유 펴냄

“궁궐의 진짜 아름다움은 건물에만 있는 게 아니었구나.”

계기는 갑자기 내린 소나기였다. 우산 없이 창덕궁을 찾은 저자는 ‘희우루’라는 현판이 쓰인 성정각 처마 밑으로 몸을 피한다. 비 오는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자신이 궁궐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탐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성정각 기와지붕을 타고 떨어지던 빗물이 만든 웅덩이들의 행렬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궁궐은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로만 채워진 곳이 아니다. 발길이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기다 마음이 끌리는 장소를 발견하면 나지막이 탄식을 내뱉기에 제격인 공간이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서울의 5개 왕궁을 산책하는 법이 담겼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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