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6일 손준성 검사가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시사IN 이명익

11월2일 손준성 검사(전 수사정보정책관)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출석했다. ‘고발 사주’ 의혹이 불거진 지 61일 만이다. 11월3일엔 검사 출신 김웅 의원(국민의힘)이 소환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모두 “기억나지 않는다”라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손준성 보냄’ 파일(페이스북 캡처, 지○○ 판결문, 고발장), 김웅-조성은 통화 파일 등 각종 디지털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 이 디지털 증거들에 대해 포렌식을 진행한 결과 조작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고발 사주 의혹에 연루된 검사와 검찰 출신 의원은 디지털 증거가 드러낸 사실마저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왜 그럴까?

‘일도(一逃) 이부(二否) 삼백(三 Background).’ 법조계 은어다. ‘일단 도망가고, 잡히면 부인하고, 마지막엔 백을 쓰면’ 검찰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10월 수감 중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언론사에 보낸, 라임 술 접대 폭로 편지에도 이 말이 나온다. “도피 당시 검찰 관계자들의 권유와 조력을 받았다”는 김 전 회장은, “검찰 수사관이 ‘일도 이부 삼백’이라는 말을 하면서 도주를 권유했다”라고 썼다.

채널A 검언 유착, 라임 술 접대, 고발 사주 의혹 등 모두 검사들이 연루된 사건이다. 수사 대상이 된 검사들은 휴대전화를 폐기하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했다. ‘일도 이부 삼백’을 검사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세 사건에 연루된 검사들이 보여준 행태를, ‘일폐(一廢) 이부(二否) 삼공(三工) 사백(四 Background)’이라는 용어로 정리했다(오른쪽 인포그래픽 참조).

■ 일폐(一廢):휴대전화(스마트폰)를  폐기하라

손준성 검사는 아이폰을 쓴다. 공수처는 10월10일 손 검사 집을 압수수색해 아이폰을 확보했다. 휴대전화를 압수당한 손 검사는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 11월4일 현재 공수처는 포렌식 작업을 시작도 못하고 있다. 한동훈 검사도 지난해 6월 ‘채널A 사건’으로 아이폰을 압수수색 당했다. 아이폰을 쓰는 한 검사도 20자리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의 휴대전화 역시 포렌식을 못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본격 보급된 뒤, 수사 성패는 휴대전화 확보 여부에 좌우된다. 미국 법학계에서는 휴대전화를 ‘확장된 자아’로 보기도 한다(허순철, ‘스마트폰 비밀번호 해제와 진술거부권’, 2019).

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들은 자신이 수사 대상이 되면 가장 먼저 휴대전화를 폐기한다. 검사들은 휴대전화를 없애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본인의 혐의와 관련된 증거를 인멸하는 경우엔 증거인멸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휴대전화를 폐기하기 전에 압수당한 검사들은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는다.

혹시 손준성·한동훈 검사처럼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게 법적으로 문제되지는 않을까? 비밀번호 해제를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을까?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 법률로 강제할 수도 없다.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제12조 2항).’ 헌법은 흔히 ‘묵비권’이라 불리는 진술거부권을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상 비밀번호를 ‘묵비하는(알려주지 않는)’ 경우, 진술거부권 행사로 본다. 강제할 수 있는 국내법도 따로 없다(미국 법원은 아동 포르노그래피 소지자에게 ‘비밀번호를 해제하라’고 명령한다. 이에 따르지 않으면 법정모독죄를 적용하기도 한다).

라임 술 접대 사건 당시에도 관련 검사들은 동시에 휴대전화를 폐기했다. ‘라임 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은 지난해 10월 현직 검사들을 강남 룸살롱에서 접대했다고 폭로했다. 나 아무개, 유 아무개, 임 아무개 검사, 특수부 검사 출신인 이 아무개 변호사 등이었다.

이 가운데 임 검사는 고발 사주 의혹에도 등장한다. 이 사건이 벌어진 지난해 4월 당시 임 검사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손준성 검사가 근무한 곳) 검찰연구관 직무대리(2020년 2월3일~9월2일)였다. 지금은 검찰연구관으로 수사정보담당관실에 근무 중이다(2020년 9월3일~현재). 공수처는 지난 9월28일 임 검사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임 검사는 지난해 10월 이미 휴대전화를 교체했다. 임 검사는 지난해 11월15일 라임 술 접대 사건과 관련해 서울남부지검에 출석해 이렇게 진술했다. “수사정보담당관실에서 민감한 정보를 다수 다루고 있는데, 2020년 10월22일 국정감사 과정에서 김봉현이 제기한 의혹과 관련해 제 이름이 거론되는 등 저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이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휴대전화 압수수색이 이루어지면 보안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대검찰청 국정감사 종료 후 휴대전화를 변경했습니다. 액정 모서리가 훼손되는 등 기기도 오래되었고 보안 문제도 있어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렸습니다.”

나 아무개 검사는, 김봉현 전 회장이 검사 접대를 폭로한 다음 날, 휴대전화를 교체했다. 나 검사 진술은 다음과 같다. “김봉현이 폭로한 날 저한테 전화가 수십 통이 왔고 그 전화를 받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떨어져서 깨졌습니다. 휴대전화 교체할 시기도 되어서 짜증나서 바꾸었습니다. 기존 휴대전화는 집 앞에 있는 마트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유 아무개 검사는 검찰 조사를 받은 뒤 10월24일 휴대전화를 분실했다고 진술했다. “검찰 조사를 받은 이후 그 주 토요일에 일산 킨텍스 ‘베이비 페어’ 박람회에 갔다가 휴대전화를 잃어버렸습니다.”

동시다발적으로 휴대전화를 교체하자, 수사 검사는 검사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피의자는 검사로 근무하면서 수사 업무를 담당하였습니다. 피의자가 정말로 결백하다면 휴대전화를 수사기관에 제출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으로 보이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술 접대를 받지 않았다고 결백을 주장하던 검사들은 기소되거나 징계가 청구되었다. 나 아무개 검사와 특수부 검사 출신 이 아무개 변호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8월 대검은 유 아무개 검사, 임 아무개 검사에 대해 각각 정직·감봉 징계처분을 법무부에 청구한 바 있다.

■ 이부(二否):무조건 부인하라

손준성 검사는 의혹 초기부터 “고발장을 작성하지도 전달하지도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소환을 앞두고 그는 새로운 주장을 폈다. “대검 수사정보정책관 시절 범죄 첩보를 제보받는 일이 많았다. 접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 파일을 다시 보내줬을 수는 있다.” 디지털 증거는 이 같은 해명을 무색하게 한다. 손 검사는 김웅 의원에게 파일을 보내며 ‘제보자 X가 지○○임’이라는 메시지를 직접 썼다. 반송이라는 해명과 어긋나는 증거다.

피의자 신분이 된 검사들이 디지털 증거에도 모르쇠나 부인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먼저 수사기관에 출석하면 진술거부권을 고지받는다. ‘귀하는 일체의 진술을 하지 아니하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하여 진술을 하지 아니할 수 있습니다’, ‘진술을 하지 아니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아니합니다’. 진술거부권을 고지한 뒤 수사 검사들은 밀고 당기며 진술을 끌어낸다.

11월3일 김웅 국민의힘 의원(위)이 공수처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사진공동취재단

손준성 검사 등은 이런 수사 기법을 잘 알기에 진술을 해도 시종일관 혐의를 부인한다. 디지털 증거 앞에서도 안면 몰수하고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만일 혐의를 하나라도 인정하는 순간, 출구를 찾아야 한다. 예를 들면 손 검사가 김웅 의원에게 파일을 보냈다고 인정하면, 누가 지시했는지, 누구에게 지시했는지 등 잇단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허위 진술도 한 번이지, 여러 번 하면 진술마다 모순이 생기고, 그 모순을 파고들면 전체 진술이 허물어진다. 차라리 아예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는 게 방어권에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라임 술 접대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현직 검사 3명과 이 아무개 변호사 등은 검찰 조사에서 ‘술자리 자체가 없었다’고 끝까지 부인했다. 서울남부지검 수사팀은 접대가 이뤄진 2019년 7월18일 검사들의 동선을 복원했다. 검찰청사 출입 기록, 내부 업무 통신망 로그인·로그아웃 기록, 통화 기록, 휴대전화 기지국 위치 등 각종 디지털 증거를 제시했지만 검사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수사팀은 마지막으로 검사들의 택시 탑승 기록을 추적했다. 티머니 택시 시스템부를 압수수색해 유 아무개 검사가 체크카드로 결제한 탑승 기록을 찾아냈다. 승하차 위치가 나오는 GPS 기록을 확보한 것이다. 김봉현 전 회장의 진술과 일치했다. 유 검사는 2019년 7월18일 밤 10시59분 서울 청담동 ㅍ 룸살롱 앞에서 탑승했다. 밤 11시18분 그는 당시 근무처였던 서울동부지검 근처 송파구 문정2동 관사 앞에서 내렸다. 술 접대를 입증하는 디지털 증거 제시에도 유 검사는 이렇게 진술했다. “택시 승하차 기록이 왜 ㅍ 유흥주점에서 나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ㅍ 유흥주점에 간 사실이 없습니다. 당황스럽습니다.” 유 검사는 그다음 조사에서도 혐의를 부인했다. “정말 그 부분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 등 13번이나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검사들의 이런 부인 전략은 재판에 회부되면 바뀐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피고인에게 보장된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객관적이고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진실의 발견을 적극적으로 숨기거나 법원을 오도하려는 시도에 기인한 경우에는 가중적 양형의 조건으로 참작될 수 있다.’ 즉, 뚜렷한 증거에도 허위 진술을 하면 처벌 수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 술자리 자체를 부인했던 나 아무개 검사와 이 아무개 변호사는, 법정에서 술값이 100만원을 넘지 않아 청탁금지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 삼공(三工):공작이라고 우겨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고발 사주 의혹이 불거지자 곧바로 “정치공작을 한두 번 겪나”라고 말했다. 11월3일 김웅 의원도 공수처에 처음 출석하며 “공수처를 이용한 선거 개입 사건”이며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했다. 채널A 사건 당시 한동훈 검사도 공작이라고 주장했다. 한 검사는 지난해 4월 대검 인권부 조사 때 “MBC가 제보자(지○○)와 결탁해 나를 겨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앞서 임 아무개 검사도 지난해 11월 라임 술 접대 사건 조사 때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 임 검사는 법사위 소속 송기헌 의원을 공작 배후로 지목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송기헌 의원이 직간접으로 제 외모나 특징 등을 김봉현 또는 김봉현 조력자에게 전달해준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김봉현은 이를 토대로 저에 대해서 소설을 꾸며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됩니다.” 일종의 ‘김봉현 폭로 사주설’을 주장한 셈인데, 역시 허위 진술이다.

이처럼 디지털 증거가 뚜렷한데도 공작이라고 역공을 펴면, 피의자가 된 검사들 의도대로 조사가 끌려간다. 특수통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기억나지 않는다 등 소극적인 부인이 아니라, 공작이라고 적극적인 부인을 하면 수사 검사는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를 물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수사 검사가 애초 구상한 조사 페이스가 좀 무너진다”라고 말했다.

아이폰을 압수수색 당한 한동훈 검사 (왼쪽)는 20자리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연합뉴스

■ 사백(四 Background):백을 동원하라

손준성 검사는 변호사 선임을 이유로 공수처 출석을 11월 초로 미뤘다. 김웅 의원도 국정감사가 끝나면 출석하겠다고 했다.

수사기관은 통상 출석을 통보하고 세 번 이상 응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청구한다. 공수처는 손 검사가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자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체포영장을 기각했다. 공수처는 손준성 검사 등 주요 피의자들이 ‘윤석열 후보’를 ‘백’으로 동원하려 한다고 의심했다. 공수처가 무리수라는 비판을 감수하며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이유다.

11월5일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선출되면, 대선후보는 고발 사주 의혹 피의자들에게는 든든한 ‘백’으로 작용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고발 사주 의혹은 정치공작이다”라고 주장한다. 손준성 검사와 김웅 의원 등도 이 같은 주장에 기댈 수 있다.

검사들에게 또 하나의 ‘백’은 검찰 조직이다. 지난해 4월3일 지 아무개씨 판결문을 형사사법시스템에서 검색한 성 아무개, 임 아무개 검사는 공수처 조사에서 “수사정보정책관실의 직무로서 범죄정보 수집 차원에서 검색했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조직 전체를 자신의 ‘백’으로 삼으며 방어권을 행사한 것이다.

성 아무개 검사는 지난해 2월 불거진 판사 사찰 의혹 문건의 작성자다. 그는 이때도 검찰의 정상 업무라고 주장했다. 당시 성 검사는 내부 통신망에 “이 자료는 공개된 자료와 공판검사들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작성했으며, 작성과 전달 과정은 모두 공개적으로 이뤄졌다. 직무 범위를 벗어나거나 절차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사실이 전혀 없다”라고 주장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제기한 징계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법원은 달리 판단했다. 지난 9월16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판사 정용석)는 성 검사가 작성한 문건에 대해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해 수집된 개인정보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윤석열 총장이 국가공무원법과 검찰청 공무원 행동강령을 위반했다”라고 판결했다.

11월4일 현재 공수처는 손준성 검사와 김웅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공수처는 현직 검사와 검사 출신 의원의 ‘일폐 이부 삼공 사백’ 비책을 넘어서야 사건의 실체에 다가설 수 있다. 보수적인 〈동아일보〉마저 사설에서 ‘고발 사주 의혹은 검찰권 사유화 논란과 맞물려 흐지부지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라 규정했다(11월4일자). 검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탄생한 공수처가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기자명 고제규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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