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일 기업은행 노조를 방문한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주 4일제 공약과 관련해 노조원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렇게 뜨거운 반응이 있을 줄 몰랐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주 4일제 공약에 대해 〈시사IN〉에 이렇게 말했다("차악을 고민하지 말고 최선을 선택하시라" 인터뷰 기사 참조). 주 4일제는 심 후보가 ‘1호 공약’으로 내건 신노동법 7대 정책 중 단연 관심을 촉발한 사안이다(신노동법 공약은 다양한 노동 형태를 포괄하지 못하는 현행 근로기준법을 폐지하고 ‘일하는 시민의 기본법’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특히 온라인상 젊은 층의 호응이 컸다. 거기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주 4일제를 띄우면서 대선주자들의 주요 정책으로 급부상했다. 당장 공약으론 이르지만, 노동시간 단축은 피할 수 없는 대세라는 입장이다. 네거티브 공방이 난무하던 선거판에서 드물게 정책 검증의 장이 열렸다.

주 4일제는 시대정신인가, 시기상조인가. 가장 전면에서 비판한 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다. “주 4일제의 달콤한 가면을 찢으면, 임금 삭감과 함께 기업경영 환경 열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가 당연하게 예상된다(10월28일 당 최고위원회의).” “젊은 친구들을 현혹하는” 포퓰리즘성 공약이라는 지적이다.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도 “사회 전반에 적용하기엔 조금 시기상조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주 4일제가 언급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해 주 4일제 의제화를 시도했던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10월28일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20~30대의 열렬한 지지를 얻은 젊은 정치인이 주 4일제를 ‘아무말’ ‘유혹’ ‘달콤한 가면’ 등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점은 그가 미래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될 수 있는지 의심케 한다.” 이미 아이슬란드와 스페인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 주 4일제 실험을 시작했다. 일본의 집권 여당인 자유민주당도 올해 주 4일제 추진을 공식화했다. 삶의 질 개선, 과로사와 산업재해 예방, 기후위기 대응,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재택근무의 일상화 등이 추진 동력으로 꼽힌다.

주 4일제는 크게 보면 ‘노동시간 단축’의 한 줄기다. 주 32시간제(혹은 주 35시간제, 7시간×5일)나 연차휴가 확대 방안도 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주 4일제에 대해 “(노동의) 구조적인 틀을 바꾸자는 논의”라고 설명한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아닌 ‘쉴 권리’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주 5일제를 제외하고 단 한 번도 ‘시간을 둘러싼 정치’가 성공한 적 없다. 노동자들이 교섭할 때, 초과근무를 하더라도 임금 인상에 목맨다.” 일주일에 나흘만 일하자는 주 4일제는 그중에서도 정치적 부담이 가장 큰 의제다. 주 4일제 논쟁이 세게 붙을수록, 법정 노동시간을 현행 40시간에서 35시간, 주 32시간으로 줄이자는 논의도 부담이 줄어든다. 김 연구위원은 “복지 모델을 견인하는 진보정당으로서 중요한 정치적 화두를 던졌다”라고 평가했다.

개념은 선명하지만 따져봐야 할 쟁점은 간단치 않다. 핵심 쟁점은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다. 심상정 후보가 내건 공약이기도 하다. 낮은 기본급 체계에서 야근, 잔업, 초과노동으로 임금을 보전받는 노동자들은 주 5일에서 주 4일로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소득이 감소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또 기대만큼 노동생산성이 늘지 않으면 기업 입장에서 ‘임금 삭감’의 구실이 될 수도 있다. 박태주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은 “노동시간 단축 과정에서 임금 보전, 노동시간 유연화, 생산성의 향상이라는 과제를 노사가 어떻게 해결하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심상정 후보는 〈시사IN〉에 “지금으로서는 임금 삭감 주장은 근거가 없다”라고 반박했다. “노동생산성이 약화되면 임금 삭감 요구가 생겨날 수 있지만, OECD나 KDI 통계를 보면 노동시간이 짧을수록 생산성이 향상되었다고 보고된다.” 2017년 KDI는 10인 이상 제조업 사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 40시간 근무제가 국내에 도입된 뒤 노동생산성이 1.5% 높아졌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옳은 방향’에 동의하면서도 갸웃하는 이유

더 큰 우려는 양극화다. 기업의 하청 구조와 낮은 기본급 구조가 바뀌지 않은 채 주 4일제가 도입되면 결국 중소·영세 기업, 시간제·비정규직 노동자들만 피해를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심상정 후보는 이런 우려에 대해 〈시사IN〉에 “경제주체 간 복합적인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고 인정했다. “문제는 업종별·규모별 격차다. 원·하청 계약을 체결할 때 최저임금을 보장한다든지 주 4일제에 필요한 재원에 대해 원청이 감당하는 협약을 이끌어내야 한다.”

정의당의 한 관계자는 주 4일제가 ‘옳은 방향’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실현 가능성을 두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문재인 정부가 입법한 ‘주 40시간제’도 제대로 작동 중인 것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2018년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1주일 법정 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정했다. 다만 1주에 12시간까지는 ‘초과노동’을 허용했다. 그래서 ‘주 40시간제’가 (사실상의) ‘주 52시간제’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업종엔 유예된 바 있고 5인 미만 사업장에는 근로시간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정의당 관계자는 “기업이 주 52시간제를 위반해도 ‘앞으로 위반하지 않겠다’는 각서만 쓸 뿐 실질적인 페널티가 없다. 진정성이 있다면 주 52시간제 문제부터 먼저 풀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태주 전 상임위원은 “불을 때서 윗목에 온기도 퍼지지 않았는데 아랫목에 또 불을 때는 일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주 40시간제도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주 52시간제로 불리고 있지 않은가.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는 물론 플랫폼 노동자들은 냉골인데, 주 4일제라는 군불까지 때면 아랫목만 더 따뜻해질 것이다.” 노동시간 혹은 임금에서의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다는 얘기다.

11월1일 심상정 후보는 대통령 예비후보로 등록한 후,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사를 찾았다. 기업은행 노조는 주 4일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심 후보는 2003년 금속노조 사무처장 시절 산별교섭을 통해 주 5일제의 물꼬를 튼 바 있다. 대선주자 첫 공약 행보로 선보인 만큼 주 4일제를 본격 의제화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그때만 해도 반대가 어마어마했다. 주 5일제 도입하면 대한민국 망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 20년 대한민국 경제는 급속히 성장했다.”

장밋빛 전망과 포퓰리즘이라는 비난 사이에서 주 4일제 논의가 정치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주 4일제 전면 적용은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할 사안이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 왜 굳이 주 4일제여야 하는지, 업종별·고용 형태별로 다른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율할 건지, 기업들에 ‘일자리 창출’을 어떻게 설득할 건지 등은 풀어야 할 과제다. 노동 연구자들은 주 4일제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서 여러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주 4일제를 시도해볼 가치가 있는지 기업과 지자체 차원의 실험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한다. 대기업·공공기관보다는 3교대 근무로 돌아가는 보건의료업, 산재 위험이 높거나 ‘번아웃’이 심한 사업장 등을 대상으로 실험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박태주 전 상임위원은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으로 “미조직 취약 노동자들에게 노동시간 단축의 혜택이 주어질 것”을 꼽았다. “그간 노사가 노동시간 단축에 동의하면서도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번번이 허탕을 친 이유를 돌아봐야 한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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