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광복절 연휴를 맞아 보수단체의 집회를 막기위해 서울 광화문 인근 도로에 차벽과 펜스를 치고 ‘원천봉쇄’에 나섰다. ⓒ시사IN 신선영

지난 8월14일 오전, 서울 광화문 인근 도로에서 ‘8·15 문재인 탄핵 1천만 국민 1인 걷기 캠페인’에 참여한 한 무리의 노인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경찰에 가로막힌 노인들은 단체로 찬송가를 부르며 항의의 뜻을 표출했다.

이로부터 40여 일이 지난 10월3일 오전에도 광화문에선 여전히 찬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교보문고 옆 녹지는 유튜브로 전광훈 목사의 예배를 시청하는 신자들 차지가 됐다. 사랑제일교회 폐쇄 이후 시작된 ‘1인 예배’는 10월24일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19년 한국기독사회문제연구원이 발표한 ‘주요 사회 현안에 대한 개신교인의 인식조사’에 따르면 개신교인 64.4%는 ‘전광훈 목사가 한국 교회를 대표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광화문 집회로 촉발된 지난해 코로나19 2차 유행 이후 한국교회총연합을 비롯한 기독교계 단체들은 대국민 사과를 하며 전광훈 목사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음을 명확히 했다.

교인들과 기독교 단체들의 주장처럼, 전광훈 세력은 한국 교회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코로나19 이후 한국 교회의 현실을 비판한 책 〈바이러스에 걸린 교회〉 저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들은 전광훈 세력의 모습이 오랫동안 교회가 품고 있던 내부 문화와 질서에 기반한다고 말한다. 교회의 어떤 특성이 전광훈 현상을 가능케 했는지, 대표 저자인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권지성 전임연구위원과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김진호 이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바이러스에 걸린 교회〉의 저자인 권지성 전임연구위원(왼쪽)과 김진호 이사. ⓒ시사IN 신선영

전광훈 현상은 어떻게 등장하게 된 것인가요?

권지성:사실 전광훈씨의 주장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해방 이후 한국 기독교는 친미 반공의 패러다임 속에서 보수적인 주장들을 반복했습니다. 동시에 독재정권에 협조하면서 국가 종교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기독교는 점차 그 지위를 잃어갔습니다. 이에 대한 불안감이 극단화된 주장으로 표출되기 시작했고, 전광훈 현상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김진호:전광훈씨는 원래 ‘행동대장’이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시작된 기독교의 ‘동원 정치’ 밑바닥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활동가죠. 전씨는 학력 등으로 봤을 때 기독교 내 주류 세력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늘 변두리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있을 때 전광훈씨가 주목받은 것입니다.

다른 목사들은 왜 가만히 있었나요?

김진호:교회 내 보수 세력은 두 집단으로 나뉩니다. 기득권을 지키는 데 만족하는 실용주의 세력과, 이념적 성향이 강한 세력이 있습니다. 실용주의 세력들이 피로감을 드러내자 다른 목사들은 동원 정치를 꺼려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념적 성향을 발산하지 못한 이데올로기 세력의 불만은 쌓여갔죠. 이 불만이 전광훈 집회를 통해서 표출된 것입니다.

대다수 교인들은 전광훈씨와 자신들을 무관하게 여기는 듯합니다.

권지성:물론 모든 교회가 극우적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다만 전광훈 현상은 한국 교회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이고, 이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 교회의 구조가 숨어 있습니다.

김진호:전광훈씨의 발언에만 주목하는 것이 오히려 교회가 가진 복잡한 문제를 가리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전광훈과 코로나19는 한국 교회라는 화약고에 던져진 불씨일 뿐입니다.

구체적으로 한국 교회의 어떤 모습이 전광훈 현상을 가능하게 했다고 보나요?

권지성:가장 먼저, ‘목사교’로 변질되어버린 교회 모습을 짚을 수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성서가 평민들의 언어로 번역됐습니다. 성서에 대한 접근권을 민주화시킨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 성서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목사가 독점하고 있습니다. 목사가 교단에서 정치적으로 편향되고 무리한 발언을 일삼아도 그것을 진리인 양 받아들이는 모습이 반복됩니다. ‘하나님’이 아닌 ‘목사’를 믿는 행태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김진호:교회 내부의 권력을 잡고 있는 세력이 60대 이상 남성입니다. 다른 집단에선 60대 이상 남성이 발언권을 잃어가지만, 교회에서는 거의 독점합니다. 60대 이상 남성은 인구 특성상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 색채를 띤 집단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과잉 대표되면서 한국 교회 내 보수적인 입장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목사와 소수 교인이 교회 입장을 대변한다면 당연히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을 텐데요.

권지성:교회 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두 가지 질서가 활용됩니다. 내부의 동원질서와 배타적 상징질서입니다. 교회 내부의 인적 교류와 의사결정 구조, 재정을 관리하는 모든 체계는 대면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대면 접촉 횟수를 늘릴수록 ‘좋은 신자’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질서 속에서 교인들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기보다는, 동원에 순종하며 ‘더 좋은 신자가 되는 것’에 골몰하게 됩니다. 교회가 대면 예배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광복절 당일인 15일 보수 단체 회원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하지 못하자 종각역 일대에서 행진하며 곳곳에서 경찰과 물리적 충돌을 벌였다. ⓒ시사IN 신선영

배타적 상징질서는 어떻게 작동하나요?

김진호:이른바 ‘성전(聖戰)’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합니다. 외부의 한 집단을 ‘죄인’으로 규정함으로써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반공주의가 그 배타성을 대표했다면, 이제는 반동성애·반이슬람주의가 교회에 만연합니다.

교회 내부의 이러한 모습들이 전광훈 세력과 어떻게 연결되나요?

권지성:목사교, 대면 중심 동원질서, 배타주의적 상징질서가 서로를 지지하면서 강화합니다. 전광훈 세력과 흡사하죠. 광화문 세력은 전광훈을 정점으로 한 절대적 충성, 충성도를 결정짓는 대면 예배에 대한 집착,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적개심을 보입니다. 결국 교회의 이러한 구조가 전광훈 세력을 배태한 것입니다.

전광훈 현상과 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교회가 스스로 반성해야 할 텐데요.

권지성:반성할 수 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죠(웃음). 사실 누구보다도 정치적인 집단이면서, 교회는 스스로 비정치를 표방하는 위선적 태도를 보입니다.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신앙인은 이 땅에 큰 관심을 가지면 안 된다’고 말하는 식이죠. 하지만 신앙인들도 자신의 양심과 성서에 대한 관점을 통해서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국가 종교가 아닌 시민 종교로서의 기독교입니다.

김진호:교회가 가져야 할 시민성은 무엇일까요? 교회는 사회적 경쟁에서 탈락한 이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사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한 이 세계 전체에 대해서 교인들이 책임감을 지녀야 합니다. 저는 원래 책 제목을 〈바이러스에 걸린 예수〉로 하자고 주장했습니다. 2021년에 예수님께서 다시 내려오신다면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이라는 사회적 약자의 모습으로 오실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국가적·세계적 위기에서 한국 교회가 고통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기자명 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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