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씨(51)는 식품 MD(상품기획자)다. 10년 전에는 쿠팡의 식품팀장이었다. 산지를 돌아다니며 발굴한 먹을거리를 상품화했다. 클릭 한 번에 먹을거리를 집에서 받는 플랫폼 소비의 지평을 여는 데 한몫했다. 그러다 음식과 여행에 관한 글을 쓰겠다며 인생 2막을 열었다. 텔레비전에 얼굴을 자주 비췄다. 〈시사IN〉에도 ‘아빠가 차려주는 밥상’을 연재했다. 입맛 까다로운 중학생 딸을 위한 ‘아빠의 요리 분투기’를 글로 풀어냈다. 소식이 뜸하다 싶더니 방방곡곡 오일장을 돌아다닌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아니, 요즘 세상에 웬 오일장? 어딜 가도 다 비슷비슷한 풍경에 고만고만한 먹을거리만 있는 곳 아닌가?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최근 〈오는 날이 장날입니다〉(상상출판)라는 책을 펴냈다. 3년 동안 우리나라 오일장 예순다섯 군데를 돌아다닌 기록이다.
“이제껏 오일장에 관한 이야기는 그 유래와 역사 등 인문학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았다. 나는 먹을거리 위주로 오일장을 살폈다. 오일장은 ‘지역이 맛으로 가장 빛날 때’를 알려주는 곳이다. 만들어지는 제철이 아닌, ‘진짜 제철’ 말이다.” 가령 요즘 상한가를 치는 청포도 샤인머스캣은 여름철 인기 과일이다. 그러나 샤인머스캣의 진짜 제철은 여름이 아니라 지금 이맘때다. 포도알이 노란빛으로 바뀔 때가 가장 맛있는데, 그때가 10월 중순에서 하순 무렵이다. 이유는 뚜렷하지 않지만 언젠가부터 샤인머스캣은 여름철 과일로 ‘만들어’졌다. 지금 전국 오일장을 다니면 제대로 익은 샤인머스캣을 맛볼 수 있다.
책에는 전국 오일장 서른다섯 군데가 계절에 따라 소개된다. 봄에는 여수에서 준치회를 즐기고, 부여에서 표고버섯 요리를 맛본다. 여름에는 영덕에서 대게 대신 복숭아를 베어 물고, 양구라면 멜론이다. 겨울 통영에서는 전갱이가 진짜 별미다. 군산의 밴댕이와 포항의 장치회도 빠질 수 없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 계절에는 김천의 노란사과(황옥), 영양의 토종고추(수비초), 안동의 백진주 쌀을 만나러 간다. 장터 주변의 맛집 소개도 풍성하다. 무주의 부대찌개집이며 순천의 통닭, 하동의 햄버거처럼 뜻밖의 먹을거리가 등장한다. 늦봄의 무안이라면, 낙지요리가 아니라 웅어 비빔밥을 맛봐야 한다. 물론 제철이기 때문이다.
전국의 오일장을 찾아다니는 일은 지방 소멸의 현장을 목격하는 일과도 같았다. 경북 영양에서는 오일장 맞나 싶을 정도로 파는 이도 사는 이도 없었다. 그러나 다른 눈으로 보면 오일장은 지금도 전국 곳곳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그는 오일장에서 소멸 대신 생동감을 접했다. 사람과 계절이 만들어낸 빛나는 먹을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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