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오천항에서 통발로 잡은 주꾸미를 뜰채로 들어올리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가을입니다. 주꾸미의 계절입니다. 무슨 소리냐, 주꾸미는 봄 아니냐고요? 글쎄요. 

다들 주꾸미는 봄철이라고 말하긴 합니다. 봄철 주꾸미가 맛있다는 말은 사실일까요? 물론 알밴 주꾸미 특유의 맛이 있지요. 하지만 맛으로 치자면 가을 주꾸미가 더 낫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식품 MD로 전국 주꾸미 산지를 돌아다닌 김진영씨는 “가을 주꾸미가 봄 주꾸미보다 훨씬 부드럽고 감칠맛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봄철 산란기 주꾸미는 오히려 알에 영양분이 집중되어서 살 맛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반론을 제기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주꾸미는 역시 알배기지!” 하는 분들의 입맛도 존중합니다. 하지만 우리들 입맛이 지나치게 봄 주꾸미로 획일화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찾지 않으니 가을 주꾸미는 시장에서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낚시꾼들 빼면 가을 주꾸미 맛을 본 도시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꾸미 소비는 봄철에 집중됩니다. 서해안 지역의 주꾸미 축제도 봄철에 열리죠. 당연히 봄철 주꾸미 값도 만만치 않습니다. 9월14일 현재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살아 있는 국내산 활주꾸미가 1㎏에 2만5000원 정도였는데요, 봄철에는 이보다 훨씬 비싸지기 마련입니다. 그때그때 조업량 등에 따라 등락이 크긴 하지만 올봄에도 1kg당 4만원 정도씩 가격이 형성되었죠. 봄철 주꾸미가 한우보다 비싸다는 말은 과장이지만, 비싼 음식인 건 확실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봄철 주꾸미 정보를 접할 때마다 의아합니다. 한쪽에서는 주꾸미 값 폭등 뉴스가 나오는데, 다른 쪽에서는 제철 주꾸미를 맛보라며 부추기는 정보가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텔레비전, 신문, 라디오, 팟캐스트 등 지난봄에도 모든 미디어에서 ‘봄의 진미’ 주꾸미를 맛보라는 정보가 쏟아졌습니다. 제철이어서 비싼 건지, 비싸서 제철인 건지 헷갈립니다.

주꾸미 값 폭등은 사실 미디어가 만든 결과입니다. 언젠가부터 ‘봄 주꾸미, 가을 낙지’라는 말이 정설처럼 굳어졌습니다. 정보를 접한 사람들이 너도나도 알밴 봄 주꾸미를 찾기 시작했고, 그 결과 씨가 마르는 원인 중 하나가 됐습니다. 어민도 봄철 말고는 주꾸미 잡이에 잘 나서지 않습니다.

대신 가을철 주꾸미는 낙시꾼들의 차지입니다. 봄철에 산란기를 맞은 주꾸미가 바다 밑으로 숨기 때문에 낚시가 어렵습니다. 봄철에는 어민들이 설치한 주꾸미 그물을 통해서나 어획이 가능하죠. 5월부터 8월까지는 주꾸미 금어기입니다. 이때가 산란기이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되어서야 알에서 부화한 주꾸미가 바닷속을 헤엄치는데, 그때가 주꾸미 낚시 성수기입니다. 

가을철만 되면 주꾸미 낚시로 유명한 충남 오천항 등은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많을 때는 하루 5000명씩 주꾸미 낚시꾼이 몰려듭니다. 항구에는 차 댈 곳이 없어서 매일 주차전쟁이 벌어집니다. 1인당 7만~10만원 정도를 내고 낚싯배를 타는데, 주꾸미가 잘 잡힌다고 소문난 배는 6월부터 예약해야 낚시가 가능할 정도랍니다.

바다에서는 주꾸미 낚시가 한창인데, 앞서 말했듯 정작 가을 주꾸미는 시장에서 인기가 없습니다. “주꾸미는 봄이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부드럽고 감칠맛 나는’ 가을 주꾸미의 맛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요?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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