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기댈 수 있는 가장 튼튼한 울타리가 ‘자연’임을 깨닫게 해주는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 ⓒ넷플릭스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직장인 17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1.9%가 올해 추석에 귀성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설문에서 57.7%가 귀성을 포기한다고 답했는데, 2년 연속 귀성 포기자들이 절반을 넘었다. 어느 때보다 집에 머물 시간이 많은 추석이다. 〈시사IN〉 기자들이 ‘방콕 정주행’에 적합한 콘텐츠를 추천한다. 타이완 드라마, 자연 다큐멘터리, 스포츠 소재 다큐·드라마, 애니메이션, 웹툰, 게임 등 각자의 취향을 담았다. 랜선을 통해 세상과 감동을 만나는 추석 연휴가 되기를 소망한다.

〈나의 문어 선생님〉
다리 수만큼 풍부한 문어의 표현

몇 년 전 횟집 앞에서 기함할 만한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바닥에 살아 있는 대방어가 누워 있었다. 주방장으로 보이는 이가 커다란 몽둥이로 대방어의 대가리를 내리쳤다. 퍽, 퍽, 하는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숨이 멎었다. 기이하고 비현실적이었다. 가을이 되어 ‘대방어’라는 글자가 횟집 앞에 걸릴 때면 나는 여지없이 몽둥이와 방어 ‘대가리’와 (방어와 내가 겪은) 타격에 대해 생각한다.

한때 기이하고 낯선 생물이 초월적 힘을 가지고 있다고 사람들이 믿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산 채로 ‘탕탕이’가 되거나 길바닥에서 매를 맞는 존재로 전락했지만 말이다. 횟집 수족관에 갇힌 물고기를 볼 때면 나는 ‘경외’라는 단어를 인간이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 자주 궁금해졌다.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2020)은 영화감독 크레이그 포스터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해변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는 대서양의 위력을 체감하며 자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자연과 멀어졌고 어느덧 극도의 피로와 부담감에 짓눌려 그는 병이 들었다. 고향에 돌아온 감독은 다시 바닷속을 유영하기 시작했다. 숨이 막힐 것처럼 차가운 수온에 익숙해질 무렵 그의 앞에 ‘무언가 배울 것이 있는’ 생물이 등장한다. 문어다.

문어는 조개껍데기와 돌멩이를 긁어모아 자신의 몸을 바위처럼 위장한다. 기민하고 정확하다. 다시마를 망토처럼 휘둘러 천적인 파자마상어를 따돌리거나 우산처럼 몸을 펼쳐 바닷가재를 덮친 뒤 잡아먹는다. 야행성인 문어는 밤이 내려앉은 얕은 물에선 마트에 나온 1인 가구처럼 기분 좋게 포식하기도 한다. 어느 날 문어는 매일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털북숭이 인간(크레이그 포스터)에게 인사를 하기로 한다. 섬세한 빨판을 움직이며 인간의 손가락과 팔을 감싼 문어는 그의 가슴팍에 올라 편안하게 장난을 치며 감독을 ‘야생의 세계’로 초대한다. 문어는 1000개가 넘는 빨판으로 맛과 감각을 느낀다. 몸의 색깔과 무늬를 바꿔가며 의사소통을 한다. 지난달에는 상대를 정확히 겨냥해 진흙이나 조개껍데기를 던질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됐다. 지능이 높다는 증거다. 신경이 온몸에 퍼져 있어서 각각의 다리가 다른 성격을 갖기도 하는데 무엇보다 “문어의 생각을 읽는 어려움은 표현이 너무 풍부하다는 데 있다(〈문어의 영혼〉 사이 몽고메리 지음, 글항아리 펴냄)”.

다큐에서 가장 매혹적인 장면은 잠자듯 감긴 문어의 눈이 천천히 떠지는 클로즈업 신이다. 반달처럼 휘어진 선이 조금씩 벌어지면서 세상을 향해 열린다. 감독은 그 눈을 보며 묻는다. 문어는, 어떤 꿈을 꾸었을까. 그 누구도 식당 수족관에 갇힌 물고기를 보며 이렇게 묻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시 이러한 아름다운 질문을 되찾을 수 있을까? 조심스럽고 다정한 상상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문어 선생님’을 통해 감독의 훼손된 일부가 재건되었다는 점이다. 자연의 일부인 우리는 늘 그런 식으로 회복된다. 인간이 기댈 수 있는 가장 튼튼한 울타리가 ‘자연’임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다.

(작품 볼 수 있는 OTT: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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