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자료

2016년 겨울, 한국에서 폭발한 분노는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누적 1600만명이 ‘반(反)박근혜’ 기치 아래 모였다. ‘촛불혁명’이 성공한 뒤에도 한국 사회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양한 전선이 새로 생겨났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사이의 분노와 갈등이 화두로 떠올랐다. 시민들은 기득권층의 위선과 무참한 범죄들에 격렬하게 분노했다. 난민이라는, 한국 사회에서 낯선 주제를 둘러싸고 격론이 전개되었다.

〈시사IN〉과 데이터 기반 전략 컨설팅 기업인 아르스 프락시아가 촛불혁명 이후 대중의 분노를 분석했다. 그들(우리)이 사건의 어떤 요소에 분노하고 누구에게 책임을 물었으며 어떻게 상황을 개선하기 바라는지 짚어보려 했다.

분석 대상 매체는 유튜브로 한정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유튜브는 상대적으로 새롭고 젊은 세대의 참여가 활발한 매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2030 세대의 견해를 반영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더욱이 유튜브 댓글은 포털 뉴스 사이트에 비해 조작 사례가 드물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이처럼 ‘대중’의 분노를 가늠하기 위한 작업에선 유튜브 고유의 한계 역시 존재한다. 바로 유튜브의 ‘개인별 맞춤 시스템’이다. 사실상 스마트폰 이용자 전부가 보는 포털 뉴스와 달리, 유튜브는 개인이 선호하는 채널만 구독한다. 또한 비슷한 영상만 유튜브 알고리즘에 따라 추천받는다. 이 같은 편향 문제를 어느 정도 보완하기 위해 취재팀(〈시사IN〉과 아르스 프락시아)은 분석 대상을 지상파 방송 3사(KBS·MBC·SBS)의 뉴스 영상으로 정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조회수와 댓글양을 확보하면서 한쪽으로 쏠리지 않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다.

그런데 유튜브 시청자들이 온라인 공간에 별다른 생각 없이 남기거나 혹은 즉각적으로 분출하는 감정을 옮긴 것으로 보이는 의견들을 ‘여론’으로 간주해도 되는가? 취재팀은 이런 의견들이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전개되어온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오히려 긴요하다고 봤다. 시민들이 이성의 여과를 거치기 전에 품었던 ‘솔직한’ 생각이 ‘현실’이라는 의미다.

2019년 5월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김학의 차관 등 권력층의 성폭력 사건을 규탄하는 시민들. ⓒ연합뉴스

‘권력자가 국민을 개돼지로 본다’

분석 대상 사건 13개는 취재팀 내부 논의를 통해 선정했다. 최초 선정한 사건들 중 방송 3사에서 적합한 표본 영상을 구하지 못했거나 댓글 수가 적은 것은 부득이 제외했다. 최종적으로 분석된 이슈는 △N번방 사건(2019) △스포츠계 학교폭력 폭로(2021) △정인이 사건(2020)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접대 사건 재조사(2019)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논란(2019) △윤미향 전 의원 및 정의기억연대 논란(2020) △코로나19 국면 민주노총 집회(2021)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2018) △신천지교회 코로나19 집단감염(2020)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요원 정규직화 논란(2020) △제주도 예멘 난민 신청(2018) △일본 제품 불매운동(2019) △혜화역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2018)’이다.

지상파 방송 3사 유튜브 보도 영상 가운데 조회수와 댓글수가 가장 많은 것을 추렸다. KBS 21편, MBC 20편, SBS 22편이다. 여기 달린 댓글 총 11만4175개의 키워드를 뽑아 의미망을 분석한 뒤 영향력 높은 키워드가 담긴 원문을 역추적했다. 원문의 작성자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싶은)지 뽑아내기 위해서였다.

이른바 ‘권력자’가 연루된 사건들에서 유발된 분노부터 분석해보자. 한눈에 띄는 키워드는 ‘개돼지’였다. 두 가지 맥락으로 사용되는 키워드다. 하나는 ‘권력자나 권력기관이 국민을 개돼지로 본다’는 것. 다른 하나의 용도는 ‘이런 권력을 믿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김학의 사건에서 시민들이 주목한 것은 단순한 부도덕성만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권력 관련 서사의 주된 키워드로 ‘검찰’을 꼽았다. ‘국민’을 ‘개돼지’처럼 ‘무시’하며 ‘군림’하는 ‘무소불위’의 ‘공무원’ 집단이 ‘부실수사’를 자행했다는 줄기의 이야기가 읽힌다. 이는 특정 고위 인사의 추문을 콕 집어내 손가락질하는 것과 다르다. 국민 모두에게 평등하게 법을 적용해야 할 ‘공무원’이 특정인에게 특혜를 주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나’에게 해를 끼쳤다는 인식에 가깝다. 이 생각은 피해 당사자인 ‘국민’이 ‘적폐 청산’에 나서야 한다는 결론에 닿는다. 윤미향 의원을 둘러싼 논란 역시 사람들이 분노한 지점은 비슷했다. ‘위안부’ 피해자를 사익에 이용했다는 인식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도 ‘개돼지’가 등장한다. ‘국회의원’이 ‘국민’을 ‘개돼지’로 보고 ‘기만’했다는 것이다.

‘조국 사태’에 대한 주요 키워드는 ‘기득권’이었다. 분석을 수행한 아르스 프락시아 김도훈 대표는 이 용어가 “조 전 장관을 지칭하는 데에도, 언론을 비판하는 데에도 쓰였다”라고 했다. 조국 전 장관에게 부정적인 이들은 ‘기득권’인 그가 ‘국민’을 ‘우롱’했고, 여기 ‘현혹’되는 건 ‘바보’라고 본다. 반면 조 전 장관에게 긍정적인 이들은 ‘날조’된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언론이야말로 ‘기득권’이며, 특히 일부 보수 매체가 혐의를 ‘날조’한다고 여긴다. 이들의 대책은 ‘쓰레기’ 매체의 ‘폐간’이다. 조국 사태를 보는 시각에서는 완전히 정반대인 사람들이 함께 ‘기득권이 나를 무시했다’며 입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2019년 10월 서울 대학로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 촉구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개돼지’라는 자조 섞인 분노는 기득권에게 무시당하고 있다는 대중의 생각을 반영한다. 이것은 국제적 화두다. 미국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2018년에 낸 책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정치투쟁은 단순히 ‘파이 조각을 둘러싼 싸움’이 아니라고 적었다. 그는 경제적 요소가 아니라 감정적 요소에 주목한다. 사람은 경제적 자원을 얻기 위할 뿐 아니라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해 정치의 영역에 뛰어든다는 것이다. 이 관점이 트럼프 신드롬을 비롯해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보이는 ‘분노의 정치’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도 주장한다. 대중 영합적 정치인은 특정 집단의 분노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세를 키운다. 후쿠야마에 따르면, “정치지도자는 집단의 존엄성이 모욕당하거나 폄하되거나 무시당해왔다고 호소하면서 지지자들을 결집하곤 했다. (…) 굴욕을 경험했다고 느끼며 존엄을 회복하고 싶어 하는 집단은 단순히 경제적 이득만 추구하는 사람들보다 감정적으로 훨씬 더 강한 영향력을 가진다.”

사적 제재로 즉각 정의 실현한다

N번방 사건과 학교폭력 폭로 사건, 정인이 사건은 국민적 공분을 불러온 사건이다. 피해자들이 아동·청소년이었기에 특히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하지만 영상에 달린 댓글 일부는 N번방·학교폭력 사건 피해자의 ‘피해자다움’을 거론했다.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말이 공통적으로 나왔다. 학교폭력 피해자를 두고서는 피해 사실을 ‘과장’한다고 주장했다. N번방 피해자에 대해 ‘스폰을 받은(대가를 받고 자의로 성을 판)’ 것 아니냐는 막말까지 횡행했다. 온라인 공간만의 일탈로 볼 수 없다. 성폭력과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현실에서 수없이 당하는 공격에 가깝다(〈그림 1〉 참조).

이들의 반대편에는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걱정하고 ‘인권보호’를 당부하는 이들이 있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가해 당사자뿐 아니라 ‘시스템’의 책임 역시 따져 물었다. 수사 당국(‘경찰’ ‘검찰’)은 ‘무능’하고, 사법부(‘판사’ ‘법원’)는 ‘솜방망이 처벌’만 내린다. ‘나라’의 ‘공권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는 국민이 직접 나서야 한다(‘국민청원’). 그런데 시스템을 바꾸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정의’를 즉각 실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다수의 시민들이 제기하면서 키워드로 떠오른 용어가 바로 ‘사적 제재’다.

사적 제재란 법이나 제도를 거치지 않고 개인 차원에서 ‘복수’하는 것이다. 유튜브 댓글에서는 폭력배를 고용해 학교폭력 가해 학생을 위협하거나 때려주는 ‘삼촌 서비스’가 거론됐다. 이들은 ‘법 감정’에 맞지 않는 ‘솜방망이 처벌’을 규탄한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사적 제재는 당연히 범죄다. 하지만 사법 신뢰가 낮은 사회일수록 사적 제재에 관용적이다. 사회학자 오찬호씨의 말을 들어보자.

“‘N번방은 관대한 판결을 먹고 자랐다’는 말처럼, 범죄 적발과 처벌이 정교하지 못한 영역이 분명 있다. 하지만 ‘사회가 무능하니까 저런 놈 만나면 죽여버릴 거다’라는 식의 사적 복수를 부르짖는 경우가 한국에는 너무 많다. ‘어떤 경우에도 사적 복수를 허용하는 부작용이 더 크다’는 사회적 합의가 없다. 그러니 보복 운전으로 사고가 나도 ‘왜 보복 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봐야 한다’ 같은 이야기가 너무 쉽게 나온다. 층간소음에 대한 보복 범죄에 대해서도 ‘층간소음 안 당해보면 모른다’는 사람들이 있다.”

사적 제재로 해결하기 어려운 ‘집단의 일탈’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볼까. 신천지교회발 코로나19 집단감염을 두고는 이만희 총회장에 대한 비난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 집단의 ‘사이비’성이 위험하다고 분노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개신교’에 대한 반감도 보였다. 종교단체가 아니라 ‘이익단체’라는 비난도 있었다. 코로나19 전파 초기였던 당시, 중국 우한의 입국자를 막지 않은 ‘정권’의 ‘무능’을 탓하는 이도 있었다.

유튜브의 댓글 작성자들은 비리 유치원과 민주노총에 대해서도 비난 일변도였다. 두 건에 대해 ‘공권력 활용’을 적극 주문했다. ‘때려잡으라’는 이야기다(〈그림 2〉 참조). 비리 유치원에 대한 분노의 서사는 두 줄기다. 우선 해당 비리 범죄를 저지른 ‘원장’과 ‘교사’를 비난하는 의견이 거셌다. 이들은 ‘나라’가 ‘공권력’을 활용해 더 적극적으로 범죄를 색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하나는 어린이집·유치원에 대한 근본적 불안감이다. 영유아 특성상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학부모가 모두 알 수 없으며, 아이가 ‘인질’로 잡혀 있기에 무언가 요구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은 ‘아이 키우기’ 자체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법안’ 정비를 주문한다.

적어도 유튜브 댓글만 보면, 지난 7월 집회로 민주노총은 인심을 완전히 잃은 듯하다. 보도 영상에 댓글을 단 사람들은 이 조직이 긴급한 사회 위기에도 돌발 행동을 불사하는 ‘이기’적인 ‘강성’ 조직이라고 본다. 이들의 시각에 따르면, 갈등을 정치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민주당’은 정작 민주노총의 ‘눈치’만 본다. 댓글 작성자들은 ‘사회악’과 같은 이 조직의 위험한 행태를 바로잡으려면 ‘공권력’으로 진압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민’ ‘목숨’에 ‘공감이 없는’ 민주노총 대신 ‘노동자 권익 대변’을 위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역사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국가권력의 적극적 행사를 요구하는 경우는 종종 나타난다. 그런데 이 요구는 앞의 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던 ‘권력(기득권)’ 및 제도에 대한 ‘불신’과 마찰을 일으킨다. 사람들은 공권력을 믿지도, 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에게 호의적이지도 않으면서 ‘더 큰 공권력’을 바라고 있는 셈이다. 이 분석 결과를 두고 포항공과대학교 이진우 석좌교수(인문사회학부)는 “위험한 신호”라고 진단했다(18~19쪽 인터뷰 기사 참조). 일탈이나 범죄 같은 갈등 상황에 대해 시민들이 무작정 공권력 강화만을 요구하는 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 군사정권이 그랬다. 불량배가 있으면 삼청교육대에 보내고 노숙인을 집단 수용소에 가뒀다. (…) 이 사태가 말해주는 건 우리 사회가 갈등해결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제도에 대한 신뢰가 낮은 상태에서 이런 요구가 나온다는 것은 더 나쁜 징후이다. 사람들이 국가에 ‘공정한 심판’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력으로 ‘적’을 진압해주기만 바란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평등과 공정에 대한 전혀 다른 인식이 부딪치기도 했다. 분노한 양측의 생각이 평행선을 달렸다. 인천공항 보안요원 정규직화나 혜화역 집회에 대한 생각들이 그랬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노력’ ‘준비’ ‘스펙’ ‘공부’ 등을 긍정적 키워드로 사용했다. 정규직화는 ‘깜깜이 채용’ ‘결과적 평등’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에게 인천공항 보안요원 정규직화는 ‘동일 업무’에 대한 ‘차별 철폐’다.

건설적 대안보다 ‘응보적 분노’에 관심

혜화역 집회는 남성 누드모델을 불법 촬영해 급진 페미니즘 성향 웹사이트 ‘워마드’에 올린 여성이 검거되자, 여성들이 ‘수사기관의 편파수사’를 주장하며 들고일어난 시위이다. 댓글에서는 부정적 의견이 다수였다. 댓글 작성자들은 같은 짓을 저지른 남성들도 처벌받으니 여성의 불법 촬영에 대한 수사를 ‘편파’로 몰아세우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에 대해서도 ‘남자’를 ‘범죄자’ ‘취급’하는 ‘편파’적 보도로 사태를 ‘왜곡’한다고 비판했다. 키워드 중엔 일견 성범죄 수사와 거리가 있어 보이는 ‘화장’ ‘탈코르셋’ 같은 용어도 적잖이 등장했다. 이 역시 페미니즘 비판의 맥락에서 나왔다. 댓글 작성자들에 따르면, 누구도 ‘화장’을 ‘강요’하지 않는데, 일부 여성은 ‘탈코르셋’ 운운하며 ‘억압’받아온 양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페미니즘’의 현실과 다른 주장이 ‘정신병’과 같다고 표현한다.

9월2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경찰에 연행되는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연합뉴스

권력과 제도, 타인에 대한 적개심과 별개로, 이번 조사에 드러난 한국인상(像)은 긍정적이었다(〈그림 3〉 참조). 일본 상품 불매운동과 제주도 예멘 난민 신청 보도 영상 댓글을 분석한 후 김도훈 대표는 “이제 (한국인에게) 자학은 없다”라고 요약했다. 선진국의 눈치를 보며 위축되고 열패감에 빠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한국인의 ‘당당’한 ‘대응’이다. 이런 한국인을 ‘무시’하는 ‘아베’ 정권이 ‘싫다’. 여기 동참하지 않고 ‘편가르기’를 일삼는 정치세력과 언론은 ‘토착왜구’다. 불매운동을 조롱하는 기업인은 한국인이 아니라 ‘검은 머리 외국인’이다. 제주 난민 신청에서 나타난 한국인상은 미묘하다. 자부심을 넘어 인종주의에 가까워 보이는, 우월의식을 담은 키워드가 등장했다. ‘무슬림’ 난민과 달리 한국인은 ‘부조리’를 참지 못하고, 자존심이 강하고, 열심히 일하며, ‘도덕성’이 높은, ‘개화’된 사람들로 묘사되었다. 반면 무슬림은 ‘테러’를 하고, ‘법 위에 종교’가 있으며, 한국과 ‘문화’가 다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돼지고기’도 먹지 않는 ‘무슬림’ 난민은 ‘유럽’에서도 사회 ‘문제’라며 한국의 난민에 대한 반감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거센 분노는 난민에게 온정적인 ‘인권단체’를 향해 표출되었다. 인권단체들이 ‘자국민’을 등한시하고 ‘세금’으로 ‘인권팔이’ 한다는 비난이었다.

유튜브 댓글을 대상으로 한 이번 분석은 촛불혁명 이후 일부 계층에서 나타난 인식과 감정의 동요를 스케치한 것에 가깝다. 댓글을 남긴 뒤 ‘작성자’ 상당수는 해당 사건에 대한 생각을 바꿨는지도 모른다. 댓글 속 날선 문제의식과 원초적 해법은 숙고 과정에서 수정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자료만으로 2020년을 전후한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을 유추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다만 사회의 뇌관을 점검하는 의미에서, 사람들이 표출한 ‘분노의 성격’을 짚어봐야 한다. 부당함을 지적하고 건설적 대안을 모색하는 방향이 아니라 복수하고 고통을 줘야 한다는 ‘응보적 분노’ 성격이 짙었다. 사안마다 구체적 비난 대상을 찾아내 벌주려는 목소리가 있었다. 미국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2018년 〈타인에 대한 연민〉이라는 책에서 “응보적 분노가 민주정치를 오염시킨다”라고 말한다. 복수하려는 의지에서 자유로운 ‘이행 분노(복수보다 상황의 개선을 지향하는 미래지향적 분노)’만이 건설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누스바움은 이행 분노의 대표 예시로 아이의 잘못을 알게 된 부모의 태도를 든다. 하지만 그는, 부모의 자애와 달리 “우리가 늘 동료 시민을 사랑하지는 않는다는 데서 두려움을 느낀다”라고 썼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화난 사람들의 유튜브 댓글에서 ‘동료 시민에 대한 굳은 애정’을 확인하기란 어려웠다.

2018년 6월 예멘인들이 비자 없이 입국이 가능한 제주도에 체류하기 시작했다.ⓒ시사IN 이명익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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