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은 데이터 기반 전략컨설팅 기업인 아르스 프락시아와 함께 이번 달(9월)부터 제20대 대통령 선거 직후인 내년 3월 말까지 6차례에 걸쳐 각종 데이터를 통해 한국 정치·사회의 심층을 들여다보는 기획 연재를 시작합니다. 김도훈 아르스 프락시아 대표가 연재 1회의 화두인 ‘분노’를 분석하기 위해 왜 그리고 어떻게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했는지 설명한 글을 보내왔습니다.

2012년의 대선 이후 10여 년 만에 〈시사IN〉과 대선 특집 데이터 저널리즘 작업을 수행하게 되었다. 지난 수년 동안 정치·사회 분야의 분석을 여러 언론사들과 함께 수행하면서 줄곧 마뜩잖았던 용어가 하나 있는데, 바로 ‘시대정신’이다. 거창한 문구와 달리, ‘선거 기간에 관심이 쏠릴 정치적 화두’라는 좁은 의미로만 쓰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21년엔 그 협소한 의미의 시대정신이란 용어조차도 여간해선 사용되지 않는다. 대신, 이런저런 분노에 찬 아우성들이 귓가에 와닿을 뿐이다.

사람들이 주변의 사건들에 분노하는 데는 필경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제각각의 분노가 수렴하는 일관된 방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가 아무것도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분노하면서 공동의 원념을 쌓는다. 그 원념은 때때로 정치적인 지각변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대선 특집 데이터 저널리즘 연재의 첫 기사로 사회적 ‘분노’를 분석하기로 한 것은, 향후 지각변동을 야기할지 모르는 사회적 동인을 예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사회 여론이 들끓었던 사건들을 중심으로, 조회수와 댓글수가 가장 많은 유튜브 게시물의 댓글들을 모아 분석했다. 비교적 젊은 세대가 활발히 이용하는 유튜브의 댓글이 사회적 정서를 읽는 데 시의성을 가질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시사IN〉 취재팀과 논의를 통해 ‘인천공항 정규직화에서 불거진 공정성 시비’ ‘윤미향 의원 및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과 관련된 위선 논란’ ‘N번방 등 성폭력 사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논란’ ‘사립유치원 운영 문제’ ‘정인이 사건’ ‘학교폭력 등 사회안전 문제’ ‘신천지와 민주노총의 코로나 집회 논란’ ‘혜화역 시위를 통해 촉발된 젠더 갈등’ ‘일본과의 무역분쟁’ ‘제주 난민 수용 관련 시비’ 등을 분석 대상으로 선별했다.

데이터 분석에서는 컴퓨팅 도구들을 활용하되, 근거이론(Grounded Theory)에 의거한 접근을 했다. 이를 위해 유튜브 댓글에는 아르스 프락시아의 전용 ‘의미망 분석 툴’(옵티마인드 3.0)을, 키워드가 속한 각 문단들에 대해서는 ‘딥러닝 기반 센티먼트 분석 기법’을 적용했다. 근거이론은 기존 이론에 얽매이지 않고 데이터 분석 과정에서 주제 카테고리를 구성한 후 창발된 특성으로부터 새로운 개념을 도출하는 방법론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우선 각 사건 관련 유튜브 동영상의 댓글(텍스트)에 대한 ‘자연어 처리’로 의미망을 추출했다. 그다음 단계에선, 추출된 의미망의 구조와 원문(댓글 텍스트)을 반영하여 네트워크 영향력(보나시치 파워)이 높은 키워드의 주체-연관어-평가어-대응을 잇는 서사구조를 연구자가 재구성했다.

데이터 기반 전략컨설팅 기업 아르스 프락시아 직원들이 유튜브 댓글을 분석하는 모습. ⓒ아르스 프락시아 제공

최근엔 ‘데이터 사이언스’가 유사 과학처럼 물신화되거나 단순한 기술적 테크닉으로 폄하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분석의 주체인 연구자가 견실한 방법론에 기반하여 텍스트의 맥락을 재구성하며 통찰력 있게 해석할 때 데이터 사이언스는 의도한 효용을 갖게 된다. 물론 재구성과 해석의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크고 작은 오류와 한계는 전적으로 연구 수행자의 책임이다. 궁극적으로 연구자의 분석 결과를 평가하는 최선의 검증 도구는 앞으로 전개될 현실이다.

〈시사IN〉과 아르스 프락시아는 모두 13개의 사건들로 분석한 ‘분노의 원인’을 다음과 같은 5개 주제로 축약할 수 있었다.

① 약자 혐오 사회에서 국가의 인권보호 방기
② 기득권 세력에 대한 혐오
③ 권력화된 이익집단에 대한 공권력의 무기력한 대응
④ 평등과 공정에 대한 사회 구성원 간 인식 충돌
⑤ 한국인으로서의 자기 인식 및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관념의 변화. 이에 따른 충돌

이 다섯 가지가 한국인들의 사회적 분노가 겨냥하는 과녁이자 대한민국의 ‘문제적 일상’으로 도출되었다. 우리가 그동안의 텍스트 분석을 통해 직면한 한국 사회는 ‘위악(僞惡)’으로 가득하다. 이 ‘위악자’들은 자신은 솔직한 사람일 뿐이라며 다음과 같이 은밀하게 혹은 공공연하게 속삭인다.

“N번방의 어떤 피해자는 본인이 ‘스폰’ 제의를 응낙(?)했으니 그런 꼴을 당하는 것인데 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거지?” “정글의 법칙이 작동하는 인간세계에서 힘 있는 자들의 횡포는 당연한 것 아니야?”

솔직함으로 포장된 위악이 폭력의 중독으로 퍼져가는 디지털 공론장에서는 이처럼 인간이 같은 인간을 짓밟는 데서 느끼는 은밀하거나 공공연한 쾌감의 리비도(libido)가 분출되고 있었다.

괴물과 양아치의 온상, 공적 기관

다른 한편으로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이익집단을 통제하며, 사람을 배려해야 하는 공적 기관 종사자들의 정신세계는 과연 ‘자신과 강자의 동일시’ ‘약자 혐오’ 같은 관성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디지털 공론장의 텍스트들은 공적 기관 종사자들에 대해 한없이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냈다. 이들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공적 기관이야말로 ‘괴물’과 ‘양아치’의 온상이다. 경찰·검찰·법원·언론·정치권·노동조합·시민단체 등은 권력을 나눠 먹으며 자신의 몫을 챙기는 이익집단일 뿐이다. 어쩌면 디지털 공론장에서 나타나는 가학적 리비도는 이런 ‘권력화된 이익집단’에 대한, 학습된 동경의 변형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사회적 안전과 인권, 진실과 정의를 매개할 공적 주체가 실종된 사회에서, ‘약자의 느낌’을 평생 안고 부당한 공적·사적 권력에 짓밟히며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의 울분은 드라마 〈빈센조〉와도 같은 사적 응징의 판타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에선 마피아들만 마피아 짓 하죠? 한국은 전부가 마피아에 카르텔이에요. 국회·경찰·검찰·관공서·기업 전부 다요. 대한민국이니까.” 시대의 저항정신을 표상하는 드라마 대사는 변모하는 국민적 정체성과 자기 인식 역시 반영한다.

공정과 젠더 갈등이 외견상 첨예하지만 이번 분석 결과는 해당 갈등의 담론들이 피상적이고 사실은 자신의 원한 감정은 물론 다른 사람(집단)과의 충돌을 합리화하는 기제에 불과할 가능성까지 시사한다. 갈등의 밑바닥에는 개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정무(혹은 정치)와 권위주의적 조직문화가 깔려 있다.

이 원한 감정과 충돌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가? 글로벌 사회에서 대한민국의 국가 위상과 국민의 지적·도덕적 수준이 전례 없이 드높아지고 있는 반면 공적 기구에 속한 사람들이 여전히 수십 년 전의 낡은 세계관과 조직문화의 틀 안에서 권력을 사적으로 전유하는 관습을 유지하려고 버티는 것을 원인 중 하나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시민들은 약자와 개인의 인권을 보호할 공공 시스템을 개신(改新)하고, 기만적인 동원의 구호 대신 자신과 사회를 성찰하고 참여할 수 있기를 원한다. 분노하는 시민들은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글로벌 사회의 보편적 가치 실현을 통해 성취하기를 바라며 그 역량을 보유한 새로운 정치 주체의 출현을 갈망하고 있다.

기자명 김도훈 (아르스 프락시아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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