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미국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리나 칸. 초당적 찬성으로 연방거래위원장에 임명됐다. ⓒREUTERS

미국 연방거래위원장은 1989년생 여성으로 역대 최연소다. 리나 칸. 영국 런던에서 파키스탄인 부모 사이에 태어나 열한 살에 미국으로 왔다. 로스쿨에 다니던 2017년,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이라는 논문을 〈예일 법학저널〉에 발표했다. 이 논문 한 편으로 그는 “수십 년 동안의 독점 관련 법을 재구성했다”(〈뉴욕타임스〉).

논문에 따르면 20세기 초 미국의 독점금지법은 시장의 구조에 주목했다. 소수 대기업에 지배력이 집중되면 경쟁에 해가 된다고 보고 이를 규제했다. 그러다가 달라졌다. 시카고 학파의 영향을 받은 로버트 보크라는 법학자가 “반독점의 유일한 목표는 소비자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이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레이건 정부 이후 이 관점이 널리 받아들여지면서다.

보크에 따르면 한 기업이 다른 영역의 기업을 ‘수직적으로 합병’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시장이 완벽히 효율적이어서, 더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파는 경쟁자가 언제든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원가 아래로 가격을 대폭 낮춰 경쟁자를 몰아내는 ‘약탈적 가격 책정’은 “아마도 존재하지 않는 현상”이다. 기업은 장기적 성장보다 단기적 이익을 추구해서다. 따라서 정부기관은 오직 가격이 올라서 소비자가 피해를 봤을 때만 개입해야 한다.

칸이 보기에 이런 가정은 특히 현대의 ‘플랫폼 기업’에는 잘 맞지 않는다. 플랫폼은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해주는 디지털 네트워크다.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효용이 올라가므로 처음에 얼마나 많은 이용자를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런 조건에서는 ‘약탈적 가격 책정’이 오히려 합리적 전략이 된다. 아마존은 얼마간 “손실을 지속하고 이익을 희생하며 공격적으로 투자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으며, 투자자들은 이 손실에 대해 인내하거나 심지어 메워준다. 나중에 점유율이 높아지면 쏟아부은 돈을 ‘회수’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플랫폼의 중개 역할이 중요해지는 만큼, 업종을 넘나드는 수직적 합병이 이해관계의 충돌을 발생시킬 여지도 커진다. 예컨대 아마존은 온라인 쇼핑 인프라나 서버 제공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확보한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자사 제품을 경쟁사보다 낮은 가격에 내놓을 수 있다. 아예 경쟁사를 인수해버릴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존의 물류 시스템을 이용하는 기업에 비용 인하 등의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해당 기업이 경쟁사들과 싸워 승리하도록 도울 수도 있다.

아마존 같은 플랫폼 거대 기업들의 이런 행위는 경쟁을 어렵게 만들고 진입장벽을 높이지만, 당장은 ‘비교적 낮은 가격’에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독점금지법의 규제에서 비켜나 있다. 그러나 리나 칸에 따르면, “소비자들의 장기적 이익에는 (낮은 가격뿐 아니라) 상품의 질과 다양성, 혁신이 포함된다.” 칸은 대안으로 전통적인 독점금지법의 원칙을 복원하거나, 플랫폼의 독점을 인정한 채 일종의 공기업처럼 공적 통제를 가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GAFA가 독점기업이라는 보고서 결론

시장 독점과 관련해 연방거래위원회와 소송 중인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AP Photo

리나 칸은 2018년 미국 연방거래위원회의 민주당 측 위원인 로힛 초프라의 법률고문으로 일했다. 16개월간의 조사 끝에 2020년 10월 나온 미국 하원 반독점소위원회 보고서 작성에 큰 역할을 했다. 보고서는 이른바 ‘GAFA(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로 불리는 미국 거대 기술기업 네 곳이 모두 독점기업이라고 결론 내리고 잠재적 해체 등 구조적 분리를 촉구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6월 리나 칸을 연방거래위원장으로 임명했고, 미국 상원이 초당적으로 찬성표를 던졌다. 지난 6월22~23일 미국 하원 법제사법위원회는 GAFA를 대상으로 한 ‘반독점 법안 패키지’를 통과시켰다. 플랫폼 기업이 자사 상품을 다른 업체보다 우대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애초에 이해 상충을 일으킬 만한 다른 사업을 영위하는 것을 금지하며, 인수합병의 대상이 자사의 경쟁자가 아님을 플랫폼 스스로 입증하게 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다.

아마존과 페이스북은 칸이 미국 하원 반독점소위원회 조사에 관여한 만큼 자신들을 공정하게 조사할 수 없다며 ‘기피 신청’을 했다. 칸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여전히 보수적인 판사들이 지배하는 법정에서 결과를 내는 일이다. 칸이 취임하기 전에 연방거래위원회는, 페이스북이 2012년 인스타그램, 2014년 와츠앱을 인수한 행위에 대해 ‘소셜 네트워크에서의 독점을 강화한 불법’이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법원은 지난 6월(칸이 연방거래위원장에 취임한 직후), 페이스북의 시장 독점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기각했다. 연방거래위원회는 8월19일 페이스북을 다시 제소하면서 ‘업계에 페이스북의 경쟁자가 많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예컨대 유튜브나 트위터, 틱톡은 일반 대중을 위해 만들어진 서비스인 반면, 페이스북은 특정 개인들을 대상으로 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이며, 이 기준에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스냅챗보다 훨씬 높은 점유율을 유지해왔다고 주장했다. 페이스북은 연방거래위원회가 과거 자사의 인수합병을 막지 않았음을 상기시켰다.

리나 칸의 등장과 미국의 반독점 법안 움직임이 한국에 주는 함의는 무엇일까? 양용현·이화령 KDI 연구위원은 지난 8월12일 KDI 포커스 ‘미국의 플랫폼 반독점 법안 도입과 시사점’에서 이 주제를 검토했다. 그들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거대 플랫폼에 가까운데, 2020년 기준 네이버와 카카오 시가총액의 합은 한국 GDP의 약 7%다. 이와 관련, GAFA의 시가총액을 모두 합치면 미국 GDP의 28%에 이른다. 즉, “적어도 현재로서는 네이버와 카카오의 지위가 GAFA와 비견될 만큼 공고하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국내 벤처투자시장 투자금 회수에서 인수합병이 차지하는 비율이 0%대로 매우 낮은 점을 고려하면, “미국에 상응하는 강한 인수합병 규제를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플랫폼 기업을 둘러싼 논란은 시작되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최근 카카오택시 스마트 호출 수수료를 5000원까지 받으려다 강한 반발로 인해 인상폭을 낮췄다. 1위 대리운전 업체와 합작사를 만들고 2위 대리운전 업체를 인수하는 데는 성공했다.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쇼핑과 동영상 검색 알고리즘을 조정해 자사 상품과 서비스를 검색 결과 상단에 올렸다며 네이버에 과징금 267억원을 부과했다.

문재인 정부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발의하는 등 ‘플랫폼 독점’의 폐해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 법률안에 미국 플랫폼 반독점 법안의 필수 조항인 ‘이해 상충 금지’ 같은 내용은 빠졌다. 이 정도의 법안 역시 공정거래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 간 규제 영역 다툼으로 인해 묶여 있는 상태다. 양용현 KDI 시장정책연구부장(경제학)은 “정부와 법조계, 학계가 플랫폼이 경쟁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포착해낼 수 있도록 문제의식을 가지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한 로스쿨생의 논문이 우리 시대 ‘독점’의 진정한 의미를 되묻고 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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