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의 플랫폼 노동자를 추산하는 내용의 연구보고서를 낸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시사IN 이명익

서울의 플랫폼 노동자는 얼마나 될까? 이를 추산할 수 있는 최초의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최근 ‘디지털 플랫폼 노동 실태와 특징 Ⅱ’이라는 보고서를 펴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지역 취업자의 약 9.3%인 46만1000명이 플랫폼에서 일감을 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지역 플랫폼 노동자의 평균연령은 43.9세였고, 남성(61.5%)이 여성(38.5%)보다 많았다. 3분의 2는 기혼(64.8%)이었다. 절반이 넘는 56.8%가 플랫폼 노동이 주업이라고 답했다. 이 연구를 총괄한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을 만났다.

어떻게 연구를 하게 되었나?

2019년에 시민 250명이 모인 서울시공론화위원회가 꾸려졌다. 당시 ‘플랫폼 노동 공론화’ 작업을 6개월가량 했다. 플랫폼 노동이 확산되고 있으니 서울시가 선제적으로 연구를 해서 제도·조례 같은 표준적 룰을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연구를 시작했고, 10~11월 두 달 동안 플랫폼 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플랫폼 노동의 규모, 어느 정도인가?

전국 취업자 중 7.6%인 179만명이 플랫폼으로 일감을 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서울은 취업자 중 9.3%인 46만1000명이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구했다. 서울의 취업자 열 명 중 한 명이다. 광의의 플랫폼 노동과 협의의 플랫폼 노동으로 나눌 수 있다. 같은 플랫폼이라도 일하는 사람들이 둘로 나뉠 수 있다. 예를 들어 온라인 앱을 통해 일감 한 건을 구해서 일하면 ‘광의의 플랫폼 노동’으로 본다. 외국에서는 이렇게 일하는 사람들을 플랫폼 경제 참여자라고 부른다. 이와 달리 플랫폼 기업이 업무의 배치, 지시를 구체적으로 하는 일자리라면 ‘협의의 플랫폼 노동’이다. 전업으로 배달 앱에서 일하는 ‘라이더’를 생각하면 된다. 협의의 플랫폼 노동자 규모는 전국은 취업자 중 0.92%(22만명)이고, 서울은 1.16%인 5만9000명 수준이다.

조사에서는 또 지역기반 오프라인 플랫폼 노동과 웹기반 온라인 플랫폼 노동으로 분류했던데?

2017년 이후 국제노동기구(ILO) 같은 국제기구에서 플랫폼 노동 개념 규정과 유형 구분 등을 두고 다양한 논의를 했다. 플랫폼 노동 유형은 크게 둘로 나뉜다. 플랫폼 앱을 통해 ‘업무 오더’를 받지만 실제 일은 오프라인에서 수행하는 지역기반 오프라인 플랫폼 노동. ‘배달 노동’을 생각하면 된다. 웹기반 온라인 플랫폼 노동은 업무 오더·업무 수행이 모두 온라인으로만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온라인 사이트·앱을 통해 디자인·영상편집 같은 일감을 받아 작업하고 온라인으로 결과물을 보내는 식이다. 서울 지역(협의)의 지역기반 오프라인은 1만7000명, 웹기반 온라인은 4만6000명 수준이다(중복 포함).

외국과 비교하면?

2018년 유럽연합(EU)에서 주요 회원국의 플랫폼 경제 참여자를 조사했는데 평균 11.9% 수준이었다. 국내와 차이가 크지 않다. 문제는 국제기구와 학계에서 ‘지금은 취업자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플랫폼 노동 규모가 향후 일자리 전반으로 더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한다는 점이다.

플랫폼 노동의 특징을 꼽자면?

누구나 앱에 접속해 일감을 구한다고 하면 성별 구분이 없을 것 같지만, 플랫폼 노동에서도 일자리의 성별 직무 분리가 뚜렷하다. 가사 청소·돌봄 관련 플랫폼 노동은 10명 중 9명이 여성이다. 물류·운송은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다. 이들 업종 간 ‘단가’ 차이가 30%가량 나기 때문에 성별 소득격차로 이어진다.

향후 본인의 일자리가 ‘지속 가능하다’고 답한 사람이 많고(84.5%), 18.2%만 이직 의향이 있다고 답한 게 뜻밖이다.

열 명 중 여덟 명이 이직 의향이 없다는 것인데, 이 정도로 응답했다면 플랫폼 노동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플랫폼 노동의 다수는 좋은 일자리가 아니다. 표준계약도 없고, 사회보험 가입 문제도 있다. 교육훈련에서도 배제되어 있다.

제도적 개선이라고 하면?

가령 건당 수수료율이 평균 15.2%였다. 수수료가 20~30%인 플랫폼 기업들도 있다. 플랫폼 기업이 초기 시스템을 만든 것 말고, ‘그 업무’와 관련해 하는 일이 없는데 이 정도면 ‘약탈적 수준’이다. ILO에서는 직업 알선을 하거나 구인구직 매칭을 할 때 10% 수수료를 가이드라인으로 삼고 있다. 플랫폼 기업의 과도한 수수료 문제를 해결하려면 약관법 같은 수수료 관련 법안을 개정해야 한다. 실업급여 같은 사회보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명함을 촬영하면 실제 타자수들이 입력해 명함을 정리해주는 앱이 있다. 전국에서 8000명이 재택근무를 한다. 그런데 AI 기술 발달로 거의 99% 글자를 읽는다고 한다. 기술이 점점 발달하면 저 일은 없어지고 실직자가 될 텐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이 사람들이 다른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교육을 해준다든가 일자리가 상실되었을 때 실업급여를 준다든가 하는 제도 개선이 논의되어야 한다. 실제로 10인 미만 사업장에서 월 220만원 미만 급여를 받는 노동자에게는 정부가 사회보험료를 최대 80%까지 지원해준다. 저소득 플랫폼 노동자도 이에 준해 지원하면 된다.

결국은 고용관계 기반이 아니라 소득 기반으로 제도와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예를 들어 플랫폼 노동자가 한 앱 회사에서 60%의 소득을 얻고, 다른 앱 회사에서 40%의 소득을 얻는다면, 두 회사가 각각 60%, 40%만큼 사용자 역할을 해야 한다.

서울의 취업자 열 명 중 한 명이 플랫폼으로 일을 구한다. 아래는 서울의 한 배달 노동자. ⓒ시사IN 이명익

외국에서는 제도개선이 어떤지?

ILO 190개 회원국 중에서 법을 만든 나라는 두 나라다. 독일은 지난해 11월 말에 플랫폼 노동자 보호대책으로 별도 법을 만들었다. 프랑스 같은 경우는 별도 법을 제정하지 않고 일반법으로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 3권을 인정했다. 한국은 지난해 12월에 플랫폼 노동 보호대책을 발표했다. 올해 입법화 준비를 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노동계는 ‘왜 별도 법을 만드느냐, 근로기준법상에 플랫폼 노동자를 집어넣으면 되지’ 하며 반대하는데, 과도기적으로 정부의 보호대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번 연구에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플랫폼 자본이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법, 제도, 규약은 전무하다. 수수료는 과다하고 사회적 안전망이나 노동권을 보호하지 않는 게 실태조사로 드러났다. 지원과 제도 마련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사각지대가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플랫폼 노동자들이 플랫폼 기업과 동등한 협상을 할 수 있도록 대등한 권리를 주어야 한다. 노조든 협회 같은 이해당사자 조직이든. 그래야 플랫폼 산업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이런 의제를 놓고 노사정이 합의를 해야 한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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