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포드 자동차 공장을 방문해 전기차 조립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AP Photo

“문제는 미국이 미래의 전기차 경쟁에서 앞서가느냐, 뒤처지느냐 하는 것이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30년까지 미국에서 판매할 신차의 50%를 무공해 자동차(ZEV)로 대체하겠다는 행정명령을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그의 발언은 표면적으로 ‘전기자동차 목표’를 내걸었지만 실은 지구온난화 주범인 온실가스(그중 하나가 자동차 배기가스)를 줄이기 위한 고육책이기도 하다. 포드, GM, 스텔란티스 등 미국 3대 자동차 업체가 자발적 동참을 약속했다. 전미자동차노동조합(UAW)도 긍정적 반응을 보이면서 바이든의 구상은 일단 순조롭게 시작했다. 하지만 바이든의 목표는 내연기관 중심의 미국 자동차산업을 전기차 쪽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만만한 일이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22일 ‘지구의 날’에 ‘오는 2030년까지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금보다 최대 52%까지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사상 최악의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을 막기 위해 세계 각국이 온실가스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바이든도 야심찬 계획을 제시한 것이다. 지난해 세계 각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중 1위는 100억t의 중국(글로벌 대비 28%), 2위는 54억t의 미국(15%)이다. 또한 미국에서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은 운송 부문이었다. 개인 승용차, 스포츠유틸리티(SUV), 1t 미만 픽업트럭 등이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려면 내연기관 중심의 자동차산업을 무공해 전기차 산업으로 재편할 수밖에 없다는 게 바이든의 생각이다. 프린스턴 대학 지구환경학자인 마이클 오펜하이머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목표는 기후변화 맥락에서 취하는 산업정책의 첫 실례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기업들이 내연기관 자동차를 더 이상 만들지 못하게 하려면 차량의 배기가스 기준을 대폭 높이면 된다. 기업들로서는 전기차를 생산할 인센티브를 갖게 되는 셈이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2026년까지 신차의 평균 연비를 현재 1갤런(약 3.785L)당 43마일에서 52마일까지 높이겠다는 지침을 제시했다. 2012년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목표치와 거의 비슷하다. 오바마가 자동차업계와 합의한 내용에 따르면, 1갤런당 31.4마일에 불과한 연비를 해마다 5%씩 높여 2025년까지 최대 54.5마일로 향상(온실가스 50% 감축)시키는 것이었다. 공화당 트럼프 행정부는 연비를 매년 1.5%씩 높이는 것으로 오바마의 계획을 크게 완화해버렸다. 환경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바마 전 대통령의 연비 목표를 복원하면서 온실가스 감축은 물론 전기차 산업도 발전시키겠다는 심산이다.

미국은 친환경차 부문에서 유럽이나 중국에 비해 다소 뒤져 있다. 전임 트럼프 행정부가 2017년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고 자동차 연비 개선 속도를 늦추는 등 친환경 자동차와 거리를 두는 동안 유럽연합과 중국이 미국을 추월했다. 특히 유럽연합은 오는 2036년까지 모든 휘발유 자동차를 퇴출시킨다는 목표 아래 1차로 2030년까지 전체 차량의 55%를 무공해 전기차로 대체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를 위해 자동차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효과를 거뒀다. 독일 정부는 전기차 구매자에게 9000유로(약 1220만원), 영국 정부는 8000파운드(약 1280만원)를 환급하며, 노르웨이는 전기차 구매자에게 부가가치세 25%를 면제해준다. 이에 따라 전기차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중국 정부도 전기차 구매자에게 1만8000위안(약 320만원)을 지원해준다. 특히 중국엔 차량 충전소가 168만 곳이나 있다. 유럽의 28만6000개, 미국의 4만6000개에 비할 바가 아니다.

‘충전소 대폭 확대’와 소비자 선호도가 변수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1월 출범하면서 미국의 3대 자동차 업체들도 뒤늦게 추격전에 나섰다. 2025년까지 포드는 300억 달러 이상, GM은 350억 달러, 스텔란티스는 355억 달러 이상을 전기자동차 개발에 투자하려 한다. 특히 GM은 2035년까지 모든 휘발유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고 전기차로 전환하겠다고 지난 1월 발표해 신선한 충격을 줬다. 포드와 스텔란티스도 2030년까지 신차의 40%를 전기차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미국산 전기차의 성장 전망은 밝은 편이다. 지금은 테슬라가 전기차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점유율이 높지만, 아마존 투자를 받은 ‘리비안’이 올해 내로 픽업트럭과 SUV 등을 전기차로 출시할 전망이다. 애플도 구글과 손잡고 이 시장에 뛰어들 태세다. 퓨리서치센터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동차를 소유한 미국 국민 가운데 7%가 현재 전기차를 갖고 있으며, 39%는 적극적 구매 의사를 보였다. 구체적으로 지난해 기준 전기차 등록 대수는 180만 대로 2016년의 세 배가 넘는다.

그러나 장벽들도 만만치 않다. 일단 충전소가 턱없이 부족하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차량 충전소는 고작 4만6000개 정도다. GM 등 3대 자동차 업체는 바이든 대통령의 친환경 전기차 목표에 동참하겠다고 했지만 그 조건으로 연방정부에 전기차 시장 확대를 위한 전폭적 지원을 요구했다. 요구사항 중에는 소비 진작을 위한 세금 혜택은 물론 전기자동차 생산시설 및 충전소 구축을 위한 정부 지원 등이 포함되어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전기차 생산과 구매, 나아가 미국 전역에 50만 개의 충전소 확충을 위해 예산 1740억 달러를 의회에 요청했다. 하지만 상원에 계류 중인 관련 예산안을 보면 ‘전기배선망 확충비’ 730억 달러, ‘충전소 건설비’ 75억 달러 등 고작 785억 달러가 편성되었다. 또 다른 법안은 전기차 세금 혜택 및 연구개발 지원 등의 조항을 담고 있으나 공화당 협조 없이는 통과하기 힘든 상황이다.

‘충전소 대폭 확대’ 못지않게 중요한 핵심 변수는 소비자 선호도이다. 미국인들은 전통적으로 가솔린 차량을 선호해왔다. 이런 구매 심리가 하루아침에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올해 상반기 미국 내 전기자동차 판매율은 겨우 3.8%(20만여 대)에 불과했다. 3대 자동차 업체들의 주 수입원도 가솔린 자동차였다. 따라서 이들의 수익구조가 전기차 중심으로 바뀔 수 있도록 연방정부가 뒷받침하지 않는 한 2030년 40~50%까지 신차 모델을 전기차로 바꾸겠다고 한 이들 업체의 약속은 지켜지기 힘들다. 더욱이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행정명령은 의무 사항이 아니어서 자동차 업체들이 수익성을 이유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해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

전기자동차 시장 전환에 따른 일자리 감소에 자동차 노조원들이 크게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조합원 40만명을 거느린 전미자동차노동조합은 “우리는 목표의 마감 시점이나 비율에 집중하지 않고 미국 중산층의 요체인 임금과 복지혜택을 지키는 데 전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전기차 시장으로 전환하는 데 따른 일자리 손실을 우려했다. 환경법 전문가인 조지 프리먼 하버드 법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백악관이 올 연말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내놓겠지만 정치적·법적 장애물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그는 “바이든의 친환경 정책이 시행되는 과정에 의회와 법원에서 진영 간 투쟁이 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