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소경제’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월17일 수소경제 로드맵을 발표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같은 날 울산을 찾아 “요즘 수소차 부문은 내가 아주 홍보모델이에요”라고 말했다. 정부의 여러 정책이 발표 당시의 계획대로 추진되기가 쉽지 않지만, 대통령이 무게를 실은 정책일수록 정부의 관심과 자원이 모이기 마련이다. 결국 수소경제라는 비전은 거스를 수 없는 국가적 어젠다가 된 셈이다.

대통령의 행보는 수소경제에 대한 관심을 모으는 데 크게 기여했다. 로드맵 발표 이후 수소차와 관련된 보도가 쏟아졌고, 증권가에선 ‘수소 테마주’로 분류되는 기업의 주가가 급등했다.

이즈음에서 수소경제의 가능성을 냉철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소에너지가 전체 에너지원 가운에 얼마나 비중을 차지할지, 수소차가 미래의 자동차 시장을 어느 정도 점유할지가 관건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어렵지만 과거의 사례를 살펴보면 정부와 기업, 정치권과 언론 등 각자가 어떤 일을 맡아야 할지 참고가 될 수 있다.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17일 현대자동차의 수소 연료 전지차 ‘넥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수소경제 로드맵은 두 가지 기술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와 와이브로(Wibro·무선 광대역 인터넷)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OLED는 스마트폰·모니터·텔레비전에 두루 쓰이며 시장화에 성공한 기술이고, 와이브로는 국내에서만 상용화됐으나 그마저도 올해 3월 말에 할당된 주파수의 사용 기한이 종료된다(주파수 재할당 가능성이 낮아 머지않아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두 기술 모두 한국 기업이 첨단에 서서 개발을 이끌었고, 강력한 경쟁 기술이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OLED의 경쟁자는 LCD(액정디스플레이)였고, 와이브로의 경쟁 상대는 현재 대중화된 LTE였다.

수소차, OLED 될까 와이브로 될까

왜 OLED는 성공하고 와이브로는 실패했을까. OLED는 경쟁자 LCD와 대비해 장점과 단점이 뚜렷했다. LCD에 비해 얇고 화질이 좋으며, 화각(화면을 볼 수 있는 각도)도 넓다. 전력 사용량이 적고, 기술 개발에 따라 구부리거나 접는 것도 가능하다. 최근 CES(세계 가전 전시회)에서 공개돼 화제가 된 LG전자의 ‘롤러블TV’의 소재도 OLED다. 다만 대형 화면으로 만들기 어렵고 가격이 비쌌다. 마치 수소차가 전기차에 비해 충전 속도가 빠르고 주행거리가 긴 장점을 가진 반면 가격이 비싸고 충전 시설을 찾기 어렵다는 단점을 가진 것과 유사하다. 전기차의 충전 속도가 빨라지고 주행거리가 늘어나듯이 LCD의 단점도 기술이 발전하면서 급속도로 개선됐다.

OLED의 장점이 상쇄될 만큼 LCD 기술이 발전하고 있었는데도 OLED 시장이 확대된 까닭은 무엇일까. 적절한 시점에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소형 OLED 패널 시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마침 스마트폰 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한 삼성과 LG가 OLED 기술 개발을 주도했다. OLED의 성공은 여러 우연과 전략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연합뉴스와이브로는 LTE와의 기술표준 경쟁에서 패했다. 아래는 2005년 열린 ‘KT 와이브로 서비스 개통식’.


와이브로는 LTE와의 기술표준 경쟁에서 완패했다. 개발 속도는 국내 업체들이 주도한 와이브로가 빨랐지만, 미국과 유럽 통신업체가 노키아와 퀄컴 등이 개발한 LTE를 기술표준으로 채택하면서 경쟁에서 밀렸다. LTE가 3세대 이동통신인 WCDMA(Wideband Code Division Multiple Access)와 같은 계열의 기술이라 호환성이 높은 이유도 있었지만, 사실 경쟁다운 경쟁조차 해보지 못했다. 와이브로는 개발이 된 한국에서조차 제대로 써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와이브로 상용화를 위해 특정 주파수를 ‘와이브로 전용’으로 할당했지만, KT와 SK텔레콤은 주파수를 할당받고 나서도 와이브로를 사용하는 휴대전화 도입에 미온적이었다. 대신 ‘에그(egg)’라 불리는 무선공유기나 와이파이망 구축용 등 보조적 통신망으로 활용했다.

SK텔레콤과 KT가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데이터 통신시장이 조기에 개화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기존 주 수익원인 음성 통화의 매출을 갉아먹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4세대 통신기술은 데이터를 이용해 음성 통화를 하기가 용이했다. 이는 기업이 스스로 자신의 이익을 깎아먹는 결정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독일 자동차 업체의 ‘디젤게이트(디젤의 연비를 조작한 사건)’가 보여주듯 기업은 때론 범죄를 저지르면서까지 기존 수익원에 집착한다.

정부가 진정으로 와이브로를 대중화할 의지가 있었다면 통신사들의 이해를 적극 조정했어야 한다. 하지만 전 세계 시장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않고 섣부르게 이해를 조정했다면 더 큰 투자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결국 새로운 기술과 산업이 동틀 때 정부가 할 일은 ‘이해관계 조정’과 ‘냉철한 현실 인식’이다. 수소경제 로드맵에서 문재인 정부는 두 가지를 제대로 하고 있을까?

2015년 터진 디젤게이트 이후 전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는 차세대 친환경 자동차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졌다. 지난해 12월 격론 끝에 타결된 유럽연합(EU)의 합의안에 따르면 새로 출시된 자동차에서 나오는 탄소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37.5%나 줄여야 한다. 이와 같은 공격적인 목표를 달성하려면 친환경 차의 대중화가 불가피하다. 수소차의 성패는 전기차와의 경쟁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느냐에 달렸다. 시장이 커질수록 자동차 단가는 낮아지고, 충전 인프라 확충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수소차는 전기차에 비해 명확한 장점이 있다. 전기차는 급속 충전을 해도 20분이 넘게 걸리지만, 수소차는 5분이면 충분하다. 수소차는 한 번 충전하면 주행거리가 무려 600㎞에 달한다. 내연기관에 비해 두드러지는 전기차의 단점이 수소차에는 없는 셈이다. 반면 수소차는 생산단가가 높고, 충전하는 수소의 가격이 비싸며 충전 시설을 설치하는 비용도 많이 드는 단점이 있다.


ⓒ연합뉴스2017년 11월17일 린데코리아의 ‘하이! 에너지 존’에서 모델들이 수소차 충전을 시연하고 있다.

수소차의 가격은 현대차 넥쏘(수소차)의 경우 7000만원 남짓이다. 올해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대당 3500만원가량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연료전지의 핵심 소재인 ‘백금’이 고가라서 가격 하락에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 차량 가격을 낮출 유일한 길은 ‘규모의 경제’가 가능할 정도로 수소차가 대중화되는 것이다.

정부의 수소 충전소 설치 목표 ‘미흡’

연료로서 수소의 경제성도 논란이 있다. 현대차 넥쏘는 충전 비용이 ㎞당 108원인 데 비해 코나(전기차)는 ㎞당 29원이다. 문제는 구조적인 환경 때문에 수소 단가가 앞으로도 크게 개선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수소를 얻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석유화학 산업에서 부산물로 생성되는 ‘부생수소’이고, 다른 하나는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얻는 ‘수전해’다. 부생수소는 이미 석유화학 산업에서 재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물을 전기분해하는 ‘수전해’는 그냥 전기를 배터리에 충전하는 것보다 효율이 떨어진다.

결국 수소를 얻는 가장 손쉬운 방식은 천연가스에서 이를 추출하는 것이다. 한국은 도시가스 배관이 잘 구축되어서 수소 충전소 설치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충전소 설치 비용이 비싼 게 걸림돌이다. 박진남 경일대 교수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천연가스에서 수소를 추출하는 충전소 건립 비용은 부지 비용을 제외하고 약 50억원에 달한다. 정부가 올해 충전소 한 곳당 보조금 15억원을 지급한다고 밝혔지만, 이를 감안해도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한국에 앞서 수소경제 로드맵을 밝힌 국가는 일본뿐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번 로드맵 발표로 수소차 시장을 선점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거꾸로 유럽과 미국, 중국은 아직 수소차 시장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단계라는 의미다.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대표적 수출 품목이다. 해외에서 수소차 시장이 열리지 않으면 아무리 한국 기업이 그 시장을 선점해도 의미가 없다. 국내 시장이라도 수소차의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을지 여부는 충전소 인프라에 달렸다. 정부의 로드맵이 제시한 수소 충전소 목표치는 2040년 기준 1200개다. 일본이 제시한 목표치인 2030년 900개와 근사한 수치다. 이 정도로 수소차가 활성화될까. 참고로 2018년 기준 전국 주유소는 1만2000여 곳, 전기차 충전소는 6000여 곳이다.

마지막으로 수소경제 비전에 제기해야 할 중요한 질문은 ‘누가 이익을 얻는가’이다. 신기술 시장화가 지체된 사례의 대부분은 정부의 이해 조정 실패에서 비롯됐다. 시장 예측이든, 정책 결정이든 각 주체들의 이해관계를 세밀하게 이해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기자명 윤형중 (LAB2050 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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