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민주화동지회 회원 5명이 〈시사IN〉에 모였다. 왼쪽부터 윤병선, 양운신, 황진도, 이부영, 이주영씨. ⓒ김흥구

1989년 전교조 창립 당시 해직 교사들이 다시 뭉쳤다. 당시 교육민주화를 주장하며 교원노조를 결성했다는 이유만으로 대량 해직된 1527명이다. 그 가운데 간부들은 권위주의 정권의 탄압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해직된 뒤 구속되었다. 이후 그들은 1994년, 1998년, 1999년 세 차례에 걸쳐 우여곡절 끝에 원상 복직이 아닌 ‘특별채용’ 형식으로 교단에 돌아갔다.

초기 전교조 대량 해직자들은 2018년 현직 교사들이 중심인 전교조와 별도로 ‘교육민주화동지회’를 결성했다. 지난봄, 이들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 교사들을 상대로 자행된 인권유린과 국가폭력의 진실을 규명해달라고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의 문을 두드렸다. 노태우 정권이 자행한 전교조 탄압의 실상이 30여 년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제대로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전교조에 대한 공권력의 주도면밀한 ‘공안 프레임’ 씌우기와 위헌적이고 위법적인 탄압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결과 아직도 사회 일반에 교육민주화 운동에 대한 오해와 왜곡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전교조 참여 교사들에 대한 대규모 해직과 구속뿐 아니라 은밀히 자행된 국가폭력으로 인한 무수한 인권유린 피해가 철저히 외면당해왔다고 호소한다.

진실 규명을 신청한 해직 교사 5명이 피해당사자로서 〈시사IN〉에 모였다. 이부영 전 전교조위원장(76·전 송곡여고), 황진도 교육민주화동지회장(69·전 인천인화여고), 이주영 선생(66·전 장충초교), 윤병선 선생(63·전 서울고), 양운신 선생(63·전 부천소명여고) 등이다.

1527명 해직 교사들은 어떻게 지내나?

황진도:30여 년이 흘러 대부분 은퇴했고, 현직이 4분의 1 정도다. 150여 분은 작고했다. 해직자들이 한꺼번에 모이기 어려워 전국 각 지역단위로 모임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에 상징적으로 247명이 2기 진화위에 진실 규명을 신청했다.

양운신:현직 전교조 위원장이 신청인 대표로 들어갔지만 이부영, 황진도, 윤광장 선생 세 분이 피해당사자 자격으로 신청했다.

전교조 탄압을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로 보는 근거는?

이부영:교원노조 결성 운동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과 교육기본권 운동사에 획을 긋는 사건이다. 권위주의 정권이 위헌적이고 위법한 공권력을 행사해 탄압했던 것은 극히 일부분만 알려졌을 뿐이다. 정보기관이 초헌법적 방법으로 행정부 각 부처를 움직여가며 전교조 운동을 탄압한 사실이 일부 드러났지만 그 문서가 제대로 공개되고 조사된 일은 없다. 그 진상을 규명해달라는 거다.

황진도:전교조 결성 탄압 사건은 위법적 권위주의 정권의 공권력 행사로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이뤄진 인권침해 사건이다. 그 배후에 안기부의 용공 조작 공작이 있었다. 반드시 진실이 규명돼야 할 중요한 역사적 사안이다.

어떤 인권침해가 이루어졌나?

이주영:전교조 결성 운동 탄압의 역사는 1989년 5월28일 전교조 결성식 전과 후로 나뉜다. 전에는 교육민주화를 주장하던 분들이 고문당하고 감옥 가고 심지어 돌아가시기까지 했다. 작년에 내가 전교조 초기 역사를 일구다 비운에 돌아가신 교사 12명의 일대기를 다룬 〈교육 열전〉을 펴냈다. 윤영규, 이순덕, 배주영, 신용길, 길옥화, 정영상, 이광웅, 김덕일, 김종만, 최금기, 박정오, 유상덕 선생님이다. 전교조 결성 전후로는 안기부·검찰·경찰 등 공안기관이 개입한 노골적인 용공 조작 사건과 비인도적인 탈퇴 강요가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양운신:이순덕 선생님이 계셨다. 그분은 1987년 교육민주화 선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다른 학교로 발령 났는데 거기서도 계속 감시당했다. 장학사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감시·밀고를 종용하고, 심지어 교장 측 남자 교사가 발로 이 선생님의 배를 걷어차서 쓰러뜨렸다. 결국 이런 사건들이 원인이 되어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다.

황진도:배주영 선생님은 전교조 가입 후 해직돼 생활이 어려워지니 학교 앞 하숙집을 나와 친구와 함께 더 싼 방을 얻었다. 1990년 2월19일 홍익대에서 전교조 전체 행사가 열렸는데 졸업식 날과 겹쳤다. 해직당하던 때 제자들에게 졸업식만은 참석하겠노라고 다짐했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날 밤 연탄가스로 돌아가셨다. 졸업식장에 약속한 선생님이 안 오시는 걸 이상히 여긴 제자들이 배 선생님 집으로 갔다가 시신을 발견하고 대성통곡했다. 제1호 전교조장으로 보내드렸다.

이주영:길옥화 선생님은 당국의 모진 탈퇴 각서 강요에 맞서 교육자로서 양심을 지키려다가 돌아가신 분이다. 1994년 정부에서 전교조 탈퇴 각서를 쓰면 복직시키겠다고 했다. 4년간 버티며 교육자로서 양심을 지켜왔는데 탈퇴 각서 압박이 파상적으로 들어오자 결국 투신으로 양심을 지키는 길을 택하셨다. 그 사건이 있고 나서 정부는 부랴부랴 탈퇴 각서 대신 ‘전교조 활동을 자제하겠다’는 문구에 도장을 찍는 것으로 대체했다. 양심에 대한 침해는 복직 과정까지 계속됐다.

1989년 5월28일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전교조 결성식에 참석한 교사들이 연행되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공

안기부가 공안 조작한 피해 사례는?

황진도:1989년 5월28일 한양대에서 전교조 출범식을 했다. 그날을 디데이로 잡아 안기부가 전교조 가입 교사들을 상대로 ‘좌경 교사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치밀하게 조작했다. 그해 5월22일, 24일, 26일 세 차례에 걸쳐 교사 세 명을 국보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이틀 간격으로 공안 사건을 조작해 언론에 파상적으로 유포함으로써 ‘전교조에는 빨갱이가 많다’는 프레임을 확산시키려 한 것이다. 체포된 교사는 서울에서 두 분, 그리고 충북의 강성호 선생님이었다. 혐의는 교단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북침설(한국의 북한 침공으로 한국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설)’을 가르쳤다는 등 황당한 용공 조작 내용이었다. 그중 서울 2건은 법원이 무죄를 선고해 안기부의 기획·조작임이 입증됐다. 충북 강성호 선생 사건만 유죄로 나와 현재 재심을 신청해둔 상태다.

윤병선:전교조 결성식을 나흘 앞두고 안기부가 강성호 선생을 좌경 교사로 대대적으로 언론플레이한 뒤 구속시킨 공안 사건이다. 강 선생이 가르친 제자가 600명이었다. 그중에 6명만 북침설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나머지 제자는 모두 부인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강 선생님을 학교로 돌려보내달라고 요구했다. 북침설을 들었다고 말한 학생 6명 중 한 명은 그날 결석한 것으로 법정에서 밝혀졌다. 다른 한 명은 수업 중 뒤에서 자느라 다른 수업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고 증언했다. 그런 식으로 안기부가 억지로 만들어낸 사건인데, 정부와 보수언론은 마치 이 사건이 전교조가 용공 세력의 징표인 것처럼 여론몰이하는 데 실컷 이용했다. 현재 재심을 신청해 선고를 앞두고 있다.

역대 정부는 전교조 교사 징계 과정에서 인권침해나 절차상 하자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황진도:국가공무원법 위반을 들어 징계하겠다면서 엄연히 지켜야 할 징계위 절차조차 무시했다. 오직 미리 안기부와 청와대가 짠 각본대로 대량 해직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윤병선:안기부 주도로 정부 각 부처가 총동원되어 전교조 탈퇴 각서를 강요하는 과정에서 인권유린이 극심했다. 반상회마다 전교조 가입 교사는 빨갱이라고 몰아대니 탈퇴하지 않고 버티는 교사 가족은 비난을 받고 왕따가 됐다. 이런 인권유린은 전국적으로 자행되었다.

황진도:정부의 비인도적 행위로 부산에 있는 이 아무개 선생 아버지가 세상을 등졌다. 반상회에서 주민들이 전교조 탈퇴하지 않은 이 선생을 빨갱이라고 욕하며 ‘딸을 어떻게 키웠냐’고 손가락질해댔다. 아버지는 “우리 딸이 왜 빨갱이냐”라고 맞서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셨다. 평생 씻지 못할 트라우마를 안겨준 국가폭력의 상징적 사건이다.

양운신:당시 내 외삼촌이 현직 중학교 교장이었다. 같이 교직의 길을 걸으니 만나면 반갑게 지내다가 전교조 가입 후 탈퇴를 안 했다고 “빨갱이 왔구먼” 하면서 아주 냉랭하게 대했다. 내가 시를 한 편 써서 보내드렸다. “복직만 되면 쫓겨난 교실에 가서 왔노라 살아 있노라, 복직만 되면 방학 때 귀향한 조카에게 ‘빨갱이 왔구먼’ 하고 냉소를 보내던 외삼촌 교장선생님께 역사는 정의의 편이었다고 한마디 하겠노라.”

1989년에 열린 해직 교사 원상복직 촉구 대회. 이후 복직에 앞장선 교사들도 해직되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공

전교조 결성 직후에는 어떤 일을 당했나?

황진도:전국적으로 경찰과 장학사, 교장, 교감 등이 교사 본인이 없는 틈을 타 집에 찾아가 부인에게 “남편 전교조 탈퇴시키지 않으면 굶어죽게 만들겠다”라고 협박했다. 여교사는 시아버지를, 미혼 교사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협박했다. 실제로 그 과정에서, 가족이 괴롭힘 당하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탈퇴 각서를 쓴 동지들이 적지 않았다. 안기부 측은 그런 방식으로 하루 몇 명씩 탈퇴했다며 전교조 와해 선언도 했다. 우리는 실제 탈퇴자는 몇 명이라고 밝히며 탈퇴 무효 선언으로 맞섰다.

윤병선:어떤 선생님은 당국에서 아버지를 찾아가 전교조 탈퇴 각서를 받아갔다. 결과적으로 징계를 당하지는 않았다. 본인은 “난 탈퇴 각서를 안 썼다”라고 주장했지만 해직 대상에서 빠졌다. 그 선생은 평생 마음고생을 했다. 양심을 지키다 해직된 동료들 생각에 스스로 자괴감이 든 거다. 정반대 사례도 있다. 인천의 한 선생님은 아버지가 대신 탈퇴 각서를 냈다. 그러나 본인이 끝까지 자기 양심을 지키겠다며 버텨 끝내 해직의 길을 택했다.

정보기관의 감시와 탄압은 언제까지 이어졌나?

황진도:복직 이후 김영삼 정부 때까지 계속 사찰했다. 전교조 교사는 경찰과 안기부만이 아니라 보안사로부터도 사찰을 당했더라.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에서 들고 나와 폭로한 민간인 사찰 파일에 전교협과 전교조 명단이 나온다. 해직 교사에게는 늘 정보과 형사가 한 명씩 붙었다. 사찰은 복직하고 나서도 계속됐다.

양운신:해직 교사들이 먹고사는 일까지 막았다. 한 동료는 떡볶이 장사를 했는데 경찰이 와서 ‘여기는 전교조 해직 교사가 하는 곳’이라며 손님을 쫓았다. 계속 장사하니까 군청에 보건법 위반으로 신고해 내쫓았다.

이주영:해직 교사가 쉽게 갈 곳은 사설 학원밖에 없었지만 정보기관이 학원 측을 협박해서 다들 내몰았다. 나는 지역 신문사에 기자로 들어갔다가 1년도 안 돼 쫓겨났다. 그 지역 경찰서 정보과 계장이 내가 일한다는 걸 알고 사장을 협박한 거였다. 정보기관이 학부모 모임까지 동원해서 해직 교사의 직장을 압박했다. 참 잔인한 인권유린을 당했다.

전교조 탄압 과정에서 제자들도 고통을 겪은 것으로 안다.

양운신:선생님이 해직되니 “우리 선생님 빨갱이 아니고 우리 선생님은 북한 찬양한 적 없다”라고 학생들이 나섰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퇴학을 당해 중퇴생이 됐다. 그래도 교사는 이 시대에 대학 나왔다고 밥 벌어 먹고사는데…. 동료 교사들도 그 얘기만 나오면 굉장히 괴로워한다.

윤병선:선생님을 탄압하지 말고 돌려달라고 항의하며 투신자살한 학생도 둘이나 있었다. 전남 김철수군과 대구 김수경양이다. 그 부모들 마음은 또 어떻겠는가. 역대 정부는 그런 야만의 시대에 대해 한마디 사과도 없다. 매년 두 제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전교조 전남, 대구 지부에서 각각 추모행사를 연다. 지난 30주기 때는 우리가 추모회에 장학금을 모아서 전달했다.

이주영:우리를 돕다가 퇴학당하고 어렵게 사는 아이들을 찾아내서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제자만이 아니라 그 부모들 또한 우리를 걱정해주며 도왔는데 세월이 흘러 어디 계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 분들을 기억하는 마음을 확산시켜 나가야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황진도:당시 학부모들도 교실 복도를 꽉 채워 도열해 우리가 끌려가지 않고 수업할 수 있게 지켜줬다. 우리가 국가폭력의 부당한 희생양이었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밝혀내 정당하게 명예회복이 되어야 그런 분들한테 고맙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양운신:지금 사회 곳곳에 진출한 제자들에게도 선생님이 센 쪽에 안 붙어도 명예가 회복되고 당당해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현재로서는 옛 제자를 만나면 “선생님, 센 쪽에 안 붙어서 30년이 지나도 지금까지 고생하잖아요”라고 말해도 할 말이 없다.

이부영:그게 지금 정의에 대한 담론이고 사회적으로 더 성숙된 생각을 가져주기 바란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늘 반성할 것이 항일 독립운동가는 그 자손까지 대를 이어 가난하고, 그걸 국가가 제대로 보상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경계해야 할 것이 역사적 패배 의식이다. 그런 점에서 전교조 운동이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교육운동의 역사 속에 전교조가 당당하게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이주영:지금은 전교조 해직 교사들의 명예가 정말 형편없다.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방법을 총동원해 우리를 탄압했던 세력과 그들을 옹호하는 보수언론은 당당한데 우리가 전전긍긍한다는 게 참으로 말이 안 된다. 우리가 뭘 잘못했나. 그들은 우리가 잘못했으니 당한 것도 당연하다는 식으로 적반하장식 궤변을 펴고 있지 않나.

이부영:우리는 4·19 교원노조를 계승하는 입장인데 그 당시 주축으로 활동했던 이목 선생님이 지난 6월10일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또 작고하신 전교조 유상덕 전 수석부위원장도 모란장을 받았다. 과거에 빨갱이로 매도되어 끌려갔던 사람들이 지금 국민훈장을 받는다는 것은, 국가가 전교조에 잘못했다는 증거다. 용공 조작과 참혹한 인권침해에 대해 현 정부는 아직 사과의 말 한마디 없다. 촛불혁명 정신을 계승한 정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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