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팩스가 아니었다. 9월3일 대법원의 법외노조 취소 판결이 난 이튿날, 고용노동부 관계자가 직접 서울 서대문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사무실을 찾았다. 7년 전 법외노조를 통보하며 팩스 한 장만 보내던 때와는 다른 태도였다. 신속한 처리였지만, 전교조는 ‘지연된 정의’라고 지적한다. 이 말은 길었던 시간만큼 벌어진 일도 많았던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을 읽는 키워드다.
박근혜 정부의 고용노동부는 2013년 10월24일 전교조에 법외노조 통보를 했다. 조합원 6만여 명 중 해고된 교사 9명을 이유로 들었다. 사학 비리 고발, 교육감 투표 독려 문자 발송 등의 이유로 해직된 이들이었다(〈시사IN〉 제355호 ‘법 바깥에 선 스승들 모두 견디고 있구나’ 기사 참조). 고용노동부는 해고자도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전교조 규약을 문제 삼았다. 근거는 노동조합법 제2조 4호(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할 경우, 노조로 보지 않는다) 및 시행령 제9조 2항(설립신고 반려 사유가 발생할 경우, 노조로 보지 않는다는 통보를 해야 한다)이었다. 교원노조법과 시행령도 위 법과 시행령을 그대로 적용한다.
전교조는 반발했다. 시행령으로 헌법상 보장된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게 반박의 핵심이었다. 국제노동기구(ILO) 또한 “조합원 자격요건의 결정은 노조가 정할 문제”라며 한국 정부에 노동조합법 개정을 여러 차례 요구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가 법외노조 통보를 밀어붙이자 전교조는 규약 수정(해고자 노조 탈퇴)을 내부 찬반 투표에 부치기도 했다. 조합원의 선택은 ‘차라리 법외노조’였다. 조합원 68%는 전교조가 법 바깥으로 밀려나더라도 해고자를 내치지 않아야 한다는 쪽에 손을 들었다.
긴 소송이 시작됐다(아래 표 참조). 전교조는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를 취소해달라는 가처분과 본안소송을 같이 냈다. 2013년 가처분 1·2심에서는 전교조가 연이어 이겼다. 본안 1심의 판단은 달랐다. 2014년 6월 서울행정법원 13부(재판장 반정우)는 고용노동부의 손을 들어줬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가 정당했다고 판단했다. 전교조는 본안 1심 결정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소송에서도 같은 해 9월 승리를 거뒀다. 법외노조 통보의 효력이 정지되었다.
이처럼 전교조와 고용노동부가 치열한 법리 다툼을 벌이던 당시, 그들을 주목하는 세력이 있었다. 바로 ‘양승태 대법원’이다. 2014년 12월3일 대외비로 작성된 법원행정처 문건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가 당시 양승태 대법원의 인식을 보여준다.
대법원은 그들의 열망이었던 ‘상고법원’ 추진에 청와대 등의 지원이 절실하다며, 전교조 가처분 사건을 은밀히 검토했다. 가처분에서 대법원이 전교조의 패소(재항고 인용 결정)를 결정하면, 박근혜 청와대와 양승태 대법원 “양측에 윈윈의 결과”라고 예측했다. 대법원의 가처분 결정 시기에 대한 정무적 판단까지 내렸다.
이후 일어난 일은 해당 법원행정처 문건에서 검토했던 내용과 유사하게 흘러갔다. 2015년 6월 대법원은 가처분에서 전교조의 효력정지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파기환송했다. 같은 해 8월,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를 준비하며 법원행정처는 이 사건을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로 꼽았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가처분 파기환송심(서울고등법원 행정10부 재판장 김명수. 현 김명수 대법원장이 당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였다)은 다시 법외노조 효력을 멈추라는 판단을 내렸다. 사건은 해를 넘겼고, 2016년 1월 본안 2심의 결론은 전교조 패소였다.
“왜 2507일이나 걸려야 했나”
그 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밝혀졌고, 조기 대선이 치러졌다. 제19대 대선에 출마한 문재인 후보는 “법외노조 조치를 해결하겠다”라고 밝혔다.
수면 아래 진행되던 사법농단의 실체가,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법원의 1·2·3차 진상조사위를 거쳐 검찰 수사로 밝혀졌다. 재판 거래가 의심되는 목록에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도 이름을 올렸다. 대법원이 이 사건을 2019년 12월 전원합의체로 회부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지난 5월20일 공개변론에 이어, 9월3일 김명수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10대 2로 전교조 승소를 선언했다. “해당 시행령이 헌법상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제약한다.” 상위인 노조법에 법외노조 통보에 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해당 시행령은 ‘법률유보원칙(법률적 근거 없이 행정권을 발동할 수 없음)’에 반한다는 지적이다.
김재형·안철상 대법관은 ‘법외노조 취소’라는 결론에서는 다수 의견과 동일하다. 그러나 결론에 이르는 논리는, 시행령을 문제 삼은 다수 의견과 좀 다르다. 해고자의 노조원 자격을 제한하는 노동조합법 제2조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지형 대법관은 입법부와 행정부의 모순된 처사를 공개적으로 질타했다. “해직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국회 입법은 수년째 답보 상태다. 정부는 스스로 해직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개정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도 이 사건에서 원고가 법외노조라는 입장은 거두지 않고 있다(김재형).”
9월7일 기자회견에서 해직 교사 손호만 전교조 해고자원직복직투쟁특별위원회 위원장의 말도 궤를 같이한다. “판결이 너무 늦었지만 사법농단의 한 축이었던 대법원이 이번 판결로 자기 역할을 했다. 온 나라 권력이 총동원된 노조 파괴 행위였다. 한편으로는 허탈한 마음이 든다. 왜 2507일이나 걸렸는지. 팩스 한 장으로 가능한 직권취소였지만, 대법원 공개변론에서 문재인 정부 고용노동부도 박근혜 정부 고용노동부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가 적법이라고 주장했다. 국가 차원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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