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농대를 졸업했느냐는 질문에 최현주 어글리어스 대표(32)는 웃음을 터뜨렸다. “저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습니다.” 정치외교를 공부한 사람이 어쩌다 ‘못난이 채소’를 찾아 전국 팔도를 누비게 됐을까. “해외에서 ‘푸드 리퍼브’에 대해 쓴 기사를 봤어요. 단지 흠집이 났거나 모양이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농산물을 다룬 이야기였어요. 국내라고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뭐든지 ‘궁금한 건 절대 못 참고’, 무슨 일이든 ‘일단 하고 보는’ 최 대표는 무작정 농가에 전화를 걸었다. 그와 처음 통화를 한 사람은 가지를 재배하는 농부였다. “햇볕을 많이 받은 가지는 겉면이 군데군데 밝게 타요. 그럼 보기에 안 좋으니까 판매상이 안 가져가는 거예요. 답답해하시더라고요. 사람도 각자 생김새가 다 다른데 왜 채소는 똑같이 생겨야 하죠? 미적 기준에 맞지 않다고, 혹은 그해 너무 많이 수확됐다고 버려지는 농산물이 매해 전체 생산량의 3분의 1이나 돼요.” 못난이 채소를 상자에 담아 집집마다 배송해주는 ‘어글리어스’는 그렇게 탄생했다.
문을 연 2020년 10월 첫 ‘채소 구독’ 서비스를 신청한 회원은 일곱 명이었다. 최 대표 혼자 전국 농가를 돌며 못난이 채소를 사고, 꼼꼼하게 포장해서, 집집마다 배송을 갔다. 8개월이 지난 지금 어글리어스 서비스를 신청한 회원은 3000명이다. 단지 ‘환경을 위해 못난이 채소를 먹는다’는 이유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가파른 성장세다. “맛있거든요. 더 맛있을 수밖에 없어요. 획일적인 색감이나 모양이 나오려면 아무래도 농약을 더 많이 친다든지 해야 하지만, 못난이 채소들은 그냥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알맞게 자라는 거예요.”
무엇보다 어글리어스 채소는 신선하다. 최 대표가 농가에 전화를 걸어 끊임없이 산지 사정을 체크하기도 하지만, 소문을 들은 농가에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팔지 못한 채소들이 있다”라며 먼저 연락을 주는 경우도 있다. 계약을 맺으면 채소들은 곧바로 수확돼 경기 화성시에 있는 어글리어스 공장으로 보내진다. 회원들이 받는 상자에는 말 그대로 어제 산지에서 갓 수확한 채소들이 담겨 있다. 중간 판매상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못생겨도 괜찮아’라는 문구가 적힌 상자는 2주마다 한 번씩 배송된다. 4㎏ 정도 나가는 상자에는 제철 채소가 7~8종류씩 담겨 있다. 못난이 채소는 수확량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때마다 ‘랜덤 박스’처럼 구성된다. “혹시 알레르기가 있거나 싫어하는 채소가 있으면 미리 체크해달라고 부탁드려요. 어렵게 식탁까지 올라갔는데 거기서 버려지면 정말 속상하잖아요.” 매번 회원들의 식성을 꼼꼼히 살피는 일은 품이 많이 들지만, 최 대표는 ‘결코 버리지 않는다’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다. 조만간 회원 한 명 한 명의 입맛에 딱 맞춘 ‘커스터마이징’ 채소 꾸러미를 발송하는 게 그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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