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다녀왔다.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지만 스스로 인정할 수 없었다. 언론사에 입사하고 얼마 안 돼 곧 그만둬야 했다. 한국 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고시원을 전전하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우연히 정신장애인들이 모이는 문학 모임에 나갔다가 뜻이 맞는 몇몇 사람이 뭉쳐 언론사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2018년 6월11일, 국내 최초의 정신장애인 당사자 언론 〈마인드 포스트〉를 창간했다. “우리를 빼고 우리를 논하지 말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박종언 편집국장(51)을 포함해 기자 네 명이 꾸리는 온라인 매체다. 처음엔 독자들의 후원에 의존했지만, 사회적협동조합으로 거듭났다. 지난해 8월부터는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위탁 운영하고 있다.

정신보건 분야 전문 매체인 〈마인드 포스트〉는 자체적으로 ‘정신장애인 언론보도준칙 1.0’을 만들어 지키고 있다. ‘정신장애를 사건 사고의 유일한 이유인 것처럼 기술해서는 안 된다’ ‘정신장애인도 소중한 가족과 친구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등의 원칙을 담고 있다.

박종언 편집국장은 〈마인드 포스트〉를 단순한 언론사로 규정짓지 않는다. 2년 전부터는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과 함께 기성 언론사에서 나오는 기사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포털 검색창에 ‘정신질환’이나 ‘조현병’ ‘조울증’ ‘우울증’ 같은 단어를 검색해 나오는 기사들을 꼼꼼히 읽고,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에게 정정 요청 메일을 보내고 있다. “매주 20~50건 정도 보내요. 그럼 최소 두 명에게서 답장이 오거든요. 미안하다고, 생각도 못했다고. 그 두 사람이 자기 주위에서 잘못된 기사가 나왔을 때 ‘그렇게 쓰면 안 된다’고 알려주고 말리겠죠.”

그럼에도 여전히 정신장애인과 관련된 기사는 대부분 부정적이다. “실제로 가해자가 조현병인 경우가 있죠. 2019년 진주 아파트에 불을 지른 안인득 사건도 그랬고요. 또 작년 8월에는 한 정신장애인이 정신과 전문의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사건도 있었고요.” 박종언 편집국장은 그때마다 피하지 않고 직접 글을 썼다. 안인득 사건 때는 당시 노모와 딸을 잃은 피해자를 인터뷰했다. ‘사과드립니다. 그러나 정신장애인을 집단적으로 비난하지 않기를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싣기도 했다.

그는 조만간 정신장애인 인권이 ‘폭발적’으로 향상될 거라 믿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모지였거든요. 아무렇게나 기사를 써도 제지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적어도 이게 도덕적으로 올바른 기사인가, 눈치를 보죠.”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정신장애인이 사회에서 격리될 필요 없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