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래서 산 자를 찾아온다. 일본의 〈링〉, 한국의 〈여고괴담〉, 타이의 〈디 아이〉 같은 ‘아시아 괴담 영화’가 으레 그러했다.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넌지시 일러주는 망자가 대부분이지만 더러 성격 급한 이는 직접 산 자의 몸에 빙의해 격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죽은 자는 힘이 없다. 두려운 건 그래서 늘 살아 있는 존재다. 영미권 공포영화가 대개 그러했다. 외딴집이나 외딴 숲속에서 사이코나 살인마에게 쫓겼다. 좀비에게 시달리는 이야기도 더러 있었지만 아직은 주류의 서사가 아니었다.

그러다 21세기를 맞이했다. 세상은 더 복잡해졌는데 세상 사는 이치는 더 단순해졌다. 각자도생. 동서양이 따로 없는 시대정신. 때맞춰 전 세계에 좀비 영화 붐이 일었다. 외딴집이 위험한 게 아니라 어딜 가도 위험한 세상을 배경으로, 고립될수록 오히려 안전해지는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 그저 내 한 몸, 내 가족 지키겠다고 사투를 벌이는 영화에 사람들이 빠져들었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신세가 될까 봐 두려운 마음이 극장을 나와서도 가시지 않았다. 어떤 점에서는, 어느 정도는, 우리 모두 이미 좀비의 시대를 산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다시 또 시간이 흘러 영화는 새로운 공포를 개발했다. 아니, 전부터 있던 공포를 극대화했다. 말을 할 수 없다는 것. 찍소리도 낼 수 없다는 것. 화가 나도 소리칠 수 없고 아파도 비명을 지르지 못하는 삶. 마치 세상에 없는 존재처럼 조용히 숨죽이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어떤 점에서는, 어느 정도는, 우리도 이미 그들과 다르지 않다고 느끼게 만든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2018)다.

팬데믹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영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괴생명체가 지구를 초토화한 세상에서 한 가족이 살아남으려 애쓰고 있다. 결국 아빠는 목숨을 잃고 엄마와 아이들이 새로운 싸움을 준비하는 것으로 1편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3년 만에 선보이는 2편을, 주연배우 에밀리 블런트는 이렇게 소개한다. “세 아이가 있는 싱글맘에, 그들을 지켜주던 집도 파괴되었고, 급박한 순간이 쉼 없이 찾아오는” 이야기라고. 집을 떠나 새로운 안식처를 찾다가 혼자 숨어지내는 남자 에멧(킬리언 머피)을 만나는 설정이 “각자의 고립된 공간에서 갇혀 지내고 있는 현재 팬데믹 상황과 공교롭게 맞아떨어지는” 영화라고.

이번에도 역시 어떤 점에서는, 어느 정도는, 우리도 이미 그들의 처지와 다르지 않다고 느끼게 만든다. 이번에도 1편처럼, 낭비 없는 장면들로 깔끔하고 쫄깃한 장르영화의 쾌감을 선사하는 속편이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강요당한 침묵에 순응하는 어른들과 달리 용기 내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아이들이 도드라지는 이야기다.

극장에서 보는 게 최고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는 가장 ‘콰이어트한’ 플레이스에서 제일 재밌어지기 때문이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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