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는 날들
안재구 지음, 안소영 엮음, 창비 펴냄

“아버지,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1976년 국제적으로도 인정을 받던 수학자 안재구가 ‘학생운동에 동정적’이라는 이유로 교단을 떠나야 했다. 3년 뒤 그는 결국 박정희 유신정권에 맞섰던 ‘남민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이 책은 그의 둘째 딸인 안소영 작가가 1979년 10월부터 1988년 12월까지 아버지와 가족들이 주고받았던 편지를 엮은 책이다. 1988년 5월8일 아버지는 편지를 통해 4남매에게 당부했다. “출세해서 권좌에 올라선 너희들의 미래는 내 머릿속에는 없다. 크건 작건 권좌 아래에 하루하루의 삶을 의지하는, 속물적이고 비천하게 사는 너희들의 미래는 더더구나 없다.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의 뜻대로, 스스로의 책임으로, 작지만 당당하게 살아가는 너희들의 모습만이 내 마음속에 가득하다.”

 

 

 

 

 

 

 

 

남성됨과 정치
웬디 브라운 지음, 황미요조 옮김, 나무연필 펴냄

“충돌과 투쟁은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연다.”

1979년 당시 프린스턴 대학 정치학과 대학원에 입학한 여성은 셋뿐이었다. 여성 입학을 허용하는 정도의 ‘관용’을 베푼 결과였다. 저자는 정치학의 질문, 역사, 도발과 복잡성을 사랑했지만 어떤 지점에 다다르면 ‘남성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는 한계를 깨닫는다. 정치학에서 젠더는 미개척 분야였다.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자기 손에 든 것을 가지고 정치학의 토양을 뒤엎어 젠더가 어떤 방식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추적해나간 결과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베버를 호출해 이들이 어떤 의도와 방식으로 세계를 구축하려 했는지 살펴본다. 페미니즘이 여성에 대한 배제와 거부를 드러내는 일에서 더 나아갈 수 있다면, 그 결과물이 어떤 모습인지 확인할 수 있다.

 

 

 

 

 

 

 

 

정체성이 아닌 것
나탈리 하이니히 지음, 임지영 옮김, 산지니 펴냄

“정체성은 우의 개념도 좌의 개념도 아니다.”

지난 몇 년 전부터 한국 사회는 ‘정체성’이란 개념과 관련 있는 크고 작은 정치적 싸움들에 휘말려왔다. 그러나 정작 ‘정체성’이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연구원으로 여성과 현대예술에서 나타나는 정체성 문제를 다뤄온 저자는 이 책에서 ‘정체성이 아닌 것’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가는 방법으로 ‘정체성’ 개념을 설명하려고 한다. 저자는 우선 정치와 철학의 관점에서 잘못 사용되고 있는 정체성 개념을 비판한 뒤 인류학·사회학·역사학 등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 생산된 정체성의 의미를 종합 정리하는데, 혐오 문제가 점점 더 중대한 사회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많이 읽혀야 할 책으로 보인다.

 

 

 

 

 

 

 

 

 

왜 차별금지법인가
이주민 지음, 스리체어스 펴냄

“선의를 가진 사람들의 얄팍한 이해는 악의를 가진 완전한 몰이해보다 나를 더 지치게 한다.”

여덟 번 발의됐지만 번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법이 있다. 차별금지법이다. 정치권은 차별을 없애자는 ‘안전한’ 주장은 하지만, 정작 ‘법적 책임’을 만드는 일에는 소극적이다. “사회적 합의 부족”은 늘 반복되는 명분이다. 인권변호사인 저자는 차별이 왜 정치와 법의 문제인지 질문하며 차별금지법에 대한 오해를 논박한다. 예를 들면 차별금지법 입법으로 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것이라는 주장이나, 역차별이 생길 것이라는 예측이다. 차별금지법은 혐오 표현을 규제하거나 특정 약자 집단만을 위하려는 법이 아니다. 5월24일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이 시작되면서 다시 한번 정치의 시간이 열렸다. 차별금지법이 왜 “절박한 현안”인지 국내외 사례로 설명하는 이 책이 하나의 지침이 될 수 있다.

 

 

 

 

 

 

 

 

욕구들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북하우스 펴냄

“진보의 지도는 승리들이 아니라 작디작은 전진과 변화들로 그려진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베이글, 요거트, 사과 한 알, 작은 치즈 큐브로 하루를 버텼다. 무려 3년 동안 매일 같은 것을 먹었다. 몸무게는 37㎏, 식욕이라는 단어는 불안과 동의어였다. 저자는 거대하고, 모호하고, 압도적인 ‘미래’ 대신 구체적이며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은 자신의 몸에 집착했다. 거식증은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여성을 대상화하는 사회적 맥락과 압박 안에서 발생한다. 여성은 너무 많은 ‘금지’ 속에서 사회화된다. “너무 많이 먹지 마. 너무 커지지 마. 너무 멀리 가지 마. 너무 높이 올라가지 마. 너무 많이 원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여성에게 욕구를 둘러싼 도전은 일생을 걸고 계속 분투해야 할 일이 된다. 그것이 ‘할 만한 도전’임을 유려한 문장으로 설득한다.

 

 

 

 

 

 

 

페니스, 그 진화와 신화
에밀리 윌링엄 지음, 이한음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

“음경이 남성다움을 대변하는 불끈거리는 오벨리스크가 되지는 못한다.”

일부 남성들은 음경 크기에 집착한다. 이 책의 6장은 ‘가장 큰 음경’상을 받을 만한 종을 찾아내 진정한 우승자를 가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시상식에서 인간은 참석 자격조차 없다. 모든 동물의 음경을 전시해둔 아이슬란드 ‘음경 박물관’에서, 인간의 음경을 가장 작은 축에 분류했다는 말이 농담처럼 떠돈다. 생물학자인 저자는 인간과 동물의 음경을 연구해왔다. 책에서 그는 ‘발기한 수컷 생식기’에 대한 인간의 열광과 집착을 해부한다. 그는 번식기관의 기능 연구가 음경 중심적으로 진행된 탓에 여성 생식기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적었다. 인간, 특히 인간 남성이 갖고 있는 음경에 대한 잘못된 믿음과 환상을 바로잡는 책이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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