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2021년 2월, 한국의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클럽하우스(Clubhouse)는 실시간 오디오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소셜미디어다. 현재는 아이폰, 아이패드와 같은 iOS 기반에서만 설치할 수 있고, 기존 사용자의 소개를 받아야 가입된다. 직접 가입할 수도 있지만 전화번호로 연결된 기존 사용자가 수락해줘야 한다. 제한성과 제약이 매력이자 장점으로 기능하는, 여러모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미디어다.

프로필 페이지에서는 누구 소개를 받아 가입했는지 볼 수 있는데 이는 기존 인적 네트워크를 강조하는 기능을 한다. 각 분야의 ‘인싸’ ‘셀럽’이 업계 동향과 같은 정보를 나누는 걸 들을 수 있고 운이 좋으면 대화도 할 수 있다.

기존 SNS에서 보던 글과 사진이 아니라 정제되지 않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차별점이다. 라디오 방송, 팟캐스트 진행자가 클럽하우스로 건너와 청취자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선거를 앞둔 정치인이 방을 개설하여 질의응답을 했다. 연예인이 고민상담 방을 열고, 책을 소개하거나 낭독하는 크고 작은 책모임도 열렸다. 설날 연휴를 맞아 사주를 봐주기도 하고, 여성 사용자가 남성 사용자의 프로필 사진을 보며 평가하는 ‘본격 외모 품평 미러링’ 방도 인기를 끌었다. 성대모사 방은 늘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나는 비장애인 중심 세계에서 수어(手語)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청인으로 살아간다. 청인 중심 세계에서 청인으로 사는 일은 무척 쉽다. 수어라는 언어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의 세계를 몰랐더라면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라디오,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하여 내가 만든 영화와 책을 소개할 때면 복잡한 마음이 든다. 엄마와 아빠는 접근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라디오·팟캐스트 듣는 걸 좋아하지만 주도적으로 해볼 마음을 가지지 않았던, 혹은 못했던 이유 역시 농인인 부모와 내용을 공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클럽하우스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이들과 잠옷을 입은 채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네트워크 파티에서 소개받을 법한 사람들과 연이 생긴다는 점은 좋았지만 이 대화에 엄마, 아빠와 같은 농인을 초대할 수는 없었다.

중학교에 다닐 때였다. 부모님께 라디오 청취 기능이 있는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사달라고 조르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아니 눈을 마주치고 손을 움직여 말할 자신이 없었다. 듣고 싶다고, 남들 다 듣는 라디오와 음악, 나도 들어보고 싶다고 말해야 했는데 그 말과 행동이 엄마와 아빠를 배제하는 것 같았다.

고민 끝에 손을 움직여 말했다. 듣는 기계, 나도 사달라고. 아빠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갖게 되었다. 엄마와 아빠는 알지 못하는 미지의 공간, 나만이 듣고 즐길 수 있는 소리의 영역이었다. 부모는 소리를 듣는, 자신과는 다른 감각으로 살아가는 청인인 딸이 그 세계로 나아가는 걸 받아들이고 지지했다.

농인 부모를 찍은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4)와 같은 제목의 책(한겨레출판, 2015)을 낸 후 관련 이야기를 해야 하는 자리가 자주 생겼다. 농인과 수어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정작 당사자는 들을 수 없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예스24의 팟캐스트 ‘책읽아웃’에서 섭외 요청이 들어왔을 때 부모님에게 알리지 못했다. 농인과 수어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오디오 기반 미디어를 통해 농 문화를 알릴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하고 현실과 타협했다. 녹음 이후 진행자와 제작진은 ‘이길보라’에게 양쪽 성을 물려준 농인 ‘이상국’과 ‘길경희’가 방송을 들었으면 한다며 보이는 라디오 용도로 촬영해놓은 영상에 수어 통역을 삽입했다. 진행자와 나눈 대화는 문자언어로 옮겨져 기사화되어 수어를 모르는 청각장애인도 내용에 접근할 수 있었다. 오디오 기반 미디어 콘텐츠의 접근성을 높여 기존 청취자, 즉 ‘듣는 사람’의 영역을 ‘보는 사람’으로 확장해낸 것이다.

ⓒ시사IN 신선영

장애인은 끊임없이 공동체를 ‘땜질’한다

〈사이보그가 되다〉(김초엽·김원영 지음, 사계절, 2021)는 기술발전이 인간의 몸을 자유롭게 하는지 질문하며 장애라는 고유한 경험이 과학기술과 결합할 때 맞이할 수 있는 다른 내일을 제시한다. 김초엽 작가는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된 게임 속 가상공간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묻는다. “장애인들에게 열려 있는 세계를 구축하는 일은 가상공간에서도 어려운 것일까?”

청각장애인인 김초엽 작가 역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클럽하우스의 대유행에 문제의식을 갖는다. 그동안에도 청각장애인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매체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 미디어가 청각장애인을 제외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고, 접근성 관련 논의에서 좀 더 열린 방식으로 기획될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클럽하우스만이 아니다. 트위터는 2020년 11월 오디오 네트워킹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오디오 스페이스’를 공개하고 소수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베타 서비스 중이다. 페이스북도 비슷한 기능의 오디오챗을 개발하고 있다. 이처럼 오디오 기반의 소셜미디어는 어떻게 접근성을 높일 수 있을까. 김초엽 작가는 ‘장애인 세계 만들기’라는 용어를 소개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의 대부분은 장애인이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않게 설계되어 있으므로 장애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주위 환경은 물론이고 지역사회와 공동체를 ‘땜질’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어렸을 때 이사를 많이 다녔다. 새로운 집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현관 초인종 위에 버튼을 하나 더 다는 일이었다. 누르면 ‘띵동’ 소리를 내는 초인종은 농인 부모에게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검은색 전선용 테이프로 마감된, 수상하고 어설퍼 보이는 버튼을 누르면 집안에 노란색 불빛이 가득 찼다. 여러 차례 누르면 크리스마스 같은 기분도 들고 많이 누르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청인들이 사는 집에는 없고 우리 집에는 있는 특별한 버튼, 그건 우리 집만의 ‘장애인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였다.

아빠는 그 세계를 누구보다 치밀하게 설계하는 개발자이자 탁월한 기술자였다. 클럽하우스를 비롯한 오디오 기반 미디어의 출현을 바라보며, 아빠가 만들어낸 ‘장애인 세계’와 부모가 나에게 사준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동시에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농인인 아빠는 청인인 나의 세계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줬다.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쪽은 왜 언제나 소수자일 수밖에 없을까. ‘장애인 세계’를 인지하고 먼저 지원하는 일은 온라인 세계에서조차 어려운 것일까.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 뒤에 남은 질문을 함께 고민해보자.

기자명 이길보라 (영화감독·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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