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손윤경씨(왼쪽)는 감상평 책자를 〈시사IN〉에 선물했다. 최미지씨(가운데)는 “더 이상 긴 글이 두렵지 않다”. 이동희씨(오른쪽)는 “형형색색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사람이 되고 싶었던 곰과 호랑이에게 주어진 시간은 100일이었다. 호랑이는 곧 동굴을 뛰쳐나갔지만 곰은 쑥과 마늘을 먹으며 견뎠다. 결국 곰은 소원대로 사람이 되었다. ‘100일’은 의미 있는 지표다. 단군신화에서만이 아니다.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면 백일잔치를 열고, 연인들은 100일을 기념한다. 새롭게 출범한 정부는 100일 동안의 성과를 모아 자랑한다.

〈시사IN〉은 지난해 100일 동안 ‘하루 한 편 시사지 읽기’ 프로젝트를 두 차례 진행했다. 한 번은 2020년 3월23일부터 6월30일까지, 다른 한 번은 2020년 9월7일부터 12월15일까지였다. 하루에 한 편씩 〈시사IN〉 기사를 읽고 ‘카카오프로젝트100(카카오100)’이라는 플랫폼에 감상평을 남겨 ‘인증’하는 방식이다. 카카오100은 프로젝트의 취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뇌에 습관 회로가 생기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0일 정도라고 해요. 작은 성공을 100일간 쌓아가며 변화를 만들어보세요.”

과연 ‘100일 읽기’는 효과가 있었을까? 〈시사IN〉은 제700호 발행을 기념해 독자들을 만났다. 주로 100일 읽기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대상이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100일 동안 기사를 읽은 독자도 있었고 결심이 일주일 남짓 지속됐던 독자도 있었다. 나이도, 직업도, 지역도 모두 다양했다. 100일 읽기 프로젝트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시사IN〉을 읽으며 공부하는 모임도 있었다. 지난 1월30일, 스마트폰 시대에 종이 잡지라는 ‘쑥과 마늘을 먹는’ 우직한 독자들을 만났다.

경기 군포에서 온 손윤경씨(44)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기자들에게 꼭 주고 싶었던 선물이 있다며 책을 한 권 꺼냈다. 표지에는 ‘시사지 곁에 두기-〈시사IN〉과 함께한 200일의 기록’이라고 쓰여 있었다. 100일 동안 〈시사IN〉을 읽으면서 인증했던 감상평을 빼곡하게 모아 인쇄한 작은 책자였다. “저는 영상도 라디오도 집중이 잘 안 돼요. 흘려듣고 그대로 흡수하는 것보다는 읽고 나서 이렇게 써야 기억에 좀 남더라고요.”

그는 정기 독자가 아니었다. 〈시사IN〉에 관심은 있었지만 주간지라서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우연히 100일 읽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뒤로 〈시사IN〉에 대한 호감이 커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의료진들의 노고를 다룬 기사나, 병원에서 폐기물을 수거하는 노동자들을 조명한 기사처럼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하고 놓친 이야기들이 마음에 남았다. 100일 읽기 프로젝트가 끝나면 정기 구독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신이 퍼뜩 드는’ 문장을 읽었다. “때로 뉴스는 공포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무서운 건 아예 뉴스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악몽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를 후원해주세요.” 미국 워싱턴에서 부패한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비영리 언론사 공공청렴센터(CPI)가 당시 핼러윈을 맞아 올린 홍보 문구였다(〈시사IN〉 제637호 ‘공권력의 배신 끝까지 추적한다’ 참조). 이 문장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바로 정기 구독을 시작했다.

손윤경씨는 1차 프로젝트 때는 98일, 2차 프로젝트 때는 100일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인증을 올렸다. 2차 프로젝트를 신청한 352명 중 끝까지 완주한 사람은 45명에 불과하다. ‘명예의 전당’에 올라간 그도 여전히 매일매일 읽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100일 정도 했으니까 자연스럽게 읽히겠지 했는데, 생각보다 잘 안 되더라고요. 좋은 습관 하나 갖는 게 얼마나 힘든지 깨달았어요. 그래도 자꾸 읽고 쓰려고요. 운동으로 신체 근육을 단련하는 것처럼 내가 직접 읽고 써야 내면의 근육을 키울 수 있으니까요.”

부산에서 열차를 타고 올라온 최미지씨(27)도 100일 중 99일 동안 인증을 올린 열혈 독자다. 인증을 하지 못한 날에는 특별한 일이 있었느냐고 묻자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며 웃었다. “그날도 평범한 취준생의 하루였거든요. 늘 그랬듯이 아침 먹으면서 〈시사IN〉을 읽었는데 인증하는 걸 깜빡했어요. 다음 날에야 ‘어? 왜 안 올렸지?’ 하고 스스로 더 당황했어요.” 미지씨는 100일 읽기 프로젝트 중이던 지난해 11월 금융계 공기업에 취업했다. 면접 당시 코로나19 관련 질문이 많이 나왔다. 매일 기사를 읽고 생각을 정리해서 올렸던 습관이 큰 도움이 됐다. 그는 무엇보다 견해차가 선명한 사회문제들을 중립적 입장에서 조리 있게 설명해준 기사들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AI 윤리’ ‘공공의대’ 등 말끝에 ‘논란’이라는 단어를 단 채 뭉뚱그려진 이슈들의 중심을 향해 한발 더 깊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길이에 쏙 들어가도록 짧게 잘려진 글에 익숙해졌던 그에게 신선한 경험이었다. “원래 어렸을 때 책 읽는 걸 좋아했는데, 다시 읽는 재미를 알게 됐어요.”

최미지씨는 〈시사IN〉 로고를 볼 때마다 ‘I’자와 ‘N’자 사이의 경계 속에 서 있는 사람이 유독 눈에 띈다고 말했다. “기사를 읽고 나면 그 로고 이미지가 어떤 의미인지 더 와닿아요.” 그가 생각하는 〈시사IN〉의 또 다른 매력은 단지 이슈만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저널리즘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AI로 논란이 있다’에서 그치지 않고 AI 시대에 언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콘퍼런스까지 열었잖아요. 최근에는 팬데믹 시대에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성찰하는 콘퍼런스도 열었고요. 그런 점이 감탄스러워요.”

〈시사IN〉을 응원하는 후원 독자들의 한 줄 메시지 (번호는 후원자 번호 끝 다섯 자리)

개념 문장은 파란 펜, 통찰 문장은 빨간 펜

신입 사원인 최미지씨는 요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야근도 잦다. 〈시사IN〉 읽을 틈을 내기가 어렵다. 하지만 흔쾌히 인터뷰에 응한 이유가 있다. 그는 더 이상 긴 글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SNS에서도 조금 길다 싶은 글이 있으면 그냥 넘겼거든요. 지금은 ‘이 사람이 뭘 말하려는 걸까’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게 읽게 돼요.”

100일 읽기 프로젝트에 두 번 모두 참여했지만 두 번 다 성공하지 못한 독자도 있다. 충북 청주시에서 온 이동희씨(30)는 “첫 프로젝트는 8일 인증했어요”라고 멋쩍게 말했다. “저는 책상에 딱 정자세로 앉아 밑줄도 긋고 사진도 찍으면서 읽어야 하더라고요. 완벽하게 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금세 지쳤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시사IN〉을 안 읽은 건 아니다. 인증만 하지 않았을 뿐 ‘개념을 알려주는 문장은 파란 펜으로, 통찰을 주는 문장은 빨간 펜으로’ 형형색색 밑줄을 그어가며 틈틈이 읽었다. 주로 퇴근하기 한 시간 전 집중해서 읽는 편이다. 직장에서 잡지를 읽으면 눈치 보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어차피 ‘이 기획안을 만들 때 이 기사를 많이 참고했다’고 공유하기 때문에 괜찮다”라고 말했다. 직장 내 더 많은 사람이 〈시사IN〉을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 일부러 탁 트인 공유 책상에서 읽은 적도 있다고 했다. 이동희씨는 지역 뮤지션들과 함께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기획하는 스타트업에서 활동 중이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배우 정우성씨 인터뷰(제590호 “자선이 아니라 책임이다” 기사 참조)다. “이 기사를 읽고 다음 날 인권 토크 콘서트를 기획하는데 다른 동료가 먼저 정우성씨를 섭외하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꺼냈어요. ‘어, 내가 어제 이 기사를 읽었는데 이 사람도 같은 이야기를 하네?’ 신기하더라고요. 실제 섭외하지는 못했지만 콘서트 시나리오를 쓰는 데 많은 영감을 받은 기사였어요.”

이동희씨는 듣기에만 그럴싸한 올바른 말보다 ‘이 사람의 처지에서는 이럴 수 있고 저 사람의 처지에서는 저럴 수 있다’라는 사실을 담백하게 보여주는 힘이 〈시사IN〉의 저력이라고 생각한다. “술 마시면서 이야기하다 보면 사안을 겉에서 보고 무조건 비판만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에게 다양한 생각을 하게 도와주는 기사를 보여주고 싶어요. 정성스러운 시선이 들어간 정성스러운 글을요.” 그는 〈시사IN〉을 읽고 함께 토론할 지역 모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사IN〉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도 있다. 2017년 말부터 한 달에 한 번 〈시사IN〉 읽기 모임을 가져온 김새미(35)·서동규(31)·김수지(31)씨는 각자 손때 묻은 지난 호 잡지를 들고 왔다. 사내 스터디 모임의 시작은 ‘전도’였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을 쪼개 〈시사IN〉을 읽는 서동규씨의 모습이 신기했던 옆자리 동료 김수지씨가 잡지를 한번 빌려간 게 ‘화근’이었다. 굽시니스트 시사 만화 코너의 알 수 없는 매력에 푹 빠져버린 수지씨는 ‘매번 잡지를 빌려가기가 민망해서’ 구독을 시작했다. 알고 보니 매주 〈시사IN〉을 받아보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그렇게 김새미씨까지 합류해서 스터디가 시작됐다. “스터디를 하면, 가서 이야기할 거리가 있어야 하잖아요. 자연스럽게 더 열심히 읽게 되고 밑줄도 치고 포스트잇도 붙이게 되더라고요.” “굽시니스트 만화를 놓고 끝장 토론을 하는 경우도 많아요. ‘이건 무슨 뜻일 거야’ ‘아니야 이건 이런 뜻일 거야’ 이러다 보면 시간 금방 가요.” 서동규씨의 말에 김새미씨가 덧붙이며 웃었다. “스터디를 안 했으면 저는 잡지를 뜯어보지도 않고 구독료만 내는 ‘후원회원’이 됐을 거예요. ‘구독회원’이 되려고 늘 노력하고 있어요.” 김수지씨의 말에 다시 한번 웃음이 터졌다.

ⓒ시사IN 이명익서동규·김수지·김새미씨(왼쪽부터)는 2017년 말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시사IN〉 읽기 모임을 가져왔다.

“단정적이지 않고 조심스러운 태도”

무엇보다 스터디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이슈는 천관율 기자가 ‘20대 남성’을 분석한 기사였다. “무엇보다 이런 주제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 수 있는 ‘구실’이 생겨서 좋았어요(김새미).” “충격적이었어요. 뭔가 설화처럼 떠돌던, 말로만 듣던 이야기가 정말 실재하는 현상이구나 싶었어요. 그럼 내가 이 주제에 대해서 다른 사람과 어떻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지? 이런 고민을 자연스럽게 했던 거 같아요(김수지).”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였어요. 무엇보다 ‘우리는 아마 틀리겠지만 적어도 반박 가능하게 틀리겠다’는 자세가요. 단정적이지 않고 조심스러운 그 태도에서 서로 대화를 시작해볼 수 있는 거잖아요(서동규).”

‘10년 지기’ 구독자 김새미씨는 모바일 시대에 종이책을 끊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존재감이에요. 종이책은 방구석 어딘가에서 저를 보고 있거든요. 나를 읽어달라고 말을 거는 것 같아요. 종이책은 오롯이 읽기만을 위한 장치예요. 시선도 가고 마음도 쓰이죠. 아마 다른 분들도 계속 읽다 보면 알게 되실 거예요. 〈시사IN〉은 세상을 제대로 알고 싶을 때 제대로 된 관점을 주는 것 같아요.” 굽시니스트 만화로 백분 토론도 가능하다며 농담을 던지던 김새미씨가 진지하게 이야기하자 모두 ‘오~’ 하며 감탄사를 뱉었다. 다시 웃음이 터졌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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