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법원이 직무 복귀를 결정한 12월1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2022년 대권 구도의 상수로 올라섰다. 한국갤럽 11월 둘째 주 정례조사에서 윤 총장은 대선주자 선호도 11%를 기록했다. 4개 조사업체(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 한국리서치) 공동 정례조사인 전국지표조사(NBS)는 차기 대통령 적합도를 묻는데, 윤 총장은 여기서도 11%다(12월 첫째 주 조사). 더불어민주당의 양강인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는 둘 다 19~20% 선이다. 한국갤럽과 NBS의 조사방식은 전화면접조사다. 자동응답 방식 조사에서는 국민의힘 지지층이 더 많이 잡히고, 윤 총장 지지도도 더 높게 나온다. 알앤서치의 12월 첫째 주 정례조사에서 윤 총장 적합도는 24.5%다(이낙연 22.5%, 이재명 19.1%). 세 조사의 상세 정보는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 있다.

다음 대통령 선거일은 2022년 3월9일이다. 앞으로 15개월 남았다. 현 정부에 실망하는 여론은 커지는 추세인데, 야당은 좀처럼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실망한 여론이 기성 정치권 밖에서 대안을 찾다가 정치인이 아닌 인물을 선택해 결집한다. 매우 유사한 구도가 과거에도 있었다. 2011년 9월이다. 2012년 대선을 15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에 실망한 여론은 커져갔으나, 야당인 민주당은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전임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가 나빠서 5년 만에 다시 민주당으로 정권을 돌려주겠다는 흐름은 생기지 않았다. 민주당 유력 주자로 꼽히던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무르고 있었다. 실망한 여론이 지지부진한 야당 대신 정치권 밖에서 대안을 찾다가 새 인물을 찾아 결집했다. 이때의 주인공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현 국민의당 대표)이었다.

윤석열 총장의 상승세는 ‘안철수 현상’의 2020년 버전일까? 둘의 가장 큰 공통점은 구도다. ‘여당에는 실망했지만 야당은 찍을 수 없는 유권자층’이 폭넓게 쌓여가고 있다. 이 층이 제대로 결집했을 때의 위력은 2012년 대선 레이스가 보여주었다. 당시 ‘안철수 현상’은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부동의 차기 주자 원톱이던 박근혜 후보를 무너뜨리기 직전까지 갔다.

다른 공통점도 있다. 대선으로 가는 길목에 중요한 보궐선거가 놓여 있다. 2011년은 10월에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었고, 2020년 12월은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5개월 앞두고 있다. 임기 후반의 대형 보궐선거는 정권심판론의 기폭제가 될 잠재력이 있다. 2011년 9월, 서울시장 선거에서 ‘반(反)여당 비(非)야당’ 구도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었다. 서울시장 여론조사에서 소속 정당이 없는 안 원장이 50% 가까운 지지를 얻었다. 그는 지지율 5%인 박원순 상임이사에게 후보를 양보해 여론에 충격을 주었다. 이때 후보가 된 박원순 상임이사는 3선 서울시장을 지냈고, 지난 7월 사망했다. 이 양보 이후 안 원장은 강력한 대선주자로 올라섰다.

ⓒ연합뉴스2011년 9월 ‘청춘콘서트’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가운데)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떤 모양새로 총장직 내려놓느냐에 주목

2020년 12월 현재,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정권심판론이 우세한 구도로 짜이고 있다. 11월 4주 차 한국갤럽 정례조사에서, 보궐선거에서 여당 승리를 원한다는 응답은 서울에서 29%에 그친다. 반면 야당 승리를 원한다는 응답은 57%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인물난과 불신을 극복하기가 쉽지는 않아서, 2011년의 ‘반(反)여당 비(非)야당’ 구도가 다시 등장할 조짐이다. ‘제3 후보’ 바람이 불기 쉬운 구도다. 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를 저울질하는 것도 이 구도와 관계가 깊다.

2011년 ‘안철수 현상’과 2020년 윤석열 총장의 급부상은 중요한 차이도 있다. 첫째, 안철수 현상은 본질적으로 중도·무당파 현상이었던 반면, 윤 총장의 급부상은 보수와 국민의힘 지지자가 결집한 결과다. 박근혜 정권의 지지 기반이 붕괴한 이후로 보수층은 다음 리더를 찾아 헤맸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떠올랐다가 곧 사라졌다. 홍준표 전 대표와 황교안 전 대표가 차례로 낙점을 받았으나 실패했다. 실패가 거듭되면서 보수는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을 모두 졌다.

윤 총장의 급부상은 보수가 시도한 오랜 탐색의 2020년 버전이다. NBS 조사에서 윤 총장 지지율은 진보층 3%, 중도층 11%, 보수층 23%다. 국민의힘 지지자 중에서는 35%가 윤 총장을 지지한다. 하지만 지지 정당이 없거나 밝히지 않은 무당층에서는 7%에 그친다. 무당층은 이재명 지사를 가장 선호한다(17%). 반면 2011년 안 원장은 무당층의 압도적 지지를 본진 삼아, 정권교체를 원하는 민주당 지지층을 끌어들였다.   

둘째, 2011년 이명박 정부는 지지율 이반 추이는 강했던 반면 여당은 강력한 차기 주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지금은 정반대다. 지지율 이반은 어느 정도 관리되는 반면, 여당의 차기 주자들은 그리 강하지 않다. 부동산 폭등과 법무부·검찰 충돌 등 여러 악재가 동시다발로 터지고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여러 조사에서 국정수행 지지도 40~45% 선을 버텨내고 있다. ‘반(反)여당 비(非)야당’ 포지션의 폭발력도 그만큼 제한된다. 그러나 여당의 차기 주자인 이낙연·이재명 양강은 각각 뚜렷한 약점이 있다. 이낙연 대표는 민주당 핵심 지지층 밖으로의 확장성에 물음표가 있고, 이재명 지사는 반대로 핵심 지지층과의 갈등이 뿌리가 깊다. 전략통으로 분류되는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총장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보수가 모두 윤 총장으로 결집할 수 있을까? 중도가 윤 총장 손을 들어줄까? 둘 다 쉽지 않다. 오히려 문제는 우리다. 이낙연·이재명 두 주자의 경쟁으로 굳어지면, 비전이 아니라 누구 약점이 더 큰지만 겨루는 싸움이 된다. 마치 바이든과 트럼프의 경쟁처럼.”

윤석열 총장이 대선의 상수로 떠오른 계기는 10월22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하면서다. 이날 윤 총장은 추미애 장관과 정면충돌하며 잠재적으로 문재인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소수의 정치 고관심층만 밀던 윤 총장이 이날 이후 보수층의 대표선수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2011년 안철수 원장이 대선주자로 뛰어오른 계기인 ‘서울시장 양보’와 같은 강력한 전환점은 아직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여론 분석가들은 윤 총장이 어떤 모양새로 검찰총장직을 내려놓느냐에 주목한다. 문 대통령이 명분을 만들지 못하고 윤 총장을 우격다짐으로 해임하면, 그때는 윤 총장을 정치적 대안으로 고려하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지지율이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다.

물론 ‘현상’을 만들어내는 건 구도와 민심이지만, 끌어올린 지지율을 유지·관리할 정치적 역량은 그 ‘현상’의 주인공에게 요구되는 실력이다. 둘은 별개 문제다. 이 역시 2011년 안철수 현상이 먼저 보여주었던 교훈이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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