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11월23일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동 대항항 전망대에 항공기 모형이 설치돼 있다.

이것은 두 공항을 둘러싼 정치 드라마다.
11월17일 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이하 총리실 검증위)는 “근본적 검토가 필요하다”라며 김해공항 확장을 사실상 백지화했다. 총리실 검증위는 김해공항 확장을 추진한 국토교통부와 그에 반대해온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방정부가 지난해 6월 합의하여 설치한 검증 기구다. 지난해 12월 활동을 시작해 1년 동안 안전, 소음, 환경, 수요예측 등 네 분야를 검증했다.

무산됐던 가덕도 신공항이 다시 부상했다. 가덕도는 서부산 지역에 있는, 부산과 거제 사이의 섬이다. 가덕도 신공항은 부울경 지역의 숙원사업이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번번이 중앙정부의 벽에 막혔다. 내년 4월에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있다. 7조원 규모 국책사업이 정치 논리로 뒤집혔다는 지적이 당연히 쏟아졌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공항을 둘러싸고 작동한 정치 논리란 선거 표계산을 훌쩍 뛰어넘는, 역사도 길고 전개도 복잡한 역동적 과정이었다. 분명 정치가 작동했다. 다만 이 말을 쓰는 비판자들의 의도와 전혀 다른 의미로 그랬다.

18년 전인 2002년 4월15일, 중국 베이징에서 김해로 오던 중국 민항기가 김해공항 북쪽 돗대산에 충돌했다. 한국인 110명과 중국인 19명이 사망한다. 김해공항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이착륙이 위험하다. 세계 주요 항공사들이 베테랑 기장만 배치하는 악명 높은 공항이다. 안전문제를 해결하라는 여론이 높았다. 2003년부터 올해까지 부산시가 공항 이전 용역을 발주한 횟수만 10차례다. 이 과정에서 가덕도가 후보지로 지목된다. 참사 8개월 후인 2002년 12월,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는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연구용역 결과를 낸다. 2006년에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동남권 신공항 검토를 지시한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경제성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신공항이 백지화된다. 당시 가덕도 신공항의 BC는 0.7이 나왔다. BC는 ‘비용 대비 편익’의 약어다. BC가 1이 넘으면 비용보다 편익이 높아 경제성이 있다고 본다. 대규모 국책사업은 ‘예타’로 불리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해야 추진할 수 있다. 예타의 핵심이 BC다. 1이 넘거나 적어도 근접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기준이 없으면 정치가들이 너도나도 자기 지역에 국책사업을 벌여 세금을 낭비할 것이다. 그러니 기준은 중요하다. 얼마나 중요한지는 좀 다른 문제인데, 우리는 뒤에서 다시 BC로 돌아올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검토를 지시한 2006년만 해도, 신공항은 현안 대책이라는 의미가 강했다. 김해공항으로는 위험하고, 소음피해가 크며, 앞으로 늘어날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가 주로 거론됐다. 이런 논리만으로는 BC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았다. 지역 토건사업에 ‘선심성’ ‘선거용’ 꼬리표가 달릴 때면 수도권 여론은 특히 싸늘해진다. 신공항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6월에 다시 불가 판정을 받는다. 이때 선택된 안이 바로 김해공항 확장이다. 가덕도는 밀양에도 뒤진 꼴찌였다. 2017년 4월, 김해공항 확장안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다. BC는 0.94였다.

ⓒ연합뉴스2019년 6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오른쪽)이 김경수 경남도지사, 오거돈 부산광역시장, 송철호 울산광역시장 등과 신공항 관련 사항을 논의하고 있다.

2017년 대선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는 ‘24시간 운영되는 동남권 관문 공항’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김해공항은 소음 문제로 밤 11시부터 아침 6시까지 이착륙이 막힌다. 가덕도 신공항을 염두에 둔 공약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집권 뒤에도 국토부는 김해공항 확장안을 계속 추진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정식 절차를 거친 국책사업을 근거 없이 뒤집으면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훼손되고, 해당 부처는 책임 추궁을 피하기 어렵다. 청와대도 별다른 개입을 하지 않았다.

정권 출범 1년 남짓 지난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부울경 단체장에 일제히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다. 부산 오거돈 시장(현재는 성추행 의혹으로 사퇴했다), 울산 송철호 시장, 경남 김경수 지사는 당선 직후 공항 문제를 다룰 부울경 동남권 관문 공항 검증단을 구성했다. 검증단은 1년간 활동 끝에 2019년 5월 김해공항 확장안이 부적절하다는 보고서를 낸다. 보고서는 정권 내에서 간단치 않은 파열음을 냈다. 주무 부처인 국토부는 태도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부울경의 협조가 없으면 국토부가 김해공항 확장을 단독 추진하기도 어려웠다. 교착상태가 됐다.

이 무렵 김경수 지사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 만나 이런 취지로 말했다. “이대로는 둘 다 명분이 없으니 서로 출구전략이 필요한 거 아니냐. 총리실에 검증위원회를 만들고 거기서 무슨 결론이 나오든 국토부와 부울경이 다 동의한다고 합의하자. 김해공항 확장으로 나오면 경남이 책임지고 부산과 울산을 설득하겠다.” 2019년 6월20일에 국토부와 부울경은 총리실 검증위를 설치하고 결과에 승복하기로 합의했다.

총리실 검증위가 김해공항 확장안을 백지화한 핵심 이유는 이랬다. 국토부 기본계획은 산을 깎지 않고도 김해공항의 안전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공항시설법으로는 장애물(이 경우는 산)을 깎는 게 원칙이다. 예외를 적용해 산을 놔두려면 지방정부와 협의가 필요하다는 게, 총리실 검증위가 법제처에서 받은 해석이었다. 그런데 부산과 경남이 이 협의를 해줄 가능성이 없다. 결국 산을 깎지 않는 국토부 기본계획은 집행이 불가능하므로 “근본 검토가 필요하다”. 2018년 6월에 부울경이 검증단을 꾸리고 2년 반을 시도해 만든 뒤집기였다. 결과가 나온 날 국토부는 “2019년 합의문에 따라 검증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겠습니다”라는 입장을 냈다.

총리실 검증위는 김해공항 확장안만 살폈을 뿐 가덕도 신공항은 전혀 검토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여권에서는 가덕도 신공항이 기정사실로 통할까? 수면 위에서 국토부와 부울경의 줄다리기가 치열하게 전개되는 동안, 수면 아래에서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 매우 느렸지만 진정 흥미로운 ‘개념의 도약’이 일어난다. 이 대목은 전체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외전이다.

ⓒ연합뉴스김경수 경남도지사가 10월13일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서 메가시티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2019년 2월 서울구치소의 한 독방

이제 잠시 두 공항 이야기에서 벗어나 다른 곳을 들러야 한다. 2019년 2월 서울구치소의 한 독방이다.
김경수 지사는 당시 포털사이트 댓글조작 사건(일명 ‘드루킹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2년 실형을 받고 법정 구속돼 서울구치소에 있었다. 그해 2월21일, 반도체 기업 SK하이닉스는 120조원 투자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부지로 경기도 용인을 골랐다고 발표했다. 한때 전자산업의 메카였던 경북 구미는 유치전에 전력투구했지만 밀려났다. SK 측이 반도체 같은 첨단산업의 입지로 구미와 용인 중 구미를 고를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은 사실상 없었다. 이 소식은 여론의 주목을 거의 끌지 않았지만, 본인 표현으로 “빵에 있던” 김 지사에게는 달랐다.

김 지사에게 SK하이닉스 사례는 균형발전 전략을 새로 찾아야 한다는 경고였다.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는 일종의 ‘지역 간 분업 모델’이 발전해왔다. 서울은 행정·경영·회계·법률 등 고급 서비스 기능을 담당하는 대신 제조업 진입을 규제받았다. 제조업은 땅값과 인건비가 싸고 정책적 혜택까지 제공되는 지방에서 고용을 창출했다. 울산·창원·거제 등 경남 공업벨트가 대표 사례다. 그런데 SK하이닉스의 120조원 투자 규모인 제조업 클러스터가 서울 턱밑인 용인으로 갔다는 것은 지역 간 분업 모델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21세기 지식기반 경제에서는 지식을 보유한 고급 인재가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구미가 공장 부지를 무상 불하하고 기숙사를 지어주면 기업의 비용을 줄여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걸로 고급 인재를 구미에 살도록 잡아둘 수는 없다. 지식은 한데 모일수록 증폭하기 때문에, 집중될수록 더 많은 지식 노동자를 끌어들인다. 그래서 21세기에 대도시는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플랫폼’처럼 작동한다. 구글이나 네이버는 이용자가 몰릴수록 그것으로 정보 생산자를 끌어들이고, 정보 생산자가 몰릴수록 그것으로 이용자를 끌어들인다. 이것을 ‘네트워크 효과’라고 부른다. 커질수록, 더 커진다. 먼저 자리 잡은 플랫폼은 후발 주자와의 격차를 갈수록 벌린다.

도시도 그렇다. 어느 한 도시가 집중의 ‘임계질량’을 일단 돌파하면, 그때부터는 플랫폼처럼 네트워크 효과가 작동한다. 서울은 이 플랫폼의 위력을 발휘하는 글로벌 대도시다(〈시사IN〉 제601호 ‘헌법에 나오는 균형발전의 딜레마’ 참조). 이것은 균형발전론자에게 악몽의 시나리오다. 이제 정부가 공기업을 나눠주거나 수도권 진입을 규제하는 정도로는 수도권 집중을 막을 수 없다.

사실상 유일하게 가능한 대안은, 역설적이게도 플랫폼 효과를 낼 만한 거대도시를 지방에 육성하는 것이다. 지방 거대도시가 서울이 빨아들이는 힘에 버티도록 만들어야 지역이 인재와 산업을 보존할 수 있다. 지방에서 집중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분산도 균형도 없다. 2019년 7월, 김 지사는 〈시사IN〉 인터뷰에서 이 ‘분산을 위한 집중’ 전략을 처음 공개했다(〈시사IN〉 제628호 ‘노무현의 균형발전 1.0 김경수의 균형발전 2.0’ 참조). 부산을 핵심 거점으로 동남권의 제조업 단지를 한데 묶어 거대도시를 만들자는 구상이다. 기존의 광역 단위 행정통합론과 달리, 거대도시의 플랫폼 효과를 명시적으로 노린다. 이제는 ‘부산 메가시티’로 널리 알려진 구상이다.

부산 메가시티는 20세기형 균형발전처럼 특화와 전문화로 작동하지 않는다. 금융·회계·법률 등 글로벌 기업에 필요한 종합 서비스를 모두 갖춰야 하고, 고소득 지식 노동자가 중시하는 교육과 문화 기능이 강해야 한다. 좋은 대학도 필요하다. 고부가가치 산업이 있어야 이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다. 수도권처럼 광역교통망이 촘촘하게 이어져야 실질적인 한 도시로 작동할 수 있다. 한마디로 모든 도시 기능을 갖춰야 한다. 수도권 밖에서 그나마 ‘재료’를 두루 가진 곳이 부산을 끼고 있는 동남권이므로, 여기서 무언가를 만들어보자는 얘기였다. 부산 지역 언론들이 호응했고, 민주당 부산시당의 총선 핵심 공약으로도 제시됐다.

ⓒSK 하이닉스 제공경기도 이천시에 있는 SK하이닉스 공장 전경.

두 공항 드라마의 외전과 본편이 이제 만났다. 김해공항 확장 반대론의 원래 논거는 안전과 소음과 시설 포화 문제였다. 균형발전은 관련이 없지는 않아도 핵심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2019년 여름께, 김 지사의 구상에서 두 흐름이 만났다. 과거 김 지사는 김해공항 확장은 대안이 아니라고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가덕도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BC의 논리, 경제성과 최적화의 논리로 보면 가덕도가 뒤처진다는 2016년의 결론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2020년 8월에 부산시가 매립 면적을 줄여 총공사비를 7조5000억원으로 낮춘 가덕도 수정안을 내놓았다. BC로도 따져볼 만한 수준까지 왔다. 나아가 부산 메가시티 구상에 가덕도 신공항을 겹치자, 신공항은 이제 지역개발 공약을 넘어 정치인의 국가 비전을 상징하는 아이템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가덕도 지지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공항 기능은 여객이 아니라 물류다. 가덕도는 부산신항, 제2신항(진해 신항) 부지와 연이어 인접해 있다. 부산은 컨테이너 물동량이 세계 6위이고 환적 화물만 보면 2위다. 그러나 항공 물류와 연계가 약하다는 약점이 있다. 공항에서 여객기는 주로 낮에 뜨고 화물기는 밤에 뜨는데, 김해공항은 소음 문제로 활주로가 밤에 논다. 24시간 운영이 가능한 가덕도 신공항의 비교우위가 여기 있다고 지지자들은 본다. 이 장점은 부산 메가시티 구상과도 시너지를 발생시킨다. 아래 동남권 신공항 입지 비교 지도를 보자. 현재 부산의 관점으로 보면 가덕도는 서쪽으로 크게 치우쳐 있다. 하지만 광역권이 통합된 메가시티의 관점으로 보면, 가덕도는 부산과 창원과 거제를 잇는 삼각형의 한가운데다. 낙동강 두 지류 사이에 있는 서부산 일대는 장차 부산 메가시티의 신도심 후보지로 꼽힌다.

민주당은 이미 추진을 공언한 가덕도 신공항특별법 외에 물류산업특별법을 같이 준비하고 있다. 부산은 물동량은 많지만 물류산업의 부가가치는 낮다. 물류 부가가치로 손꼽히는 항구는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이다. 커피를 예로 들어보자. 로테르담은 배로 커피콩을 싣고 들어와, 물류가공 단지에서 로스팅을 하고 소포장을 한다. 이러면 훨씬 비싸게 팔 수 있지만(부가가치 창출), 로스팅된 커피여서 속도가 중요해진다. 그래서 비행기로 실어 나른다. 이런 모델로 가려면 필요한 게 첫째 24시간 공항이고, 둘째 물류가공업을 묶어둔 규제를 풀어주는 법 개정이다. 장기적으로는, 남북관계가 풀리면 항만과 공항에 대륙철도까지 연결시킨다는 구상이다.

균형발전을 비전으로 내세우는 정치

균형발전 전략인 부산 메가시티 구상 위에 가덕도 신공항을 배치하면 논쟁의 틀이 달라진다. 이제 가덕도 지지자들은 신공항이 지역개발 사업을 넘어서서 균형발전의 축이며, 균형발전은 서울시민의 삶도 개선한다고 주장한다. 다음과 같은 논리다. 수도권 집중은 서울 과밀을 낳고, 과밀은 부동산과 교육의 무한경쟁을 낳으며, 무한경쟁은 삶의 질 저하를 낳는다. 과밀할수록 덜 낳는 것도 있다. 아이다. 서울 출생률은 전국에서 가장 낮다. 그러므로 균형발전 전략은 과밀을 해소하는 서울의 민생 전략이자 인구 전략이기도 하다. ‘우리 지역에도 국비 사업을 나눠달라’는 주장보다는 이 편이 훨씬 명분이 강하다. 정치인이 비전을 제시한다는 것은 이런 식으로 지지자에게 논리와 명분을 제공한다는 뜻도 된다.

ⓒ연합뉴스11월11일 부산 영도대교 앞 유라리광장에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촉구하는 시민 결의대회가 열렸다.

반대로 가덕도 회의론도 더 깊은 정치적 비전의 문제로 재해석할 수 있다. 경제학자 출신인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11월23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사실상 가덕도 반대론에 가까운 신중검토론을 올렸다. “관문 공항이 어디에 위치할지는 현재 인천공항 중심 하늘길의 근본적인 재편과 관련된다. 공항이 활성화될지, 활주로에서 고추를 말릴지는 항공사들의 노선 개설이 중요한데, 지금 상황에서 항공 수요를 섣불리 추정해 계획을 확정해버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활주로에서 고추 말리는 공항’은 선심성 국책사업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무안공항의 별명이다.

이 표현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비전, 국가 자원은 낭비되어서는 안 되고 비용 대비 편익이 충분히 발생할 곳에 들어가야 한다는 비전이 함축되어 있다. 효율성이 가장 높은 곳에 자원을 투자하는 것이 최적이라는 비전이다. 윤 의원의 정치관에서는 ‘유권자에게 선심 쓰는 정치가’와 ‘세금 낭비를 막는 전문가의 합리성’이 대결한다. 가덕도 신공항이 부울경 권역 밖에서는 거의 지지자를 얻지 못하는 이유도 “지방의 선심성 낭비에 세금을 쓰지 마라”는 주장이 강하기 때문이다. 국토부가 가덕도 신공항에 반대하는 논리도 여기에 뿌리를 뒀다. 이 관점에서는 BC가 강력한 무기다. BC는 정치의 낭비적 속성을 막아내는 보루이자, 사실상 이 관점 자체다.

하지만 BC는 정치적 결단과 전략적 비전의 문제를 전문가의 계산 문제로 바꿔버린다. 이러면 정치의 공간이 좁아진다. 도시의 플랫폼 효과를 다시 떠올려보자. 지방은 돈도 사람도 떠나가기 때문에, 국책사업을 하려 해도 BC가 1을 넘기기 어렵다. 그렇게 해서 투자가 줄어들면, 돈도 사람도 더 빨리 지방을 떠나간다. 악순환이다. 균형발전을 비전으로 내세우는 정치가는 정치가 개입해서 이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효율성보다 더 큰 가치인 균형에 의지를 갖고 투자하다 보면, ‘BC가 1보다 낮은 사업’ 중 어떤 것은 장기적으로 공동체 전체를 더 효율적으로 만들 거라 믿는다. 하지만 그가 틀린다면, 그는 선심성 사업을 지역구에 가져간 예산 도둑과 겉보기에 차이가 없다. BC만 보고 결정하면 비전과 예산 도둑이 모두 걸러져버린다. BC를 무시하면 예산 도둑이 번창한다.

그래서 비전은 BC로 측정할 수 없다. 오직 정치가들이 비전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거기에 시민들이 폭넓게 참여할 때만 측정할 수 있다. 비전을 측정하는 과정이란 민주적 숙의 과정이고, 정치가의 리더십은 이런 과정을 거쳐 단련되고 성장한다. 시민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정치가들을 놓고 리더가 될 자질을 판단한다. 일련의 과정을 한 단어로 압축하면, 정치다. 그래서 우리가 보고 있는 두 공항 이야기는 정치 드라마다. 보는 사람이 지지하는 비전이 무엇이냐에 따라 장르는 달리 보인다. 어느 쪽이든 ‘부산시장 선거 표계산’과 ‘부울경 대 대구·경북 지역 갈등’으로만 납작하게 요약하기 아까운, 얘깃거리 풍부한 정치 드라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