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11월23일 김해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하고있다. 지형 탓에 김해공항에서는 이륙 후 20초정도 지나면 좌측으로 급선회해야 한다.

김해신공항이 백지화된 지 일주일 만인 11월24일, 부산·울산·경남(부울경)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수도권 언론 규탄’을 외쳤다. 이날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 등 14개 시민사회단체는 부산시의회에 모여서 동남권 신공항을 다루는 수도권 언론 보도가 “오직 부산시장 보궐선거용이라고 매도하는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정치 논리 이상으로 이 지역에서는 제대로 된 신공항이 절실하다는 주장이다.

“부울경에는 부울경의 사정이 있다.” 이를 수도권의 시각으로는 이해하지 못한다고 지역민들은 주장한다. 수도권 주민들은 체감할 수 없는 이 지역 산업과 경제의 위기감이 존재하고, 공항은 이를 타개하기 위한 지역균형 인프라 투자라는 얘기다. 산업이 편성되고 경제활동이 전개되는 터전은 지리적 조건과도 결부된다. 공항은 편리하고 안전한 교통 편의시설 이상으로 ‘부울경 지역 산업과 생활권을 개편하기 위한 첫 단추’라는 게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외치는 이들의 논리다.

이 지역의 ‘관점과 논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위기감’의 정체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부울경 지역민에게 당장 피부로 와닿는 위기는 인구 문제다. 부울경 청년층 인구가 수도권으로 이탈하는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동남지방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2018년 부산·울산·경남 인구이동통계’에 따르면 2018년 동남권(부울경) 인구 순유출은 약 4만6000명 수준이다. 해마다 순유출 규모가 늘고 있다. 2015년 805만명까지 늘었던 부울경 인구는 2018년 797만명으로 감소했다. ‘800만 부울경’이라는 구호가 무색해진다.

20·30 세대의 이탈이 특히 두드러진다. 2018년 기준, 부산 전체 순유출 인구는 2만6759명인데 이 가운데 절반 수준인 1만3612명이 20·30 세대다. 꾸준히 부산 인구를 흡수하던 경상남도도 인구 유출의 폭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통적인 제조업 도시인 창원시(5078명 순유출)와 거제시(4649명 순유출)에서도 상당수 인구가 경상남도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동남지방통계청은 2018년에만 약 9만3000명이 부울경을 등지고 수도권으로 향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자기장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부울경마저 수도권 집중화 현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다.

국가 전체 경제에서 부울경 경제권이 차지하는 비중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부울경 경제권의 경제생산 규모는 ‘지역내총생산(GRDP)’ 지표를 통해 대략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아래 〈그림 1〉은 2005년부터 2018년에 이르기까지 한국 전체 GDP와 부울경 GRDP, 수도권 GRDP를 함께 그린 그래프이다. 부울경 GRDP는 2018년 기준으로 약 275조원이다. 해마다 조금씩 증가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부울경 GRDP가 성장하는 속도(=성장률)는 대한민국 전체의 GDP 성장률보다 낮다. 2005년에는 부울경 GRDP가 국가 전체 GDP 대비 16.9%였지만, 2018년에는 14.5%로 2.4%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수도권은 같은 기간 2.8%포인트 증가해 비중이 더욱 늘고 있다. 수도권과 부울경 간 생산력 격차가 점차 심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부울경은 전통적으로 자동차·조선·기계·건설장비 등 이른바 중후장대 제조업이 발전한 곳이다. 1990년대까지 전통 제조업의 경우, 특정 지역에 산업 클러스트(집적지)를 육성하고 이곳에서 자재 조달, 제조, 물류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일종의 ‘공단형 발전’이 가능했다. 또한 이런 공단에 투자를 집중하면 할수록 수익이 더욱 늘어나는 ‘규모의 경제’가 작동했다. 지역 산업들이 자체적인 발전 동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IT 산업이 발전하고 전통 제조업에서도 연구개발(R&D) 분야가 중요해지면서 부울경 지역 산업단지는 발전 동력의 상당 부분을 수도권에 빼앗기기 시작했다.

동남권 전역의 경제·지리 환경 흔든다

제조 기지로서 차지하는 안정감도 나라 안팎으로 위협받는 중이다. 규모의 경제에 의존한 제조업은 저렴한 인건비로 ‘패스트 팔로어’ 전략을 취하는 중국·동남아 산업단지와 경쟁해야 했다. 국내에서도 경기 남부(평택·화성·안성)와 충남 북부(서산·천안·아산·당진)에 자동차·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단지가 확대되면서 새로운 경쟁 대상으로 떠올랐다. 아산만을 필두로 한 이 지역은 사실상 수도권 경제권역에 포섭된다. 전통 제조업까지도 수도권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이 지역 주민들은 왜 공항을 돌파구로 삼는 걸까. 공항이 들어선다고 수도권에 위치한 지식기반 산업이 부울경으로 이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지역의 산업 경쟁력이 공항 덕분으로 단번에 ‘경기 남부+충남 북부’를 추월할 것도 아니다. 공항을 단순히 800만 지역민의 여객 기능에 맞추어 살펴보면 산업 재편과 맞닿지 않는다. 접근성과 여객 기능만 생각한다면 김해공항 확장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울경은 공항을 산업과 연계한 지역발전 전략을 품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물류·교통 산업 측면을 강조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한반도 동남권 전역의 ‘경제·지리적 환경’을 뒤흔들겠다는 구상이다.

당장 부울경에서 가덕도 국제공항 안이 각광받는 이유는 지리적으로 멀지 않은 부산 신항만과의 연계로 물류산업을 발전시킨다는 전략 때문이다. 항만과 공항은 바다와 하늘을 각각 가로지르는 물류의 집결지다. 항만에서 공항으로, 공항에서 항만으로 화물을 나르다 보면 인근에 물류 터미널이 필요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물류 관련 산업이 확장될 수 있다.

즉, 가덕도 국제공항 방안의 초점은 여객이 아니라 화물이다. 화물 물류의 중심지인 공항은 시민들의 주거지로부터 가급적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화물을 처리하려면 비행기가 24시간 중 아무 때나 뜰 수 있어야 하는데, 주거지 부근에서는 야간 시간대의 이착륙이 법적으로 금지되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 2〉 지도를 보자. 공항은 활주로를 기준으로 타원형 소음 축(노란색)을 만들어낸다. 이 축에는 건축물의 고도 제한 역시 필요하다. 김포공항의 경우엔 서울 양천구 신월동, 인천 계양구 상야동 등을 소음 축에 포함한다. 소음 축 내에 주택 밀집지역이 있다면 야간 운항은 불가능하다.

반면 부산시가 주장하는 가덕도 신공항 구상안에 따르면, 활주로를 동서 축으로 만들어 24시간 운항이 가능하다. 주변에 주거지역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비슷한 사례는 일본 나고야 주부공항이다. 이곳 역시 해안 축과 평행하게 인공섬을 만들어 공항을 세웠다.

항공 교통산업도 고려 대상이다. 부울경 지역은 신공항이 반드시 ‘허브공항’ 기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행기 격납고, 정비시설 등이 연계되는 방식이다. 항공기 운항만 할 경우 신공항은 ‘정류장’ 이상이 되기 어렵다. 반면 특정 항공사의 허브공항이 될 경우, 연계된 운항·정비 인력을 고용하는 효과를 낳는다. 하지만 부울경 인구와 경제 규모만 놓고 본다면 대형 항공사가 인천공항 대신 동남권 신공항을 허브로 삼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방안이 논의되는 와중에는 더욱더 그렇다.

이에 대해 경남연구원 남종석 연구위원은 고정관념을 뒤바꾸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가덕도 신공항이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같은 FSC(Full Service Carrier·대형항공사) 대신 ‘대형 LCC(Low Cost Carrier·저비용항공)’의 허브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대형’과 ‘저비용’이다. 한국에서는 LCC를 ‘저가항공’으로 부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남 위원은 “보유 기종이 20~30대에 불과한 저가항공은 영세 항공에 가깝다. 비용이 더 든다. 100대가량을 동시에 운용하면 오히려 구매·정비·운용 측면에서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수요가 많은 중국·일본·동남아를 연계하는 항공사의 허브로 기능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남 위원이 말하는 ‘규모’는 현재 국내 1위 LCC인 제주항공의 두 배에 달한다. 제주항공은 현재 보잉 사의 B737-800 기종을 44대 구입·리스해 운용 중이다. 노르웨이 오슬로가 허브인 ‘노르위전 에어셔틀(113대 운영)’, 스페인 바르셀로나가 허브인 ‘부엘링(125대 운영)’처럼 규모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결국 인접 국가의 국제선 노선이 활발하게 운용되어야 한다. 가덕도 신공항이 동아시아 국가들을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하려면 인천공항과 경쟁해야 할 것이다.

LCC들의 허브 기능은 코로나19 이후 전개 중인 국내 항공산업 재편과도 맞물려 있다. 상대적으로 영세한 규모인 이스타항공은 경영 위기에 처했고, 대형항공사의 자회사인 진에어·에어서울·에어부산은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다. 가덕도 신공항 방안의 주창자들은 작은 LCC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것보다 소수의 대형 LCC가 한국 ‘공항산업’의 발전에 유리하다고 말한다. 이런 대형 LCC들을 가덕도 신공항으로 유치해야 허브공항으로서의 지위를 점유할 수 있다. 이 구상은 코로나19 이후 초유의 위기를 맞고 있는 국내 LCC 업계의 재구조화는 물론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 중인 항공산업 재편과 무관하지 않다.

물류산업과 항공산업, 두 산업은 가덕도 신공항 방안의 단기적이고 표면적인 근거다. 신공항을 통해 당장 유발효과가 나타나는 산업이다. 그런데 부울경에서 공항 문제는 특정 산업들을 훌쩍 뛰어넘는 큰 그림과 연관된다. 바로 부울경 경제권의 ‘집적도’를 높이는 터전을 조성하는 계획이다. 부울경 메가시티를 위한 공간적 환경을 조성하려면 가덕도 신공항이 필요한 동시에 김해공항의 확장은 억제해야 한다. 지리적인 조건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그림 2〉 지도를 살펴보자.

부울경은 연결된 권역이 아니다. 부산은 구도심 해안가를 중심으로 골짜기를 따라 뻗어나가며 성장한 도시다. 한동안 부산 신시가지 확장은 북쪽으로 향했다. 경남 양산시가 베드타운화되었고, 최근에는 기장군에 대규모 주택단지가 들어서면서 울산과의 연계성을 높였다. 한편 경남 창원시는 국내 첫 산업 중심 계획도시로 인근 마산·진해와 통합해 덩치를 키웠다. 인근 김해시까지 경제권이 확장됐다. 최근 부울경 지역에서 등장하는 메가시티 구상은 울산권역·부산권역·창원권역을 묶어 이들을 연계하고, 공간을 압축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교통을 통해 이동거리를 압축하고 중간 거점지역을 개발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이동거리를 압축하기 위해서는 철도, 특히 광역전철망이 필수적이다. 부산·울산·창원이 대중교통으로 1시간 이내에 오갈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동질성이 생긴다. 교통망이 뚫리고 사람들이 오가며 끝내 행정체계까지 통합한다면 국가 지원사업을 둘러싸고 부울경의 세 광역자치단체들이 소지역주의를 주장할 여력이 사라진다. 가덕도 신공항은 부산 서부 지역과 경남 창원·거제를 대중교통으로 잇는 명분이 될 수 있다. 공항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철도망 구축은 곧 경남 동남부를 부산과 이어주는 촉매제가 된다.

ⓒ부산시 제공부산광역시가 가덕도에 추진하려는 신공항 조감도.

사업비 7.5조원보다 더 커질 수도

중간 거점지역을 새롭게 개발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고민할 문제다. 〈그림 2〉 지도처럼 부울경에서 유일하게 개발되지 않은 곳이 바로 낙동강 하구 삼각주지역, 김해평야 지역이다. 현재 김해공항이 위치한 이곳은 과거에는 연약지반으로 개발이 어려웠다. 낙동강 퇴적물이 만들어낸 땅이라서 지하철을 파기도 힘든 곳이었다. 그러나 연약지반의 한계를 극복할 만큼 건설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정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 지역 남부 해안가에 명지신도시가 들어선 이후 부산진해 경제자유구역, 부산 에코델타시티 친수구역 등이 개발 순서를 밟고 있다. 자연스럽게 부울경 중앙에 위치한, 대규모 산업단지 개발이 가능한 지역에 신산업을 유치하는 터전을 구상할 수 있다. 유일한 장애물은 현재 이 지역 한가운데에 놓인 김해공항뿐이다.

김해공항 확장안(신공항)은 현재 남북 방향으로 놓인 김해공항 활주로 옆에 40° 기울인 신규 활주로를 신설하는 방식이다. 〈그림 2〉처럼 V자형 활주로가 놓일 경우, 소음피해와 고도 제한에 걸리는 지역은 좀 더 넓어진다. 이 지역 김해평야를 메가시티의 중심지로 활용하는 안은 자연스럽게 제동이 걸린다. 부울경 지역민들의 가덕도 신공항 주장 한편에는 ‘김해공항으로 인한 개발제한구역, 소음피해구역 확대에 반대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김해공항 확장안이 백지화되었다고 해서 가덕도에 곧바로 공항을 세운다는 뜻은 아니다. 절차에 따라 새로 공항 후보지를 물색하고 검증을 받아야 한다.

현재까지 나온 가덕도 신공항 구상안은 지난 8월 부산시가 발표한 자료에 근거하고 있다. 2015년 프랑스 파리공항공사엔지니어링(ADPi)이 검증하던 당시에 비해 ‘육지에 걸치는 부분’을 더 늘린 안이다. 기존 안은 해상 75%, 육지 25%로 구성된 구조라서 사업비용이 많이 들지만, 이번 수정안에서는 육상 면적 비율을 57%로 늘렸다.

그러나 부산시의 이런 생각대로라면, 사실상 가덕도 남부 산지를 모두 폭파해야 한다. 최대 260m 높이인 이곳 산지의 면적은 서울에 위치한 남산(262m)보다 넓다. 매립과 굴삭을 반복해 얻는 공항인데, 활주로가 하나뿐이다. 항공 물류까지 담당하는 허브공항으로 기능하기에는 모자라다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부산시는 이 같은 안을 기초로 할 경우 사업비가 약 7.5조원 소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부산시 자체 분석에 불과할 뿐, 활주로를 추가하거나 인근 도로 및 철도망을 구축하는 것까지 고려하면 비용은 이보다 더 커질 수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가덕도 신공항을 속도감 있게 밀어붙일 계획이다. 백지화 결과가 나온 지 9일 만인 11월26일, 민주당은 당내 136명이 서명한 ‘가덕도신공항 건설촉진특별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동남권 신공항이란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 일원에 건설되는 공항을 말한다”라는 문구가 명기되어 사실상 가덕도안을 명문화하고 있다. 부울경 내 여타 후보지를 물색하기 이전에 입법을 통해 가덕도 신공항을 밀어붙이는 방식이다. 부울경 지역민의 염원은 김해신공항 백지화 이후 급물살을 타고 있다. 공항까지 가는 길은 예상보다 빠를 수 있다. 그러나 부울경 지역이 원하는 ‘산업체계 변화와 연동된 새로운 메가시티 도시계획’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신공항이라는 모멘텀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수도권 과밀화, 수도권 독점에 대항하자는 지역사회의 ‘합의’가 얼마나 견고하게 유지되느냐도 관건이다.

기자명 부산·창원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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