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9월10일 제주 신산리 앞바다에서 해녀가 물질을 하고 있다. 제주 제2공항이 들어서면 활주로가 시작될 곳이다.

열세 살부터 전복을 땄다. 남편도 같은 마을 사람이었다. 덕분에 평생 제주 신산리 앞바다를 떠날 일이 없었다. “여기로 돌고래가 넘어가거든. 한참 물질하고 있으면 돌고래가 옆에 와요.”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산물로 살림을 꾸렸다. 그렇게 키운 자식들은 모두 육지로, 해외로 떠났지만 강형년씨(75)는 여전히 신산리 앞바다에서 물질을 한다. 제주 제2공항이 들어서면 활주로가 시작될 곳이다.

아침 일찍 바다에 들어가 정오 무렵에야 뭍으로 나온 강형년씨는 취재진이 띄운 드론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고무마개로 귀를 막고 있어도 헬리콥터 한 대만 지나가면 그날은 머리가 핑핑 돌아서 일을 할 수가 없어.” 물속에서는 소리 전달이 잘 돼 훨씬 크게 들린다. 한 시간에 비행기 수십 대가 뜨고 내리는 공항이 들어서면 물질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와 함께 신산리 앞바다에서 일하는 해녀 15명도 마찬가지다.

오전 내내 물질을 한 그의 망사리(그물망)에는 보말(바다고둥)뿐이었다. “전에는 풀도 나고 소라도 있고 전복도 있었는데 지금은 구경도 못해요.” 그가 느끼기에 바다에서 소라와 전복이 나지 않게 된 건 5~6년 전부터다. MBC 〈시사매거진 2580〉이 제주공항 근처 제주하수처리장에서 정화되지 않은 폐수가 곧장 바다로 방출되는 모습을 찍어 내보낸 때도 비슷한 무렵인 2016년 9월이었다. 정화시설이 노후한 데다 처리 용량도 초과한 상태였다. 2016년 상반기 중 제주하수처리장에서 처리 가능한 수준의 폐수가 배출된 날은 단 5일뿐이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1년 뒤인 2017년 9월에도 제주하수처리장에서 폐수가 흘러나오자 인근에서 작업하는 해녀들이 직접 제주도청을 찾아 항의하기도 했다.

쓰레기도 이미 적정 처리 수준을 넘긴 상황이었다. 2019년 3월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쓰레기 불법 수출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2016~2017년 제주시가 제주북부소각장에서 감당하지 못한 쓰레기를 위탁업체에 맡겼는데, 이 중 1780여t은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9260여t은 군산항과 광양항에 보관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제주도는 주민 1인당 생활폐기물 배출량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8년 기준 서울특별시에 사는 주민 한 명이 하루에 쓰레기 1㎏을 배출했다면, 제주도는 2㎏를 배출했다.

ⓒ시사IN 이명익평생 제주 신산리 앞바다에서 물질을 해온 해녀 강형년씨.

‘청정 제주’는 어쩌다 폐수와 오물로 뒤덮이게 됐을까. 제주도는 2013년 ‘연 1000만 관광객’ 신기록을 세웠다. 저비용항공기 운항이 늘어나고 중국 관광객이 즐겨 찾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메가 관광시티’로 발돋움했다. 2016년 1585만명으로 정점을 찍고, 지난해에는 1502만명을 기록했다. 세계적 휴양지인 발리(제주도 면적 3배)나 하와이(15배)조차 연 1000만 관광객 규모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수치다. 그러나 관광객이 급증한 만큼 폐수나 쓰레기 처리, 난개발과 같은 문제도 커졌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의 약자 JDC가 ‘제주 다 판다 센터’의 줄임말이라는 우스갯소리, ‘신(新)삼다도’로 렌터카·중국 관광객·게스트하우스를 꼽아야 한다는 농담이 유행하던 때였다.

관광객이 밀려들자 국토교통부(국토부)는 2013년 8월 ‘제주 항공수요조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 2018년부터 현 제주공항의 활주로가 혼잡해지기 시작할 것이며, 2035년에는 연간 이용객이 4549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이를 기반으로 국토부는 ‘제주 공항인프라 확충 사전타당성 검토’를 진행했다. 현 제주공항 수용능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으니, 이제 어떤 방식으로 공항 인프라를 확충하는 게 최선인지 찾아보자는 게 목표였다. 당시 연구용역을 맡았던 한국항공대학교 산학협력단은 세 가지 방법을 비교했다. (1)현 제주공항을 확장하는 방법 (2)현 제주공항을 폐쇄하고 큰 공항을 새로 짓는 방법 (3)현 제주공항을 그대로 두고 제2공항을 짓는 방법. 용역팀은 이 중에서 제2공항 건설을 최적의 방법이라고 판단하고,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를 최적의 후보지로 제안했다.

대박 나는 거야? 없어지는 거야?

2015년 11월10일 국토부는 성산읍 신산리에 제2공항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제주공항 부지 100만 평보다 1.5배 넓은 150만 평 규모였다. 3.2㎞ 길이 활주로가 신산리에서 시작해 난산리를 거쳐 수산리에서 끝나는 계획이었다(〈그림 1〉 〈그림 2〉 참조). 온평리는 공항 건물 등 부대시설에 접하게 됐다. 활주로가 시작되는 신산리는 충격에 빠졌다. 강원보 신산리 이장은 제2공항 건설이 발표된 날 아침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아침 8시도 안 된 시간이었어요. 자고 있는데 한 일간지 기자한테 전화가 온 거예요. 곧 공항 발표 나는데 알고 있냐고, 신산 쪽이라고.”

곧이어 성산읍 전체가 술렁였다. 마을 사람들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우리 마을 대박 나는 거야?’ ‘우리 마을 없어지는 거야?’ 서로를 붙잡고 물어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갑작스러운 깜깜이 발표였다. 당일 오후에야 성산읍사무소를 찾아 주민설명회를 연 원희룡 도지사를 향해 주민들은 항의했다. 왜 사전에 주민들의 의견을 한 번도 묻지 않았느냐고. 원 도지사는 “미리 입지가 거론되면 부동산 투기 때문에 공항을 짓고 싶어도 못 짓게 된다”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한 주민은 “내가 사는 곳이 어떻게 되는지 알 권리보다 정부가 땅을 싸게 수용할 권리가 먼저란 말인가”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제주제2공항성산읍반대대책위원회(대책위)’를 만들었다. 제2공항 예정 부지에 들어가는 5개 마을 중 반대 의견을 채택한 신산리, 난산리, 수산리 3개 마을이 연대했다. 대책위는 ‘사전타당성 조사·예비타당성 조사·기본계획 수립’으로 일사천리 이어지던 과정에 제동을 걸었다.

2017년 10월 대책위는 제주도청 앞에 천막을 쳤다. 난산리 주민 김경배씨가 42일 동안 단식에 들어갔다. 결국 국토부는 2018년 6월 사전타당성 조사를 재검증하기로 했다. “국토부는 ‘국책사업으로는 유례없는 재검증’이라고 생색을 냈지만, 애초에 왜 재검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까요. 뒤집어보면 그만큼 유례없이 조사가 허술했다는 뜻이잖아요.” 박찬식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비상도민회의) 상황실장이 말했다.

주민들은 재검증조차 투명하게 진행되지 못할 것을 우려했다. 이에 대책위는 국토부와 공동으로 재검증 과정을 감시할 수 있는 검토위원회를 꾸렸다. 하지만 활동 기간이 짧아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 부족할 경우 검토위의 활동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지만, 국토부는 이를 거부했다. 2018년 12월 검토위 활동이 일방적으로 종료되자 난산리 주민 김경배씨는 다시 단식에 들어갔다. 국토부는 멈추지 않았다. 열흘 뒤 다음 단계인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가 재개됐다.

ⓒ시사IN 이명익9월10일 제주 제2공항 예정 부지에서 숨골을 찾고 있는 박찬식 비상도민회의 상황실장.

제주도청 앞에는 김경배씨의 단식 천막과 함께 제2공항을 반대하는 천막이 하나둘 늘어갔다. 여기에 제주도의회, 지역구 의원, 여당까지 나서자 결국 2019년 4월 국토부는 애초 합의한 대로 검토위 활동을 연장하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이미 착수한 기본계획 용역은 중단하지 않았다.

다시 열린 검토위에서는 뜻밖의 이슈가 튀어나왔다. 사전타당성 조사 단계에서 하도급 연구용역으로 수행됐던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보고서가 공개된 것이다. 국토부가 용역이 끝난 뒤 보안업무 규정에 따라 삭제했다고 말한 보고서였다. 보고서는 ‘현 제주공항의 항공시스템을 개선하고 보조 활주로를 활용할 경우, 사전타당성 조사에서 예측한 2035년 기준 이용객 4500만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다시 말해 사전타당성 조사 단계에서 폐기된 ‘현 제주공항 확장’ 방안이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현 공항 확장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제2공항 건설 반대 여론이 높아졌다(〈그림 3〉 참조). 결국 국토부와 제주도는 10월19~20일 토론회를 열어 ADPI 보고서에 언급된 ‘현 공황 확충 방안’의 실현 가능성을 다루기로 합의했다. 대책위는 내내 찬반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는 ‘토론’보다 직접 ADPI 연구진을 불러 실현 가능성을 따져보는 ‘검증’을 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5년 동안 토론회는 이미 많이 열었거든요. 그때마다 결론을 내기는커녕 의혹 해소조차 하지 못했어요. 늘 부르던 전문가들을 불러서 토론회 한 번 더 한다고 결론이 나올까요.” 박찬식 상황실장 역시 토론회 방식에 회의적이다.

그는 ‘확장이냐 신설이냐’라는 질문 자체를 바꿔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ADPI 보고서 내용처럼 현 제주공항에 더 많은 비행기를 띄운다면 그 주변 지역의 소음 피해도 심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확장이든 신설이든 관광객을 더 받겠다는 걸 전제로 하거든요. 그 전제가 옳은가부터 따져봐야 해요.” 관광객을 더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첫 단추부터 제주도민이 결정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동안 과소평가됐던 환경문제도 하나둘 불거지기 시작했다. 특히 제2공항 건설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나 다름없는 환경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 국토부는 두 번이나 보완 요구를 받았다. 소음 문제, 철새 충돌 문제, 동굴 문제를 재조사하라는 요구였다.

ⓒ시사IN 이명익9월9일 제주문화예술공동체 소속 예술가들이 수산리 마을에서 벽화를 그리고 있다(위). 백동백은 수산초등학교의 교화다. 제2공항이 들어서면 학교는 문을 닫을 가능성이 크다.

먼저 소음 문제는 주민의 생존권과 직결된다. 현 제주공항에서 발생하는 소음 등고선의 길이는 28.5㎞에 달하는데, 국토부가 환경부에 제출한 전략환경영향평가서에 따르면 제2공항의 예상 소음 등고선은 14.2㎞에 불과하다. 제2공항의 부지는 1.5배 더 넓은데 소음은 절반 수준이라는 주장이다. 저소음 항공기가 전체 운항기의 33.2%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2055년을 기준으로 한 결과다. 제2공항 완공은 2025년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소음 등고선은 30년 뒤인 2055년 상황에 기반해 그려졌다는 의미다.

해군기지, 비자림로, 이제 제2공항

활주로의 끝에 위치한 수산리는 비행기 이착륙 경로를 사이에 두고 마을이 양쪽으로 나뉜다. 1946년 개교한 수산초등학교도 활주로에서 약 1㎞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수산초는 2012년 농어촌지역 학교 통폐합 위기가 닥치자 마을 사람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폐교를 면했다. 당시 주민들은 학교 앞에 빌라를 짓고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족만 들어와 살 수 있도록 유인책을 마련했다. 그 덕분에 당시 16명이던 전교생은 현재 80여 명으로 늘어났지만, 제2공항 추진이 결정되면서 소음으로 인해 문을 닫게 될 상황에 놓였다.

수산리 활주로 양옆에는 오름이 12개나 분포해 있다. 예비타당성 조사 보고서에는 이 중 10개 오름을 각각 40~100m씩 깎아내야 한다고 쓰여 있다. 비행기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공항에 착륙하지 못하고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 선회비행을 할 때 장애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름 절취가 문제가 되자 국토부는 뒤늦게야 10개 중 9개 오름이 모여 있는 활주로 서편은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주민들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비행기가 한쪽으로만 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국토부의 계획이 실현 가능한 것인지 의문을 품고 있다.

ⓒ시사IN 이명익자신의 귤밭에서 마을신문 〈곱을락〉을 들고 있는 수산리 주민 오창현씨.

제주의 특수한 지형이 훼손되는 건 오름만이 아니다. 용암동굴은 화산 폭발이 일어났을 당시 생성된 지형이다. 점성이 낮은 묽은 용암이 빠르게 흘러갈 때 표면만 식어 평평하게 굳고, 땅 아래에는 여전히 용암이 흐르다 빠져나간 뒤에 뻥 뚫린 채로 남은 공간이 용암동굴이다. 지표면인 빌레(평평한 바위를 일컫는 제주말)에는 ‘숨골’이라 불리는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 용암동굴로 연결된다. 비가 내리면 지표면을 따라 흐르던 빗물이 숨골을 통해 지하의 용암동굴로 모인다. 태풍과 장마가 잦은 제주에 물난리가 드문 건 천연 배수구나 마찬가지인 숨골 덕분인 셈이다. 그런데 제2공항이 들어서는 150만 평 부지가 콘크리트로 덮이면, 그만큼 홍수가 날 위험은 높아진다.

국토부는 환경부에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하며 예정 부지에 있는 숨골은 8곳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토부의 주장에 반발한 마을 주민과 전문가가 뭉쳐 한 달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찾아낸 숨골만 61곳에 달했다. 국토부의 연구용역을 맡은 업체 관계자는 숨골을 ‘송아지가 빠질 만큼 큰 구멍’이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대한지질학회에서는 제주도의 숨골 유형 중 밖에서 구멍이 보이지 않는(흙에 묻힌) 유형이 가장 많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 동굴조사를 함께했던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는 “막상 용역팀에서 언급한 숨골 8곳의 위치를 찾아가봤더니 구멍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만큼 문제들이 드러났는데도 정부는 왜 제2공항 추진을 강행하는 걸까.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성산 제2공항이 강정해군기지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라고 입을 모은다. 박찬식 상황실장은 “강정해군기지가 들어설 때부터 이미 ‘해군기지 다음에는 공군기지’라는 말이 나왔다”라고 말했다.

‘강정해군기지’로 알려진 곳의 정식 이름은 사실 ‘제주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2009년 4월 김태환 당시 제주도지사가 회유책으로 꺼내든 카드가 ‘제주해군기지(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건설을 위한 기본협약서’였다. 군함이 들어오는 대신 크루즈 선박도 들어올 수 있도록 기지를 설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군항이면서 동시에 크루즈항이기 때문에 ‘지역개발’이 가능하다는 명분을 덧씌운 것이다. 하지만 2018년 5월 ‘서귀포 강정 크루즈터미널’이 문을 연 이후 현재 10월까지 이곳에 입항한 크루즈선은 단 두 척뿐이다.

제주도의회에서 ‘제2공항 건설 갈등 해소를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원철 의원 역시 제2공항이 강정해군기지에 이어 군 공항으로 활용되는 게 아니냐는 추측에 대해 “합리적 의심”이라고 말했다. 실제 2017년 3월 국방부가 남부탐색구조부대(‘제주공군기지’에서 변경된 용어) 입지 선정을 검토하기 위한 예산을 계획해두었고, 제2공항을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제주도를 군사기지화한다는 비판이 일자 국토부는 제2공항에 군사시설을 설치할 계획이 없다고 해명했다. 제주도청도 제2공항은 순수 민간공항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틀 뒤인 2017년 3월9일 정경두 당시 공군참모총장은 서귀포시에서 열린 한 공군행사에 참석해 “제2공항에 공군부대를 설치할 계획이며 기존 국방 중기계획에 따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활주로 예정지 끝에 위치한 수산리 주민 오창현씨(46)는 아직도 강정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고 말했다. “당시에 강정해군기지를 반대하긴 했지만 직접 도와주진 못했거든요. 이게 이렇게 돌아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해군기지, 비자림로, 이제 제2공항인 거예요.”

2018년 8월 잘려나간 삼나무 사진으로 전국적인 이슈가 됐던 비자림로 공사 역시 제2공항 건설의 전초작업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비자림로는 성산읍(제2공항)과 제주 시내를 연결하는 도로이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지역 주민의 숙원사업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공사에 앞서 도가 발표한 ‘제주시-제2공항 연계도로’에 비자림로가 포함됐다. 그러나 벌목작업 중 팔색조, 애기뿔소똥구리 등 멸종위기종이 숲속에 서식하고 있음이 밝혀지면서 공사가 중단됐다. 제주도가 제출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에는 보고되지 않았던 항목이었다. 제주도는 공사를 다시 시작했지만, 환경부는 사업 변경 협의를 하지 않고 불법으로 공사를 재개한 제주도에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했다.

ⓒ시사IN 이명익‘성산환경을 지키는 사람들’ 회원으로 활동 중인 신양리 주민 김현지씨.

제주 2공항 부지가 들어서는 마을의 주민들은 십시일반 힘을 모아 이런 사실을 알리는 마을신문 〈곱을락〉을 지난 3월부터 2호째 펴냈다. ‘곱을락’은 숨바꼭질을 의미하는 제주말이다. 제주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 알리고, 환경을 파괴하는 문제는 밝히겠다는 뜻을 담았다. 올해 3월 처음 발행된 신문은 다음과 같은 여는 말로 시작된다. ‘제주는 오늘도 공사 중입니다. 세상은 변하는 중이고 제주도 변해가겠지만 그 변화가 제주 사람들이 서로 돕고 나누며 행복하고 아름다운 쪽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곱을락〉을 함께 만든 사람 중에는 신양리 주민인 김현지씨(27)도 있다. 신양리는 제2공항 부지에 포함되지 않은 마을이지만 그는 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당사자’ ‘외부인’ 식으로 나뉘는 걸 경계한다. “성산읍에는 14개 마을(리)이 있지만 다들 ‘성산 사람’이라고 해요. 사람들도 모두 연결돼 있고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그는 졸업하자마자 나고 자란 제주로 다시 내려왔다. 어렸을 때부터 매일 바다에서 수영과 서핑을 즐기던 그에게 도시 생활은 너무나 답답했다. 그는 지금 당장의 대안을 이야기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제2공항 문제까지 갈 것도 없어요. 제주도는 벌써 문제가 꽉 차 있거든요. 도에서 오버투어리즘(과잉 관광) 문제나 난개발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제2공항 문제도 믿고 지켜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죠.”

최대 가성비에서 지속 가능성으로

‘최대 관광객 수’와 ‘적정 관광객 수’는 다른 문제다. 전자는 수치로 추산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이지만, 후자는 해당 지역의 환경수용력을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다. 그러나 제주도뿐만 아니라 제2공항 사업을 추진하는 국토부 역시 ‘감당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한다. 2019년 5월 제2공항 관련 공개토론회에서 “제주도가 연간 4500만 이용객을 받을 수 있다는 검토가 된 상태에서 공항 건설을 추진하는 건가”라는 질문에 국토부 관계자는 “항공 수요를 추정할 때 그런 부분은 저희가 반영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공항은 활주로 완공이 전부인 시설이 아니다. 공항을 지으면 그만큼 더 들어오는 관광객을 받기 위해 호텔·식당·도로를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항은 개발의 결과이자 개발의 시작이기도 하다.

ⓒ시사IN 이명익5개월간 날마다 직접 찍은 철새 사진으로 보고서를 만든 신산리 주민 강석호씨.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는 제주 난개발을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이 변질돼가는 과정에 비유했다. 밀려드는 손님을 무작정 다 받다 보면 어느새 음식 맛과 청결,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2018년 쌓인 쓰레기를 치우고 환경을 정화하느라 6개월 동안 관광객을 받지 않은 보라카이섬을 언급했다. “보라카이섬은 극단적인 예시이지만, 제주도 이제 적정한 관광객 수를 고민하고 제한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요.” 그는 국토부가 국토개발 패러다임을 ‘최대 가성비’에서 ‘지속 가능성’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근대적 토건사업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시대라는 것이다.

‘제2공항이 생기면 교통이 편리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막연한 기대에 불과하다. 국제선과 국내선을 운영하는 대형 항공사는 두 노선을 분리할 수 없기 때문에 한 공항만 사용할 수밖에 없다. 결국 제2공항이 생기더라도 이곳에 오는 비행기는 국내선만 운영하는 저비용항공사뿐이다. 여행 경비가 빠듯한 여행객이나 사정이 여의치 않은 제주도민은 제주공항에 내리고 싶어도 제2공항에 내려 차를 빌리거나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 제2공항에 찬성하는 지역 주민도 있다. “젊은 사람들은 당장 일자리가 생기니까요. 좋은 일자리가 아니고 비정규직뿐인 걸 알아도 어쩔 수 없어요. 부모님 식당을 물려받을 게 아니면 제주시로 가거나 육지로 나가야 한다는 걸 저도 잘 알기 때문에 찬성하는 마음도 이해해요.” 김현지씨의 말이다. 그는 1인 미디어를 만드는 등 제2공항 이슈를 제주도민에게 알리려 노력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성산환경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 중이다. 국토부에서 환경평가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니, 본인이 직접 철새나 맹꽁이 등의 서식 현황을 조사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지역 주민들의 모임이다. 조류 전문가들을 마을로 초대해 교육을 받은 주민들이 직접 ‘대포 카메라’를 메고 다니며 환경부에 제출할 탄원서를 준비하고 있다. 김현지씨는 새를 찍는 게 재미있다가도 문득 ‘내가 지금 왜 새 사진을 찍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사실 이건 정부가 제대로 했어야 하는 일이잖아요. 얼마든지 더 꼼꼼하게 조사할 수 있었을 텐데….”

‘성산환경을 지키는 사람들’ 멤버 중에는 활주로가 시작되는 신산리 주민 강석호씨(76)도 있다. “여기가 바람도 세고 비도 많이 오고 농사짓기엔 참 고약한 땅이야. 그래도 뭐 할 수 있는 게 있어야 떠나지.” 여든이 가까운 나이지만 그는 여전히 매일 감귤색 작업복을 입고 한라봉 비닐하우스에서 작업을 한다. 작년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는 아침·점심·저녁 작업을 하기 전 카메라를 들고 해안가를 돌며 겨울 철새 사진을 찍었다.

평생 한라봉 농부로 살았던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조류 박사’가 됐다. “국토부 고시를 보면 공항 근처 8㎞ 이내에는 조류보호구역이 있으면 안 된단 말이에요. 근데 제2공항 부지에서 8㎞ 이내에 하도리, 종달리, 오조리, 온평~신천 해안 철새 도래지까지 쫙 분포해 있단 말이야.” 국토부는 철새가 날 수 있는 고도는 100m 미만이므로 비행기가 부딪칠 일이 없다는 결론을 냈다. “대양을 건너오는 겨울 철새가 그 정도 높이밖에 못 난다는 거야. 당장 성산일출봉 절벽에도 철새 둥지가 있는데. 그 새들은 100m부터 두 발로 걸어서 올라갔나 봐.” 자료를 보던 강석호씨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5개월간 찍은 사진 1000여 장을 고르고 골라 50쪽이 넘는 탄원서 ‘제주 성산 제2공항 예정지 주변 철새 서식지 조사 자료’를 만들었다. 여기에 지역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 국토부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에 각각 한 부씩 보냈다. KEI는 전략환경영향평가를 검토하는 국책 연구기관이다. “국토부와 환경부가 이 사안을 가볍게 여기면 언젠가 국제적 망신을 당할 겁니다. 주민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찬성이냐 반대냐를 떠나서 비행기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를 이렇게 허술하게 넘기면 안 돼요. 이게 선례가 되면 국토부는 분명히 다른 곳에 가서 또 이렇게 엉터리 사업을 할 거란 말이에요.”

ⓒ시사IN 이명익제주 제2공항이 지어질 경우 이·착륙하는 비행기의 시각에서 바라본 신산리 전경.

평생 살아갈 우리가 결정을 해야지

2020년 10월 현재 제주 제2공항은 사전타당성 조사, 예비타당성 조사, 기본계획을 거쳐 사업 고시만을 앞두고 있다. 환경부로부터 전략환경영향평가 동의만 얻으면 제2공항 사업은 첫 삽을 뜨게 된다.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대책위는 국토부와 제주도에 공론화 조사 실시를 요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단순히 찬반만 묻는 주민투표보다 신고리 5·6호기를 결정했던 것과 같은 숙의형 민주주의 방식을 희망한다. 2009년 도지사 소환조사 주민투표가 실패로 돌아갔던 경험 탓이다. 당시 영리병원 허가 문제 등과 관련해 당시 김태환 도지사를 소환조사하자는 주민투표가 열렸지만 결국 개표조차 하지 못했다. “주민소환법상 전체 투표권자의 3분의 1 이상이 투표에 참여해야 개표를 할 수 있는데 투표소 입구마다 마을 이장이 지켜보고 있으니 어떻게 투표를 하겠어요.” 박찬식 상황실장의 말이다. 당시 최종 투표율은 실제로 11%에 그쳤다.

신산리 주민 강석호씨도 주민들이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고 토론하고 결정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도지사도 다른 데 출마하면 그만이고, 국토부 공무원도 퇴직하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평생 여기서 살아갈 거야. 그 뒷감당은 우리 주민들이 해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결정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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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보(57)·신산리 이장
“저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그래요. 제2공항 들어오면 이민 갈 거라고. 생각해보세요. 비행기 배꼽 쳐다보면서 어떻게 살겠어요? 이렇게 마을 주민들은 하나 둘 떠나고 이주민이나 사업하는 사람들이 들어오다 보면 500년 된 우리 마을은 사라지겠죠. 사람들이 흔히 제주에 기대하는 여기만의 독특한 문화들이 있잖아요, 제주 사투리나 해녀 문화나 오름 같은 풍경들. 사람들이 ‘그래서 제주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풍경들이요. 그게 이렇게 사라지는 거예요.”

 

 

ⓒ시사IN 이명익

김형주(62)·난산리 이장
“제2공항이 정말 제주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거라면 우리는 물러나겠다고 했어요. 대신 그전에 우리가 가진 의문을 말끔하게 풀어달라고요. 우리가 평생 살아온 터전에서 나가려면 나라에서 ‘당신들이 무엇을 위해 희생한다’는 명분이라도 줘야할 거 아니에요. 근데 우리가 의혹 하나 제기하면 그거 하나 변명하고, 다른 의혹 불거지면 또 그거 변명하느라 바쁘고⋯. 이걸 5년 내내 반복한 거예요. 어디 중소기업도 아니고 국가가 주도하는 사업인데. 나라가 왜 이렇게 자신 없게 사업을 진행하는가, 그게 제일 화가 나죠.”

 

 

김문식(52)·수산리 이장
“관광객 더 받으려다가 오히려 오던 관광객도 발길을 끊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제주살이 하러 온 분들도 지금 떠나고 있거든요. 더 이상 여기서 살 이유가 없다고. 과연 무작정 개발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무엇보다 미래 세대가 살아갈 터전인데 우리가 이렇게 한번 쓰고 버리듯이 물려줘도 되나? 미안하고, 안타깝고. 잘 모르겠어요. 좀 길게 내다봤으면 좋겠어요.”

기자명 제주/글 나경희 기자·사진 이명익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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