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천 점용허가를 받지 않아 폐쇄된 대구 달성군 하빈파크골프장에서 파크골프를 하는 사람들. ⓒ시사IN 이명익
하천 점용허가를 받지 않아 폐쇄된 대구 달성군 하빈파크골프장에서 파크골프를 하는 사람들. ⓒ시사IN 이명익

일요일마다 동네 공원에서 ‘주민 반대 모임’이 열린 게 벌써 일곱 번째다. 4월16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 백련근린공원에 주민 30여 명이 모였다. “그래서 지금 파크골프장 허가가 난 겁니까?” 한 주민이 묻자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 장성암씨가 답했다. “지금은 타당성 조사(설계용역)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구의회에서 예산 7억5000만원을 책정했고 올해 안에 만들겠다고 사업계획도 문서로 만들었습니다. 구청에서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에 반대 의견이 많으면 올해 안에 공사를 진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꼭 막아야 합니다.”

장성암씨는 두 달 전 주차 민원을 넣으려고 서대문구청에 들렀다가 우연히 백련근린공원에 파크골프장이 들어선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주민들에게 의견도 구하지 않고 사업을 진행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지만, 무엇보다 사업 자체가 이해가 안 되었다. “평지도 아니고 비탈이 있는 공원을 파크골프장으로 만든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원래 이 공원은) 도심이지만 하천에 사는 두꺼비와 개구리, 다양한 새들을 볼 수 있어 아이들을 위한 숲 체험장도 있다. 어린이들과 어르신들, 강아지와 산책 나온 가족들을 자주 볼 수 있는 곳인데 몇몇 사람들만을 위한 파크골프장이 왜 필요한가?”

같은 마음을 가진 주민들은 일주일에 세 번, 하루 한 시간씩 돌아가며 서대문구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주민대책위원회를 조직해 현수막도 만들어 마을 곳곳에 붙였다. 처음엔 ‘우리 동네 잘살게 되는 거냐’고 묻던 어르신들도 이제는 파크골프장 설립에 반대하며 주민모임에 나온다.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약 2300명이 파크골프장 설립 반대 서명에 참여했다.

10년 동안 서대문구에서 살아온 김서린씨도 반대 서명에 동참했다. 마을 주민은 아니지만 연대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반대 모임에도 참여했다. “서대문구청에서 2021년에 ‘2022 지속가능발전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도시 숲을 조성하겠다며 백련근린공원의 자연을 복원하겠다고도 했다. 그래놓고 1년 만에 이곳을 도로 없애겠다는 거다.”

반대 모임에 참석한 주민들은 저마다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 모습이 김씨 눈에 신기하게 보이기도 했다. “한 할아버지가 파크골프장이 생기면 여기 있는 것들이 다 사라진다고 하면서 주위에 있는 나무를 가리켰다. 이 나무들이 자라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하더라. 그 순간 모두가 공원을 둘러봤다. 곳곳이 너무 아름다웠다. 꼭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파크골프장은 노인복지시설이라는 흔한 주장과 달리, 반대 모임에 참석한 노년층 주민들은 한목소리로 ‘우리 핑계를 대지 말라’고 말한다.

백련근린공원 파크골프장 설립은 ‘구청장 지시 사항’이었다. 지난해 8월, 이성헌 서대문구청장과 직능단체장의 차담회 자리에서 직능단체장(파크골프협회)이 파크골프장 설립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대문구청이 올해 4월에 작성한 ‘백련산 파크골프장 조성 여론조사 용역 추진계획’ 문건에 따르면, 서대문구는 지난해 8~9월에 구(區) 파크골프협회와 함께 여러 사업 대상지들을 견학하고 검토했다. 그러다 나온 결론이 약 7000㎡ 규모의 백련근린공원 일대다. 올해 2월10일 예산 7억5000만원을 편성하는 사업 추진계획이 수립되었고, 곧바로 3월2일 설계 용역에 착수했다. 구청 관계자와 반대 주민이 공식적으로 만날 수 있었던 때는 설계 용역이 이미 진행 중이던 3월28일이었다.

서울 서대문구 백련근린공원이 파크골프장 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주민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서울 서대문구 백련근린공원이 파크골프장 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주민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지방선거에서 단골 공약으로 급부상

일본에서 시작된 파크골프는 공원(Park)과 골프(Golf)를 합친 말로, 소규모 공간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미니 골프다. 클럽(골프채) 하나와 플라스틱 공 하나만 있으면 참여할 수 있고, 공과 홀컵 크기가 커서 골프보다 훨씬 쉽게 경기를 즐길 수 있다. 이용료는 골프장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개는 무료이며 비용이 청구되는 경우에도 1회 이용료가 5000원 내외다. 구(區) 파크골프협회에 가입해도 연회비는 3만~5만원 정도다.

국내에서 파크골프장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2000년이지만, 최근 파크골프 이용자 수가 눈에 띄게 늘면서 ‘고령화 시대의 인기 스포츠’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기준 대한파크골프협회에 등록된 이용자는 10만6505명(전년 대비 66% 증가)이다.

수요가 늘자 공급도 늘었다. 국내 파크골프장 수 역시 지난해 361개로, 2019년 대비 44% 이상 늘어났다. 지난해 6·10 지방선거에서 파크골프장 설립 공약은 지자체장 후보들의 흔한 레퍼토리이기도 했다. 김태흠 충남도지사와 김영환 충북도지사는 도내 모든 기초자치단체에 파크골프장을 설치하겠다고 공약하기도 했다.

하천 둔치나 도심 녹지공간에 파크골프장이 늘어나면서 환경오염을 일으킨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잔디 관리를 위해 농약을 사용한다는 점, 야생동물 서식지가 파괴된다는 점, 식수원 근처에 설립될 경우 수질이 오염된다는 점, 홍수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 등이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파크골프장은 작은 면적을 이용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런 비판을 피해왔다. 파크골프장은 1코스가 최소 9홀인데 이 경우 평균 약 1만㎡(약 3000평) 안팎의 면적이 필요하다. 문제는 최근 들어 ‘골프 인구를 시설이 수용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골프장 규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남해군은 2026년 내 72홀 구장을 유치할 계획이며 경북 군위군은 180홀, 경남 창원시는 전국 지자체 가운데 최대 규모인 총 500홀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파크골프의 메카’로 주목받는 지역이 있다. 대구다. 단일 도시로는 파크골프장이 가장 많이 설립된 지역이다. 현재 25개(513홀) 구장이 만들어졌다. 파크골프 회원수도 전국에서 가장 많다. 2022년 기준 등록 회원은 1만8696명(전년 대비 28% 증가)으로, 전국 협회원의 약 20%를 차지한다. 전년 대비 회원이 61% 증가한 서울(6272명), 81% 증가한 부산(5658명)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규모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파크골프장은 노인복지시설 기능을 강화”하고 “노인 질환과 성인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며 파크골프장 설립 경쟁에 뛰어들었다. 지난 1월, 대구시는 ‘금호강 르네상스’ 사업의 일환으로 2024년까지 금호강(대구 구간) 41.6㎞ 구간에 파크골프장 6개소(108홀)를 신설·확장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 경우 금호강 유역 파크골프장은 14곳에서 20곳으로 늘어나 산술적으로 2㎞마다 한 곳씩 파크골프장이 자리하게 된다.

대구 북구 사수동 금호강 강변, 금호대교(사진 맨 아랫부분)와 와룡대교 사이 10만5464㎡ 부지에 36홀 파크골프장이 세워질 계획이다. ⓒ시사IN 이명익
대구 북구 사수동 금호강 강변, 금호대교(사진 맨 아랫부분)와 와룡대교 사이 10만5464㎡ 부지에 36홀 파크골프장이 세워질 계획이다. ⓒ시사IN 이명익

4월18일 〈시사IN〉 취재진은 대구시 북구 사수동을 찾았다. 이곳은 새로 신설·확장할 파크골프장 예정지 6곳 중 한 곳이다. 36홀 규모의 사수파크골프장이 세워질 계획이다. 2022년 10월 첫 삽을 떴지만 현재는 공사가 일시 중단된 상태다. 2021년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통과시킨 대구지방환경청이 결정 사항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당시 환경영향평가 협의의견서에는 “해당 공사 부지 10㎞ 이내에 파크골프장이 10개소(234홀)가 이미 존재하며 일부 이용자들만을 위한 시설물 설치는 공유재 사용계획에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대목이 있다. 또한 “수달, 삵, 흰꼬리수리 등 법정보호종 등 야생생물 서식이 확인되었고 철새 도래지로도 지정되어 있는 곳인 만큼 이들의 서식 여부를 면밀히 재조사하고 보호 대책을 수립한 후 공사를 실시해야 한다”라며 파크골프장이 생태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원래대로라면 이러한 소규모 환경평가 결과 때문에 공사를 중단할 필요는 없다. 공사가 진행된 이후 사후 조사를 진행할 때 보호 대책 등을 제출하면 되기 때문이다. 대구 북구청은 해결책을 세우지 않고 공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시민들이 제동을 걸었다.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모인 ‘금호강 난개발 저지 대구경북공동대책위원회’ 정수근 집행위원장은 공사 현장에 카메라를 설치해 그곳에 멸종위기종인 야생동물이 살고 있는 흔적 등을 수집했다. “수달의 배설물이 공사 현장에서 60m 떨어진 곳에서 단 한 개만 발견됐다. (야생동물의) 흔적이 발견됐다고 해서 서식지라고 할 수 없다”라는 2021년 환경영향평가 현지 조사 결과를 반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녹화된 영상에는 너구리, 삵, 수달 등이 수시로 오갔다. 지역 언론 역시 사수파크골프장 신설이 야생동물 서식지를 파괴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결국 대구지방환경청은 뒤늦게 공사 중단을 명령했고 대구 북구청에 5월 재조사 기한까지 야생동물 보호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시사IN〉이 현장을 찾은 날도 하천 기슭에서 어렵지 않게 동물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수달이 뭍으로 올라와 등을 비비면서 생긴 흙구덩이부터 삵·고라니의 발자국과 배설물도 곳곳에서 발견됐다. 정수근 집행위원장은 물고기 가시가 많이 나온 수달 배설물을 가리키며 “‘뭐 이런 데 살고 있을까’ 싶은 곳에도 동물들이 보이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원래 야생동물들은 산과 하천을 오가며 살아야 하는데 도로로 (이동 경로가) 단절됐다. 야생동물들이 거처를 잃고 하천에 고립돼 살게 된 이유다. 하천은 야생동물들의 마지막 집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하천 둔치마저 무분별하게 개발한다는 것은 공존을 포기한 행정이다.”

영남권 파크골프장 62.2%가 불법

대구 동구 봉무 파크골프장 전경. 사진 아래(녹색 띠) 부분을 제외한 골프장 부지는 모두 하천 점용 허가를 받지 않은 부지이다. ⓒ시사IN 이명익

파크골프장을 확장하면서 하천 점용허가를 받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지난 9월,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영남권 파크골프장 74곳 중 46곳(약 62.2%)이 불법으로 설립되었거나 무허가로 확장되었다며 올해 6월까지 원상복구를 명령했다. 취수원·보존지역 같은 시설 입지 불가 지역에 설립된 파크골프장도 10개나 되었다.

무허가로 파크골프장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주민들의 민원과 단체장들의 밀어붙이기식 행정이 있다. 대구 봉무파크골프장은 전체 면적 1만3000여㎡ 중 약 6000㎡를 하천 점용허가를 받지 않은 채로 사용한 탓에 올해 2월 일부 폐쇄됐다. 이곳 관계자는 〈시사IN〉과 인터뷰하면서 이곳이 이◯◯ 대구 동구청장의 결단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10년도 더 전에 여기 파크골프장이 만들어졌다. 파크골프 회원은 급속도로 늘어나는데 행정적인 절차가 통과되지 않으니까 당시 동구청장이 주민들의 편의를 봐서 밀어붙여 진행을 한 거다.” 사실 확인을 위해 대구 동구청에 문의했으나 담당 공무원은 “담당자가 수시로 바뀌는 데다 워낙 예전에 설립된 거라 당시 상황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라고 말했다.

대구 내 무허가 파크골프장 5곳 중 4곳이 위치한 달성군의 한 공무원은 파크골프장 설립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빈 공간이 있으니까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공을 치며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시설물을 요구하는 민원이 들어오니까 군청에서 간단한 시설물들을 직접 만들어줬다. 잔디가 필요하다고 하면 식재도 해주고, 그물망이 필요하다고 하면 설치도 해주고. 하천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무단으로 사용하게 된 거다.”

정수근 집행위원장은 하천 같은 공유 공간이 노인복지라는 명목 아래 무허가로 쉽게 점유될 수 있었던 이유로 ‘공짜’를 들었다. “하천 같은 국유지는 토지 매입비용이 들지 않는다. 행정절차만 거치면 돈 한 푼 이지 않고 이 땅을 쓸 수 있다. 정말 복지를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이라면 환경을 파괴하면서 하천에 설치할 게 아니라 비용을 써서 적절한 곳을 매입해 설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밀한 환경영향평가와 적법한 주민 동의 없이 무허가로 난립한 파크골프장을 ‘체육시설’ 혹은 ‘복지시설’이라는 말로 둔갑시키며 행정 책임을 피하고 있다.”

4월18일 오전 내내 흐리던 날씨가 한낮이 되자 개었다. 무허가 점유로 시설이 폐쇄된 달성군 하빈파크골프장에 파크골프협회 회원 열두 명이 모여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 8년째 파크골프를 즐기고 있다는 60대 남성이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오전에 비도 오고 해서 사람이 적은 거다. 평소에는 몰래 이용하는 사람들이 두 배는 넘는다. 오늘은 부부모임으로 같이 나왔다. 꾸준히 연습하면 저렴하게 건강도 관리하고, 마음 맞는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놀 수도 있으니 좋다.”

그는 최근 환경 이슈로 파크골프장들이 폐쇄되는 상황이 안타깝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수달이 나와서 폐쇄된 곳도 있다고 하던데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 나처럼 즐겁게 운동하는 사람이야 마냥 좋지만 반대하는 사람들은 또 그게 아니니까. 우리도 나쁜 얘기 들으면서 하고 싶겠나.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잘 풀어줬으면 좋겠다.”

이들이 당당하게 파크골프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결국 합법적인 절차를 거친 시설이 자리 잡히는 것이다. 현재 파크골프장 설치에 관한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법령의 사각지대에서 지자체의 임의적 판단으로 전국 각지에 파크골프장이 들어서고 있다.

기자명 대구·김다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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