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배우자인 이일병 연세대 교수가 요트를 구입하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외교부는 해외여행 연기와 취소를 권고해왔다. 정작 그 수장의 배우자가, 시민들이 보기엔 사치스러운 목적으로 외유를 떠났다. 강 장관 퇴진까지 거론하는 전근대적 발상은 좀 섬뜩하지만, 비판의 쇄도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교수 본인은 이런 사태를 예측하지 않았거나 심지어 그 필요성도 못 느꼈을 터이다. 너무도 당당한 그의 발언(“내 삶을 사는 건데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때문에 그것을 양보해야 하나”)을 보라. 그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선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욕망에 극도로 충실하려는 유형의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강 장관도 포함)의 평판을 의식하지 않는다. 천상의 자유주의가 지상에 육화한 것처럼 보인다. 누구나 자유를 원한다. 다만 자유엔 돈이 필요하다.
자칭 타칭 자유주의자인 시사평론가 진중권씨가 ‘이 교수에 대한 비난’을 비판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공동체적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희생시키는 것을 이쪽이나 저쪽이나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게 아닌가.” 다만 아무리 문재인 정부가 미워도 ‘도심 집회 차단’을 ‘개인의 자유·권리 희생’으로 싸잡아 몰아붙인 것은 성숙한 태도가 아니다. 도심 집회가 방역 시스템에 큰 구멍을 뚫은 일이 최근에 발생하지 않았던가. 이 교수의 도미(渡美)와 요트 유람은 그가 밀입국하지 않는다면 방역에 큰 부담을 주기 어렵다.
‘젊은 노인’을 주제로 제683호 커버 패키지를 구성하면서 이 교수를 무턱대고 옹호할 수 없다는 점도 통감했다. 한국인들은 세계 최저 출산율과 함께 앞으로 십수 년에 걸쳐 무려 1700만여 명이 노인층으로 진입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젊은이가 줄어드는데 노인 부양 비용은 대폭 증가한다. 한국 사회가 그동안 힘겹게 구축해온 국가 시스템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지만, 개혁은 필연적으로 다양하고 복잡한 이해충돌로 이어질 것이다. 각 개인·계층들이 자신의 자유와 권리에만 민감하다면 시스템 개혁과 연착륙은 불가능하다.
최근 의사 파업이나 비정규직 정규직화 논란 등을 보면, 진중권씨의 말과 반대로, ‘개인의 자유·권리를 위해 공동체적 이익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도 한국 사회의 당당한 흐름 중 하나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국가가 너무 강하면 전체주의로 흐르고, 개인 자유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무질서로 귀결된다.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가’라는 고전적 논쟁엔 정답이 없다. 이일병 교수가 앞으로는 다른 사람 눈치도 좀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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