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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9월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및 시세조종’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사건의 발단은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합병회사명은 삼성물산)’이다. 두 기업을 하나의 회사로 합치려면, 우선 양사의 ‘기업가치’부터 평가해야 한다. 양사 주주들의 이익이 달려 있다. ‘내’가 지분을 가진 ‘합병 이전 회사’의 가치가 높게 매겨질수록, 합병회사에 대한 ‘나’의 지배력이 강화된다. 이재용 일가는 제일모직에 많은 지분을 갖고 있었다. 검찰은, 삼성 측이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를 높이려고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본다. ‘합병 삼성물산’에서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바이오제약 연구·개발 업체인 바이오에피스(에피스)도 같은 맥락에서 활용된 것으로 주장된다. 제일모직은 바이오로직스(삼바)를, 삼바는 에피스를 자회사로 뒀다. 세 기업은 지배-종속 관계로 묶인 ‘한식구’였던 셈이다. 그런데 삼바 측이 에피스의 지위를 ‘가깝지만 엄연히 다른 회사(관계기업)’로 바꿔버린다. 아주 중요한 변화다. ‘한식구’가 아니라 외부의 ‘다른 회사’라면 팔 수 있다. 얼마에 팔지? 에피스는 비상장회사였으니 주가가 없다. 기업가치가 모호하다. ‘순자산(2900억원) 정도면 되지 않을까’라고 대충 예측할 수는 있다. 그러나 ‘팔 수 있는 회사’가 되면 기업가치 평가 방법이 완전히 달라진다. ‘앞으로 벌어들일 것으로 추정되는 금액’을 현재가치로 환산해서 기업가치를 매길 수 있다. 미래성장산업인 만큼 높은 수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 모양이다. 에피스는 무려 5조3000억원으로 평가되었다. 에피스 주식을 자산으로 보유한 삼바, 삼바를 소유한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도 당연히 오른다. 일가의 ‘경영권 승계’에 이로운 일이었을 터이다.

지난해 7월 관련 기사(제618호 ‘삼성의 운명 가를 ‘회계 사기’ 의혹 총정리’)를 쓰면서 몹시 혼란스러웠다. 첫째, ‘기업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자체엔 시비를 판명할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다. 검찰과 삼성의 논박이 때론 범죄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학술 논쟁처럼 느껴졌다. 둘째, 삼성 측의 부정행위가 법적 사실로 입증될 경우 불거질 국가경제 차원의 타격이 두려웠다. 사실상 그룹의 지주회사인 ‘합병 삼성물산’의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일부 언론이 이재용 기소를 ‘절체절명의 순간에 닥친 사법 리스크’ 같은 논조로 비판하는 것은 문제다. ‘이재용이 기소되어도 삼성이란 회사엔 아무 문제없다’는, 듣기 좋은 소리를 늘어놓고 싶지도 않다. 개인적으로는 중단기적으로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법치주의로 운영되는 나라다. 누구든 재판에서 혐의가 입증된다면 처벌받아야 한다. 그로 인한 경제적 타격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한 비용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기자명 이종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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