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19~29세 응답자의 19.9%, 60세 이상의 응답자 9.3%가 유튜브를 가장 신뢰하는 언론매체로 꼽았다.세대를 넘나드는 대세다.

레거시 미디어(전통 미디어)의 근간인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2020년 〈시사IN〉 신뢰도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가장 신뢰하는 언론매체로 ‘유튜브’를 꼽았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 역시 기성 언론을 제치고 두 번째로 많은 응답을 얻었다. 반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가장 신뢰하는 언론매체로 꼽혔던 JTBC는 여타 방송사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신뢰도가 하락했다. 무엇보다 기성 매체에 대한 무관심이 언론 수용자 전반에 퍼지고 있었다. 매체에 대한 신뢰는 곧 매체 브랜딩과 직결된다. 2020년 한국 언론은 신뢰가 실종되는 동시에 돌파구 삼을 ‘간판’마저 잃어버렸다.

유튜브를 신뢰한다는 응답자들이 갑작스럽게 늘어난 것은 아니다. 지난해 ‘가장 신뢰하는 언론매체’ 조사에서도 유튜브는 12.4%를 차지해 2위에 올랐다. 응답 비율은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하다. 응답자 가운데 13%가 유튜브를 가장 신뢰한다고 답했다(〈그림 1〉 참조). 네이버를 가장 신뢰한다는 응답은 지난해 7.8%에서 올해 11.4%로 3.6%포인트 상승했다. 플랫폼 미디어 서비스에 대한 신뢰도는 정체 또는 소폭 상승한 셈이다.

반면 기성 미디어의 신뢰도 하락이 순위 변동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1위(15.2%)였던 JTBC는 올해 5.7%로 4위를, 지난해 3위(9.6%)였던 KBS는 순위 변동 없이 올해 8.5%로 소폭 하락했다. MBC (2019년 3.1%, 2020년 5%)와 TV조선(2019년 3.5%, 2020년 4.5%)을 가장 신뢰한다는 응답이 소폭 상승했지만, 다른 전통 미디어에 비해 독보적인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반면 ‘불신하는 언론매체’를 묻는 질문에서는 여전히 기성 매체를 첫손에 꼽는 응답자가 많았다. 〈그림 2〉를 살펴보자. 응답자의 22.8%가 〈조선일보〉를 가장 불신한다고 답했다. 2018년 20.5%, 2019년 24%에 이어 올해도 그 비율엔 큰 변화가 없다. TV조선(8.5%), KBS(7.6%), MBC (6.9%)가 각각 뒤따랐다. 반면 가짜뉴스 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는 유튜브·페이스북을 가장 불신한다는 응답은 각각 6.4%, 1.5%에 불과했다.

언론매체 신뢰도 응답은 정치 성향별로, 세대별로 차이를 보인다. 정치 성향이 보수라고 답한 이들일수록 유튜브와 네이버 쏠림 현상이 심했다. 보수층 가운데 13.8%가 유튜브를, 14.5%가 네이버를 가장 신뢰한다고 답했다. 정치 성향이 진보라고 답한 이들 중에서도 13.9%가 유튜브를 가장 신뢰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중도층에서 유튜브를 가장 신뢰한다고 답한 이들은 11.3%로 상대적으로 쏠림 현상이 덜했다. 오차범위 이내이지만 정치 성향이 한쪽으로 기울수록 유튜브에 대한 신뢰도가 비교적 높게 나타나는 모습을 보였다.

세대별 격차는 더욱 극적이다. 19~29세 연령층 응답자 가운데 22.4%가 네이버를, 19.9%가 유튜브를 가장 신뢰한다고 답했다. 30대 연령층에서도 네이버(21.6%), 유튜브(19.2%)를 가장 신뢰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반면 60대 이상 연령층에서는 KBS를 첫손에 꼽는 이들이 15.7%로 가장 많았다. 아직까지는 전통 미디어의 영향력이 큰 세대다. 2위도 10%를 기록한 TV조선이었다. 그러나 60세 이상 응답자들 사이에서도 유튜브를 가장 신뢰한다는 응답이 9.3%에 달해 유튜브가 세대를 넘나드는 ‘대세’임을 입증했다.

그렇다고 젊은 세대를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유튜브에 쉽게 현혹되는 수동적 존재’로 바라볼 수는 없다. 19~29세 응답자의 경우 ‘유튜브를 가장 불신한다’는 답변 역시 많다. 이들 세대에서 ‘유튜브를 가장 불신한다’고 답한 비율은 13.1%에 달한다. 특정 매체에 대한 신뢰와 불신이 병립하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유튜브에 익숙한 세대일수록 오히려 유튜브라는 플랫폼 안에서 신뢰할 만한 콘텐츠와 그렇지 않은 콘텐츠를 구분해서 수용하려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유튜브와 네이버 같은 플랫폼 기업의 영향력을 걷어내고 순수하게 전통 미디어끼리 신뢰도를 평가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시사IN〉은 응답자들에게 각각 ‘가장 신뢰하는 방송 매체’와 ‘가장 신뢰하는 신문 매체’를 따로 물었다. 31쪽 〈그림 3〉처럼 방송 매체 중에서는 JTBC의 하락세가 가장 선명했다. 2017년 신뢰도 조사 당시만 해도 응답자의 43.4%가 JTBC를 가장 신뢰한다고 답했지만 그 비중은 2018년 37.4%, 2019년 27.4%를 거쳐 올해는 13.2%까지 떨어졌다. 올 1월 손석희 JTBC 대표이사 사장이 간판 프로그램인 〈뉴스룸〉 앵커 자리에서 물러난 영향도 적지 않으리라 풀이된다. 반면 KBS는 18%대 응답 비율을 회복해 4년 만에 ‘가장 신뢰하는 방송 매체’ 1위로 재등극했다.

MBC와 TV조선의 상승세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MBC는 지난해 6.8%에 불과했던 응답 비율이 15.6%까지 상승해 ‘가장 신뢰하는 방송 매체’ 2위로 올라섰다. 특히 진보 성향 응답자 가운데 23.5%가 MBC를 첫손에 꼽았다. 지난해 진보 성향 응답자 가운데 MBC를 가장 신뢰한다는 비율이 6.9%에 그친 점을 감안하면 큰 폭으로 상승한 셈이다. 반면 JTBC는 지난해 진보 성향 응답자 가운데 51.7%의 지지를 얻었지만 올해 그 비율은 21.2%로 줄어들었다. JTBC를 신뢰하던 이들 중 일부가 MBC로 돌아섰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TV조선 역시 2017년 ‘가장 신뢰하는 방송 매체’ 조사에서 1.8%에 불과했지만 점차 인지도와 신뢰도를 높여갔다. 올해 조사에서는 역대 처음으로 두 자릿수(10.1%) 지지세를 확보해 4위에 올랐다. TV조선은 MBC와 반대로 보수층 응답자 사이에서 가장 높은 신뢰도(18.2%)를 보여 전체 평균을 끌어올렸다.

개별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도 조사 역시 순위가 뒤바뀌었다. 2015년부터 5년 연속 ‘가장 신뢰하는 방송 프로그램’ 1위에 꼽혔던 JTBC 〈뉴스룸〉은 올해 처음으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1위 자리를 내주었다(〈그림 5〉 참조). JTBC 〈뉴스룸〉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직후인 2017년 조사 당시 24.7%까지 상승했지만 해마다 지지세가 점차 하락해 올해는 4.2%에 불과했다.

반면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지난해 6%에서 올해 5.4%로 소폭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1위를 차지했다. 방송사별 간판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도가 전반적으로 낮은 까닭에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림 4〉처럼 ‘가장 신뢰하는 방송 프로그램’ 1위인 〈김어준의 뉴스공장〉부터 8위인 SBS 〈8 뉴스〉(1.6%)까지 모두 오차범위 이내에 포진되어 있다. 그만큼 어떤 방송 프로그램이 특출하게 신뢰를 얻고 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2013년까지만 해도 양대 지상파 간판 프로그램으로 꼽혔던 KBS 〈뉴스 9〉와 MBC 〈뉴스데스크〉 역시 올해 조사에서는 각각 3.6%, 2.2%에 불과하다. 신뢰도 측면에서 각 방송사의 메인 뉴스 프로그램이 도토리 키 재기 경쟁을 이어가는 형국이다.

신뢰하는 신문? ‘없다/모름/무응답’ 45.5%

신문 매체의 사정도 그리 다르지 않다. ‘전반적인 신뢰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응답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신문 매체’로 꼽은 곳은 15.2%를 획득한 〈조선일보〉다(〈그림 7〉 참조). 특히 보수 성향 응답자 가운데 26.9%가 〈조선일보〉의 손을 들어주었다. 뒤이어 〈한겨레〉가 13.1%를, 〈중앙일보〉가 6%를 확보했다. 그 뒤를 〈동아일보〉(4.6%), 〈경향신문〉(3.8%)이 따른다. 전체 순위는 지난해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1위부터 5위까지 모든 신문 매체가 지난해보다 응답 비율이 소폭 하락했다.

개별 신문 매체에 대한 신뢰도가 조금씩 약해진 대신 ‘악플보다 무서운 무플’이 점차 늘어가는 중이다. 〈그림 8〉처럼 ‘어떤 신문 매체를 가장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점점 많은 사람들이 ‘없다/모름/무응답’을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만 해도 응답자의 25.7% 수준이었던 ‘없다/모름/무응답’ 비율은 2017년 40.5%로 대폭 상승한 뒤, 올해 45.5%까지 꾸준히 늘고 있다. 특정 신문사의 신뢰 여부를 응답하기 어려울 만큼 신문 매체 전반에 대한 불신이 강하거나 신문 매체 자체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에 관심에서 멀어진 것인지 아니면 관심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신뢰를 응답할 수 없는 것인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다만 전통 미디어의 한 축을 담당하던 신문 매체에 대해 이제 응답자의 절반가량은 아예 판단을 보류하거나 피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결코 언론 전반에 긍정적인 신호는 아니다.

전통 미디어의 신뢰도와 존재감이 점점 허약해지는 경향성은 개별 언론인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올해 신뢰도 조사에서도 응답자들에게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을 물었다(〈그림 6〉 참조). 역대 모든 결과에서 1위를 차지했던 손석희 JTBC 대표이사 사장이 올해에도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으로 꼽혔다. 하지만 그 비율은 예년만 못하다. 2017년만 해도 응답자의 40.5%가 손 사장을 가장 신뢰한다고 답했지만, 지난해 21.6%, 올해는 11.2%로 급격히 지지세가 축소되고 있다.

올 1월부터 손 사장이 보도 일선에서 한발 물러난 영향도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언론인이 크게 두각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가령 4.7%로 2위를 차지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나 4.1%로 3위를 차지한 유시민 작가 역시 지난해 조사 결과(각각 4%, 5.2%)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늘어난 것은 ‘없다/모름/무응답’ 비율이다. 2017년 조사 당시 42.9%를 차지하던 ‘없다/모름/무응답’ 비율은 지난해 53.5%, 올해 57.9%로 꾸준히 늘고 있다. 매체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만큼 개별 언론인에 대한 판단과 신뢰 역시 꾸준히 ‘공백’을 늘리고 있다.

전통적인 뉴스 미디어의 존재감이 약해지면 개별 언론매체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모범답안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질 좋은 보도를 이어간다’이지만, 개별 언론매체가 정석 대신 ‘생존을 위한 지름길’을 택할 가능성도 점차 높아진다. 모든 매체 수용자로부터 차근차근 신뢰를 얻는 방법 대신 특정 관점의 보도에 더욱 열을 올리는 게 당장의 생존에 더 확실하고 유리한 방식일 수 있다.

언론 수용 문화 역시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에 좀 더 신뢰를 보이는 경향성을 보인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발간한 〈2020 디지털 뉴스 리포트〉에 따르면 한국 뉴스 수용자들은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를 선호하는 비율이 4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40개국(평균 28%) 가운데 네 번째로 높은 비율이다. 그만큼 뉴스 선택에서 편향성이 강하고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어 있다는 의미다.

이번 언론 분야 신뢰도 조사에서도 정치적 양극화는 강하게 반영되고 있었다. 각 언론사의 ‘신뢰도’는 정치적 경향성에 따라 엇갈리며, 일부 매체는 특정 정치적 성향을 강화해 평균 신뢰도를 높이는 효과까지 거두었다. 미디어 주도권은 유튜브나 네이버 같은 온라인 플랫폼 기업에 내준 채 각 전통 매체의 각자도생은 결국 ‘쉬운 길’로 향할 우려가 뒤따른다. 신뢰도와 존재감을 모두 잃은 전통 미디어는 과연 ‘생존’과 ‘대중 신뢰 회복’을 동시에 취할 수 있을까. 2010년대 후반 JTBC의 급부상으로 잠시 가려졌던 전통 미디어의 본질적인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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