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8월14일 부산시청 앞에서 열린 4대악 의료정책 저지를 위한 의사 총파업 부·울·경 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당신의 생사를 판가름 지을 중요한 진단을 받아야 할 때, 의사를 고를 수 있다면 둘 중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 A.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 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 B.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

의사 파업 과정에서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소가 올린 게시물이다. 논란이 되자 게시물을 수정했다. 선택지는 이렇게 바뀌었다. “A. 정당한 경쟁과 입시 전형을 통해 꿈꾸던 의대에 진학한 의사. B. 선발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시민단체 추천으로 공공의대에 진학한 의사.”

의사를 대변한다는 이 단체가 생각하는 ‘정당한 경쟁과 입시 전형’이란, 오로지 수능이다. 같은 게시물의 다른 질문을 보자. “만약 두 학생이 나중에 의사가 되어 각각 다른 진단을 여러분께 내렸다면 다음 중 누구의 의견을 따르시겠습니까? A. 수능 성적으로 합격한 일반의대 학생. B. 시민단체장의 추천을 받아 시험을 치르지 않고 입학한 공공의대 학생.”

왜 수능인가? 사실, 그동안 한국의 대입 전형에서 수능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축소되어왔다. 2021학년도 기준으로 보면, 수능이 큰 축인 정시는 총 모집인원의 23% 정도에 불과하다. 수시의 비중은 77%에 달한다.

그러나 의과대학은 예외다. 전국 38개 의대의 평균 정시 비중은 37.9%로 전체 정시보다 약 15%포인트 높다. 의대가 수시모집에서 요구하는 ‘수능 최저등급’도 매우 높은 편이다. 의대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전형 요소는 여전히 수능이다.

한국에서 의사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관문은 의대 입학이다. 의사 국가시험은 오히려 부차적인 테스트다. 일단 의대 졸업 과정이라면, ‘의사 국가시험’의 합격률은 90%를 웃돈다. 합격률이 높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유럽 다수 나라에선 의대만 졸업하면 시험 없이 의사 자격을 준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의대생에서 의사가 되는 것보다 의대 입학이 훨씬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다음은 입시 전문가인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이사가 한 신문에 기고한 칼럼 중 일부다. “서울대 의예과의 정시 지원 가능선은 국어, 수학, 탐구 백분위 합계 298점(300점 만점), 연세대 의예과는 297점으로 분석된다. (…) 지방권 의대라고 해도 최소 국·수·탐 백분위 합 288~289점 수준을 요구”한다.

이쯤에서 ‘사회의 입장’에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수능 성적이 높아야 의사로서의 능력도 출중할 수 있을까? 의사에게 요구되는 능력이 수능시험에 요구되는 능력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보건학)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의사의 능력이란 너무나 복합적이어서 의대 입학 성적만으로 측정할 수는 없다. 외과의사라면 어떤 수술을 해야 할지, 어떤 방식으로 해야 좋을지 제한된 상황에서 판단해야 한다. 중요한 수술이나 중환자 치료의 경우, 전공의·간호사 등 10명 정도의 팀을 움직일 수 있는 좋은 리더의 자질을 갖춰야 한다. 윤리적 태도도 중요하다. ‘힘들고 아프다’는 환자의 말을 불평불만으로 넘긴다면, 기술이 뛰어난 의사라도 환자를 살리지 못할 수 있다. 그 모든 요소가 합해져서 괜찮은 의사가 된다.”

물론 의과대학 훈련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지적 능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대입 과정의 지적 능력만 따져 의사를 선발하는 방법으로는, 한국 사회에 객관적으로 필요한 의료 인력을 공급할 수 없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서울은 3.1명인데 경북은 1.4명에 불과하다. 중증 응급의료에서 지역 간 격차도 크다. 전국 228개 시군구 중 43.4%(99곳)가 응급의료 취약지다. 소아청소년과와 분만 취약지도 많다. 지금의 의료시스템에서는 이른바 ‘인기 전공’과 ‘기피 전공’이 너무 확연하게 갈린다. ‘몸이 편하다’고 인식되는 ‘정·재·영(정신건강의학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 ‘돈을 잘 번다’고 인식되는 ‘피·성·안(피부과·성형외과·안과)’에 지원자가 몰린다. 외과 계열이나 산부인과는 그렇지 않다. 지방일수록, 비인기 과일수록 의사가 부족하다.

의사 파업 과정에서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소가 올린 게시물.

국가가 이런 상황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시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책무다. 국가는 의료 취약 지역과 필수의료 부문에 의사를 공급할 의무를 지닌다. 문재인 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부가 이 문제를 고심해왔다. 보건복지부가 공공의료 양성을 위한 ‘3대 인재상’을 연구용역으로 도출하기도 했다. “학습능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공공의료에 헌신할 자세를 갖추고, 해당 지역에서 충분한 거주 경험이 있는 학생’이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5년의 보고서다.

다시 김창엽 교수의 설명이다. “(취약 지역과 기피 과 의사에게 돈을 더 많이 주는 방법은) 전 세계적으로 봐도 성공한 사례가 드물다.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해봤자 어떻게든 대도시나 다른 부문으로 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대입) 필기시험에서 1등인 의사를 뽑으라는 요구는 합리적이지 않다. 그렇게 뽑은 의사가 실제로 지역에 살며 필수의료를 제공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볼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지금까지 증명되어온 사실이기도 하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예컨대 수년 동안 해당 지역의 주민으로 거주한 경험(지역 밀착성)이야말로 계속해서 지역에 근무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는 가장 근거 있는 요소다.”

이렇게 뽑힌 공공의대 학생이 의사가 된 뒤에도 더 뛰어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김창엽 교수는 덧붙였다. “해당 지역에 오래 거주할 확률이 높을 뿐 아니라, 그 지역 주민들을 더 잘 이해하고 의사소통도 원활하기에 의사로서 진단과 치료도 더 잘할 수 있다.”

공공의대에 더 민감한 젊은 의사들

보건복지부의 공공의대 선발 방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역 밀착성’이었다. 그래서 공공의대 정원의 수배 정도인 후보군을 “해당 지역 출신자”로 뽑는 ‘1단계 전형’에 ‘시도지사 등 지방정부 수장의 추천’이 들어간다. 지난 수년 동안의 ‘공중보건 연구’에서 반복적이고 공개적으로 검토된 방안이다. 해외 사례도 다양하다.

이 ‘시도지사 추천’이 문제를 일으켰다. 의대생과 전공의 등 ‘젊은 의사’들을 중심으로 선발 과정의 공정성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방안대로라도 단지 누군가 추천한다고 공공의대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전형이든 그런 식으로 운영될 수는 없다. 통상적인 입시처럼 시험성적과 학교생활에서 거둔 실적, 심층면접 등이 반영되는 전형이다. 그러나 ‘젊은 의사’들은 이를 신뢰하지 못했다. 수도권의 한 의과대학 재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 단체행동의 동기는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데 대한 분노였다. 그런데 ‘공공의대 게이트(권력자나 시민사회단체 친인척들을 공공의대로 보내기 위한 음모가 있다는 주장)’ 문제가 의대생 사회 내에서 대대적으로 거론된 이후, 의대 증원 자체보다 공공의대에 대한 반감이 훨씬 커졌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가 회원 전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9월8일 공개), ‘가장 중요하게 반대해야 하는 정책을 꼽으라(2개 복수응답)’는 질문에 78.38%의 학생이 ‘공공의대’를 꼽았다.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의견은 47.07%에 불과했다.

ⓒ연합뉴스2019년 9월19일 서울대에서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다.

왜 의대 정원 확대보다 공공의대가 문제인가? 의사 국가고시를 거부한 경북 지역 의과대학 본과 4학년인 ㄱ씨는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교육은 마지막 남은 계층 사다리다.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해서 좋은 성과를 이뤄낸 학생만이 의대에 갈 자격이 있다. 그런데 시도지사나 시민단체 추천이 개입되면 주관적이고 형평성에 어긋날 우려가 있다. 아무래도 ‘연줄’ 있는 학생이 더 유리할 수 있다. 시민단체 자녀들을 의대에 보내기 위한 정책이 아닌가 싶다.”

ㄱ씨가 보기에 공공의대 정책은 별달리 필요가 없다. 공공의대로 양성하겠다는 감염내과 전문의나 역학조사관이란 일자리에 더 많은 보상을 제공하는 것으로 해결할 문제다. 공공의대를 굳이 만든다면, 학생은 “다른 의대와 똑같은 방식으로 뽑는 게 맞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역시 수능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수능 점수가 가장 객관적이고 깔끔한 지표다. 요즘은 인강(온라인 강의)도 잘되어 있고, 학생은 말 그대로 교재 풀고 공부만 하면 된다.”

대한민국에서 교육은 마지막 남은 계층 사다리이며 그 정점에 의대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대한민국 의사의 월평균 소득은 2016년 기준 1304만6639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같은 해 정규직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279만5000원, 비정규직은 149만4000원이었다. 한국 의사들이 평균적으로 정규직 노동자의 4.6배, 비정규직 노동자의 8.7배를 번다는 의미다.

이런 의대의 입장권을 확정짓는 결정적 요소가 바로 수능인 것이다. 따라서 ‘추천’이라는 요소가 개입된 전형(지방 의사를 양성하는 데 필요하다고 해도)으로 공공의대 학생이 된다는 것은, 이들이 의사로서 일할 자격이 있는지와 별개로 자격 없는 이들이 받는 과도한 보상, 즉 ‘무임승차’로 간주된다.

젊은 의사들이 이렇게까지 반발한 데에는, 의학전문대학원과 관련된 ‘조국 논란’의 영향이 크다는 해석도 있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공의료위원장은 노무현 정부 때 도입했다가 사실상 폐지된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출신 의사들의 입지에 주목했다. “의전원 선발 과정이 실제로 ‘아빠 찬스, 엄마 찬스’로 불리는 불공정 시비에 많이 휩싸였다. 익명 게시판이나 맘카페 등에서 의전원 출신을 ‘의전충(蟲’)이라고 부르며 차별했다. 대부분 의전원 출신인 현재 인턴, 전공의, 전임의 등 젊은 의사들이 (이번 파업의) 전면에 나선 이유 중 하나는 의사 사회 내에서 나름의 충성심을 보인 것이라고 본다. ‘우리’도 의사 집단의 일원이지 ‘의전충’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사 사회에서 ‘의대에 들어올 자격’이 ‘의사로 일할 자격’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게 취급됨을 알 수 있다. 그 자격을 가르는 진정한 기준은 ‘시험’이다. 다만 의사 국가고시가 아니라 수능이다. 이번 단체행동 과정에서 의사 국가고시를 먼저 본 의대생(‘선발대’)들이 어떤 문제가 나오는지 ‘후발대’에게 공유해온 관행이 드러났다. 예비 의사들이 정작 의사 면허를 부여하기 위해 치르는 진정한 ‘자격시험’엔 엄격한 공정성을 들이대지 않는 것이다.

의사의 높은 소득은, 의사 국가고시보다는 수능이란 관문을 통과한 데 따른 보상에 가깝다. 수도권 대학병원의 한 전공의는 “얼마 전에 동료들과 급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한 동료가 ‘국가에서 우리 급여를 월 500만원으로 제한할지도 모른다’며 펄쩍 뛰더라. 슬쩍 ‘근무시간이 주 40시간이면 500만원도 괜찮지 않느냐’고 했더니 발끈했다. ‘자기 주변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은 자신보다 더 쉽게 취업했는데 500만원보다 많이 번다. 그래서 불공평하다’는 거다. 이렇게 자기 주변의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역 간 의료 격차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학습 환경이 갖춰진 곳에서만 자라와 시험만이 공정한 경쟁이라고 믿어버리는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는 이미 의사 파업과 유사한 논란을 경험한 바 있다. 인천국제공항 정규직화 과정에서 보안검색 요원 1902명을 직접고용하기로 하자, ‘공개 채용을 거치지 않는 직접고용은 불공정하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한 2017년 5월12일 전 입사해 공채를 거치지 않기로 한 보안검색 요원 1000여 명에 대해, 인천공항 정규직 노조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카드뉴스를 만들었다. “1000명은 적성검사만 통과! (중략) 정말 ‘공정’하고 ‘투명’한 공개 채용인가요?”

ⓒ시사IN 신선영인천국제공항 보안검색 요원들이 6월30일 인천공항 제1터미널에서 교대하고 있다.

보안검색 요원들은 평균 5년간(3년 이상 근무자 72%) 하루 12~14시간씩 12조 8교대로 일해왔다. 208시간의 항공보안 관련 교육을 이수하고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인증평가를 통과했다. 1년에 한 번씩 별도 평가도 받는다.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능력이나 고객의 만족도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 사업장에서 지속적으로 아무 문제 없이 해당 업무를 수행해왔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자격의 증거가 있을까?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 업무 내용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인천공항 정규직의 지난해 입사 경쟁률은 156대 1로 알려졌다. 서류-필기-AI 면접-1차 면접-2차 면접이라는 바늘구멍을 뚫어야 인천공항 정규직이 된다. 이 시험은 무엇을 위한 시험인가. 바늘구멍을 통과한 인천공항 정규직이 얻는 보상에 답이 있다. 2019년 결산 기준 인천공항 정규직의 1인당 평균 연봉은 9129만8000원이다. 2019년 공기업 정규직 직원들의 평균 연봉 7941만7000원보다도 월등히 높다.

의사가 특권이 아닌 사회

이 정도로 ‘인천공항 정규직’의 대우가 좋기 때문에, 입사 과정이 ‘공정’해야 한다는 논리가 나온다. 또한 공정하려면 경력이나 업무 능력으로 인천공항 정규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설사 기업 측과 소비자에게 이롭다 하더라도 용납되지 않는다. ‘주관에 좌우되지 않는 시험으로 모든 걸 판단하는 게 공정’하기 때문이다.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노동사회학)는 이런 ‘공정’의 논리에 비약이 크다고 말한다.

“(입사나 입학) 시험을 잘 본 사람들이 모든 걸 가져가야 하는 건 아니다. 시험을 보는 능력과 그 일을 잘하는 능력은 다르다. 현재 민간 대기업들은 ‘수시 채용’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불평등’ 논란이 있지만, 특정 직무에서 중소기업 직원이나 비정규직으로 시작해도 경력과 능력을 쌓으면 수시 채용으로 대우 좋은 기업에 들어갈 수 있다고만 한다면 수시 채용이 ‘흙수저’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 다만 한국의 경우 대기업, 공공부문 등 이른바 ‘좋은 일자리’가 기껏해야 20%도 되지 않는다. 의사나 공기업 정규직이 아니더라도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는 경로가 더 분산되어야 한다.”

ⓒ연합뉴스9월16일 부산 해운대구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수능 모의평가를 치르고 있다.

인천공항이 높은 수익을 달성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고임금을 지불할 수 있다. 그 수익의 일부는 회사 측의 효율적 경영과 노동자들의 우수한 서비스에서 나올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일부분은, 인천공항이 한국의 ‘공항 서비스’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덕분이란 점도 분명하다. 국가가 특정 기업에만 어떤 상품의 생산을 허용한다면(경쟁 없는 독점), 그 사업의 수익은 해당 기업의 경쟁력만으로 얻을 수 있는 규모보다 훨씬 크기 쉽다. 이른바 ‘렌트(rent:지대)’다. 국가가 관리하는 면허도 마찬가지다. 그 면허를 받은 사람들이 해당 업무를 독점하게 된다. 그 사람들의 수가 사회에 객관적으로 필요한 수에 미치지 못할 때, 그 직종은 능력만으로 얻을 수 있는 보상보다 큰 수익을 갖게 된다. 의대 정원이 20년 전과 동일한 의사를, 그동안 인력 공급이 크게 늘어난 변호사와 비교해보면 렌트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대입 시험과 공채는 ‘렌트를 누릴 자격 있는 소수’를 가리는 좁은 문으로 공인받아온 듯하다. 다른 통로인 지역균형 선발로 입학한 학생은 이른바 명문대에서도 ‘지균충’이라 불린다. 수년 동안 해당 업무를 문제없이 우수하게 수행해온 생명안전 업무 종사자들이 ‘알바몬’이 된다. 최상위 엘리트라 할 의학전문대학원 학생마저 (의대생에 비해 쉽게 들어왔다는 의미로) ‘의전충’이 된다.

최근 사임한 박지현 전 전공의협의회장은 의사 파업 중 부동산 정책과 인천공항 정규직화 논란을 언급하며 “과정의 공정성은 안중에도 없는 정부”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국가는 ‘과정의 공정’ 앞에서 뒷짐을 지고 있어야 할 존재가 아니다. 국가는 한정된 자원을 취약계층에게도 적절히 배분해야 한다. 일부 계층의 지대추구로 경제 전반의 자원 배분이 왜곡되는 사태를 방지해야 한다. 때로는 배분의 결과에도 개입해야 한다.

수도권 대학병원의 한 전공의는 의사 파업이 남긴 과제 중 하나로 ‘차별’과 싸워가는 일을 꼽았다. “지역 간 차별, 의료인과 비의료인의 차별, 병원 내 위계관계에 의한 차별, 단체행동에 참여하지 않은 이에 대한 차별, 수능 성적으로 인한 차별…. 이번에 논란이 된 의사협회 카드뉴스에 남성 의사만 그려져 있는 것이라거나 ‘덕분에 챌린지’를 비하하는 수어 논란도 이런 큰 흐름에서 보면 놀랍지 않다. 끊임없이 타인과의 비교와 차별을 통해 자신이 가진 것을 공고히 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도 그런 사회 속에서 차별받으며 억울해하고 분노한다. 의사들이 자신들이 차별받기 이전에 차별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수많은 차별에 대항해 함께 싸워나갈 때, 아픈 사회가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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