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러워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나를 부러워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전문직’이라는 것과 ‘돈을 잘 번다’는 것. 그런데 이 두 가지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전문직은 맞는 말이지만, 돈을 잘 번다는 것은, 사회 통념상 ‘방송작가’가 주는 이미지에서 비롯된, 전적으로 친구가 매긴 ‘상상 값’이기 때문이다.
최근 각종 매체에서 방송작가의 존재감이 다각도로 드러나고 있고, 몇몇 유명 작가의 원고료가 밝혀지며 전문직으로서 방송작가가 재조명되고 있기도 하다. 아마 이런 이미지화된 선입견이 내 친구의 상상 값에도 한몫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역에서는 현실과 매우 동떨어진 이야기일 뿐이다.
방송작가의 소득은 크게 두 가지 평균치가 존재한다. 수도권과 그 외 지역. 그리고 그 두 경우의 격차는 심리적으로 서울과 부산의 거리쯤 된다. 그만큼 지역 방송작가들의 현실이 열악하다는 의미다.
2018년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이하 방송작가유니온)가 지역 작가들을 대상으로 원고료 실태조사를 했다. 당시 설문에는 KBS와 MBC 등 지상파 방송의 지역본부, SBS 네트워크 등 민영방송과 더불어 비수도권 지역의 방송국에서 일하던 지역 작가 190여 명이 참여했다. 그렇게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역 작가들의 월평균 추산 급여는 150만~200만원이 36.5%, 100만~150만원이 25%, 200만~250만원이 21.9%로 나타났다. 응답자 연령은 평균 40대 전후가 가장 많았다. 그러니까 마흔까지 일을 해도 월 200만원 벌기가 힘든 상황이라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다. 게다가 노동자라면 당연히 주어지는 4대 보험과 시간외수당, 야근수당 같은 각종 수당 또한 없다. 그래서 당시 방송작가유니온은 “지역 방송작가들의 노동인권에는 원고료 인상과 계약(대부분 구두계약임), 산재보험 3가지가 없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작가 원고료, 프로그램 송출 여부에 따라 지급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방송계는 또 한번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욱이 지역방송은 정규 프로그램은 물론 그간 준비해오거나 이미 제작을 마치고 송출만 남겨둔 프로그램들도 코로나19 때문에 중단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역의 한 방송사에서는 두 달간 준비해오던 프로그램 제작이 갑자기 중단됐다. 방송작가들의 원고료는 프로그램 제작 투입 시작부터 책정되는 것이 아니라, 송출 여부에 따라 지급된다. 이 때문에 프로그램을 위해 두 달 동안 기획과 제작에 시간과 품을 들인 작가들은 방송이 연기되면서 두 달간 노동에 대한 보상을 받기가 요원해졌다.
전문직이란 특정 업종에 대한 지식이나 필요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집단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방송작가는 방송 관련 특수 원고를 쓰고 제작에 참여하는 전문직에 해당하며 그러한 전문인력의 노동 가치는 경력에 따라 충분히 인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역의 방송작가 업계는 이런 시장의 원리를 쉽게 무시한다.
아직도 2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는 원고료에, 업무상 신뢰를 보장하는 ‘계약서’는 없고, 업무 중 다치고 아프더라도 보장받을 ‘산재보험’이 없는 직종, 바로 방송 전문인력이라 불리는 지역 방송작가의 위태롭고 위험한 현실이다.
경력 20년 차 방송작가이지만, 그동안 “방송작가 월급은 얼마예요?”라는 질문에 선뜻 답해본 적이 없는 나는, 내가 부럽다던 친구에게 아직 나의 현실을 제대로 말해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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