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사나이 유튜브 갈무리‘가짜사나이’에서 참가자들은 ‘진짜’ 극한 훈련을 받고 그에 대한 소감을 있는 그대로 밝혔다.

지난여름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영상 콘텐츠 하나를 꼽으라면 ‘가짜사나이’일 것이다. 첫 에피소드는 1200만 조회수를 넘었고, 7개 에피소드 전체를 합하면 5000만 회가 넘는 대히트였다. 제작비 4000만원이라는, 유튜브치고는 거대하지만 지상파에 비하면 너무나 소소했던 프로젝트가 이룩한 거대한 성과였다.

시작은 단순했다. 지난 2월, ‘피지컬갤러리’ 채널의 김계란씨와 인터넷 방송인 공혁준씨의 24시간 합숙으로 만든 ‘우리 아이가 말라졌어요’라는 콘텐츠가 계기였다. 이 콘텐츠는 제목 그대로 공혁준씨의 다이어트, 구체적으로는 몸무게 80㎏ 달성이 목표였다. 그런데 하다 보니 사실상 ‘공혁준 개조 프로젝트’가 됐다. 김계란씨는 그저 운동만 시킨 게 아니라 게으른 생활 패턴 자체를 뜯어고치려 했다. ‘우리 아이가 말라졌어요’ 1편에서 김계란이 공혁준에게 가르친 것은 운동이 아니라 청소와 빨래였다. 김계란은 공혁준의 생활 전체를 통제하며 다이어트를 시키고, 공혁준은 온갖 핑계를 대며 저항하곤 했다. 김계란은 그 나태함을 두고 걸핏하면 “이 ××는 진짜 UDT 훈련 한번 받아서 정신 개조를 시켜야 된다”라고 뱉었다.

그리고 그것이 국내 유튜브 콘텐츠 사상 최대의 히트작 ‘가짜사나이’ 콘텐츠로 현실이 됐다. 흔히 1000만이 넘는 숫자에 ‘현상’이라는 표현을 쓴다. 대중이 ‘가짜사나이’에 열광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거기에 진짜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PD저널〉이라는 매체에서는, “‘가짜사나이’의 댓글 28만 개를 분석해봤더니…최다 키워드는 ‘진짜’”라는 기사를 냈다. 기사에 따르면 가장 자주 언급된 단어가 ‘진짜’였다고 한다. 두 번째로 많이 등장한 키워드는 ‘가짜사나이’의 계기가 된 사람 ‘공혁준’이었다.

‘가짜사나이’는 제목과 형식을 보면 유추할 수 있듯 MBC 예능 프로그램 〈진짜사나이〉의 패러디다. 〈진짜사나이〉의 풀네임은 ‘리얼 입대 프로젝트 진짜사나이’였는데, 정작 방송 내용은 리얼도 진짜도 아닌 ‘악마의 편집’으로 짜낸 억지 감동과 군부대 미화로 채워졌다. 그러나 ‘가짜사나이’는 가감 없이 촬영한 후 너무 자극적인 것은 덜어내면서 편집했다고 한다. 참가자들은 제대로 된 극한 훈련을 받고, 그에 대한 소감을 있는 그대로 밝혔다. 바로 이 지점에 작금의 대중의 욕망이 무엇인지 짐작해볼 수 있는 힌트가 깔려 있다.

‘가짜사나이’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보고 떠올린 기억이 있다. 바로 2012년에 있었던 ‘T24 소셜 페스티벌’이다. 이 행사는 당시 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군용 24인용 텐트를 혼자 칠 수 있겠냐”라는 누군가의 질문에 ‘Lv.7벌레’라는 아이디를 쓰던 유저가 “되는데요”라고 답한 데서 시작됐다. 군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아니 ‘24인용 텐트’가 뭔지 아는 사람이라면 결코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24인용 텐트의 무게는 총 200㎏이고, 지지대 높이는 2m를 넘는다. 최소 분대 단위(평균 7~11명)의 병력이 달라붙어 겨우 설치하는 텐트다. 이를 혼자 설치할 수 있다고 주장하니, 인터넷에서는 그에게 ‘군대도 안 가본 주제에 허세 부리지 말라’는 조롱이 넘쳤다. 심지어 국방부 트위터 홍보 담당관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Lv.7벌레는 관람객 3100여 명 앞에서, 그리고 아프리카TV 측에 따르면 총 100만명 이상이 인터넷 방송으로 시청하고 있는 가운데 이 미션을 성공시켰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행사 분위기가, Lv.7벌레가 현장에 나와서 미션에 도전하는 시점부터 성패와 상관없이 그저 축제를 즐기며 그를 응원하는 모습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실제로 멋지게 성공하며 일종의 영웅서사를 완성했기에 더 폭발적으로 열광했지만, 설령 그가 실패했더라도 더는 조롱받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YojiGom 유튜브 갈무리‘T24 소셜 페스티벌’에서 혼자 24인용 텐트를 치는 모습.

‘전부 다 가짜 아니냐’는 냉소 사회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미 그가 해머질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진짜’를 봤기 때문이다. 여기서 대중이 발견한 진짜란 미션의 성공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허세나 부리다 잠수타기’의 대척점에 있는, ‘실제로 역량이 있으며,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도전을 하러 나온 행위’를 의미한다. 그런 사람인지 그저 사기꾼인지는 첫 해머질에서 표가 난다. 그래서 이 순간부터 대중은 이 ‘진짜’를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진보주의자들은 군대 경험이 소환당하는 것 자체를 불쾌해했지만, 여기서 군필자들의 공통 체험은 징병이라는 강제적 제도의 맥락을 벗어나 진짜를 알아보고 함께 열광하는 축제의 장을 열었던 것이다.

‘가짜사나이’에 대한 열광도 마찬가지다. 출연자들이 받는 얼차려는 다분히 가혹행위의 성격이 강하다. 만약 실제 군대에서 저런 수준의 얼차려를 받았다고 군인권센터에 신고했다면 당장 신문지상에 난리가 날 것이고, 대중도 질타했을 터이다.

그러나 ‘가짜사나이’의 경우 군대와 달리 퇴교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훈련받는 것을 선택했다. 여기서 진짜가 되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가짜사나이’들의 진짜 모습이 펼쳐진다. 그리고 출연자들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진화했다.

이 프로그램이 극사실적인 대목은 또 있다. 군에서 한 사람이 잘못하면 다 같이 얼차려를 받는 건, 전시 상황에선 한 사람의 실수로 소대 전체가 몰살될 수도 있으니까 훈련할 때부터 ‘연대책임’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그러나 실제 군에선 그 얼차려 끝에 불 꺼진 막사로 돌아가면 단단해진 전우애가 아니라 ‘고문관’에 대한 선임들의 갈굼이 기다린다. ‘가짜사나이’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고문관은 공혁준씨였다. 그래서 그는 ‘실제로’ 대중으로부터 비난받았다. ‘가짜사나이’에서 가장 많이 나온 키워드 2위가 ‘공혁준’인 이유다.

그러나 이 고문관 역시 실제로 진화했다. 회차가 후반부로 갈수록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였고 대중의 반응 역시 달라졌다. 애초에 ‘가짜사나이’ 프로젝트 자체가 ‘나태한 공혁준을 바꿀 계기를 만들자’는 데서 출발한 것이 아니던가? 이 프로젝트가 끝나고 그의 태도와 콘텐츠는 실제로 달라졌다. 몸을 움직이기 싫어해 엉망진창이 된 집에서 살던 그는 이제 국토대장정이나 갯벌체험 같은 콘텐츠를 만들어 올린다. 댓글창에는 공혁준의 변화에 대해 놀라는 반응 일색이다.

한국은 냉소가 팽배한 사회다. ‘코인 탑승’이라는 말에 담긴 의미도, 결국 ‘저기에 진짜는 없고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는 거짓’이라는 얘기다. ‘우파 코인’이니 ‘좌파 코인’이니 하는 것도 이념인 척하지만 진영논리에서 이익이나 챙기는 가짜라는 뜻이다. ‘뒷광고’ 논란도 그 냉소가 심화시켰다. ‘가짜사나이’의 폭발적 인기는 여기서 기인한 게 아닐까. 냉소가 깊어질수록 진짜에 대한 갈망도 커지기 때문이다. 연예인 김희철씨는 자신의 SNS에 ‘가짜사나이를 보면서 눈물이 났다’고 썼다. 많은 이들이 ‘진짜’가 되기 위한 ‘가짜사나이들’의 분투에 감정이입하며, 이 사회에서 살고 있는 자기 자신을 되돌아봤다.

개인 경험을 첨언하자면, 필자는 군 생활을 ‘201특공여단’에서 했다. 707 특임대나 UDT SEAL에 비하겠냐만 나름 ‘생명수당’이 나오는 훈련도 받아봤다. 심지어 구타와 가혹행위가 잔존하는 시대였는데 그럼에도 ‘대가리 박아(원산폭격)’ 같은 얼차려는 해본 적 없다. 특히 물속에 머리를 박게 하는 행위는 군내 가혹행위 또는 인권유린의 사례로 언론에 소개되고, 군형법으로 처벌하는 행위로 알고 있다. ‘가짜사나이’가 2기부터 과거의 폐습보다는 개선된 ‘선진 병영’의 모습도 반영해 사실성을 더해주면 좋겠다. 안전사고에 대해선 아무리 주의를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가짜뉴스, 뒷광고, 코인팔이가 넘쳐나는 유튜브 세계에 공중파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뉴미디어의 문법으로 현실세계와 공명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콘텐츠의 새 지평을 연 것을 응원한다.

기자명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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