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

로컬·일상·연결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된 2020년, 문득 궁금해집니다. 지금 동네책방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새로 연재되는 책방 소식 코너에서 만나봅니다.

쩜오책방은 경기도 파주 교하신도시에 있는 동네책방이다. 책을 좋아하는 동네 주민들이 협동조합 형태로 만들었다. 본래 이곳에 간 것은 ‘쩜오 썸머스쿨’이라는 기획이 눈에 띄어서다. 올여름 이 책방에서 두 달간 강좌 프로그램이 진행된다고 했다. ‘글로컬학부’ ‘문화·경제사학부’ ‘창작학부’ 따위 거창한 이름을 달아서다.

이 야심만만한 책방의 기원은 교하도서관이었다. 2008년 도서관이 개관하자 동네가 술렁였다. 문화 인프라가 척박했던 신도시의 지적 욕구가 폭발했다. 당시 사서였던 전은지씨에 따르면 외부 강사들은 강좌가 끝나도 자리를 쉽게 뜨지 못했다. 주민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져서다. 뜨거운 호응에 놀란 강사들은 돌아간 뒤 이렇게 입소문을 내곤 했다. “교하에 가면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라고.

이상한 사람들은 ‘책벗’이라는 독서모임으로 이어졌다. 활동 장소도 도서관에서 마을 공간으로 확장됐다. 주민들끼리 책방을 만들어보자는 얘기가 나온 것은 2015년이다. 시공간 제약 없이 마음껏 읽고 싶은 책을 이야기하고, 이웃들에게 권하고 싶었다. 이름은 ‘0.5’ 할 때의 쩜오로 정했다. 당신이 채워줘야만 1이 완성된다는 의미를 담았다.

협동조합을 만든 것은 2018년이다. ‘더 많은 이웃들과 함께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덕질’을 위해서다. 애초에 책방을 시작한 것은 6명이었지만 협동조합이 되면서 조합원으로 가입한 15명 모두가 책방 주인이 됐다. 2019년 11월에는 숍인숍 형태로 세들어 살던 공간을 벗어나 독립된 공간도 새로 얻었다.

동네 모퉁이, 볕 잘 드는 상가 1층에 자리 잡은 새 서점 공간을 찾은 사람들은 묻는다. “책 팔아서 장사가 돼요?” 물론 쉽지 않다. 조합원들이 돌아가며 책방을 지키는 덕분에 인건비를 아껴 적자를 면하는 정도다. 심지어 책방을 확장 이전하자마자 코로나 시국이다.

책보다 음료나 굿즈를 팔아 연명하는 책방이 많다는 건 업계 상식. 그런데 쩜오서점은 음료도 팔지 않는다. 주문할 수는 있다. 메뉴판도 있다. 다만 음료를 시키면 조금 뒤 옆집 골목 카페 주인장이 주문한 음료를 배달해온다. 쉽지 않은 상생 모델 앞에서 어리둥절해하는 기자를 이들은 외려 신기해했다. “쩜오까지 커피를 팔 필요가 있나. 우리는 책에만 집중하려 한다.”

돈은 못 벌지만 책방에서는 정말 많은 일이 벌어진다. 글쓰기·그림책·독서모임이 수시로 열리고 다양한 북토크와 공연예술도 펼쳐진다. 모임이나 강좌 다수는 마을 주민들의 제안으로 만들어진다. 기획이 확정되면 이끌어가는 것도 마을 주민이다. 기자가 찾아간 월요일 저녁, 쩜오책방에서는 얼마 전 ‘대학을 떠나며’라는 칼럼과 함께 교수직을 반납해 화제가 되었던 사회학자 겸 책방 조합원 조형근씨가 진행하는 ‘코로나 시대, 질병 공부로 꿈꾸는 좋은 세상’ 강좌가 열리고 있었다.

‘마을의 거실’이 필요했다

마을을 연구하고 기록하는 일도 조합원들의 주요 관심사다. 후원처가 없어 허덕대면서도 잡지(〈월간 이웃〉 〈디어 교하〉)와 유튜브 채널(‘책술개꿀’) 제작에 참여 중이다. 마을과 공동체를 스스로 만들고 가꿔나가는 것이야말로 쩜오책방의 핵심 비전이기 때문이다. 조합원 이정은씨는 말했다. “우리에게는 ‘마을의 거실’, 그러니까 마을을 묶어줄 수 있는 문화 플랫폼이 필요했다. 그 중심에 책을 놓은 것이다.”

※ 〈시사IN〉과 동네책방이 함께하는 콜라보 프로젝트 ‘책 읽는 독앤독’(book.sisain.co.kr) 에서도 책방 소식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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